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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오대산 나홀로 환종주

 

나홀로 오대 종주기

 

창립 기념일 휴무하래.

이게 웬 떡이여

 

나가 시방 강원도 문지기를 하고 있으면서도 강원도 산을 몬가니 불쌍히 여기신 신령님들이

이렇게 불러 주시네

 

어디를 갈까?

누구랑 갈까 고민하다가

결론은 버킹검

오대산에 혼자 가기로 했다.

풀코스를 같이 탈만한 친구들이라면 귀연 산친구들 빼고 고부기와 봉규 정도지만

갸들은 바쁠거이고

조사장이나 리기자 전우들에게는 너무 빡센 코스일 것이다.

모처럼 뽀너스 휴일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혼자만의 황홀한 고독을 느껴보고 싶었다.

적멸보궁과 비로봉 상왕봉을 아우르고 백두대간의 두로봉과 동대산 까지 퉁치는 오대산 환종주는

혼자 아니면 동행이 오히려 불편한 그런 코스다.

 

옛날 같지 않아서 혼자 떠날 시간을 갖기가 어렵다.

요즘 통 혼자만의 명상의 시간을 갖지 못해서 고요함에 정주하지 못하고

스스로 깊어지지 못했다.

자연 속으로 떠나지 않는 묵상과 수행은 단지 자기만족의 변죽만 울리는 거지.

 

일단 4시에 새벽밥 먹구 출발하기로 했다.

그럼 630분 쯤엔 상원사에 도착 할 것이다.

 

좀 일찍 자야 하는데 730분에 저녁 챙겨 먹구 추억의 미드라마 형사콜롬보를 한편 땡기다

보니 시간이 훌쩍 흘러 갔다.

그 저녁에 먹기도 많이 먹었다.

밥 먹고 입이 심심해서 누룽지 먹다가 오징어 한 마리 다 뜯고

하리보 한봉 먹고

초코파이 하나 더 먹고

나중에 먹을 게 없어서 양파즙에 쌩라면 까지….

 

우짜든 알람을 새벽 4시에 맞추고 1130분쯤 취침했는데

새벽 두 시 반에 깬 거다.…

예기치 않은 소풍에 설렌 것이 아니라 몸이 가려워서….

이불 진드기인가 싶어서 편백 계피제 진드기 약을 이불에 뿌리고 다시 잠을 청하는데

"앵 소~" 소리가 나는 거여

환청인가 했는데 발 가려운 게 모기한테 물려서 그런 거 가터

냅따 일어나서 불키고 사정 없이 모기약을 뿌리고 나서 다시 누웠는데

다른 날 같지 않게 완전 똘방똘방 해지는 거야

한 시간 이면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잠꼬리를 잡는 것이겠지….

 

한 시간 이면 알람이 울리니 뒤척이다 보면 시간만 갈거구

일어 날라면 몸이 더 피곤할 테니 기양 출발하기로 했다.!

뭔가 특별한 일이 있긴 있는 거여 ! 산신령님이 좀 빨리 오라시는 걸 보면….”

 

너무 이른 시간이라 새벽법은 휴게소에서 먹는 게 나을 것 같아 그냥 나가려는데 갑자기

배가 출출한 거 있지?

시방 나가 20대로 다시 회춘 하는 것이여?

어제 그렇게 먹고도 새벽 세시에 !

이 대목은 나 스스로도 존경스럽다 !

나이를 먹어도 지칠 줄 모르는 무릉객의 위대한 에피타이트

 

어제 먹다 남은 된장찌개와 밥을 먹으려 준비 하는데 갑자기 라면이 땡기는 거 있지?

그랴서 된장 국물에 라면 한 개와 어제 쌩으로 먹다 남은 라면 반 개를 넣고 끓였어..

스프는 조금만 넣고

이름하여 무릉객표 된장라면

새벽 세시에 눈 비비고 일어나 라면 한 개 반 맛있게 먹을 수 있다면 게임 끝난 거 아니여?

작정하고 나서는 빡 센 여정에 이 정도는 먹어 주어야지 ….

 

 

진고개에 원점 회귀용 자전거를 내려 놓고 상원사로 가야 해서 고속도로를 열심히

새벽을 질주해서 진부 나들목을 나왔다.

그 옛날 가족 여행 길에 무지개를 만난 국도변을 지나 월정사 갈림길을 지나 진고개로 가

는 데 길이 꼬불꼬불한데 문제는 갓길이 너무 없다는 거다.

나중에 이 길을 따라 월정사로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을까?

 

하여간 다시 차를 돌릴 데도 없고 10여 키로 운전해서 진고개 정상 주차장으로 들어섰는데

아직 날이 새지 않은 어둑한 주차장에는 스산한 안개가 흐르고 차가운 바람이 불고 있었다.

