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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조령산 - 아자개의 전설....

 

 

 

 

핸펀사진

 

 

 

 

자신의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흥과 열정의 DNA를 찾아내고
그 암호를 풀어내어 행복을 불러내는 주술을 찾아내는 건 자신의 몫이고
그건 나이나 세월에 구애받는 건 아니다ㆍ

유붕자원방래 불역열호아 !!

리기자 전우들이 다시 문막을 찾아 주었다.

치악산과 칠보산 이후 3번 째 문막회동이다.

엄하사는 회사일로 좀 늦어져서 차하사와 둘이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며 산길을 걸었고
우린 문막이 내려다 보이는 조망처에서 서쪽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석양을 바라 보았다 .

우리 인생의 저녁은
서산을 붉게 물들이겠다는 김종필처럼 노회한 정객의 호언과 야망이 아니라
평화와 낭만의 빛으로 조용히 물들어 가야 하지 않을까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는가 ?

물 흐르듯 넘쳐나던 세월의 샘물은 이제 바닥이 가늠 된다.

쉽게 지지 않을 것 같은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고 나서 정상 삼거리를 지나자 날은

순식간에 어두워 졌다.

.

지나 온 우리 삶이 이런 것이었어….!.

어두워진 산길 또한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남은 너의 삶의 시계도 이와 같을 지니 함부로 얼마 남지 않은 너의 젊은 날들을

낭비하지 말라.

살며 사랑하며 누리기에도 아까운 시간이 거기 남아 있다.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이 둥근 달이 동편 하늘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달빛에 길을 붇기가 어려워 이마에 반디의 불빛을 걸고 하산의 길을 잡는데 반도 채

내려가지 않은 시간에 벌써 문막 입성을 알리는 엄하사 전갈이 왔다.

~ 오늘도 시간이 생각을 앞질렀다.

날은 어둡고 갈 길은 아직 멀고

느슨하게 돌아가던 문막 시계가 5분 대기조 진돗개 2 발령이다.

달빛의 낭만에 젖을 새도 없이 우리는 발에 모터를 달고 어두운 밤 길에 한껏 속도를

높여 하산을 서둘렀고 골든빌 앞에서 기다리던 엄하사와 만나 문막골 식당으로 이동했다.

 

 

맛 잇는 음식을 먹는 비결 ?

제대로 된 입맛을 가지고 다녀라

분위기 좋은 곳에서 편하게 음식을 먹어라.

좋은 사람과 함께 음식을 나누어라 !

 

다 좋은 야근데 가장 맛 있는 음식을 먹는 방법은 진짜 허벌나게 배고플 때 먹는 거다

입맛은 그냥 없어지는게 아니다.…

살 맛이 떨어졌거나 아니면 배가 부른 게지

물 한 모금과 메추리알 3개로 간신히 달랬던 허기는 삼겹살 5인분과 된장찌개 딸린

공기밥 한 그릇을 폭풍 흡입하며 순식간에 해갈되었다..

술은 안 먹었냐고 ?
술이 밥이여 ?
술은 정이고, 흥이고 계절의 수심이거늘

친구가 먼 길을 찾아 왔는데
어찌 밥상 머리에 풍류와 낭만이 빠지겠는가 ?

우리는 인생 후반전과 세상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그 옛날 이기자 침상처럼 단간방에서 어깨를 함께 기댄 채 잠들어 갔다.


아침 다섯시쯤 잠에서 깼다 ᆢ
눈을 뜨자 마자 어제 과충전으로 급하게 밀어내기 신호가 들어 오는데
이쯤 되면 상황 끝이다ㆍㆍ
볼일 보고 다시 자리에 누으면 그냥 오늘 하루 날 새는 거다...


누가 과소비를 했는지 그 많던 휴지가 손바닥 만큼 남아서 세숫대에 물 받아 뒷물을

하려는데 엄하사가 휴지를 가져다 주냐고 묻는다ㆍㆍ

~~
이 친구 잠도 안자고 시방 모하는 거래 ?
그래서 우리는 내 똥뜨림으로 비상 나팔을 불고 새벽 다섯시에 전원 기상했다.

