중국여행 다녀오느라 새해 해맞이 명산순례도 못하고
가족행사로 산우들과의 운장산 시산제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그 허전함과 아쉬움은 목구멍의 가시처럼 걸려 있어 마른 기침만으로 빼어낼 수 가 없다.
2월 4째주는 산친구들과 소백산에 가기로 했다.
해파랑길 쫑파티도 못가고 시산제에도 참석하지 못했으니
새해 첫 출정에도 참석하지 못하면 산친구들이 날 미워 할거라
그 날은 열일 있어도 제쳐 놓아야 한다.….
2월 4째주 일요일이 지나면 음력 정월이 넘어간다..
이 날이 지나면 새해 해돋이도 시산제도 다 효력이 없어진다.
십수년을 거르지 않았던 나의 순례 길을 열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만 남아 있는 셈이다..
2월 3째주 주말인 15일과 16일
15일 장터목 산장에는 자리가 없다.
이 겨울에 누가 그렇게 산에 오르는 건지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우짜뜬 당일치기로 천왕봉에 올라 해돋이 보구 시산제 까지 지내구 내려 올라구 마음 먹었는데
그날 해가 안 뜬다고 했다.
오전은 흐리고 오후에는 비가 온단다.
지리 산신령님이 오지 말라는 거다.
길일이 아니라시네….
그랴서 나의 계획은 또 수정되어야 했다.
계룡산을 한 바퀴 돌아 쌀개봉에서 혼자만의 시산제를 지내고 내려 오던지
내 놀이터 대청호를 한 바퀴 돌고 나의 샴발라에서 시산제를 올리던지….
갑자기 산신령님이 전갈을 보냈다.
“무릉객 올라오너라….”
하루 전날에 들어가 보니 날씨가 바뀌었다.
토요일 오전에는 맑고 오후에는 흐리고
고부기가 HIOF 방에 톡을 남겼다.
“야들아 토요일에 모허냐?”
고부기가 모처럼 통발을 놓은 거 보니 쫌 한가한 모양
다른 친구들은 대답이 없어서 나만 답을 남겼디.
“ 나 오늘밤 혼자 지리산 간다. 천왕봉에 신년 해맞이 하러 !”
득달 같이 고부기 전화가 왔다.
코스며 일정을 꼬치 꼬지 묻더니 같이 가도 되겠냐고 훅 치고 들어 온다.
굳이 안 될거야 없지만 나 혼자 가는 명상순례 길에 난데 없이 동행을 자처하니 당황스럽다.
그랴서 이번에는 나 혼자 갔다 오겠다 했더니 굳이 같이 가겠단다.
내가 중국에 갔던 1월 1일에 혼자 지리산을 종주하며 해돋이까지 보았던 고부기다.
근데 한달 만에 또 가서 해 뜨는 걸 본다고?
정말 못말리는 고부기
산 욕심이 드글득한 닌자 고부기 …… .
그랴도 험한 산 야간 산행 길 동행을 자처해 줄 산 친구는 고부기 말고는 몇 명이 안 된다.
체력도 있어야 하고 마음도 있어야 하고…
우리 나이에 잠 한숨 안자고 한국 대표산을 오른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인가?
우야튼 이건 산신령님이 같이 오라시는 거다.
고부기하고 같이 오라는 건
필시 무슨 깊은 뜻이 있으신 게지
11시 36분에 서대전역에서 고부기를 픽업했다.
2시간 쯤이면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할거고 서둘러 오르면 6시쯤 장터목 도착하고
7시 20분쯤 천왕봉 해돋이에 차질 없이 맞출 수 있다.
얼마 전 고부기는 코로나를 틈타서 싼 비행기로 한라산에 댕겨왔다.
약은 넘 !
성판악에서 올라가는게 밋밋하다고 관음사에서 올라 성판악으로 내려오면서 허옇게 눈이 쌓인
백록담 사진과 눈 꽃을 갑옷처럼 입고 바람 길에 선 겨울나무의 사진을 찍어 보냈다..
“아이고 배아포…”
내가 다른 건 배가 별로 안 아픈데 이런 건 정말 배 아프다.
나는 일하는데 팔자 좋게 한라산 놀러 가는 거는 그렇다 치고
나는 눈도 못보고 미세먼지 펄펄 날리는 도시에서 말라 죽어 가는데 한라산 꼭대기에서 흰 눈을
뒤집어 쓰고 썩소를 날리며 자랑잘하는 그런 거
고부기는 내가 산을 전수했지만 정말 나보다 더 나대는 넘이다.
고부가 넌 평생 나한테 고마워 해야 한다.
네 인생 길에서 주워담은 기쁨과 행복의 수십 자루는 다 내 덕이라는 거
백무동 가는 길
오랜만에 친구와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지리산으로 간다.
어둠의 베일을 살짝 들추고 차가운 웃음을 흘리는 작은 달을 바라 보면서…
함양 분기점을 지나더니 함양 IC로 나가라고 내비 처녀가 말했다.
“우짜 이상헌디 …?
