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겠다던 차박사는 꽁지를 내렸다.
조사장과 대전 IC에서 5시 30분에 만났다.
6시 30분 물한계곡 도착
입구의 표지판에서 개념도를 보다가 또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욕심이 꿈틀거린다.
내일 산친구들과 강원도 정선 두위봉 산행이 있는데도 결국 각호산을 아우르는 대장정을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내일은 내일이고 오늘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다.
비록 내일 삼수갑산을 가더라도 오늘은 함 해보자.
넓게 우회하는 긴 계곡루트에 가파른 산세 그리고 굴곡과 낙차가 큰 3km여 능선길 까지
합하면 1시간 반은 족히 늘어날 것이다.
각호산 이 길이 언제부터 열렸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그 길을 모른 걸 보면 그리
오래지는 않을 것이다.
등로는 임도를 따라가다가 계곡으로 접어 드는데 계곡을 거슬러 오르는 그 길은 인위적으로
새로 만든 길이다.
길이 조성되긴 했지만 그냥 길의 형태로 파헤쳐진 채 기반공사가 되지 않아 길이 불편
하고 거칠다.
군데 군데 토사가 휩쓸려 내려가 길이 끊어지고 계곡을 따라가는 구간에서는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면 길이 없어지고 예기치 않은 위험에 노출 될 수 있다.
그래도 한동안 완만하게 진행되던 길은 갑자기 거의 수직에 가깝게 일어서서 장딴지를
탱탱하게 자극하는데 흙길에 잡을 데가 없으니 참으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
각호산을 만나는 비싸고도 위험한 통행세인 셈인데 비가 와서 미끄러운 날에는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저승사자의 환영을 볼 수도 있겠다 싶은 길이다.
비로소 각호산 지능선에 올라서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돌리지만 그건 겨우 출중한?
각호산 길의 시작에 불과할 뿐이었다.
지능선에 올라서서도 길은 끊임없는 오르막의 연속이었다.
안나푸르나를 주름잡던 장사 조강쇠는 평상시답지 않게 그 길에서 허우적거렸고 초장의
스퍼트와 오버페이스로 인해 하루종일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난 요즘 운동량이 많아서 인지 흠사 오월 초순 같은 생명력 가득한 산들의 기를 받아서
인지 계속 혈기방장하고 발걸음은 가벼웠다.
조사장은 오늘 컨디션이 나쁘지는 않다고 했지만 걸음이 예전과는 좀 달랐다.
평소에는 내가 사진을 찍으면서 따라 붙기가 꽤 바빴는데…
오늘은 풍경에 빠져 한참 사진을 찍고도 금방 따라 붙을 수가 있었고 내가 풍경이 뜨는
봉우리에 들렸다 내려올라 치면 조사장은 그자리 않아서 내가 내려올 때까지 퍼질러 휴식을
취했다.
다른 때 보다 지치고 힘들다는 얘기
능선에서의 속도도 많이 느려져 숨도 거칠고 본인도 모르게 자주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장사 조강쇠도 인자 늙어 가는겨?
자욱한 안개와 싸늘한 아침공기와 더불어 시작한 여정은 눈부신 태양과 함께 드맑은 오월의
봄을 열었고 각호산에서 발 아래 하얀 구름바다를 굽어 보기에 이르렀다.
바닥에서 치고 올라 출중한 100고지 고봉 4개를 아우르는 여정은 뿌듯한 감동을 몰고 왔다.
무릉객 아즉 쌀아 있다.!
이제 막 사월과 오월의 경계를 지나고 있는 1000고지 지봉우리와 능선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연다래는 반쯤 활짝 피었고
피어나는 연초록의 새순들은 이제 태양을 향해 빳빳이 고개를 치켜 세우며 그 여름의 전설을
노래한다.
아무도 없는 여긴 너무 조용하다.
보이는 건 장대한 녹색바다.
바람에 날리는 건 지난 시절의 추억과 봄의 향기이고
들리는 건 물소리, 새소리가 전부다.
모처럼 인적이 반가운 새들은 목청 높여 하이톤으로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 녹색바다를 유영하며 지난날의 아름다운 상념에 젖다 보니 메마른 가슴이 촉촉해지고
빛 바랜 지난날의 추억들은 다시 밝은 빛으로 선명하게 되살아 났다.
지나간 젊은 날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기억들이 모자이크처럼 한 조각씩 추억의 캔버스를
채우며 잊었던 그림을 완성해간다.
기억과 시간이 그린 그림은 늘 아름답다.
고난의 그날의 색채가 더 선명하고 슬픔의 시간은 은은한 배경이 되어 기쁨을 빛나고
돋보이게 한다.
지난 추억의 그림 속에서 삶의 난폭자 시간은 늘 온화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고, 피어나는
대지와 나는 함박 웃음을 날리며 시간의 무등을 탄다.
아름다운 풍경 앞에 서면 늘 삶이 명징해지고 흔들리던 생각들이 뚜렷이 정리된다.
내가 민주지산에 새긴 추억의 나이테 보다 더 짧은 날이 내겐 남아 있을 것이다.
오늘의 고뇌와 아픔, 슬픔과 상심을 다시 아름답게 정제하고 빚어낼 시간이 이젠 내게
많지 않다.
나를 웃게 한 젊음도 떠나고
사람들도 떠나고
남아서 여전히 웃고 있는 건 푸르고 시린 자연이다.
“이렇게 활짝 웃는 너를 대하니 내 마음도 활짝 웃는다!”.
그러고 보니 웃음 또한 언제부턴가 세월이 내게서 네다바이 해간 것이다.
오늘은 연분홍 연다래의 맑은 웃음이 세상에서 잠시 잃어버린 웃음을 되살려 준 날…
이젠 쓸데 없는 욕심과 미망에 허비할 시간이 없다.
가지려는 욕심과 갖지 못한 두려움이 더 이상 나의 가슴을 갉아 먹게 해서는 안 된다.
찬바람과 함께 훌쩍 떠나가는 날에 나는 무얼 가지고 갈 수 있나?
날개 달린 시간의 전차가 굉음을 울리며 다가오고 있는데 ....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실체는 사라지고 나의 존재는 텅 빈 무로 수렴이 되는데….
삼도봉 하산길 쉼터에서 대전집에 전화를 걸어 백숙 한 마리 고아 놓으라 하고 천천히
물길을 따라 흘러 내렸다.
오늘 체력소모가 많았으니 영양보충을 제대로 해야지…
조사장이 더덕을 캐서 백숙에 넣어 몸보신을 시켜 준다고 계곡 여기저기를 빠댔지만
더덕은 냄새만 풍기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우린 결국 도라지도 한 뿌리 캐지 못했다.
물길 좋은 데서 탁족도 하고 몸도 씻으려 했다가 우린 철책이 쳐진 계곡까지 내려왔고
결국 내려갈 곳을 찾지 못한 우린 식당 화장실에서 몸을 씻고 옷을 짜 입었다.
꽤 빡센 산행이었지만 그만큼 내 영혼이 콧노래를 불렀던 즐거운 날 ….
술 한잔도 못치고 몸보신만 한 채 대전에 입성하여 조사장과는 다음달 설악 산행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했다.
산 행 일 : 2020년 5월 23일 일요일 .
산 행 지 : 민주지산
산행코스: 물한계곡 - 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 =삼도봉 -황룡사 -물한 계곡
산행거리: 약 18km
소요시간: 약 7시간 30분
날 씨 : 맑음
동 행 : 조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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