근데 이건 또 먼일이여 ?
아침요리 시간을 단축하려고
마눌이 끓여 얼려놓은 육개장과 급속 냉동한 뜨거운 밥을 냉장실에 옮겨 놓았는데

냉장실 온도도 너무 낮았는지 하나도 녹지 않았다.

해동하는 시간이나 요리하는 시간이나 도찐 개찐 .

흐미~~

새벽 별보고 설쳤건만 식사하고 설거지하고 모든 행장을 수습하고 문밖을 나서니 7시다.
어쨌든 우린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문경 이화령을 향해 출발했다.

어제 그렇게 먹고도 새벽에 밥 한 공기에 국 한 그릇 깨끗이 비울 수 있으니 리기자

전우들 모두아직 짱짱한거여

그랴서 오늘 신나는 하루는 사전 예약되었다.

조령3관문 지근거리에 차하사 차를 두고 엄하사차로 이화령에 도착하니 9 20
근데 이 친구들 약속이나 한 듯이 거그서 또 화장실을 댕겨오는데
바쁜 판국에 자꾸 숏카트 들어가면 거칠고 먼 길 오떡하겠다는 거여.!

엄하사의 산세상 닉네임은 창졸간에 아자개로 낙착되었다.

차를 몰고 이화령에 오르는 중에 느닺없이 엄하사는 조령에 근거한 후삼국의 역사를

풀어내며 아자개의 행적과 성대모사까지 실감나게 이야기 했다.

마치 그 계보의 집안 후손이라도 되는듯 분위기와 디테일까지 살려 내면서

 

삼위일체다.

어감좋고 발음하기 좋고 ,기억하기 좋고.
이 아침엔 아자개라는 이름이 입에 짝짝 달라 붙었다..

그려 오늘부터 엄하사 닉네임은 아자개여!

산에서 산꾼들은 단지 닉으로 통한다.

직업도, 나이도, 이름도 상관이 없다.

산을 매개로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기 위한 상징적인 자신이 필요한 것일 뿐….

 

 

굳이 이미지 왜곡을 운운할 문제는 아니다.
아자개는 드라마 감독이 극중의 재미를 위해 희화화 했지만
견휜의 아버지이자 문경에 근거한 지방토호로 역사적인 존재감도 있고 치적도

출중한 사람이다.

단지 승자의 역사에서 외곽으로 밀려난 것일 뿐....

원래 애칭은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쉬워야하는 법이다.

엄하사는 거기 그대로 있고 아자개는 산 세상에서나 통하는 이름이다.

어쨌든 그래서 엄하사는 장군으로 승진 발령되었다.

아자개 장군 !

 

조령샘을 지나 조령산 까지 등로는 평범한 오름길이다.
워밍업
그리고 쳬력의 영점 조정 기간
바람결은 차갑고 날씨는 싸늘 했지만 태양이 모습을 드러내어 산행을 하기 좋은 가을날이다 .

어제 산행의 피로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 둘의 발걸음은 다소 무거웠지만 아자개는 자신의

나와바리에서 펄펄 날며 시종 선두에서 진격했다ㆍ


대략 날씨의 판세가 드러난 조령산 전위봉 헬기장에서 얇은 옷으로 갈아 입었다.

바람이 다소 차지만 오름 길과 낙차 큰 등로를 감안한 선제 대응이었다.

 

암릉길은 조령산을 지나야 비로소 진면목을 드러낸다.
우린 조령산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요기를 했다.


조령산 이후 등로는 바닥으로 곤두박질 쳤다가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바위벽 낙락 장송으로

이어지고 다시 집채만한 바위봉으로 솟구쳐 오른다 .


그런데 기골이 장대하고 위풍당당하던 대간 길이 우짜 이렇게 맹숭맹숭하고 닝닝하다냐 ?
시방 여그가 날카로운 발톱을 치겨 세우고 사냥감을 나뀌 채는 맹금의 위세로 사위를 압도하던

그 대간 길이 맞는 것이여?!

