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라산 둘레길은 익산시 함라면 소재지에 있는 삼부자집에서 시작하여 함라재를 거쳐 야생차
군락지로 내려서고 그곳에서 임도를 따라 중간에 갓점마을쉼터를 거쳐 웅포관광지 곰개나루에서
마무리 된다.
시작점에서 함라면 삼부자집과 , 한옥체험관과 향교들을 돌아 볼 수 있고 야생차 군락지에서
곰개나루 가는 길에 입점리 고분 전시관을 둘러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코스는 익산까지 맛깔스러운 향토음식 진수성찬을 맛도 안보고 돌아 오는 격이다..
가서 울창한 숲으로 이어지는 멋진 함라산 등산로와 걷기 좋은 편안한 임도 길을 놔두고 변죽만 울리다가….
바람이 몹시 부는 날이었다.
마음도 따라 싱숭생숭하던 봄날 계획없이 배낭을 메고 함라 길을 잡았다.
애초에는 원안대로 웅포 곰개나루로 가려고 웅포에 도착해서 보건지소 앞 버스편을 보니 내가
주차장에 차를 파킹하고 걸어 나오는 간발의 차이로 떠났다.
할 수없이 곰개나루 한 켠에 자전거를 매어 놓고 함라 파출소롤 이동했다.
파출소 인근에는 주차된 차도 없고 사람의 발길도 거의 없다.
코로나 여파로 삼부자집이나, 한옥체험관, 향교 문은 굳게 닫혀 있다.
향교 옆 길을 따라 함라산 능선에 올라 섰는데 익산 벌에 홀로 우뚝 선 산이라 사방에서 불어
오는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그래도 강한 햇살 속에 내지르는 그 바람에는 무르익은 봄이 실려 있어 그 결이 그리 차갑지
만은 않다.
사람들의 발에 다져진 능선 길은 대도시 인근의 야산 길처럼 넓찍하고 잘 정비되어 있다.
군데 군데에서 내려다 보이는 익산벌의 모습과 바다는 정겹고 등로는 부드럽다.
이 길이 지금까지 내가 걸어보지 않은 길이란 사실 만으로 나의 오감은 활짝 열린 채 멋드러진
봄길을 배회했다.
이젠 길 위에서 만나는 많은 것들이 점점 더 소중해 진다.
내 일생에 다시 스쳐 지나가기 어려운 길이고 다시 만날 수 없는 충경이란 생각 때문일까?
하지만 이 길은 한 번 더 오고 싶다.
봄날에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며 산 길을 걷고 웅포 나루에서 우어회를 앞에
놓고 술 한잔 치면 삶의 여행길이 더 즐거워 질 것이디.
마눌과 함께해도 좋을 만한 부드러운 길이고 차로 들쑤시고 다닐 곳도 꽤 많다.
산길을 내려와 임도를 접속하고 다시 산길을 올라 숭림사 까지 내려 섰는데 거기서 자전거를 매어
놓은 웅포 나루는 차도로 5.8km나 된다.
헐 ~~ 포장도로를 6km나 걸어야 한다고?
그렇게는 못하쥐…
리바이벌을 안하는 무릉객이어도 도로 위의 배가본드는 싫다네
난 산길을 되짚어 다시 함라산을 넘어 원래의 둘레길인 함라재로 내려와 함라파출소 옆 주차장으로
회귀했다.
동번서쩍 하느라 5시간 40분이나 걸렸다.
서두르면 4시간에도 충분하겠지만 이런 봄날에 굳이 서두를 일이 무에가 있나?
그냥 바람 부는대로 발길 닿은 대로 흘러가다 다시 돌아 오면 되는 거지….
답사에 기초해서 제구성한 함라산 실크로드.