허걱! 저 도깨불이 머시다냐?”

태풍피해로 등산로 전면 폐쇄.”

산 넘고 물 건너서 불원천리 찾아 온 길에 바람의 언덕에서 나를 반겨준 건 안개 속에서 교교히

빛을 발하는 전광판의 붉은 대자보다.

시방 무슨 시추에이션?”

몸이 떨리는 날 바람을 맞으며 인터넷을 검색하니 오대산은 전변 출입통제에 꼴랑 진부령

-상원사- 적멸보궁 까지만 등산로가 열려 있다.

 

~~~

느그덜 원칙이 그렇다는 거지

나부끼는 그 붉은 깃발에 기죽을 것도 없고 달라질 것도 없다.

무릉객은 산신령님으로부터 대한민국 비경 길 프리패스를 이미 발급 받았다네

.

아무도 없는 주차장 한 켠 쉼터에 자전거를 내려 놓고 되짚어 상원사로 가는데

흐르는 안개 속에 구불거리는 그 길을 자세히 관찰하니 차가 많아지는 시간에는 도저히

자전거로 갈만한 길이 아니다.

그냥 자전거를 싣고 올 걸 그랬어 !.”

 

6시가 채 안되어 월정사 매표소를 통과하는데 관리인 아저씨 한마디 한다.

아자씨 : 몇 분 이셔요?

: 저 한 명 인데요

아자씨 : 만원 입니디.

: 뭐가 그렇게 비싸요?

아자씨 : 주차료 5000원에 입장료 5000원 입니다.

: 아저씨들은 잠도 없어요?

6시도 안되서 돈을 다 받으시고….

아자씨 : 밤에도 받아요….

(나의 행색을 살피더니)

오늘 등산은 안됩니다.”

: 적멸보궁 까지는 가능하잖아요?

아저씨 : (갑자기 훅 치고 들어와서 놀란 표정 ….)

: 월정사 상원사 돌아보고 적멸보궁 까지 갔다가 올 거예요

(속으로- 내가 오늘 제대로 풀 코스 타서 본전 다 뽑고 올껴)

 

 

드디어 고요한 오대의 가슴으로 들어 왔다.

여기까지 와서

처음 만나는 것은 월정사.와 전나무 숲 길인데 오늘은 그냥 지나쳐 간다.

처음 보는 사람도 느낄 수 밖에 없는 큰 절의 위풍 당당한 모습도 훗날을을 기약하며

어둠에 묻었다.

 

하여간 달밤에 왔다리 갔다리 생쑈를 하며 상원사 주차장에 도착했고.

어느덧 날은 밝았다

 

인적 없는 상원사 경내를 돌아 보았다.

부처님께 인사를 드리고 싶은 데 코로나로 인해 법당안은 외부인 출입금지다.

상원사는 월정사와 적멸보궁의 중간에 있는 사찰이다.

월정사의 스님들이 수도를 하는 곳이자 적멸보궁을 보필하는 선원이었다.

조선 세조가 이 곳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했고, 이후 조선 왕조의 아낌을 받았다.

월정사에서 비포장도로로 약 8㎞ 떨어진 상원사는 이제 작은 절이 아니다

예전에 둘러 볼 때 보다 건물이 많이 들어섰다.

 

 

적멸보궁과 비로봉 산행은 기억이 없고 기록도 없다.

마눌과 오대산 백대명산 순례도 노인봉과 소금강 계곡으로 가름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오대산 대표등산로는 수십년 내 시야 밖의 사각지대였던 셈이다..

상원사를 거쳐 적멸보궁을 오르는 길

아마 오대산을 등정하는 산악회들도 이 코스로는 절대 가지 않을 것이다.

인당 5000원씩 입장료를 지불 하느니 진고개에서 역방향으로 치고 들어 왔겠지

새벽에도 입장료를 받으니

그 많은 오대산 종주기가 상원사 기점으로 쓰여진 게 없다는 게 한 방에 설명이 된다.

 

적멸보궁 가는 길

 

중대 사자암의 위용이 범상치 않다.

내려다 보이는 풍경도 절의 모습도 속세를 비켜 난 달관한 현자의 모습이다.

중대암에서 잠시 풍경에 젖다가 적멸보궁의 길을 잡았다.

 

돌계단 양 쪽에 도열한 울창한 나무들의 숲길이 인상적이다.

그 길 위에서 붉은 태양이 떠 올랐다.

눈부신 아침햇살과 맑고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가는 길이다

 

적멸, 곧 모든 번뇌가 불이 꺼지듯이 사라진 상태니 열반의 경지다.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적멸보궁, 그 가르침을 찾아 떠나는 길이다..

이 신비롭고 성스러운 길에는 아직 내 발자국이 머물지 않았다.

설레임 그리고 법열

그 길을 걸어 오르며 가슴엔 기쁨이 가득 차 올랐다.

 

영혼이 맑게 씻기우는 듯한 이 느낌과 이 길 위의 풍경을 오래 간직하고 싶다

숲의 맑은 아침 풍경과 바람이 좋아서 천천히 길을 음미하다 보니 발걸음이 밀리는데

어떤 홀로 아주머니도 그 길을 오르고 있다.

 

적멸보궁이다.

풍수학 상 땅의 기가 대단하고

우리나라 기도발이 가장 좋은 곳 중이 하나라는 곳

그 자리에 부처의 사리를 모셨기 때문에 ‘승려들이 먹을 것 걱정 없이 수도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니 여기서 아침 잠이라도 자면서 기를 받아 가야 하는 거 아니야?

