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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추억 따라 가는 길 - 변산

 

오랫만에 사량도를 가고 싶었다ㆍ
내 젊은 날의 섬
오랫만에 먼 이향에서 바다를 바라보면서 산길을 걷고
뱃고동 소리 들으려 술 한 잔 치기로 의기투합했다ㆍ

작은 섬이지만 아름답고
섬머슴 투박한 그 길은 세상에 길들여 뺀질거리고
그 옛날의 구수한 인정은 탁한 세상에 맛이 변했지만
그래도 아직 내 가슴속에서 아름다운 상념을 불러 일으키고
낭만을 일 깨우는 오랜 섬이다 ㆍ

넌 섬이되 고립과 고독에서 벗어났고
난 아직 고독과 침묵 속에 나를 버리지 못했다 ㆍ

가끔
정말 가끔만 고독과 침묵 속으로 여행을 떠났다 ㆍ
그 시간이 얼마나 황홀한지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ㆍ

 

지금 고독할 수 없다면
먼 훗날 세월이 내게 가져다 줄 외로움과 고독을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ㆍ
난 안다 .

혼자만의 가슴 깊은 고독을 느끼지 못하면
더 이상 깊어질 수 없다는 걸

그 극점에서 내 영혼이 만나는

텅 빈 충만을 느낄 수 없다는 걸

언젠가 세상에 나를 버려 두어야 한다.
난 무기력해질 것이고
바람과 세월의 파도가 나를 이끌 것이다.
고독과 외로움이 파도처럼 밀려 왔다 밀려가는 그 날에는
그 때는 고독을 즐길 수 없어도
나는 더 깊은 고독을 만났음으로 해서

그 외로움과 고독이 아무렇지도 않았으면 좋겠다.

이젠 육지보다 더 소란한 섬이 되어 버린 사량도에서 내 고독한 영혼을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포구와 산길에는 그 황홀한 고독의 향기가 떠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린 둘이 함께 떠나지만 각자의 여행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 황금 같은 시간을 내어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벌써 가을비가 들이친다고 했다

가을 비가 ...
맑은 가을의 그 모습을 만나러 가렸더니 그 일 또한 만만한 게 아니다
안전시설이 많이 보강되긴 했지만 빗길의 사량도는 위험할 수도 있다.

조사장과 조율 끝에 변산 쪽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산과 바다와 들판이 함께 내려다 보이는 섬 같은 반도의 산  

내 젊은 날 많이도 빠댄 그 곳에도 추억이 많다.

남여치에서 직소폭포와 관음봉 세봉을 거쳐 내소사로 내려가는 가슴 후련한 길.

 

아이들을 데리고 내소사를 찾았다가 저물어 가는 언덕에서 할 수 없이 발길을

돌려야 했던 시렸던 그날로부터 세월은 무수히 흘러 갔다.

산길도 변하고 산 위에서 내려다 본 세상도 변해갔다.

세상은 거침 없이 변해갔고 나는 세상에 닳아 갔지만

오래 이어온 내 삶의 방식은 아직 그대로이니 난 별로 변한게 없다. 

 

옛 시조는 바뀌어야 할까?

산천은 간데 없고 인걸은 의구하다.”


조사장 한테 6시간 정도 원점회귀 코스를 구성한다고 했는데 그게
만만치 않다.

내변산 주차장에 차를 놓고 가마터 삼거리 ㅡ세봉ㅡ관음봉직소폭포 ㅡ내변상 주차장

한바퀴 돌면 5시간 정도 소요 되겠다.

아침 출발이 빨라서 어머님 댁에서 묵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고
아침에 카레라이스 한 그릇을 비우고 집을 나섰다.
월드컵경기장 주차장에서 아침 6시에 조사장을 만나서 변산을 향해 출발했다..

 

변산으로 가는 길에 지도를 한번 둘러본 조사장이 남여치에서 시작해서

내변산 주차장까지 한번 돌고 다시 남여치로 회귀하면 어떠냐고 물었다 ㆍ

월명암에서 내려와서 능선을 한바퀴 돌고 변산 주차장 바닥 까지 내려와서

다시 오름 길을 올라 되돌아 가야하는 길이라 힘이 좀 들어서 그렇지 굳이

못할 건 없다.