오늘은 88고속도로 타고 지리산으로 가는 거 아닌가? “
평상시 두 여자 야그는 잘 들어야 사는 게 편하다고 했는데 말 대꾸 할 수도 없고
좋게 생각허자
‘필시 지름길이 있는 모양이제..”
근데 느닺없이 꼬불꼬불 산 길을 올라 간다.
헐 ~ 정말 지리산 가는 길이 맞는가?
내비처녀가 졸고 있는 건지
내가 달빛에 홀린 건지..…
노루가 튀어 달아난다.
우린 오도재를 넘어가고 있다.
완전 지그자그 형
말 그대로 달밤에 오도방정이다.
내가 숱하게 지리산을 왔다 갔다 했는데 이렇게 꼬불꼬불한 길을 넘어 간 건 처음이다.
하여간 달빛이 교교한 가운데 주황색 수은등이 졸고 있는 백무동 골짜기
차로 더 이상 올라 갈 수 없는 곳까지 우리는 무사히 도착했다.
백무동에서
시방 타임 1시 40분
2시간 걸렸다.
지리산 골짜기의 싸늘한 공기가 목을 휘감는다.
혼자라면 좀 위축이 되겠지만 고부기가 있으니 그냥 맹숭맹숭 하다.
우리는 행장을 수습하고 후렛쉬 불도 끈 채 길 따라 백무동 탐방 지원 센터를 향해 걸어 갔다.
지원 센터 인근은 대낮처럼 훤하게 불을 밝혀 놓았고 엄중한 바리케이트가 쳐져 있다..
설마?
국공님들 께서 지금 까지 불침번을 서고 계시진 않겠지…..?
내가 알기론 웬만한 지리산 등로는 새벽 4시가 넘어야 통제가 풀린다..
지킴이 센터 다리를 건너 가는데
허걱 !
국공님이 꼿꼿하게 매표소에 앉아 있다.
갑작스런 예상치 않은 상황이 당황스러워서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데 ,,,
고부기 가서 사정하자며 막 매표소로 들어 갈려고 한다.
가까스로 제지 했기 망정이지 큰 일 날 뻔 했다.
고부가 생각 좀 혀봐라.
네가 가서 신고하는 순간 모든 건 끝난다.
경계만 강화되어 빠방틀기도 어려워 지는 거이다..
네가 국공이면 닫힌 문 열어 주겠냐?
험한 산 야간산행 하다가 사고가 나면 열어 준 넘 책임이고
설령 그걸 감수하고 열어줬다 한 들 니가 다른데 가서 나발 불고 다니면
코로나짝 나는 거여 !
누군가 신고하면 근무태만으로 징계가 뻔하고
또 누군 열어주고 누군 안 열어 준다고 생떼 쓰면 이래저래 감당이 안되고…
그냥 암말 말고 조용히 성님 따라 오그라!
장터목 가는 길
나도 백무동 빠방은 처음이다.
우린 캄캄한 계곡 아래로 내려가서 개울을 건너고 지킴이 센터를 넓게 우회해서 백무동
계곡길로 스며 들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인해 달밤에 체조 좀 하느라 시간이 지체 되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후렛쉬도 못켜고 달빛에 길을 물어 들머리를 찾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2시를
넘어 서고 있다.
장터목 까지 5.8km 정도 가파른 바위산길이지만 눈에 뵈는 것이 별로 없으니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부기와 같이 가는 길이니 좀 늦을 것 같으면 스퍼트를 내면 그뿐이다.
야간산행은 둘이 같이 가는 순간 180도 분위기 반전이다.
긴장과 스릴이 먼저 사라진다.
밤길의 두려움이야 젊은 날에 이미 훨훨 털어 버렸다.
세상에서 무서운 건 사람인데 이렇게 깊은 산중에는 나처럼 정신 나간 넘들조차 거의 없으니 마음
속의 두려움만 떨쳐 내면 무서울 게 딱히 없다.
단지 동행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고 근육과 신경도 느슨해진다.
길이 편안해 지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혼자 느끼는 깊은 고독의 질감과 황홀한 적막에서 멀어진다.
대자연의 경외와 길의 신비감,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만나는 깊은 성찰과 명상이 사라진다.
고부기는 슬슬 내 뒤에서 따라 왔다.
생각보다 날씨가 푹해서 자켓 속으로 땀이 난다.
가다가 돌아 보니 고부기 불빛이 보이지 않는다.
1.8km 지점 하동바위에서 처음 휴식하며 옷을 갈아 입었다.
한참 뒤에 자켓을 벗은 고부기가 뒤따라 올라 왔다.
고부기가 나대지 않는 걸 보니 아직 몸이 덜 풀린 게다.
하동 바위 계단을 올라서자 분위기가 조금씩 바뀐다.
길 위에 눈이 보이기 시작한다..
길 섶의 나무 위에는 눈이 다 녹았지만 길에는 제법 많은 눈이 쌓여 있다.
아이젠을 하지 않으니 어둠 속에 발길이 조금씩 밀렸다.
처음 계단의 돌을 다 덮지 않은 눈들은 고도가 올라 갈수록 계단까지 뒤덮은 채 길 위에 두껍게 빙
결되어 있다..