숲길에서 은 언덕에 올랐으니 속이 확 트이고

사방의 산자락과 봉우리들이 호위하니 편안하고 아늑한 지세다..

꼭 법당에 들러 삼배를 올리고 싶은데 문에는 코로나로 인해 외부인 출입을 금한다는

대자보가 붙어 있고 문고리에는 빗장이 꽂혀 있다.

지난번 덕유산 백련사에서는 빗장을 빼고 삼배를 올렸었는데

오늘은 뒤 따라 오르는 보살이 마음에 걸렸다.

부처님은 봐주시겠지만 신도들은 눈살을 찌푸리 겠지

나가 무릉개도 아니고 오늘은 참자 ! 무릉객! “

그냥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보고 내려 길에 올라오는 아주머니에게 안녕하세요인사를

건네니

말없이 고개를 숙이고 합장을 한다.

 

 

 

오대산 적멸보궁 가는 길

예부터 금강산, 지리산, 한라산과 더불어 나라 안에서 가장 신령스러운 산 중 하나로 손꼽혔던

오대산. 어떤 재앙이 닥쳐도 안전한 땅이라 믿었던 이곳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신성한 장소가 있다.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로운 궁전 바로

적멸보궁이다.

월정사에서 산길을 따라 약 2시간 30분을 걸으면 말사인 상원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적멸보궁까지는 다시 1.5 킬로미터. 숲은 더 깊어지고 등 뒤의 속세와는 점점 멀어지는

길로 사자암을 거쳐서 간다.

비스듬한 계단과 언덕과 지나 30여분 걸어가면 가파른 사면에 층층이 지어진 사자암이 눈에

들어온다.

적멸보궁의 수호암자인 사자암은 산세 험한 오대산 자락, 해발 1050미터 높이에 자리한 까닭에

건물이 계단식으로 지어졌다.

자연이 만든 모습 그대로 산을 깎거나 허물지 않고 그대로 건축하여 완성하기까지는 무려 8년의

시간이 걸렸다 한다.

사자암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하여 일만의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곳이라 한다.

비로전 앞 월대를 지키는 동물은 바로 사자다.

불교에서 사자는 용맹과 불굴의 의지를 상징하는 동물이자 문수보살이 타는 동물이다.

비로전 안으로 들어가면 주불인 비로자나불을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좌우에서 모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은 탱화도 특이한데 붓으로 그린 그림이 아닌 나무로 천 분의 문수보살과 문수동자를

조각한 목탱화를 봉안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행선'이라 하여 걷는 것도 수행의 일종이라 여겼다.

월정사에서 시작해 상원사와 사자암을 지나는 먼 길 또한 수행자를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자장율사. 그는 643년 석가모니의 몸에서 나온 진신

사리의 일부를 가지고 귀국했고 전국 다섯 개의 사찰에 사리를 모셨다

이를 우리나라의 5대 적멸보궁이라 하는데 그중 강원도 오대산 중대의 적멸보궁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보배궁전이라는 뜻을 담을 만큼 불가에서 귀하고 성스러운 장소로 여기는 적멸보궁.

적멸보궁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님께서 항상 이곳에 존재함을 상징하기 때문에

예불을 올리는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안치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불단을 금색으로 표시한 것은 그 너머 부처의 존재를 상징한다 .

대신, 적멸보궁 건물 뒤쪽으로 가보면 작은 언덕에 80cm 가량의 작은 표지석이 상징적으로 서있다.

이를 '세존진신탑묘'라 하는데 특이한 건, 탑 모양으로 만든 게 아니라 네모난 비석에 탑 모양을

새겨 넣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탑이 놓인 자리 역시 진신사리를 묻은 정확한 자리는

아니라는 점이다

적멸보궁은 대게 사리탑을 만들어 그 안에 진신사리를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나 월정사의 적멸보궁은