아마도 1시간 반 정도 시간 소요가 늘어날 텐데 아침 일찍이고 변산에서

하루 유할 것이니 시간은 충분할 것이다.



우린 보무도 당당하게 핸들을 남여치로 꺾었다ㆍ
그리고 깨어나는 변산의 새벽공기를 마시며 아직도 세월에 풍화되지 않고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 길을 걸었다ᆢ

 

잠도 없는 세명의 젊은 아줌마들이 잔돌이 많은 그 길을 뒤따라 걸어 오른다.
월명암 까지 갔다고 돌아온다는데 너무 짧은 거리라서
직소폭포 까지 둘러보고 오면 좋을 듯 하다고 얘기 했더니
힘들어 못한다고 혀를 내두른다.

속으로 "시방 모시가 문제여?
육순이 넘은 젊은 오빠들도 변산 종주에 나서는데..."
뒤에서 이런저런 얘기를 히는 동안 조사장은 꽁무니도 안보이고 사라졌다.

나도 결국 페이스가 맞지 않는 그들을 남겨두고 길을 오른다ㆍ
가는 길
길가에 수림이 울창해서 능선 밖의 세상이 조망이되지 않는다.

변산반도 산길은 22년전 19985월 신록이 푸르른 날에 홀로 여행길에서 만났다.

2007년 마늘과 백대명산 길에 그 길을 다시 걸었고 우연히 임동혁과 만나 술 한 잔 쳤다..

2012년에 산친구들과 굴바위와 와룡소 비경을 돌아보고 내소사로 회귀했고

2016년 2월에는 퇴직 위로 여행을 주선한 양표와 함께 그 길을 함께 걸었다.

그 외에도 산을 좋아하지 않는 친구들이나 가족들과도 변산 격포와 내소사 쪽으로

몇 번 여행을 헸으니 그래도 인연이 각별한 변산인 셈이다..

추억이 많은 그 길은 갈 때마다 마음이 푸근해지는 그런 길이었다.

 


쌍선봉 삼거리에서도 조사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이정표에는 불과 300미터인 쌍선봉 방향 표시도 하지 않고
들머리에는 출입금지 현수막만 걸어 놓았다.

~~
쌍선봉을 천연기념물로 영구보존하려나 ?

98
년 홀로 산행 때 말고는 그 이후 이 길을 다시 걸을 때도 통제구역으로 바뀐

쌍선봉을 지나쳤으니 그 봉우리를 돌아 본지는 20년이 훌쩍 넘었다.

살아가기 바쁘고 , 아직 싸돌아가기 바쁜 어느 날 문득 다시 이 곳으로 오게 되었는데

오랜 친구를 만나지 않고 그냥 갈 수 있는가?

조사장은 벌써 월명암에 도착해서 이제나 저제나 하고 기다릴 걸 알면서도

혼자 쌍선봉에 올랐다.

22년 만이다.
금지구역에 갔다온 걸 알면 바른 생활 조사장 또 기겁할 껴.

 

~~
울컥이는 감회
퇴적된 세월이 기억을 말끔히 지워서 그 풍경은 다시 새로워졌지만 역시 출중한 조망이다ㆍ
남여치에서 월명암에 이르는 구도의 길에서 만나는 유일한 조망

쌍선봉을 돌아보고 월명암에 올라서니 역시 조사장은 앉아 있지도 않고 목을 내밀고 기다리고

삽살개 두 마리 시큰둥 한 채 멀뚱멀뚱 나를 쳐다본다.

낯익은 월명암의 모습에 마음이 편안해 진다.
이리 아늑하고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보면 풍수에 무뢰한임에도 여기가 명당인 걸
느낌으로 알겠다.

스님같지 않은 행색의 불자 한 분이 툇마루에 나와 있어서 어런 저런 얘기를 건네다 보니
웬걸 이 동네 지리를 잘 모른다ㆍ
의아해서 물어보니 이 절에 배치 받은 지 한달도 채 되지 않은 스님이다.