출 발 점: 숭림사
종 착 지: 함라 향교
신헹코스: 숭림사 –생태이동통로 – 율재 –함라산 - 봉수산-야생차군락지 –임도 –등산로접속-교동
하산길 - 함라향교 -
숭림사에서 봉수산 까지 등산로를 따라 산행을 하고 야생차 군락지가 있는 임도로 내려서서 임도를
따라 진행하다가 임도와 등산로 접속구간에서 다시 등산로로 올라서서 산길따라 교동 향교로 내려 간다.
약 13km 약 5시간 소요
원점회귀가 되지 있으니 자전거를 한 대 싣고 가거나 친구들과 차를 2대 가져 가는 편이 좋다.
길의 포인트
숭림사 구경 및 참배
울창한 숲을 보듬고 있는 편안한 육산의 등산로
잘 정돈된 비포장 임도
등산로에서 내려다 보는 평화로운 익산벌과 후련한 바다 조망
야생차 군락지
인근 관광
산행 마무리 후 향교와 한옥체험관 삼부자집을 돌아 본다.
차로 입점리 고분과 웅포 곰개나루 관광
(봄철에 오면 곰개나루 인근 식당에서 우어회를 맛볼 수 있다.)
익산 왕궁리 유적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 입상
익산 제석사지
보석박물관 /함벽정
서동공원 /마한관
익산 구룡사와 미륵사지
가람 이병기 생가
익산 나바위 성당
삼세오 충렬사
원불교 익산 성지
남지철교와 능가사 탐방
용화산 등산 및 둘레길
(등로정보)
파킹 및 들머리 : 숭림사
생태 이동통로가 있는 율재 아래에는 주차장이 있다.
등산로
함라산 정상
봉수대
임도
임도에서 계단을 통한 산길 접속
교동봉에서 이 표지판을 따라 교동 향교 으로 이어지는 산길로 하산한다.
산길 끝에서 만나는 향교
숭림사
전북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5 소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덕왕(재위:742∼765) 때 진표(眞表) 가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1345년(고려 충목왕 1)에 창건했다고도 하며, 절 이름은 달마가 숭산 소림사(少林寺)에서
9년 동안 벽을 바라보며 좌선한 것을 기리는 뜻에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 때 보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
건물로는 보광전과 우화루·정혜원·영원전·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중 보물 제825호로 지정된
숭림사보광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비로자나불·아미타불·관세음보살의
삼존불과 1913년 정연(定淵)과 만덕(萬德)이 그린 후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우화루는 본래 신라 때 석덕(碩德)이 세웠다고 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이다.
이곳에 절의 연혁을 살필 수 있는 현판이 많이 걸려 있다. 영원전은 1926년에 성불암 칠성각을 옮겨
지은 것으로 명부전 역할을 한다. 한편 나한전은 1929년에 지었으며, 요사로 쓰이는 정혜원은 조선
후기 건물이다.
유물로는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紋香爐)가 1974년 9월 27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몸체 앞면에 2개의 사자머리 손잡이가 달려 있는데, 은입상감이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고 조선 초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절 입구 오른쪽에 조선 후기에 만든 4기의 부도가 전한다.
숭림사 [崇林寺] (두산백과)
출발에 앞서 사찰을 돌아 보다
숭림사 앞으로 난 산 길을 따라 3km 정도 진행하면 생태 이동통로가 있는 율재에 닿는다.
도로 위를 지나가는 생태 이동 통로
생태 이동통로 옆 가드레일에 걸려 있는 거리 표지
여그 까지가 3.1km라는 이야기
숭림사에서 생태이동통로가 있는 율재에 이르는 길은 운치있고 발이 편안한 부드러운 산 길이다.
너무 넓어 흡사 작은 임도 같은 맛이 나는 함라산 능선 길보다도 더 산길다운 호젓함이 느껴진다.
생태 이동통로가 있는 율재에서 함라산 능선 길로 오르는 들머리에 설치되어 있는 함라둘레길 안내도
오늘은 혼자 나선 길이라
능선 초입에서 만난 정자
능선길을 따라 함라산 정상과 봉수대를 거쳐 임도길 까지 걷고 나서 하산해야 하는 교동봉
교동봉에는 이런 표지판이 있다 .