전체가 무덤과 같은 인도탑의 양식으로 되어 있어 진신사리를 모신 곳을 정확히 알 수가 없다.

그 옛날 어느 스님이 이곳에 진신사리를 묻었고 이후 지금까지 아무도 그 자리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눈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사람들의 믿음은 더욱 깊어졌을지도 모른다.

진신사리라는 귀한 보물을 모신 까닭에 오대산 깊은 자락, 사람들이 발길이 쉬이 닿지 않는 곳에

정성스럽게 지어진 적멸보궁.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어진 이 건물은 규모는 작지만 여기

저기 정성이 많이 들어간 건물이다.

보통의 옛 건물과는 달리 겉칸과 속칸이 벽으로 구분된 겹집의 형태인데 안쪽은 조선 초기 양식,

바깥쪽은 조선 후기 양식으로 안팎의 건축양식까지 다르다

처음부터 이런 형태로 건축된 것은 아니었고 19세기 조선시대에 중창을 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산세가 험한 오대산의 중턱에 있어 비바람의 피해를 받기 쉬운 까닭에 건물 전체를 일종의

보호막으로 만든 것이다.

각기 다른 양식을 하나로 품은 건물의 형태가 적멸보궁의 신비함을 더한다.

신라시대 이래, 천오백여 년간 수많은 중생들이 부처의 사리를 보기 위해 산을 올랐지만 그것을

본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십악팔사(十惡八邪) 열 가지 악한 것과 여덟가지 사사로운 것을 물리치면 마음이 곧 적멸보궁

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이 바로 진신사리를 모신 위치조차 감춘 월정사 적멸보궁의 가르침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월정사 2부 -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 (문화유산채널)

 

 

비로봉 가는 길

 

그 유명한 적멸보궁을 보고 마음의 편안함을 느꼈으니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

비로봉 가는 길에는 천상의 바람이 불어 주었고 바람에 춤추는 나무처럼 내 마음도 춤을 추었다.

잠을 설친 피로감도 금지된 길의 불안감도 모두 사라졌다.

마치 마음의 성지를 찾아 가는 듯 마음은 고요하고 기쁨에 넘쳤다.

 

비로봉
아무도 없는 비로봉에 올랐다.

파란 하늘에는 솜이불 같은 층층 구름이 떠 있고 가슴 속까지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갔다.

드디어 여기 왔구나

세상의 많은 길을 휘돌아 이제사 나 여기에 섰다.

약간 흐려지는 듯한 날에 첩첩이 산주름은 군데 군데 운해를 품고 있다.

나 혼자 독차지하는 불국의 평화이고 드넓은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맑고 고요한 아침 풍경이다.

홀로 인증샷을 하고 여기저기 높은 데를 찾아 카메라에 풍경를 담고 나서 천천히 출발하는데

날씨도 좋거니와 발걸음도 너무 가볍다.

이 추세대로 라면 예상 등로를 7시간 이면 마무리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왕봉 가는 길

 

절기는 속일 수 없다.

아미도 내 기억을 가장 시원한 여름을 보냈을 터이다.

십수 일을 퍼붓던 비가 그치고 큰 태풍이 2번 휘몰아쳐 지나고 나자 잔뜩 움추렸던 여름이

서슬푸른 폭염의 칼 날을 한 두 번 휘두르는가 싶더니 어느덧 저녁으로 열린 창을 당겨 닫고

이불을 끌어 덮어야 한다.

가장 무덥고 힘들 거라던 2020년 여름은 그렇게 맥없이 지나가고 있었다.

 

상왕봉 가는 산릉에는 이제 제법 가을의 느낌이 온다.

차가움이 스민 바람과 조금씩 낙엽 빛 가을 산조의 운을 띠우는 나무들

산과 태양은 여름의 욕심과 욕망을 슬며시 내리고 장대한 수림의 바다는 평화와 휴식의

깃발을 흔들고 있다.

여기에도 군데 군데 주목 군락이 산재되어 있고 오대의 오랜 역사를 증거하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도열해 눈길을 잡는다..

가슴 한가운데로 시원한 바람이 마구 지나 갔다.

 

상왕봉 목전의 등산로는 태풍과 비에 많이 훼손 되었다.

등산로를 보수할 석재와 나무들이 등로 곳곳에 쌓여 있고 인부들이 작업 때 쓰는 공구와

장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다.