2..6km지점 참샘에 도착했다.
역시 대단한 참샘
어둠속에서 굵은 물줄기를 세차게 뽑아 내고 있다.
참샘에서부터 등로가 빨딱 일어서는 탓에 내리 꽂는 수압이 상당한 모양이다.
그래도 꽤 빠른 속도로 치고 올랐으니 목도 마른데다
지리세상 입국비자를 받으려면 청수로 오장 육부 진폐부터 씻어 내야지.
아무리 가파를 산 길을 올랐다지만 이렇게 야심한 겨울밤에 지리에 들어 벌컥벌컥 지리의 차가운
눈물을 마실 수 있다는 건 그래도 오늘이 참 푹한 날씨라는 거
꿀럭이며 목젖을 넘어간 차가운 물이 뱃속까지 짜르르 하게 해서 정신도 맑아진다..
참샘에서 비로소 심금을 울리는 깔딱 길이 시작이 된다.
경사도 가파르고 눈량도 많아지고
발이 밀리면 힘이 더 드는 법이라 아이젠을 했다.
깔딱 고개를 넘어서 3.0km지점에서 잠시 서서, 숨을 돌리고 내쳐 장터목 2.2 km를 남겨둔 소지붕
전망바위까지 진행했다.
장터목에서 늘 한달음에 내려와 기품있는 청솔이 애워 싼 바위에 올라 답답한 골짜기의 숨통을
티우고 한숨을 돌리던 곳이다.
베가 고파져서 고부기가 가져 온 삶은 계란 하나와 빵 하나 그리고 귤 2개를 먹었다.
이 곳에서부터 고부기가 앞으로 나섰다.
고부기는 인자 컨디션이 회복 되었는지 눈에 뛰게 발걸음이 빨라 졌다.
고부기는 한 번도 쉬지 않고 계속 속도를 올렸고 나는 오히려 조금씩 속도가 떨어졌다.
드디어 장터목에 도착했다.
5시 30분이 채 안된 시간이다.
3시간 반이 조금 안 걸렸으니 엄청 빨리 올라 온 거다.
어둠 속에서 세 번 다리쉼을 하고 치고 올라 올 수 있었던 건 순전히 돌연변이 고부기 때문이다.
장터목
대피소에서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해돋이를 보려고 여장을 꾸리며 식당에서 요기를 하고 있다.
배가 많이 고픈데 내가 가지고 온 간식은 고사를 지내서 나서 먹어야겠고 보아하니 고부기도
가져 온 것이 그리 많지 않아서 해돋이를 보고 내려와 먹기로 했다.
대피소에 필요 없는 물건들은 내려 놓고 배낭을 정리하고 나자 아직 40여분 시간이 남아 눈을
붙일 요량으로 대피소로 들어 갔다.
일출객들이 거실에 내 놓은 모포를 하나씩 가지고 아직 훈훈한 기운이 남아 있는 방으로 들어가
빈 침상에 모포를 깔고 잠을 청했다.
ZZZ
둘 다 잠에 곯아 떨어질 까봐 고부기가 알람을 맞추었는데 그새 깜빡 잠이 들었던지 알람 소리에
놀라 일어 났다.
비몽사몽에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오히려 머리만 무거워지고 피로만 가중되는 느낌이다..
천왕봉 가는 길
일헐수가!!
장터목에서 제석봉 가는 언덕을 올라 치는데 숨이 차고 다리가 천근만근이다.
갑자기 힘이 쭉 빠지고 맥아리가 하나도 없다.
이건 흡사 안나푸르나에서 느낀 고산병 증상 같다..
늘 배낭을 놓고 비무장으로 올라가는 길을 막걸리와 과일이 들어 있는 배낭을 지고 오른다고
이렇게 대놓고 보이코트를 할리 없는데 갑작스런 돌발사태가 당혹스럽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 그런 것 같다.
옛날 백두대간 종주 시절 조사장과 둘이 일행들과 떨어져 중도에 고립된 적이 있었다.
배가 엄청 고팠는데 그 날 따라 조사장도 나도 먹을 게 동이 났다.
그래도 조사장은 쌩쌩하게 산행을 하는데 나는 얼마 못 가서 오늘처럼 금새 힘이 빠지고 지쳐서
걸을 수가 없었다.
가다가 초컬릿을 먹고 있는 사람을 한 명 만났다.
인적이 드믄 길이라 사람 만나기도 어렵고 배는 고프고해서 염치불구 생판 모르는 사람 한데
먹을 걸 좀 달라했는데 지금 먹는 것 밖에 없다고 했다.
나는 배가 고파 죽겠으니 그거라도 좀 달라고 해서 결국 뺏다시피 얻어 먹었다.
참 황당해 하던 그 분.
조사장은 17년이 지난 지금도 그걸 가지고 날 놀려댄다.
그날 정말 그지 같이 불쌍했다고….
오늘 상황이 딱 그날 같다..
아까 산장에서 김치 넣고 라면 끊이는 냄새에 데 완전 허기가 동했는데 우리도 라면 하나씩이라
도 끓여 먹고 올 걸 그랬나?.