월명암에 혼자 기거 하신 단다.
스님들 신도도 아닌 산객에게 대놓고 그리 쉽게 시간과 마음을 허락하지 않는데.

스님은 마치 속인 인 듯 거침이 없다.

그 옛날 부처님 오신날 개방한 지리산 묘향대에서 산우들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관홍님이 대표로 혼쭐났었지.
그리고 조용한 절간에서 신나게 떠든 넘들이 시주도 안하고 간다고 개한테 깨물리기 까지 했다..

생김새도 그려려니와 말하는게 아주 소탈한 이 스님을 잘 사귀어두면 좋은 친구가

될 것 같은데...

 

스님과 이러저러 이야기를 나누던 차에 전화가 왔다.

아침부터 김부장 비상전화다ㆍ
화천지역 돼지열병 발생
~~이기 먼 일이래 ?

변산에 도착해서 이제 막 산타기 시작했는데…..

이 회창하고 멋진 날 북으로부터 밀려오는 먹구름은…..

전화중에 커다란 삽살개와 좀 작은 삽살개가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뛰어 나가기에 웬일인가 했더니
아까 그 세명의 젊은 아줌마들이다.
이노무 가이시끼들이 완전 성차별 한다.

 

전화가 길어지면서
그렇지 잃아도 기다림에 지루해진 조사장이 일찌 감치 배낭을 메고 서성이고 있는 통에

전화를 하면서 배낭을 둘러 메고 출발했다ㆍ

스님과도 얘기를 좀 많이 나누고 싶은데....

가는 길에 조사장 왈

스님이 커피를 계속 권했다는데 한사코 사앙했다고 한다.
다 정이고 마음인데 왜 그러셨어?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거나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고

호의조차 물리치는 건 우짜 좀 거시기 한 거 아닌가?

내가 너무 나가는 건지는 모르지만

좋은 느낌을 만들고 스님과 좋은 인연이 될 수도 있을 텐데..….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인연이 뭐 별건가?

조사장과도 이십 몇 년 전에 우연히 지리산에서 만나 매 달 산을 타고 여행을 같이하는

좋은 친구가 되지 않았던가?

물 건너 안나푸르나 같이 다녀오고….


나중에 혼자 배낭을 메고 암자의 산방에 들어 하루를 보내고 싶다 ㆍ
세상에 오염된 친구들 말고
도 닦는 친구하나 만들고 싶다
그래서 조용한 세상에 물들고 싶다ㆍ

변산은 이제 조금씩 단풍 편지가 오는 중이다.
올 여름 광천에 포효하는 엄청난 포스의 계곡들을 많이 보아 온 터라

웅덩이 물처럼 빈약한 계곡의 소와 은실처럼 갸냘픈 직소포포의 물줄기는
보기에 애처로웠다ㆍ


점심 때쯤 직소폭포 위 갈림길에 도착했다.
식단을 풀어놓고 다시 김부장한테 전화하니 급한 불은 껐으니 오늘은 괜찮을 듯 하단다
내일 아침에 다시 통화히는 걸로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어쩌면 내일 아침 새벽 같이 움직여야 할 것 같은데
조사장도 새벽 출발을 흔쾌히 동의해 주었다ㆍ

가장 최근에 온 것이 양표와 함께 왔던 162월 이었으니 48개월
만인 셈이다.
그 때 보다 데크와 계단은 더 많이 보강되어 있었다.

앞에서 잘걷던 조사장은 관음봉 오름길에  몸매무새가 흐뜨러 졌..
여기서 이러시면 남여치 원점회귀는 물 건너 갑니다..”

 

관음봉의 풍광은 출중하다.
넓은 변산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그 때나 지금이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푸근한 풍경이다.
바다와 산이 어우러지는 그 풍경은 우리가 잃고 사는 낭만과 고독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래서 젊은 날 홀로 떠나는 명상과 사색의 길이 될 수 있었던 거다.