어제 작업자들이 이른 시간이라 아직 올라오지 못하고 있는 모양이다.

그 옛날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처참한 산하의 모습이 떠 올랐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늘 그랬던 것처럼 모든 삼라만상의 고통은 지나가는 것이다.…..

나의 아픔도   산의 아픔도 

가슴 아픈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산 길은 다시 보수되고 그 길 위에서 사람들은

다시 기쁨을 노래 하리라..

 

상왕봉

아무도 없는 봉우리

주변의 산세를 감상하고 나서 배낭을 내리고 표석에 기대어 빵과 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는데

갑자기 2명의 산님이 올라왔다.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처음에는 인기척에 깜짝 놀랐는데 행색이 국공의 똥색 유니폼이 아니라

저으기 안심을 하고 이러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두로령 쪽으로 올라 왔다는 데 금지된 산행의 조심스러움 때문인지 말수가 적고 과묵하다.

그래도 덕분에 상왕봉 인증 사진은 건졌다.

상황봉 인근의 능선은 추색이 완연하다

두로령 가는 길에는 산우들이 알려주어도 자꾸 이름을 까먹는 야생화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까지는 2.2km

적멸보궁에서 비로봉 까지는 1.5km

비로봉에서 상왕봉 까지는 2.3km

상왕봉에서 두로령 까지는 1.9km

 

두로령 까지 7.9km를 걷는 데는 불국의 평화와 계절의 낭만에 젖어 3시간 30여분 소요 되었다;

어기 까지가 분수령 이었다.

두로령은 여러 변수를 감안해서 다음 여정을 결정하기 위해 밀쳐 두었던 갈림길이다.

원안대로 오대산 대간길을 접속하느냐

아니면 미륵암을 거쳐 상원사로 돌아 가느냐…?

 

두로령부터 두로봉 까지는 1.6km

이곳에서 상원사 주차장 까지는 6.4km의 평탄한 길로 두시간 남짓 소요될 것이다.

두로봉에 올랐다가 다시 이곳 두로령으로 회귀하여 하산하면  5시간 30분 정도의 가장 적당한

등산 일정이 되겠지만 지금까지의 컨디션으로 두로봉에 올라서면 아마도 다시 내려올 마음은

사라질 것이다.

결국 두로봉을 향해 발을 내 딛는 순간이 오늘의 산행 코스는 원안대로 확정되는 것이다.

그러면 남은 거리 14.5 km

만만치 않은 산길의 굴곡이라 시속 2.3km 속도를 적용한다 해도 6시간 3010시간은 소요될

것이란 계산이 나온다.

설마…?”

 

우짤 것이여?

추억의 백두대간 길까지 접속하느냐 이니면 기쁨 속에 돌아 본 가지 않은 길의 아름다운 추억과

상념을 간직한 채 하산의 길을 잡을 것인가?

 

날씨는 더 흐려지고 바람은 더 거세지고 있다.,

어쩌면 한 줄기 비를 맞을지도 모르겠다.

작은 우산 하나 가져 왔지만

우비도 가져 오지 않았는데 오늘 같이 날바람 부는 날 1000고지 에서 비를 맞으면 상당히 추울

것이다.

마음은 이미 정해 놓고 생각하는 척 하던 무릉객

"고민하면 뭐 하것어? 마음 닿는 대로 가는 거지….

오대 산신령님이 일찍 부르셨으니 알아서 해주겠지…."

 

예정된 수순이었지만

돌아 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그리고 산길의 안개는 더욱 자욱해지고 바람은 더 거세졌다.

안개 숲을 헤치며 도착한 두로봉에서는 빗방울이 떨어 졌다.

여긴 벌써 비가 제법 내렸는지 빗물이 번들거리는 벤취는 이미 흥건히 젖어 있다.

벤취 한 켠에 앉아 빵과 우유로 요기를 하며 그 엣날 백두대간의 추억에 젖는다.

그 때는 산우들과 함께 하는 날궃이었는데 오늘은 줌 궁상스럽긴하다.

육십넘은 할배가 ...

 

냉철하게 생각하면 오늘 같은 날씨에는 두로령에서 다시 내려가 돌아가는 것이 나을테지만

나는 애초에 그럴 마음이 없었던 거다.

오늘은 오대의 숲에서 솜처럼 지치고 싶은 모양이다.

 

동대산 가는 길

아들과 함께하던 칠월의 그 날도 옅은 산 안개가 오락가락했는데 오늘은 금새라도 비를 뿌릴 듯

잔뜩 흐린 하늘에 산안개가 점점 자욱해 진다.

안개에 쌓이고 숲에 가려 조망이 전혀 되지 않아 카메라로 나무만 잔뜩 찍었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정말 눈에 뵈는 것 없는 산행 길이다.

갑자기 단조로워진 길 위에서 관심은 자연히 내면으로 흐르고 마치 구도의 길인 듯 묵상하며 그