하지만 신령님께 이사도 안 드리고 밥부터 챙겨먹을 수는 없는 노릇..
간식이라도 먹으면 좀 나을 것 같긴 한데 제석봉 언덕엔 세찬 바람이 휘몰아 치고 있다.
게다가 내 발걸음이 밀리니 고부기는 벌써 휑하니 앞서가서 보이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속도를 좀 늦추는 수 밖에
그래도 시간은 충분하다.
사탕만 댓개 입안에서 으드득 으드득 깨어 먹으며 한 템포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길을 오른다.
마치 안나푸르나 하이랜드에서 토롱라 오를 때처럼…….
격세지감인거냐?
일시적 허기인거냐?
늘 비무장으로 한 달음에 쳐 올라가던 그 길에서 허우적 거리는 무릉객은?.
조금 있다가 한 줄기의 생각이 뇌리를 스친다.
그랴도 그렇지 이렇게 갑자기 기운이 빠질 수 있나?
당뇨환자가 당 떨어 지면 금새 탈진 한다는데 ,,,,
나가 시방 당뇨병 걸린 거 아녀?
지난해 7월 종합검진에서 한 군데도 이상이 없이 멀쩡 했는데….
조금 더 가다가 이번엔 남실장 생각이 났다.
거친 야생마처럼 길길이 날뛰며 강철체력을 자랑하던 산 사나이
남실장이 어느 날 갑자기 힘을 쭉 빠져서 산에 오를 수가 없었다고 했다.
몇 번 그런 현상이 계속되자 하도 이상해서 병원을 갔다가 졸지에 췌장암 3기 판정을 받았다.
그리고 3개월 후에 남실장은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흐미 워쩔 것이여 ….?
사실 난 췌장암보다 당뇨가 더 무섭다.
췌장암은 내 명이 그런 것이니 어쩔 수 없지만 당뇨는 정말 싫다.
음식도 가려야 하고 ,
몸의 통제력을 상실한 채 매사 내 마음과 몸이 동하는 대로 살아 갈 수 없으니…..
또 세월이란 넘한테 뒤통수를 까이는 건 아니겠지?
계룡산 철계단에서 허리 뽀사지고 몇 년을 근신했는데…..
휘몰아치는 바람처럼 생각이 어지러운데 그래 본들 또 어쩌랴?
일단 영숙이 대전 오면 피 한번 뽑아서 검사를 해 달라면 당뇨는 판가를 날 것이고
또 한 번 거친 산에 올라 보면 췌장암은 확인이 될 것이다.
제석봉 전망대를 지나 통천문으로 가는 중에도 여명이 뜨지 않는다.
이 쯤이면 여명이 오를 때도 되었는데….
멀리서 푸른 새벽이 달려오고 하늘가에서 달은 여전히 창백히 웃고 있다.
그 푸른 새벽이 아름다워 몇 번이나 구도를 잡아가며 사진을 찍었다.
하도 오래 이 길을 걸었으니 시간은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난 예정 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할 것이고 해는 예정시간 보다 좀 늦게 뜰 것이라는 걸
어쩌면 그래서 산신령님이 내 발걸음을 더디게 이끌고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천왕봉에서
천왕봉에는 거친 바람이 불었다
제법 차지만 그래도 뼈골에 스미는 그런 차가움은 아니었다.
여전히 하늘은 새날의 붉은 빛에 인색하다.,
반색하는 고부기를 만나 잠시 하늘의 기색을 살피고 나는 바람을 피할 곳을 찾는다.
고부기도 그렇고 사람들도 일출은 물 건너 갔다고 수근거린다..
기다려라 고부가 오늘은 쫌 늦게 해가 뜰 거이다.
신령님이 날 괜히 불렀것니?
그리고 무릉객이 일출 한 두 번 보니?
‘척’하면 삼천리고 ‘툭’하면 담 넘어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 ….
많은 사람들은 비람길에서 천왕봉의 날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떨고 있고
나는 북동 쪽 절벽으로 가려진 곳으로 내려 갔다.
바람을 가리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좀 험한 곳이라 사람들이 거기 까지는 가지 않아 비어 있는
곳 이었다.
신기하게도 바람이 하나도 들이치지 않았다.
바람이 차단되고 보니 오늘이 참으로 따뜻한 날임을 알겠다.
바람을 맞아 얼얼한 볼따구에서 비로소 열이 나고 장갑을 빼도 손이 안 시렵다.
고부기한테 들어오라 해도 여전히 분주한 고부기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고부가 오늘은 장기전이여 …
한참을 더 있다가 고부기의 전갈이 왔다.
“그 분이 오셨네.!”
푸르스름한 잿빛 구름 위로 힘겹게 태양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 사는 세상처럼 혼란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다소 지친 듯한 모습으로 새날의 태양이
솟구쳐 오른다.
여느 때처럼 맑고 깨끗한 모습은 아니지만 새날의 태양은 어김없이 떠 올랐고
나는 변함없이 한국 영산 제 1봉에서 새해의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늘 평화와 기쁨 속에 있게 하소서….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가슴으로 세상을 느끼며 살게 하소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수 있게 하소서
우리는 여러 각도와 포즈로 기념촬영을 했다.