얘긴 즉슨 요기로 내려가면 종착지 향교가 있는 교동 이여유
함라산 가는 길 좌측길 풍경
전망 좋은 쉼터
세찬 바람이 부는 길은 넓고 편하고 , 부드럽다.
여그가 임도와 접속거리가 50미터 밖에 안되는 최단임도 접점
함라산 정상에서 바라 본 바다
함라산 정상에서 봉수대 쪽으로 진행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삼부자집 하산길
하라산 둘레길은 아래 함라재에서 연결된다.
봉수대 400미터 전방
드디어 봉수대
좌측 으로 가면 2.7km 지점에 칠목재
우리가 가는 야생차 군락지 방향은 바라보이는 쪽으로 직진
임도와 만나는길에 서 있는 이정표
이런 표지판도 있고
이런 표석도 있다.
입점리 고분 전시관을 다녀 오려면 시간 소요가 많으니 나중에 차로 이동하여 돌아보는 것이 좋다.
본격적인 임도길의 시작
임도길 쉼터
임도에서 나무사이로 내려다 보이는 산림체험관
여기서 숭림사는 7.5km 거리에 있다.
110m 아래 산림문화 체험관
이런데 까지 다 둘러 보려면 하룻밤은 묵어야 할듯
그래도 센스 있는 익산 산림 공무원들
토사가 휩쓸리지 않게 오르막 임도 부분만 포장함
청남대 대통령길처럼 콘크리트로 산길을 다덮어 놓고 관리목적이라고 하면
우린 절대 다시 안간다.
아니 가지 말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가을이 점점 가까워 지는 길
임도 데크계단에서 다시 등산로에 접속하여 교동봉까지 진행하고
이 표지판을 따라 교동으로 하산한다.
이런 산길을 지나고
대나무 숲길을 지나
향교에 도착한다.
코로나로 개방하지 않은 향교를 담장너머로 구경하고
드디어 함라 파출소 옆 주차장에 도착하다.
돌아와서 삼부자집과 주변을 돌아보다.
삼부자 조혜영 가옥
부자 아야기
함라의 삼부잣집은 이배원 가옥, 김안균 가옥, 조해영 가옥을 말하며 만석꾼 집안들이었다고 한다.
인심도 넉넉해 지나가는 길손이 있으면 그냥 보내는 법이 없이 불러들여 노잣돈과 식사를 대접해
보냈다고 한다.
조선 후기 ‘척제 이서구’가 지은 ‘호남가’에도 “풍속은 화순이요, 인심은 함열인데”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런 삼부잣집의 후한 인심에서 비롯된 것이라 전해진다..
각 부잣집마다의 전설도 재미있다.
이배원의 조부(혹은 어머니라는 말도 있다.)는 가세가 기울어 처가인 웅포를 향해 가다 함라에서
하루 묵게 되었는데 마을 사람들이 사정을 듣고는 누룩장사나 해 보라 하여 그 말을 듣고 장사를
시작, 성공했다고 한다. 그 성공을 바탕으로 곡식도매업을 벌여 만석꾼으로 거듭났으니 그의 소유
배가 엽전을 하도 많이 실어 가라앉을 정도였다니 상상이 쉬이 가지 않는다.
전북에서 제일 큰 가옥이라는 김안균 가옥에 대한 전설로는 어느 날 길을 가다 길 가에 쓰러진
스님을 구해 보살펴주었는데 그 스님이 명당이라 찍어준 자리(지금의 자리)에 집을 지었더니
이렇게 거부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함라산 산길 한 가운데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어 마을 사람들이 겁을 먹고 다들 되돌아
왔는데 한 소년이 용기를 내어 앞으로 다가가니 그게 구렁이가 아니고 구렁이처럼 또아리를 튼 채
놓여진 엄청난 돈 꾸러미들이라 그것을 가지고 내려와 부자가 되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삼부잣집의 어느 집안인지는 모르겠으나 앞의 두 집안이 각자의 전설을 가지고 있으니 조해영 가옥의
전설이 아닐까 추측해 볼 따름이다.