길을 걷는다.

 

속도는 내지 않았지만 모처럼 거칠 것 없이 내지르는 괴성처럼 가슴이 후련해지는 산행이다.

신기하다.

세상의 무수한 길을 걸어 이제 걷는 게 진력이 날 법도 하고 기력이 부쳐 마음이 먼저 거친 길에

서 내려오고 싶어질 만도 한데 난 여전히 거친 산하를 갈망 하고 있다.

내 가슴은 아직도 울린다..

질주 본능은 수그러들었지 원초적인 야성의 본능은 아직 시푸루둥둥 살아 있으니 난 무늬만 할배지

인생의 가을날에 청춘의 봄날을 구가하고 있다.

참으로 감사할 일 이다.

 

아직 기억에 남아 있는 신선목이를 지났다.

가는 길에 많은 버섯들을 보았는데 이끼낀 참나무에 버섯이 일렬로 붙어 있는 것을 보자 어딘지

그 모양이 낯이 익어 아니면 말고하는 심정으로 모두 따서 갈무리 했다.

예전에 설악산에서 털이 숭숭한 하얀 버섯이 독버섯인 줄 알고 지나쳤는데 그 유명한 노루궁뎅이

버섯이었다.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다,

신선목이를 향해 계속 내리막으로 치닫던 길이 다시 한참을 올라 치고 나자 야생화가 흐드러진

고산의 넓은 평원 길이 한 동안 계속된다.

콧노래가 절로 나는 편안한 길이다.

그리고 얼마 뒤에 차돌백이의 낯익은 풍경이 홀연히 나타났다.

육산의 한 가운데 허옇게 드러난 석영 암맥으로 중생대 쥬라기에 형성되어 15000만 년이 넘

는 탄생의 역사를 자지고 있다고 한다.

차돌백이 에서는 깨어진 차돌 세 개를 전리품으로 챙겼다.

 

설악도 전면통제라던데 오대산 또한 등산로 곳곳이 깊게 패이고 여기저기가 돌계단이나 나무계단

이 무너져 내렸다.

나무들 역시 뿌리 채 뽑히거나 둥치가 꺾인 모습들이 곳곳에 보여 태풍의 피해가 만만치 않았음

을 짐작케 한다.

오대산 상왕봉이나 비로봉으로는 접속 구간이 길고 풍경이과 조망이 없어서  그 때에도 대간객

외에는 찾는 사람이  없을 것 같은 길이라 생각했는데 오래지 않은 세월에도 그런 기억들은 시나브로

사라지고 말았다

다시 그 길을 걸으니 그 특징 없는 등로의 기억들이 하나 둘 되살아 난다.

아름드리 나무들과 이름모를 풀 꽃들은 안개 속에서 나 만을 위한 춤을 추었다.

가끔 멈추어 꽃의 아름다움과 인상적인 나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대간객 한 두 명쯤은 만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동대산 까지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길 위에는 나무와 바위와 꽃 바람과 안개 그리고 나 밖에 없었다.

어쩌면 나도 없었는지도 모른다.

생각은 자유로웠고 거기에는 목적지와 등로에 구애 받지 않는 늙은 길손 하나 산길을 배회하고

있을 뿐이었으니….

 

먼 길을 둘러 동대산에 도착했다.

약간의 피로감이 밀려 왔다.

7시간 20분 정도 걸렸다.

여기서 자전거가 서 있는 진고개 까지는 1.7km

상원사 가는 중간에 있는 동피 마을 까지는 2.6km.

동대산에서 동피마을로 하산하는 등로가 있다는 것을 옛 날에 알긴 했는데 그 정확한 위치를 알

지 못했다.

원래 예정대로 라면 진고개로 내려서서 자전거를 회수하여 월정사 까지 이동하고 거기서 셔틀

버스를 타고 상원사 까지 갈 에정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전거를 타고 구불거리는 그 좁은 도로를 자나 월정사로 간다는 것은 너무

위험할 것 같아 동피마을 하산을 굳혔다.

그 바람에  남은 거리는 5.7km 로 순식간에 늘어 났다.

동피마을에서 상황을 보고 셔틀버스를 타면 상원사까지 3.1km 는 단축할 수가 있다.

 

어쨌든 동대산 표석 사진만 찍고 갈림길 한 켠에서 요기를 하고 내려가는데 2.6km 의 하산 길은

등로가 거칠고 발이 불편했다.

진고개에서 동대산에 올라 이 길로 내려서면 4.3km를 걸어야 하는데 그러면 입장료 5000원을

절약할 수 있다.

산악회 40명을 몰고 오면 20만원이 세이브되니 순대국밥 한 그릇 씩에 소주 한잔 씩은 걸칠 수

있는 거다..

 

내려오는 길에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

나뭇 사이로 제법 많은 비가 후드득 거렸다..

산신령님이 산행이 종료될 때까지 비를 보류해주실 거라는 근거가 희박한 막연한 믿음만으로 배

낭 방수포도 씌우지 않고 우산도 들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빗발은 거세지지 않고 간간히 한 번씩 뿌리다 그치곤 해서 몸이 젖을 정도는 아니었