바람이 세찬 천왕봉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간 한 참 후에야 비로소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 한가운데서 빛나는
태양이 눈부신 붉은 빛으로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서로의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나중에 보니 정작 고부기와 둘이 사진을 찍지 못했다
헐~~~
고부가 영원한 마음의 벗은 사진 따위로 규정되지 않는다..
올해의 우리 모습은 11월 응봉산 눈밭의 기념사진으로 가름하자….
가물에 콩나듯 올해처럼 눈가뭄이 심한 때 그래도 장한 눈밭을 두 번이나 너하고 걸었구나
우리가 어둠을 깨우며 만난 해돋이가 한 두 개냐?
우리가 함께 썼던 웅대한 삶의 서사시는 여전히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진군의 북소리는 아직도 귓전을 때리고 있다.
충북알프스를 주유한 속리산 문장대 일출
한겨울 덕유산 종주길의 향적봉 일출
새해 첫날의 남덕유산 일출
그리고 오늘 천왕봉 일출 까지….
모두 다 내려간 천왕봉을 마지막까지 고부기와 둘이서 지키며 고사를 올리고 돌아 오려 했는데
아가씨 두 명과 홀로 산님 한 명이 사진을 찍느라 끝까지 내려 갈 생각을 안 한다.
고부기는 추워서 내려갈 생각만 하고….
할 수 없이 천왕봉 표석아래 조촐한 고삿상을 차렸다.
먼저 천지신명과 지리 산신령님께 감사의 잔을 올리고 삼배와 함께 또 한 해의 무사산행을 엎드려
기원 했다.
드넓은 대자연의 감동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늘 보살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올해도 세월에 먼저 늙어가지 않는 마음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허락하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여행을 계속하게 하시고 그 가는 길을 지켜 주소서
하늘에는 하느님이 있고, 극락에는 부처님이 있고, 산에는 산신령님이 있다
시산제는 신과 통하고 산과 소통하는 영혼의 교감이다.
종교와 무속을 초월하여 대자연 속 하나의 피조물인 인간이 불멸의 신에게 드리는 경배이고
신과 소통하고 산의 영기를 받아들이는 영혼의 교감이다...
그건 미신과 무속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의이고 우릴 돌아보는 겸손함이며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의식일 뿐이다.
가끔은 산길에서 나를 보호하는 신과의 동행을 느끼지 않는가?
나만의 시산제다
차린 건 없지만 그 마음은 알아주시겠지
내 영혼의 순례지 지리산.
처음 천왕봉 오른 때부터
그리고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마지막 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 날로부터
늘 가슴에 담았던 내 마음의 성지
묵묵히 내 삶을 바라보고 늘 그 삶의 변곡점에서 마음을 어루만지고 등을 토닥여 주었던 깊고도
푸른 힘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이고 내 영혼의 심연이었다.
어지러운 세상의 길을 인도하는 내 인생의 스승이고 삶의 고뇌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늘
한결같은 친구였다.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은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고 오랜 세월에도 친구는 늙어가지 않는다.
우린 가슴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소통한다.
날바람 부는 천왕봉에서 가슴으로 듣는다.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하는 사랑에 관하여....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조급하지 마라 !
올해 지리 산신령님의 화두는 도광양회 (韜光養晦)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겉 멋이 아니라 내공이다.
중요한 건 남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진정 아름다운 세상이다.
가슴에 늘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산처럼 침묵하고, 바다처럼 여유롭고 물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올해도 너끈하다.
이렇게 지리산의 새벽진기를 가슴가득 받았으니.....
산신령님께 술 한 잔 올리고 엎드려 고했으니...
오늘은 고부기 찍사가 있어서 경건한 그 순간의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ㅎㅎ 고부가 너랑 같이 오니 좋다.
해마다 가는 지리산 순례길에서 오늘이 내 사진을 가장 많이 남긴 날이다.
그랴 고부가
더 늙기 전에 너랑 좋은 추억 마이 남기라고 산신령님이 함께 부르신 거지…
니가 어제 무다히 나의 스케쥴을 물었겠느냐?
다 신령님이 시키신거지..
고부가
난 니가 좋다.
가끔 퉁을 주고 심통을 부려도 그려려니 해주고
늘 먼저 연락 해주고…
오래 적조하면 술 한잔 치자고 대전까지 달려오고…
멀리 살아도 같이 산에 가자고 통발하고….
험한 길 기꺼이 동행이 되고…
우리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게 비슷해서 좋다.
백 년도 못사는 짧은 여행길에
천 년을 살 것처럼 천방지축 나대고 있지만
비워내지 못하는 사나운 욕심은 드글드글 살아 있지만
얻고자 하는 것이 지고가지 못할 재물이 아니고
구하고자 하는 것이 더 나은 명성과 명함이 아니고
단지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과 감동이려니
가슴 하나에 담길 추억이고 사랑이려니
그래 살면서 더 욕심 낼 게 무엇이 있는가?
