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초록물이 뚝뚝 떨어지던 민주지산 능선을 함께 구르며 조사장이 설악
여행을 제안했다.
금,토 1박 2일 설악산 공룡능선
자량에서 부터 모든 비용까지 친구가 부담한다니
앞 뒤 안 재고 무조건 콜이지~~~
왜냐구 ?
올해도 공룡의 잔등을 타야 하는데 언제가 좋을까 궁리중이었고
조사장과 같이 가면 비교적 럭셔리하고 여유로운 여행이니까….
재작년 여름 설악에서 조사장은 밀납처럼 녹아 내렸다
그래도 대청봉에서 셍수통에 물을 받아 숲 속에서 샤워까지 하고 구름을 발 아래 둔 채
오리고기를 안주로 소주 두어 병을 까대며 1700고지의 낭만적인 가을을 구가할 때는
하늘을 나는 기분 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날
우리는 거친 길과 무더위에 혓바닥 길게 늘어뜨린 깨국락지가 되어 남교리 까지 종주를
포기하고 대승령에서 중도하차 했다. .
귀떼기 청봉에서 한계령, 대승령으로 이어지는 불타는 서북능선은 기억에 남을 만한
고난의 행군이었고 조사장에게는 혹독한 설악 신고식이었다….
짙푸른 녹음이 넘실대는 용광로에서 흐느적거리는 길에 물부족 까지 겹친……..
우린 대승령 계곡 산장에서 목젖이 얼얼했던 차가운 맥주병을 셀 수 없이 도열시키고
그렇게 혼곤히 설악에서 이틀을 보내구 나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조사장은 오랫동안 침묵했다.
2년이 지나서야 겨우 디시 설악 공룡을 얘기한 것이다.
조사장과 나에게는 추억여행인 셈이다.
2002년 백두대간 종주 때 함께 공룡능선 종주를 했다.
그 때 조사장은 첫 공룡능선 종주였고 나는 거친 능선에 매료되어 해 마다 빠지지 않고
공룡을 찾던 왕성한 시절이었다..
많은 우여곡절과 변화 속에 강물처럼 흘러간 세월이다.
조사장은 다이나믹한 롤러코스트 삶의 기복 속에서 집념과 근성으로 결국 성공과 부를
이루었고 난 평범한 삶을 살면서 한국의 무수한 산하에 족적과 추억을 남겼다.
그날은 제법 많은 비가 와서 공룡은 짙은 비안개에 쌓여 있어서 산행은 오히려 힘들지
않았지만 절경과 조망은 안개에 묻혔다..
쉽사리 패를 드러내 보이지 않는 공룡
우린 9시간여 긴 산행을 마치고 설악동으로 내려와 호텔에서 사우나를 하며 그렇게 아쉬움
속에 공룡의 추억을 갈무리 했었다.
그날 이후 조사장은 18년 만에 공룡을 다시 찾는 셈이고 난 3년 만이다.
마등령 가는 길
늘 해돋이 시간에 맞추어 캄캄한 밤에 올라가던 길이라 맑게 씻기운 싱그러운 설악의 아침
속에서 만난 마등령은 눈부시게 빛나는 초록세상이었다.
가끔 운무가 휘몰아 쳐서 몽환의 설악을 열면서 멋진 공룡능선의 기대에 부풀었다.
난 오랜만에 만나는 마등령 아침에 매료되어 기억에 남아 있는 조망처에는 모두 올라 사진을
찍느라 시간의 개념을 잊었고 조사장은 가도가도 끝없는 오르막에 지치고 힘들어 했다.
비선대에서 마등령에는 3시간 30분 정도 걸렸다.
한참 때 앞뒤 안 돌아 보고 2시간 40분에 주파하기도 한 길 이지만 발길이 느려지는 건 다만
세월 때문이 아니라 그 길의 진면목을 알아차린 때문이기도 하다.
몇 군데 감추어진 절경을 보고 가는가 아니면 그냥 스쳐지나 가는 가의 차이…
그랴도 세월이 어찌 나만 빼놓고 다른 사람들 바짓가랑이만 잡고 늘어질까?
공룡능선
오락가락하는 몽환의 운무에 멋진 공룡의 기대가 펄펄 날리었는데
그 부푼 기대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도
마등령 삼거리에서 너덜지대를 지나 본격적인 절벽 능선으로 올라 서면서 심상치 않은 짙은
운무가 들이칠 때도 설악 신령님에게 받을 오늘의 멋진 선물에 그저 신이 났다.