“원래는 함열이 함라였고 함라가 함열이었어요. 이름이 서로 바뀐 것이죠. 일제강점기에 함라에
기차역을 세우면서 함열이란 이름을붙었고 그래서 그 지역이 함열로 굳어졌지요. 원래 함열이었던
지역은 이름을 뺏겼으니 함라로 개칭했고요
동네 사람이 전해주는 지명에 관한 이야기다.
돈 이야기
누구가 부자가 될 수 없지만 부자처럼 살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게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인가?
현대인의 신 스티브 잡스
온 세상사람들이 자신의 위대한 창조물에 고개 숙이게 만든 남자.
죽어가는 그가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가 앓아 누은 침대고
세상을 살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결국 가지고 떠날 수 있는 건 사랑 가득한 기억하나
뿐이라고 얘기 했지만
세상이 느끼는 돈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하다.
이 넘의 돈이란 게 없으면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다..
좀 모자라거나 남으면 상관없는데 살아가기 급급한 적은 돈과 궁색함은 인생에 치명적인 독이다.
이 넘은 약방의 감초 같이 여기저기 들쑤시지 않는 곳이 없어서 먹는 음식과 입는 옷 그리고 편안한
잠자리와 같은 기본적인 삶 뿐만 아니라 가정의 행복과 부부의 금슬에 이르기 까지 다 참견하고
돌아 다닌다..…
정말 가난해서는 꿈을 잃을 수도 있고 인간의 존엄성이 훼손될 수 있다.
세상에 휘둘리며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한고 어쩌면 참으로 적은 돈으로 인해 떠나는 날까지 존재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지 못할 수도 있다.
궁색하지 않은 만큼 있다면 절약하고 모자라는 부분은 마음으로 채우면 되는데 그렇지 못하면 삶은
고행이 될 것이니….
그래서 사람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위해서는 적당한 돈이 반드시 필요한 데 그 적당이란 게 늘 문제가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만사형통,만병통치인 돈을 벌기 위해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뜬다.
그런데 그 기회란 넘은 가까이 있어도 잘 뵈지 않아서 지나가고 나야 겨우 알아 채는데
막상 쫒아 가서 잡으려 하면 뒷머리 숯이 없어서 잡을 수가 없다.
게다가 그 넘의 돈은 어깃장이 심해서 죽자 사자 쫒아 다니며 들이대는 넘한테는 좀처럼 허리를 내주지
않고 제 마음이 동하는 데로만 돌아 댕긴다.
이넘 저넘 모두 다 쫓아 다니니 늘 기고만장해서 싸가지도 없고 동정심도 없다.
이 돈이란 넘들은 정말 필요한 가난한 넘들은 쳐다 보지도 않고 제 친구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만 몰려 다닌다.
목에 힘깨나 들어 있는 넘이나 돈 냄새 풍기는 넘들 주변과 같은....
정말 웃긴 건 사람들이다.
여기저기 많은 돈을 갈무리 해 놓고도 더 많지 않다는 것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불만스럽다.
남의 떡이 항상 더 커보이 듯이 자기가 가진 것은 늘 적다는 강박에서 헤어나지 못한다.
비교의 대상은 늘 자기 보다 많이 가진 사람들 이다.
사람들은 쓰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세상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많은 사람들이 돈만이 점점 힘을 잃어가는 세상에서 자신을 지켜주는 유일한 무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돈을 벌기 위해 삶의 소중한 많은 것을 잃어 버리는 것에 대해 개의치 않는다.