벌떡거리는 염통의 세찬 펌프질과 뜨거윤 혈관을 따라 소용돌이 치는 팽팽한 긴장감으로

스릴과 서스 펜스를 한껏 자극 하던 거친 등로는 거세당한 종마처럼 무기력한 모습으로

엎어져 있다.

아그야 ! 늬가 시방 백두대간이냐? 동네 뒷산이냐 ?

백두대간의 깡패

근육질 골격을 자랑하며 거친 세월에도 길들여 지지 않던 야생마

장엄한 대간의 권위를 웅변하며 살기 등등한 기세로 표효하던 백두대간 호랑이는 발톱과

이빨이 모두 뽑혀 나간 채 양지녁에 배를 깔고 누워 꾸벅꾸벅 졸고 있는 중이다.


추억을 되새김질하며 다시 백두대긴의 기를 받아 시푸루둥둥 해지려 친구들과 함께 온 길.
날 선 백두대간의 얼차려로 요즘 군기가 뻐져 가는 엄하사 정신 줄 바로 세우려 불원천리

달려 온 길인데….

이건 체력과 정신력 강화를 위한 고강도 전지훈련이 아니라 소풍이여….!

난이도는 리기자 수색정찰 수준

 

당최 헷갈리네
내가 백두대간에서 리프레쉬 되려 온 건지, 인간에 포박당해 수감생활을 하는 백두대간

위로 차 면회 온 것인지…...

 

이 대목에서 길재가 노래한 무상한 세월은 이렇게 바뀌어야 마땅하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보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곳 없다.

어즈버 태평년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

 

그리움에 길을 물어 대간 길 다시 오니

인걸은 의구하되 산천은 간데 없다.

오호라 별유천지 비인간이 꿈인 듯 몽롱하여라

 

허리가 동강나고 형체마저 사라지고 있는 한남 정맥 길,

사량도의 지리망산, 진도의 동석산 그리고 그 외의 수 많은 산들….

지속적으로 그 야성을 거세당하면서 속수무책으로 무장해제 되고 있는 거친 산들도 모자라

이젠 마지막 보루인 백두대간 까지 격동의 변화에 내몰리며 개발의 몸살을 앓고 있다.

 

조막만한 땅덩어리가 이렇게 까마귀 똥파헤치듯 훼손되고 나면
우리의 후손들은 세월과 세상에 지친 가슴을 어디에 기대어 위로 받을 수 있을까 ?

변하는 세상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한결같이 거기 서 있는 담대함과 장엄함을 만나려 했던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 갔다.

잃어버린 산하를 바라보는 늙은 산꾼의 마음은 그렇게 시리고 착잡했지만.

그래도 썩어도 준치고, 살아서도, 죽어서도 주목이고, 엎드려 있어도 대간은 대간이여

그 걸출한 백두대간 대표 풍광이 어디 가겠나?

마음과 발은 이완되고 느슨해 졌지만 계속되는 업다운과 낙차 큰 굴곡의 암릉길을 따라

후련한 조망과 장쾌한 풍경은 끊임없이 이어진다.

일부는 눈에 익고 일부는 세월에 다시 새로워졌다.

로프에 매달려 대롱거리지 않으니 스릴과 서스펜스에 내어 주었던 웅장한 산세와 풍경

들이 그 여유로운 길을 따라 오롯이 가슴으로 들어 온다.
신선 암봉에서 깃대봉 가는 길에는 여전히 백두대간의 카리스마와 포스가 아직 살아 있었다.

우린 그 길 위에서 후련해지고 세상에서 잃어 버렸던 느낌표와 감탄사를 하나씩 되찾아 갔다..

 

신선암봉 까지 선두의 기치를 드 높이며 진군의 나팔을 불던 아자개의 봄날은 깃대봉 가는

바위능선을 따라 그렇게 빨리 지나갔다.