근데 공룡 속으로 깊게 발을 들여 놓을수록 상황은 급속히 변해갔다.
갈수록 안개는 짙어졌고.
햇빛 아래 들이치던 안개는 어느새 태양까지 뒤덮은 채 날은 점점 스산해 졌다.
설악 신령님은 심기 불편하신 일이 있는지 마치 우리한테 잔뜩 화가 나 있으신 것 같다.
할~~ 우짜 이런 일이…
18년 전 그 옛날의 추억을 되돌려 주시는 건가?
그런데 급기야 능선 양쪽이 모두 트인 곳에서는 서늘한 바람이 몰아 친다.
바람 길에서는 추워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다.
그 길을 가면서 속으로 생각이 드는데….
“조사장 집안에 용을 때려 잡은 소사가 있는 거 아녀?? “
조사장에게 물었다.
“18년 만에 다시 왔는데 시방 분위기가 너무 멜랑꼬리하네… 어쩐다여?”
당최 눈에 뵈는 게 없는데 “이거 설악 신령님이 조사장 한 번 더 오라시는 건데…!”
조사장 혀를 내두른다.
“앞으로 공룡 능선 다시 올 일 없어요 !”
자기는 조망 그런거 별로 신경 안 쓴단다.
그냥 늙어가는 날에 다시 공룡주유를 했다는 데 의의가 있는 거지…
산을 좋아하되 이렇게 완전 다른 스타일로 함께 산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멋진 조망의 즐거움 그리고 힐링과 재미를 위한 산행을 추구 하는 사람과
정신적 스트레스 해소와 체력단련을 위한 산행을 추구하는 사람
나는 새로운 풍경과 그리운 풍경을 위해 멀리 떠나는 여정 또한 여행이라 생각하고
조사장은 길에서 허비하는 시간을 너무 아깝다고 생각한다.
그런 조사장이 공룡을 결심한 게 뜻밖이긴 했지만 어쩌면 공룡의 옛추억과 지난 서북능선의
고행이 시간의 강물에 정제되고 채색되어 아련한 그리움의 색깔이 되살아 나서이지 않을까?
하여간 조사장은 시원해서 너무 좋다구 하고 나는 자욱한 산 안개와 구름에 가리어 눈에
뵈지 않는 장쾌한 공룡이 아쉽기 짝이 없다.
조사장은 차가운 공기와 시원한 바람에 마치 18년처럼 원기를 회복해 갔고 나는 점점
날씨처럼 잔뜩 찌푸리며 시큰둥해 갔다.
무릉객 오랜만에 왔으니 산신령님이 반갑게 맞아주실 거란 생각을 못 말리는 착각이었어…
어쩌면 산신령님의 치밀한 계산인지도 모른다.
무릉객은 풍경을 못 봤으니 가을에 다시 올거구
멋진 풍경을 보여줘도 조사장은 오지 않을 거구….
“근데 저 삐졌습니다. 신령님 !”
우린 그렇게 때 이른 폭염의 여름 가운데서 서늘한 가을을 만났다.
그리고 18년 전 조사장에게 그렇게 얕보였던 공룡은 오늘도 마등령 보다 강한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마등령에서 진이 빠졌던 조사장은 스산하고 을씨년스러운 공룡에서 다시 원기를 회복
하고 무사히 무너미 고개로 내려섰다.
안개처럼 아쉬움이 흐르던 길이었다.
공룡은 늘 말이 없었지만 난 그 길에서 많이 수다스러웠는데
나는 오늘 공룡과 같이 침묵했다.
1275봉 지나 만났던 청솔은 날선 비탈길에서도 예전보다 더 시푸루뎅뎅한 모습이었다..
천불동 계곡
생각보다 계곡의 수량은 많지 않았다.
몽환의 안개가 오락가락하면 더 신비로운 천불동일거라 생각했는데 천불동은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혀 화장기 없는 민낯을 드러냈다.
천불동은 절경이지만 너무 익숙해서 감동이 인색한 그런 길이다.
천불동은 공룡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길이라 다른 방식으로 걸어야 한다
공룡은 거친 호흡과 터질 듯 격한 심장을 의식하며 걸어야 하는 길이지만
천불동은 그 격정이 사그러진 이후 그 동안 침묵했던 발이 불평하는 시간이라.
그냥 시간과 거리에 무감각 한 채 물처럼 유유자적하게 흘러 내려야 하는 길이다..
억지로 어떤 생각을 떠올리거나 구태여 케케묵은 기억을 더듬으려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머리를 하얗게 비우고 쾡 한 한줄기 바람이 스쳐 지날 때 실려오는 기억들을 멀건히
바라보면 된다.