아름답고도 거친 세상이 있고
그걸 누릴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다리가 있고
함께 춤추고 노래할 좋은 친구가 있으면 되지
하늘의 해는 이렇게 가슴에 담고
하늘의 달은 한 잔의 술 잔에 담으면 되지
100살 까지 산에 가자
쟌뮤어도 가고
산티아고도 가고 마추피츄도 가자
너 은퇴하믄 그 때는 에베레스트도 가자.
여서 뜨는 해나 거서 뜨는 해나 다 마찬가지지만
여서도 보고 거서도 보자
암데라도 가고 암데라서도 술 한잔 치자….
장터목 하산 길
나만의 의식과 새해 해맞이를 끝내고 완전한 태양이 밝게 고원의 대지를 비추는 길을 따라 다시
장터목으로 내려오는 길
중산리를 올라 장터목으로 내려가는 산님 한분을 만났다.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하산길 얘기가 나왔는데 우리는 신선봉과 세석 찍고 한신게곡으로 하산
할거라 했더니
어제부터 경방기간 능선 통제란다.
헐~~~
저렇게 두껍게 눈이 쌓여 있는데 무신 산불?
장터목 등로 입구에 CCTV가 설치되어 있고 곧 바로 방송이 나오고 방송을 무시하고 들어가면
세석 입구에서 기다렸다가 과태료를 부과 한단다.
그게 무신 헛소리여 ? (속으로만)
무릉객이 가믄 가는 거지…
아랫쪽으로 우회해서 들어가면 못 갈 이유도 없고 일단 진입하면 세석 쪽 카메라만 조심하면 되는데
오늘 고부기도 있으니 안 갈 뿐이지…
혹시라도 잘못 되믄 나는 괜찮은데 친구는 쏘시얼 포지션이 다르니 오늘은 그냥 조신 허자.
목적 달성 다했으니 더 나대지 말자.
다시 장터목 산장에서
뱃가죽이 등가죽에 들러 붙것다.
일단 고부기가 물을 길어와서 오뎅국을 끓였다.
오뎅을 건져 먹고 라면을 하나 넣어 끓여 먹고 햇반 1개 까지 넣어 코펠 바닥까지 다 먹어 치웠다.
“야야 그라다 코펠 까정 다 씹어 먹긋다.”
후식으로 귤과 빵까지 먹고서야 비로소 허기가 진정되고 포만감에 나른해 진다.
메뉴는 상관이 없다.
이렇게 먹는데 밥맛이 없겠냐고?
이렇게 먹는데 입맛이 없겠냐고?
한잠 때리고 가면 좋긴 하겠지만 괜히 시간만 죽일 수도 있어서 장터복 기념 사진 몇 장만 찍고 서둘러
하산의 길을 잡았다.
그래도 어둠을 갈라 올라온 길이라 대명천지에 드러난 그 길이 그리 지루하지는 않다.
태양이 본격적으로 열기를 더해가면서 길 위에 눈은 빠르게 녹아 지리산은 이별의 눈물을 흘리며
우리를 배웅했다..
전망바위 못 미쳐에서 용학이 같은 사람을 만났다.
입춘이 지났다고 하지만 아직은 엄동설한 인데 지리산 골짜기에서 완전히 윗통을 벗어제치고 산행을
하고 있다.
헐 이사람 겨울에 튀어나온 개구리여 도룡룡이여 ?
남사시러운 건강 자랑질이긴 하지만 그래도 정월 지리산에서 반 나체로 활보하는 그 기세에 눌려
나도 전망바위에서 걸쳤던 자켓을 벗어 던졌다.
올 때 마다 오르는 소지붕 전망바위라 눈감고도 훤한 터
고부기는 바위에 올라가 구경하고 내려오는 동안 나는 한가롭게 앉아서 오징어 한 마리를 뜯었다.
제법 많은 사람들이 올라 온다.
아침에 백무동에서 출발한 사람들이다.
컨디션은 좋아졌다.
잠시 다리쉼을 하고 우리는 빠른 속도로 참샘까지 내려 갔다.
아침을 짜게 먹어 갈증이 심해진 탓인지 참샘에서 시원한 물을 마음껏 들이켰다.
오늘 최악의 기아까지 경험 했으니 배에 낀 기름기도 좀 빠졌을 거다.
평소 불가사리 같은 대식가가 못 먹으니 고장이 나는 거지
.
참샘 아랫 쪽에서는 대학생들인 듯 쌍쌍이 올라 오는 커플들을 많이 만났는데 모두 아이젠도 하지 않고
배낭도 없이 위태롭게 산행을 하고 있다.
“느덜 데이트도 좋지만 지리산을 너무 띠엄 띠엄 아는 거 아니냐?
그라다 산신령님한테 혼구녕 난다.”
참샘을 지나고 하동바위를 지나 아이젠을 벗어 던졌다
다소 나른함이 느껴져도 하산 길의 발걸음은 가벼웠다.
내림 길에 고부기가 갑자기 몸을 씻고 가자고 한다..
이 추운 날에 무엇하러 차가운 계곡물에 몸을 씻누?