세상의 통념과 남들의 눈에 비친 성공의 잣대는 황금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
돈이란 바닷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갈증이 심하고 쌓아두고 보기만 해도 드넓은 바다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법이다.
그래서 벌면 벌수록 더 욕심이 사나워지고 다 쓰지도 못하고 떠날 돈 쟁이기에 바쁘다.
돈에 관한 한 사람들은 만족이란 모른다.
하지만 궁극적인 내 돈 이란 내가 쓰는 만큼의 돈이다.
두고 보아도 좋겠지만 내가 건강할 때 이 멋진 세상 누리는 데 펑펑 써야 폼도 나고
그래야 세상사는 맛이 나는 거 아닌가?
메멘토 모리 !
언젠가는 떠날 수 밖에 없는 게 우리 삶이고
다 가져 갈 수도 없는 게 돈인데
우린 그 피 같은 돈을 아끼고 아끼다 결국 똥을 만들고 떠난다..
돈은 가위 바위 보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 것 하나 만으로 세상의 행복을 살 수 가 없다..
우리는 가위 바위 보의 무수한 게임을 하지만 통계적으로 승패의 우열을 가리가가 어렵다.
여기 돈과 건강과 마음이 있다.
돈은 건강과 마음을 지배 하기도 하고 건강을 잃으면 돈과 마음을 함께 잃기도 한다.
마음이 부족한 돈과 건강의 채워 줄 수 있지만 그것은 돈이 너무 부족하지 않고 혼탁한 세상에
마음이 물들지 않고 깨끗이 닦여 있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그려 돈은 좋은 것이제…!.”
세월과 건강이 언제까지나 곁을 지켜 줄 수 있다면 ….
내가 아무리 열심히 많이 벌었다 해도
그 돈이란 넘이 건강해야 다 내 돈이지 내가 몸져 누은 순간 그 돈은 다 남의 돈이다
뜻대로 안 되는 돈 너무 쫒다가 건강까지 잃어버리면 그런 낭패가 따로 없다..
잘못하다간 피 땀흘려 번 돈 앓아 누을 침대 사느라고 다 써버릴 수도 있으니
좀 적게 벌고 적게 쓰는 게 건강에 더 좋을 것이다...
돈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힘들어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진 것이 정말 많지 않아서 일까?
우린 가진 것이 없어 가난한 게 아니라 단지 생각이 가난한 것인지도 모른다.
세상이 세뇌하는 그릇된 가치기준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치열한 세상이 주는 두려움 때문이다..
태평성대에는 전쟁의 참상을 모른다.
예상이 빗나갈 때나 커다란 상실을 직면할 때 우린 삶의 두려움과 공포를 느낀다.
세월이 갑자기 벽돌로 뒤통수를 내리치거나 세상의 파도에서 떠밀리는 인생의 가을날에는 이러한
두려움은 증폭되고 확장될 것이다.
세상이 세뇌하는 그릇된 가치기준에서 벗어나 삶의 소중한 것들의 우선순위를 재편하지 않는 한
우린 늘 세월에 돈에 허기질 것이다.
가랭이 사이로 찬 바람이 돌 때 그 때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때다.
더 가지려는 노력보다 더 많은 것을 내리고 자신이 가진 것으로 더 많은 것들을 누리는 자신만의
연금술을 찾아내지 못하는 한 우리는 우리의 아까운 삶을 낭비한 채 인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
이 길의 단점은 원점회귀가 안 된다는 것
원점회귀 될 수 있게 구성 한다면 함라 향교 옆으로 난 산길을 올라 함라산 능선에 접속하고
함라산과 함라재 봉수대를 거쳐 임도로 내려서서 임도를 따라 가다가 다시 접속구간에서 산길로
올라서서 올라 왔던 교동 갈림길로 내려 가는 것이다.
이럴 경우 교동재에서 숭림사에 이르는 3.5km 구간의 호젓한 산길을 걷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별도의 시간을 가지고 숭림사를 돌아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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