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자 문막회동
내 인생 후반부 예기치 않게 문막의 역사가 열렸다.
젊은 날 해마다 뻔질나게 드나들던 강원도
이건 강원도 산신령님들의 초대여 !
휴식과 재충전의 길목을 지키던 문막에서 인생 후반부에 유유자적하라는
그 길은 누군가에게는 은둔과 도피의 행로였지만 내게는 늘 명상과 사색 그리과 삶의 도(道)와
맞닿은 길이었다.
설악으로 가는 길이고
두 번 백두대간 종주의 시작과 끝이 있고
30여개 가까운 한국 100대 명산을 품으며 푸른 동해 바다를 굽어 보는 곳
지난 주 동해 가족모임은 새로운 역사의 시발점인 문막 소금산을 경유 설악산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고 뒤 이어 이번 주 이기자 전우들이 새로운 둥지를 찾아 주었다.
5월 19일 관악산 회동 후 1달이 남짓한 시간에 갑작스런 돌발변수로 인한 회동인 셈이다.
우야튼 친구들이 찾아준 것도 반가운데 난데 없는 독거노인을 위해 김치와 깻잎까지 담궈
오고 쌀 한가마를 위시한 생필품까지 바리바리 장만해 주었다.
우린 뜨거운 태양이 한낯의 열기를 식히는 해거름에 문막골 정육식당에 마주 앉아 술 한잔
치며 인생의 가을과 우리 삶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생의 강물은 도도하게 흘러 갔다.
많은 것들이 떠나고 사라졌지만
새로운 삶의 변곡점에서 만난 전우들과의 인연은 무수한 세월이 산을 너머 오늘까지 이어
지고 있다.
사창리에서 발원하여 수 많은 인생의 여울목을 휘돌아 여기 문막 까지…
오늘 우리가 발 담그는 강물은 어제의 강물이 아니지만 나는 어제의 친구들과 삶의 추억과
살아 가는 날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
이제 중요한 건 얼마나 많은 날들이 남아 있는가가 아니라
가슴이 뜨거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는가?
모두가 변화무쌍하고 다이나믹한 인생 후반부를 살고 있다.
난 퇴직 후 옛날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일들에 종사했고 급기야 3번 째 직장을 갈아타면서
문막에 둥지를 틀었다.
차하사는 시끄러운 도시를 버리고 상주에 정착해 새 집을 짓고 꿩과 닭과 개를 기르고
엄하사는 삶의 패턴을 통 째로 바꾸어 버렸다.
삶의 파도타기를 즐기기에는 세월에 좀 곰삭긴 했어도 그렇다고 김빠진 사이다처럼도
닝닝하고 들척지근 하게 살 수가 있나?
우린 아즉 시푸루둥둥한 젊은이들이고
오늘이 우리 생애의 가장 젊은 날이고
그저 흘려 보내기에는 너무도 소중하고 아까운 날들이 남아 있을 뿐인데….
해가 떨어지면서 문막골 한낮의 뜨거운 열기는 급속히 식어갔다.
우린 방충망이 쳐진 1.5룸의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나름 편안하게 자고 일어 났는데 아침에
모기 두 마리가 앵앵거리며 날아 다녔다.
예상치 못한 공습에 놀라 즉각 대응조치를 취해 무차별 핸드미사일을 발사하여 공중 폭파하다....
근데 격추된 모기의 잔해에서는 붉은 선혈이 낭자하다.
난 해 떨어진 후의 싸늘한 기온에 홑이블을 계속 덮고 잤고
엄하사는 이불을 혼자 끌어 덮고 잤으니 원정 헌혈은 차하사가 했음에 틀림이 없다.
문막의 진지에 뿌려진 전우의 뜨거운 피!
치악산 추억 만들기
콩나물 국을 끓여 해장을 하고 치악산에 갔다.
계획은 가장 짧은 황골에서 올라 비로봉 찍고 사다리병창 길을 따라 구룡사로 내려 서는 것
택시비를 절약한 것 까지는 좋은데 양 쪽 끝에 차 한대씩 두느라 시간이 너무 걸렸다.
내 차가 2인용 밴이라 차하사를 황골에 떨어뜨리고 엄하사와 구룡사로 가서 그 곳에 엄하사
차를 파킹해 놓고 다시 황골로 돌아오다 보니 길에서 허비한 시간이 한 시간을 훌쩍 넘었다..
황골에서 구룡사까지 구불 구불 시골길 20키로거리를 왕복 한다는 것이 그리 만만치는 않다.