대전가서 개운하게 사우나 하고 나서 술이나 한 잔 치지…
고부기는 시간이 아까우니 사우나는 하지 말고 이른 저녁 먹으면서 술이나 한잔 치고 헤어지잖다.
자슥이 꼭 한 번씩 삑사리를 놓는다.
썩 내키지는 않지만 친구가 하자는데 또 우짤끼고?
백무동 난리 부르스
백무동 내 전용탕은 지나쳤으니 다시 등로에서 잘 보이지 않는 소를 찾아 계곡을 내려 갔다.
제법 물이 많이 고이고 은페엄폐가 양호한 곳을 찾아 냈다.
물색이 시푸르등등 한데 발을 담그니 완죤 살기등등하다.
내가 3월달에는 알탕을 한 경험이 있지만 눈 덮힌 2월(음력으로는 정월)은 처음이다.
일단 옷을 다 벗고 소 한가운데로 들어 갔는데 이건 완죤 순간 냉동고 수준이다.
그 쇼크에 놀라 반사적으로 뛰쳐 나왔다
근데 시방 나가 볼쌍 사납게 옷을 벗었다가 무릎까지만 씻고 주섬주섬 옷을 입어야 하는 겨?
이기자 부대 출신 육군하사 도하사가?
산전, 수전, 공중전, 드론전 까지 마스터한 무릉객이?
신령님도 보고 계신데 정말 모냥 빠진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다시 들어갔다.
이를 악물고 머리를 감았는데 하반신이 얼어 붙는 바람에 도저히 몸을 담글 수는 없다
할 수 없이 세차게 물을 온 몸에 뿌려 대며 대충 씻고 다시 감전된 깨구락지처럼 웅덩이 밖으로
뛰쳐 나왔다.
온 몸을 물에 적셨는데 물 밖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나?
언 몸이 해동되기는커녕 몸을 스쳐가는 차가운 계곡의 바람이 숫제 내 주리를 틀어댄다..
물고기가 차가운 물 속에서 얼어 죽냐? 물 밖으로 나와서 얼어 죽는 거지
진퇴양난이다.
칼은 빼어 들었는데 수전증 땜시 고구마가 잘 안 깎인다.
가슴살과 양 날개는 씻었는데 등심과 사태살은 아무래도 좀 미흡한 거 가터…
잔뜩 오그라든 고주도 덜 씻었지 아마?.
다시 심호흡을 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2차시기 재도전
다시 한 번 물속에 뛰어들어 허리춤 까지 주저 앉자 그 뼈속까지 얼릴 기세의 차가움은 이젠 죽음의
공포를 들이 댄다.
내 심장이 멎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공포
와신상담, 절치부심 끝에 다시 시도한 물속에 푹 잠기기는 또 다시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한 번 온몸에 물을 끼얹으며 물 속에서 한바탕 망나니 춤을 추고 나서 물 밖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그 뼈 속 까지 스미는 차가움과 추위에 완전 얼이 빠져나갈 지경이다.
혼비백산, 맨탈붕괴 !
특히 물에 잠겨 있던 발은 아프다 못해 완죤 마비 수준
흐미 이러다 생사람 동태 맹글어 버리겠네 …..
서둘러 양발을 신고 옷을 입었지만 발은 완전 깨어져 나갈 것 같이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물 속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아내는 고부기한테 한마디 말도 못하고 일단
계곡 밖으로 뛰쳐나와 발의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속도를 내서 하산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까딱 잘못하다가 지리산 계곡에서 얼어 죽을 뻔 했다.
고부가 너가 나 중국 갔다 왔다고 보건소 가보라 그랬지?
안 가도 까딱 마이신이다.
남아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넘들 오늘 다 얼어 죽었다.
그래도 오늘 또 새로운 역사를 썼다.
무릉객 천왕봉 당일치기 해돋이 및 시산제 산행 성공리에 마무리하다.
그리고 음력 정월에 서슬푸른 지리산의 눈물 속에서 눈뜨고 못 봐줄 눈물겨운 알탕으로
탈 속한 끝에 신선의 반열에 오르다..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발의 통증이 잦아 들고 나서 비로소 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고 난 계곡의
양지바른 바위 위에 느긋하게 걸터앉아 고부기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워낙 우리가 계곡 날머리 가까이에서 몸을 씻어서 별로 오래지 않아 우리의 하산은 끝이 났다.
우리는 뿌듯하고 의기양양하게 달밤에 체조했던 백무동 탐방지원 센터로 내려왔고 센터 국공님
들에게 여유로운 인사까지 건네며 우리의 위대한 여정을 마무리 했다.
산 행 일 : 2020년 2월 15일 (토)
산 행 지 : 지리산 천왕봉
코 스 : 백무동-하동바위-참샘-소지붕-장터목-제석봉 -천왕봉- 백무동
거 리 : 16km
소요시간 : 약 8시간
날 씨 : 맑음
동 행 : 고부기
집으로 가는 길
기분 좋은 뻐근함과 나른함 그리고 뿌듯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는 길
비워낸 마음에는 지리의 맑은 바람과 푸른 하늘을 담았다.