그러면 무언가 가까이 다가온다..
설령 다가와 아는 체 하는 것이 없어도 그 냥 하얗게 여백으로 남으면 거기 무언가 채워
질 것이다.
바위 난간의 고고한 청솔의 가지를 턴 청명한 바람이던
산의 눈물과 나무의 울음을 모아 차가운 서룸으로 흐르던 맑은 물이던…
조사장이 너무 긴 길이라고 했다.
희운각 대피소에서 비선대까지가 5.5km 비선대에서 설악동 까지 3km 도합 8.5km
시종 내림길이고 예사롭지 않은 풍경이지만 꽤 먼 길이라 많이들 힘들어 하는 길이다.
그렇게 비선대를 지나고 설악동으로 내려 가는 길
난 알탕을 한다고 했고
조사장은
길가에 선명한 상수도 보호구역 팻말과 인적 없는 천불동의 적막과 고요에 압도되어
그냥 가자고 했다.
그랴도 참새는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지.
여기 오기기 그렇게 쉬운가 ?
흐르는 천불동 청수로 10시간 산행에 지친 몸의 땀을 씻어내고 도시에서 그 동안
메말랐던 내 영혼과 심장에 축축히 생명수를 적시고 가야지
조사장은 신흥사 부처님 불상 벤치에서 기다리고
나는 아무도 없는 천불동 계곡 푸른 소에 해골을 누이고 온몸을 담근 채 이제 비로소
맑아진 설악을 하늘을 말없이 올려다 보다가 새 옷을 갈아 입고 하산했다.
날개 옷 까지 걸쳤으니 잘하면 오늘 설악 신선으로 승천하는 건데…..
우리는 낙산사 해수욕장으로 이동해서 각자 방 하나씩 숙소를 잡았다.
조사장은 샤워를 하고 나는 해변 구경을 하고 ….
그리고 어항에서 한잔의 소주를 앞에 놓고 마주 앉아
펄펄 뛰는 회를 안주로 오랜만에 친구와 술 한잔을 친다.
그것도 설악 공룡을 타고 난 후에 …
그 술 맛이 과연 어떨 것 같은가?
식탁에 소금이 필요하듯
살아가는 우리에겐 가끔 이런 시간이 필요한 건 아닐까?
수 많은 평범한 날 가운데 어떤 특별하고 비범한 날
우린 고요와 침잠의 바다에 떠돌다 가끔 길을 잃고 표류하기도 하고
휘몰아 치는 태풍에 휩쓸려 심연 속으로 가라 앉아 허우적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이렇게 조용히 수면 위로 떠 올라야 한다.
여행의 시간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으니 ….
그러나
일상에서 벗어나고
삶의 심연에서 떠오르는 그날은
그냥 다가오는 것이 아니고 내가 선택하는 날이다.
피로와 살아가는 날의 즐거움과 한잔 술과 뒤엉켜 나는 바다도 잊고 친구도 잊고
심지어 나마저 잊고 그렇게 깊은 잠에 빠져 들었다.
천불동 계곡 물소리와 파도소리 마저 사라진 절멸의 고요 속으로…….
산 행 일 : 2020년 6월 6일 ~ 6월 7일
산 행 지 : 설악산 공룡 능선
산행코스 : 설악동-비선대 -마등령 –공룡능선 –무너미고개 –양폭산장 – 오련폭포-설악동
산행 거리: 약 20km
소요시간 : 약 10시간 20분
날 씨 : 맑은 후 흐리고 다시 맑음
동 행 : 조사장
(천불동 방면)
설악동 탐방지원센터 – 비선대 3km
비선대 –대청봉 8km
비선대 –양폭산장 3.5km
비선대-희운각 5.5km
비선대 –중청대피소 7.4km
(마등령 방면)
비선대 –금강굴 0.6km
비선대 –마등령삼거리 3.5km
비선대 –희운각 대피소 8.6km
비선대 –대청봉 11.1km
경유지별 시간
06:45 설악산 매표소
07:11 비선대
10:17 마등령
10:31 마등령 삼거리
12:223 1275봉 -> 희운각 대피소 3.0km ,<-마등령 삼거리 2.1km
13:37 공룡 조망처
14:07 무너미 고개 -> 양폭대피소 1.8km ,-> 비선대 5.3km
<-대청봉 2.7km
14:52 양폭 대피소 -> 비선대 3.5km -> 설악동 탐방지원 센터 6.5km
<-희운각 2km
16:05 비선대
17:05 설악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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