우야튼 우리는 조금씩 뜨거워 지는 산길을 따라 입석사에 올랐다.
아스팔트와 산길의 차이를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우리가 왜 아스팔트나 콘크리트 길을 걷지 않고 흙길을 걸어야 하는지 명징하게 보여 준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반사된 지열은 오늘 하루 힘든 고행을 예고하는데 입석사를 지나
가파르게 일어나 있는 숲길을 오를 때는 오히려 냉기를 머금은 계곡이 서늘한 공기를 풀어
그렇게 덥게 느껴지지 않았다.
입석사 절을 보고 나서야 오래 전 어느 해 겨울에 황골을 올랐던 기억이 살아 났다.
기록을 보니 2010년 여름에 마눌과 100대 명산 길에 사다리병창길을 따라 비로봉에
올랐다가 계곡길로 내려섰고 2011년 겨울에는 산우들과 오늘처럼 입석사로 올라 비로봉
찍고 사다리병창길을 따라 내려 섰는데 약 5시간 걸렸다.
2005년에는 상원사에서 남대봉 정상에 올랐다가 영원사를 거쳐 함박골로 하산했는데 4시간
40분 걸렸다.
그리고 하도 오래전의 일이라 기록에 남아 있지 않지만 발정난 들개처럼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니던 젊은 날에는 홀로 구룡사와 상원사를 잇는 주능선 종주를 7시간 30분에 걸쳐 완성
하고 차를 몰고 돌아온 기억이 있다.
아마도 종주 전에 두어 번은 치악에 올랐을 것이다.
내 생애 통산 7번 째 오르는 치악은 이기자 전우들과 함께였다.
비로봉 정상
감개가 무량하다.
9년 만에 다시 비로봉 정상에 올랐다.
엄청 무더운 날과 탁한 조망을 예상 했는데 태양은 거대한 구름 층에 숨어 비로봉 인근을
그늘지게 만들었고 정상에는 후련하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었다.
마치 먼 바다에서 녹색의파도가 밀려오는 듯 푸른 하늘 아래 막힘 없는 조망과 장엄하게
구비치는 치악산릉의 파노라마는 장관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나는 10년 전 그 봉우리에 다시 올라 그날의 감동에 젖는다.
예전엔 돌탑에 바위가 많은 정상부에 휴식할 곳이 마땅치 않았는데 지형을 고려한 데크를
멋지게 조성해 놓아서 구름 그늘 아래 시원한 바람이 불어가는 비로봉 정상은 천혜의 쉼터
였다.
우린 정상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바람 길에 앉아 음식을 나누고 하산의 길을 잡았다.
황골 등산로는 단순 명료하다.
입석사 까지 제법 가파른 포장길 1.2km
입석사에서 능선 까지 작정하고 곳추선 0.6km 비탈 돌길
능선에서 비로봉 까지 완만한 오름길 1.9km
황골에서 정상에 오른 길이 가파르 긴 했지만 거리가 짧아서 그리 체력소모가 크지는 않아
구룡사 쪽 등로보다는 훨씬 수월한 편이다.
예전에 세렴폭포를 지나고부터 가파르게 일어선 사다리병창길을 보고 과연 치악의 명성에
걸 맞는 길이라 했었다..
구룡사 하산 길
바람과 풍경이 좋은 곳에서 유유자적하게 쉬어 가며 내려가는 길
힘들게 사다리병창길을 오르는 사람들을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며 10년이 지난 길의 감
회에 젖는다.
그래도 로프를 잡거나 네발달린 짐승처럼 기어 오르던 바위 능선 길에는 편안한 데크가 설치
되어 있어서 하산 길은 훨씬 안전하고 수월해졌다.
편안한 하산 길에 콧노래가 절로 나는 데
세렴폭포 인근에서 흘러내리는 물소리가 제법 우렁차게 들리기 시작하자 탁족이라도 하고
갈 생각에 손수건이라도 꺼내려 하니 마땅히 어깨에 걸려 있어야 할 가방이 없다.
오잉?
이것이 시방 무신 시추에에션 ?
띠웅~~ 잠시 멍한 상태
그리고 아연실색
허걱 !~~~ 정상에 가방을 두고 온 모양이여
참 신기한 노릇이다.
분신 같은 가방을 놓고 탱자탱자 내려오면서 세렴폭포에 도달할 때 까지 그 사실을
까맣게 몰랐다니…
우야튼 대형 사고가 난 것이다.
어깨 걸이 가방 없으면 난 걸어 다니는 화석일 뿐이다
내 손가방은 만물상자다.