.

 

하여간 비에 젖어 번들거리는 등산로를 따라 한참을 내려가서야 상원사간 비포장 도로로 내려섰다.

그제서야 날머리에 대한 감이 잡힌다.

여기다 자전거를 두었으면 계곡을 따라가는 비포장 도로 3km는 콧노래를 부르며 진행할 수 있었

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어디 모든 일이 자로잰 듯 계획대로만 움직이는가?

산길에서  갑자기 소나기를 만나기도 하고  

접시물에 허우적거리다 가위 눌리기도 하고 , 보물찾기하다가 똥을 밟기도 하는 거지.

갑자기 험한 가시밭길을 만나기도 하고 낭떠러지에서 주저앉아 오도가도 못하기도 하는 거지

근데 그 소나기가 시원하기도 하고 , 그 똥꿈이 행운을 가져다 주기도 하고

을 휘돌아 내려와 녹양방초 우거진 아름다운 야생의 꽃밭을 거닐기도 하는 거지….

 

근데 생각이 바뀌었다.

3.6km 고작 한시간 남은 평지 길인데 구태여 버스를 탈 필요가 있는가?

오늘의 의미 있는 여정은 화룡점정으로 완성 해야지 ..

날씨는 싸늘하고 금새라도 비가 퍼부을 기세지만 이 수려한 계곡의 우렁찬 물소리를 들으면서 어

찌 탈속과 해탈의 마무리 의식을 외면할 수 있으랴?

 

쉬는 날 오늘 집에는 더 늦게 내려가게 생겼다.

일단은 상원사 가까이 계곡에서 몸을 씻는게 나으니 적당한 곳을 찾을 때까지 오대산 옛길 선재

길을 따라 계곡을 거슬러 가기로 했다.

중간에 도로에서 계곡 변 선재길로 내려섰다.

이리저리 계곡을 따라 뒤채던 선재길은 다리를 건너 도로로 올라 서서 잠시 도로를 따라 진행

하다가 다시 반대편 계곡으로 이어지는데 아뿔사 이번 태풍에 선재길도 도륙이 났는지 도로변 입

구마다 로프를 감고 출입금지 팻말을 걸고 있다.

 

차 시간도 걱정되고 아무래도 시간 소요가 더 많아질 그 길은 다음 번 좋은 날에 다시 걷기로 하

고 잰걸음으로 비포장 도로를 따라 상원사로 간다.

아침보다는 차량의 통행도 많고 훼손된 도로 보수를 위해 국공의 봉고며 트럭이 자주 도로 위를

오가고 있다.

 

버스 정류장을 그냥 스쳐 지나 얼마간 걸어 가는데 버스가 온다.

손을 들면 태워 주겠지만 그냥 보냈다.

 

그리고 상원사를 1km도 채 남겨 두지 않은 곳에서 도로에서 은폐 엄페가 잘 되는 곳을 택해 계

곡으로 내려 갔다.

우렁찬 물소리처럼 계곡의 수량은 여느 때와는 다르게 많이 불어 있었다.

어제도 비가 내린 모양이다.

날씨 덕분에 많은 땀은 흘리지 않았지만 그래도 10시간 가까이 산행을 했으니 그 동안 많은 삶

이 찌거기들이 배출되어 몸에 붙어 있을 것이다.

 

차가운 날씨에 처연한 물빛의 얼음물 계곡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이니 팬티까지 모두 벗고 물을 끼얹고 나서 물속에 몸을 담그는데 그 차가

움이 뼈 속까지 스며서 오래 물 속에 머물 수 없다.

그래도 마음은 후련하고 기분은 상쾌하다.

이걸로 오늘 하루의 고통과 힘겨움은 훨훨 머리를 풀고 하늘로 올라갔다.

잠시 물 밖으로 나와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뛰어들기를 두 번이나 더 반복했고 물속에 머무는 시

간은 점점 길어 졌다.

여긴 무릉객의 전용탕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차가움은 조금씩 누그러지고 늘 그렇듯이 나중에는 몸에서 열기가 솟아 올랐다.

2월의 지리산 얼음물로도 목욕재개를 했는데 아무리 그 물이 차갑다 해도 9월의 오대산 계곡물

은 거기에 비하면 이빨도 나지 않은 것이다.

옷이 젖지 않을 정도로 오락가락 간헐적으로 가는 비를 뿌리던 하늘은 세 번째 몸을 담글 때 갑

자기 굵어지기 시작했다.

마치 참다 못한 신령님이 호통이라도 치는 듯….

많이 담궜다 아이가 인자 그만 나와라!”

 

그냥 이 기분이다.

내가 거친 산을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구성진 산의 이야기 때

문이 아닐까?

영혼과 가슴을 흔드는 절절한 삶의 이야기

그리고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이 탈속의 의식과 날개 옷을 입은 듯 상쾌한 기분으로 느끼는 뿌

듯한 피로감 때문 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내 몸에서 엔도르핀과 세로토민 도파민과 다이돌핀이 마구 분출된다.

평상시 잠을 잘 자지만 더 깊은 잠에 빠지고

평상시 자타가 인정하는 불가사리 먹성이지만 음식이 더 맛 있고