살아가는데 그리 많은 것이 필요한 게 아니다..
정말 맛 있는 음식을 위해서는 훌륭한 진수 성찬괴 멋진 동반자
그리고 분위기 있는 식탁이 필요하지만 오랜 굶주림은 이런 번거로운 조건 없이

최고의 미각을 선사하는 것처럼

때론 수 않은 사람들의 관심과 함께 어울리는 즐거움보다
한줌 고독이 내 삶을 더 깊고 풍요롭게 할 수 있다

여행은 새로운 삶을 위한 도전과 호기심을 일 깨우지만
궁극은 자신을 돌아보고 잃어 버린 소중한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신체는 늙어가도 정신은 계속성장하고
우리는 젊음을 잃어도 여유롭고 더 깊어질 수 있다.

 

부안에서온 부부가 사진을 찍어주었다ᆢ
우린 이러 저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멋진 풍광을 감상하며 제법 많은 휴식을 한 다음 하산의 길을 잡았다..

 

우린 세봉을 거쳐 산 길을 내려가는 데 등로에 선 표지판의 개념도를 본 조사장이

굳이 가까운 길을 두고 먼 길을 돌아가지 말자고 한다.

흐미
머할라고 격포 군수님은 그리 자세한 개념도 까지 그려 놓은 것이여 ?

내심 가마터 삼거리에 갔다가
기회가 되면 가마소와 와룡소 까지 돌아 봤으면 했는데
오늘은 수포로 돌아 갔..

괜찮다.
어짜피 거기 까지 댕겨오기에는 시간상 무리고

거기까지 갔어도 출입통제 중이라면 조사장은 들어가지 않을 터이고

그리고 아직 새털같이 많은 날이 남아 있..

 

우린  짧은 길로 하산을 마무리 했다.

힘도 남고 아쉬움도 남는 여행길이지만 그래도 6시간여 추억을 때라 가는  여행길은 그렇게  

가슴 따뜻 했다.

변산 분소에서 토요일 근무를 하시는 국공님께 와룡소를 물었더니 지금은 개방기간이라

통제가 풀린 상태라는데 다음 주에는 막힌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들으니 이번에 돌아 보기 좋은 기회였는데 좀 아깝기는 하다.

겨울이나 봄에 혼자 다시 와서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유보한 멋진 세상을 돌아보면 되지

바다로 난 가까운 길이니 앞으로도 기회가 많을 것이다.

 

우린 예상했던 것 보다 시간이 좀 늦어져서 남여치 까지 도보회귀도 생략한 채 택시를 불러

들머리로 복귀했다.

택시비는 만 윈 밖에 하지 않았다

하룻밤 유할 숙소로 격포 대신 곰소를 낙점했다.

그 옛날 푸짐했던 횟잡이 생각나서 조사장에게 얘기했더니 그 쪽으로 하잖다.

 

즐거운 여행길이었다.

 

모처럼 바다가 보이는 회집에 편하게 마주앉아 우리의 즐거운
여행을 자축하고 그간의 회포를 풀며 술 한잔 친다..

이것 또한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행복이 아닌가?

 

이향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고

우린 끓여준다는 매운탕도 사양하고 수은등이 졸고 있는 부두를 산책했다.

불콰한 술기운에 부두 산책도 모자라 불 꺼진 고원 언덕을 달 빛에 기대어 올랐고

우린 아무도 없는 공원에서 달밤에 체조까지 하고 내려왔다.

그 것 뿐이었나?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입추의 여지가 없는 위장에 다시 전복죽 한 그릇을 더 보탰다.

바쁘게  그리고 꽉 찬 스케쥴과 위장으로 즐겁게 보낸 휴일의 하루 였다.


그려

아직은 내가 세상에 휘둘릴 때가 아니고

나는 넓은 세상에서 내 발자국이 너무 빨리 지워지게 하고 싶지 않아

 

 

산 행 일 : 2020109일 한글날

산 행 지 : 변산 반도

산행코스 : 남여치 쌍선봉 = 월명암 직소폭포 관음봉 세봉 내변산 분소

소요시간 : 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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