무엇인가 없어지면 거기서만 찾으면 된다..
거기에는 핸드폰과 지갑이 있고 마스크가 있고 손수건도 들어 있다.
지갑 안에는 신분증과, 카드와 현금과 어머님이 주신 부적이 들어 았다.
그뿐인가 차키도 예비키 까지 2개나 들어 있고 핸펀 비상 밧데리도 들어 있다.
선크림과,치약 그리고 필기구와 메모장도 들어 있다.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다 정신이 번쩍 나는데…
뾰족한 방도가 없다. 다시 올라가는 것 말고는….
음~~~
등로는 수직강하 수준으로 급격히 떨어졌으니 계속 올라쳐야 할 길 인데 산을 다시
타는 건 그렇다 쳐도 올라가서 찾을 수 있느냐와 일정을 벗어나는 시간 계획이 더 문제다 .
배낭이 가벼워 그냥 지고 올라가려 하니 차하사가 들고 내려 간단다.
대포 카메라 까지 놓고 가라고 했다.
차하사는 안나푸르나에서도 허여사 배낭을 지고 가더니 남의 베낭을 대신 지는 팔자를
타고 난 모양이다.
회군
우야튼 연락용 차하사 핸펀과 남은 물 1/3 병 그리고 스틱만 가지고 단출하게 오르는 길
마음 같이 속도가 나지 않은다.
가방이야 치악 신령님이 챙겨주실 일이지만 밑에서 식사도 못하고 기다릴 친구들이
걱정인데 워낙 낙차 큰 오름길이라 초장처럼 들이대긴 어렵다...
중간에 한 번 전화를 하렸더니 차하사가 풀어 놓았다던 패턴 암호가 다시 막혀 있다..
되짚어 산행을 해가면서 혼란스럽고 조급한 마음은 조금씩 진정되고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 갔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고 이미 내 손을 떠난 일이니 안달하고 서두른들 무슨 소용인가?
그냥 마음을 비운 채 쉬지 않고 계속 올랐다.
일부러 씩씩하게 인사를 하면서 올랐는데 우리가 추월하며 내려 온 사람들과 교행하더니
나중에는 올라오며 우리와 교행했던 사람들도 정상을 찍고 내려 왔다..
땀을 흘리며 열심히 올라오던 뚱보 아줌마는 정상 찍고 내려오면서 날 알아보고 왜 거꾸로
가냐고 물었다.
갑자기 훅 들어오니 대답이 궁해서 그냥 정상에서 기다리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다.
다시 정상
다시 비로봉에 오르니 탑 아래 덩그러니 가방이 놓여 있다.
배낭은 아래 벤치에 두고 위의 돌탑에서 기념 사진 찍는다고 가방을 벗어 놓았다가 벤취의
배낭만 가지고 바람 좋은 전망 데크로 이동하면서 이 사단이 났다.
하지만 그게 모두 다 내 잘못이랴?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그리고 후련한 조망과 웅혼한 풍경 탓이다.
내 젊은 날의 열정과 땀이 서린 비로봉에서 다시 마주한 감동으로 잠시 넋이 나간 탓이고.
오랜만에 만난 무릉객 좀더 놀다가라고 가방을 감추신 신령님 탓이다..
하산
나 때문에 점심도 굶은 친구들에게 미안한 것 빼고는 문제될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아침에 올라왔던 황골 계곡을 바람처럼 뛰어 내려 왔고 숙소에서 샤워를 하고 기다리던
친구들과 다시 만났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
전우들과는 관악에 이은 멋진 추억이었다.
다 좋았다..
문막골에서 친구들과 함께 나누었던 술자리도 좋았고
함께 보낸 시간과 산행도 좋았다.
치악산은 전우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불러내는 또 하나의 빛나는 고지 탈환의
역사로 이기자 추억록에 기록되었고 내게는 유래 없는 왕복 산행으로 오래 기억에 남을
것이다.
“작은 들에 무화과나무 몇그루 서 있고 ,약간의 치즈 그리고 서너명의 친구들만 있으면
행복하다.”
에피쿠르스가 말하는 사치스러운 삶이었다..
나를 취하게 하는 것들이 많으니 이만하면 나의 삶도 럭셔리하고 행복하지 않은가?
소요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친구들과 한잔의 술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까지 …..
산 행 일 : 2020년 7월 4일 (토요일):
산 행 지 : 치악산
산행코스 : 황골 –비로봉 – 구룡사
동 향 : 이기자 전우들
날 씨 :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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