대자연의 감동은 시심을 흔들어 술 맛을 띠운다.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산에서 받은 그 좋은 기운들 그리고 삶의 모험을 통해 누리는 짜릿하고도 통쾌한 쾌감이 늘 그랬

던 것처럼 살아가는 날의 의욕과 용기를 일깨우고 내 삶에 향기를 날리게 할 것이다..

 

나이 들면 무리하지 말아야 하고 과도한 운동은 건강을 해칠 것이라고들 한다.

원칙이 그렇다는 것일 뿐

누구에게는 뱀 독이 필요하 듯

몸과 마음 속 에너지 충전소가 더 큰 누군가에게 그 독은 닝닝하고 단조로운 삶을 치유하는 약으

로 저장될 수도 있다.

 

탈속의 마무리 세례 의식을 마치고 옷을 주섬주섬 입고 나자 예상했던 대로 오대 산신령님은 굵

은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했다.

더 아상은 참을 수 없으시다는 듯이..

땀에 절은 옷이야 비에 젖어도 상관 없지만 갈아입는 옷이 비에 젖으면 낭패를 볼 뻔 했다.

끝까지 믿음을 저버리지 않는 오대산 신령님이 내게 보여준 살가운 배려 였다.

 

나는 오대산 능선처럼 맑게 씻기운 채 우아하게 우산을 펼쳐 들고 상원사 주차장으로 돌아 왔다.

10시간 만이었다.

 

 

 

산다는 게 다 그런 거지

누구나 빈손으로 와

소설같은 한 편의 얘기들을

세상에 뿌리며 살지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인생은 지금이야

아모르파티

 

아모르파티 !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우리가 누구이건 어디에서 왔건 ,우린 모두 자신만의 길을 떠난다.

길 위의 풍경은 수시로 바뀌었다

지난 그 길이 험하고 힘들었건 아름다웠건 아무런 상관이 없다.

여행을 즐겼는가?

그 길의 아름다운 풍경을 누리고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했는가?

굳이 무슨 대답이 필요할까?

단지 내 길이란 이유 하나 만으로 그 길은 너무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인 걸.

 

사는 게 뭐 엄청난가?

엄청난 게 아닌데 엄청나게 생각하니 힘들지

바람은 옷깃으로 막고 햇빛은 손으로 가린다.

마음 하나로도 이승의 천국을 누릴 수도 있다.

 

난 안다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세상에 없고

나에게 평화를 줄 수 있는 것 신이 아니라 오직 나뿐 이란 걸

인생이 나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내 인생을 끌어 가는 거다.

 

내가 삶을 즐겁게 살아 가는 방법 중에 하나는 내 안의 누군가 내 옆구리를 쿡쿡 찌를 때 그걸

외면하지 않는다는 거.

가슴이 울릴 때 그 때는 일을 접고 배낭을 둘러 매는 것이다.

그건 사랑하는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이고

그리운 누군가가 나를 찾는 것이다.

가슴 뛰는 삶의 비밀은 단지 나를 무료함과 답답함 속에 버려두지 않는 것이다.

삶 속에서 새로운 모험을 찾아가는 여행을 계속하는 것이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것이다.

 

 

산 행 일 : 2010911일 금요일

산 행 지 : 오대산

산행코스 : 상원사 적멸보궁-비로봉 상왕봉-두로봉-신선목이 차돌백이-동대산-

동피마을-상원사

 

코스별 경유시간

06: 30 : 상원사 주차장

0&:06 : 적멸보궁

08:08 : 비로봉

09:07 : 상왕봉

10:03 : 두로령

10:45 : 두로봉

11:38 : 신선목이

12:24 : 차돌백이

13:50 : 동대산

15:11 : 동피골 날머리

15:49 : 계곡 알탕소

16:30 : 상원사 주차장

 

총 소요시간 : 10시간

 

 

총 거 리 : 22.5km

상원사에서 적멸보궁 까지는 2.2km

적멸보궁에서 비로봉 까지는 1.5km

비로봉에서 상왕봉 까지는 2.3km

상왕봉에서 두로령 까지는 1.9km

두로령에서 두로봉 까지는 1,6km

두로봉에서 신선목이 까지는 1.7km

신선목이에서 차돌백이 까지는 2.3km

차돌백이에서 동대산 까지는 2.7km

동대산에서 동피골 까지는 2.7km

동피골에서 상원사 까지는 3.6km

 

: 나홀로

: 맑다가 흐리고 비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