천왕봉에 마음의 짐을 벗어 던지고 올 엄동설한에도 변함없이 백무동 계곡물에 목욕재개 까지 했으니
날개옷이라도 입은 듯 난 다시 가벼워졌다.
눈부신 햇살이 머리위로 쏟아지고 백무동 들머리 목련은 벌써 꽃망울을 한껏 부풀리고 있다.
그래 봄이었어!
지리산에 든 이틀 동안 잊고 있었다.
도솔산 웅덩이의 도룡룡은 벌써 알애서 깨어나 물장구를 치고
난 남도의 섬으로 봄마중 할 생각에 들떠 있었다는 걸
집에 가는 중에 졸릴까?
졸리겠지…
졸리면 차 세워 놓고 눈 잠깐 붙였다 가면 되지
내 젊은 날에는 잠 한숨 안자고 17시간 운전하며 여행한 적이 있다.
마눌과 심야영화 한 편 때리고 즉흥적으로 남도 여행길에 올랐다.
새벽의 녹차밭의 풍경을 바라보고 율포에서 해수 목욕을 하고 선암사와 송광사,낙안읍성을 돌아
보고 금산의 남도의 해안 길을 누비고 다음날 저녁 짱짱하게 대전으로 돌아 왔다.
그 때로부터 세월이 많이 흘렀지만 아즉 이정도 쯤이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가다가 고부기한테 말했다.
그분이 오실 것 같으면 그냥 자라고…
난 안다.
잠 못자서 피곤한 날 운전석 옆에서 두 눈 부릅뜨고 가는 건 고문이라는 걸
운전하는 것 보다 훨씬 힘들다는 걸
고부기는 얼마 안 가서 곯아 떨어졌다.
천하태평 고부기
이 친구 그래도 날 완저히 믿는 거 가터
당일치기 천왕봉 등정하고 잠 한 숨 못 잔 친구가 또 운전대를 잡았는데도
나른한 봄 햇살이 차창에서 춤추는데도 걱정도 안 되나 봐
고부기는 내쳐 자지 못하고 40여분 자고 깨어 났고
난 무주 나들목을 지나 약간 피곤함을 느낄 때쯤 난데 없이 똥이 마렵기 시작했다.
신령님이 쉬었다 가라시네….
내 몸처럼 분위기 파악 잘 하는 넘이 또 있을까?
일단 비상상황에 돌입하면 정교한 바에메탈처럼 생리현상도 자동 조절 해준다.
야간 출정이나 새벽출정이면 알아서 볼일을 유보해주고 잠 못 자서 눈빛이 희미해지면 여지없이
비상 밧데리 가동한다.
매일 6시간 자다가 오늘 날밤 깠으니 오늘 술 한 잔 치고 나면 11시간 이상 잘 거구
어제 밀린 거에 오늘 아침 것 까지 어마무시한 량을 밀어 낼거다.
예상대로 고부기는 금산 인삼랜드에 주차한 내 차 안에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대전으로 돌아와 고부기와 술 한잔 쳤다.
입에 쩍쩍 달라붙는 돼지구이와 하산주는 고부기가 샀다.
산에 대한 아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인아저씨도 산행광이라 우리 셋은 술마시는 동안 내내 산
이야기만 했다.
이쯤되면 중독이다,
그래도 내 영혼을 춤추게 하는 중독이라면 괜찮지 않은가?
고부기와 헤어지고도 나의 여행은 끝나지 않았다.
다음날 새벽같이 일어나 온천을 하고 복어 해장국으로 새날의 아침을 자축하고서야 이틀간의
숨가쁜 나의 순레의 여정은 비로소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린 것이다.
에필로그
내 영혼의 순례는 그렇게 끝이 났다.
많은 우여곡절과 여러 경우의 수로 떠나기 전 까지 예측을 불허했던 경자년의 해맞이와 시산제는
고부기와 함께 지리산 천왕봉에서 성대히(?) 마무리 했다.
왜 그리 무식허게 산을 타냐고?
그게 사는 재미고 내가 세상을 즐기는 방식이다.
단지 먹고, 마시고, 일하며 살기에는 아까운 날들 아닌가?
그래서 난 먹고,마시고,일하고,놀고,기도하는 거다.
노는 것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노는 거고, 기도하는 것도 잘 놀기 위해 기도하는 거다.
세상은 자꾸 메말라 가지만 우리 삶에는 감동과 여백이 있어야 한다.
가끔 나에 대한 놀라움을 느껴보고 싶지 않은가?
내 안에 있는 신명
내 안에 있는 사랑
내 안에 있는 따뜻함
그건 단조로운 일상 속에서 나의 마음과 주술로 불러낼 수 있는 변화와 모험의 바람이고.
내 영혼을 정화하는 순례 의식이다.
난 내 삶 속으로 불어가는 바람 속에서 다이나믹한 삶의 파도타기를 즐기는 거다
그래서 사는 게 더 가벼워지고 즐거워 지는 거다.
나는 그 그곳에서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고
시인의 감동을 느끼고
세상에서 자주 잃어 버리는 나를 되찾는다.
고부기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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