 

안전 시설 보강공사의 난이도 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계획상 진행이 안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깃대봉 가는 바위 능선은 원시의 등로가 보존되고  바위 벽 곳곳에 로프가 달려 있었다.

위태롭게 간신히 발디딜 구조물이 설치된 바위 벽에서 갑자기 아자개가 로프를 잡고 드러 누었다.

한 껏 자세를 낮추는 묘한 균형 유지 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는데

아뿔싸  배와 옆구리를 비비적 거리며 바위벽을 기어 가려는게 아닌가?

이 험난한 바위 길에서 바람결에 되 살아 나는 좌로 굴러 우로 굴러의 생뚱맞은 리기자 추억 !

.

허걱!

암수여 ? 꼼수여?

등산 병법에도 없는 전혀 새로운 기술 !

조령에 난공불락의 성벽을 쌓았던 아자개 장군의 막바지 공격 앞으로는 난생 처음 보는

희안한 절벽공략 전술이었다.

 

안하무인과 목불인견의 신 검법 !

난 정말 오래 산을 탔지만 이런 비장의 필살기를 구사하는 사람을 정말 산에서 본 적이 없다.

 

장군!

아자개 장군 ! 시방 이 무신 해괴한 허리춤이요?

나름 인상적이긴 하지만 병사들 앞에서 장군의 체모와 위신도 생각해야 하지 않겠소?..

 

내가 보증하는데 아자개는 이기자 부대 출신 육군하사 엄하사 맞다..

유격 훈련과 수색정찰을 밥 먹 듯이 한 리기자 부대 소총수이자 나의 오른팔 이었고 사창리에서

겨울이면 같이 눈 쓸 던 그 친구 맞다.

청탁이나 보결로 군대 들어간 것도 아니고, 금품제공 대가로 입대 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군

생활 내내 고문관 소리 한 번 들은 적도 없는… .

하여간 깃대봉 가는 암릉 능선은 가벼운 몸으로 조령 능선을 넘어 3관문을 향해 파죽지세로

진군하던 아자개 장군에게 거친 시련이자 굴욕이었다.

 

지난 백두대간 주유보다 한 시간이 단축되었던 건 수술대에 올라 신체 곳곳을 절개되고

갖가지 인공 장기가 이식된 백두대간의 대수술 탓이었다.

느린 언더드로우 처럼 신 검법을 구사하는 아자개와 성형 전 백두대간 길을 주유 했다면 한시간

단축이 아니라 한시간 연장이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삶의 모호성과 의외성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듯이 애깃거리도 많고 볼 것도 많아서

더 즐겁고 재미있던 대간 길이었디.

백두대간은 지나간 추억 위에 아자개의 전설을 하나 더 보탰다.

동영상을 남기는 못했지만 바람이 증거하는 절세무공의 전설 ….

 

안쉘름 그륀 신부가 황혼의 미학이란 책에서 이렇게 갈파 했다.

 

"늙는 다는 건 나이와 함께 세월로 들어 오는 것이다.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시간과 함께 가고

시간 가운데서 시간을 거슬러 가기도 한다.

 

늙는다는 건 걷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이고

자기 내면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그 때 그 때 작은 체험이 모여서 큰 희망 한가운데로 늘 새롭게 걷는 것이다."

 

나는 옛 친구와 더불어 내 땀과  추억이 남아 있는 옛 산하를 둘러 보았다.

연어처럼 시간의 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 날의 함성의 듣고 그 시절의 향기에 젖었다.

늙는 다는 건 어쩌면 세월에 둥글어 지는 것이고 자난 세월 세월과 세상에 내주었던

소중한 것들을 되찾는 시간 인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 행복의 문을 여는 열쇠 하나와 행복을 불러 내는 주문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것이다.

행운의 부적은 단지 무수한 네 잎 클로버를 짓밟지 않을 때 그 마술 같은 영험함을 잃지 않는

법이다..

 

세월이 어디까지 바래다 줄지 모르지만

오랜 친구들과 더불어 오래도록 대한민국의 산하를 종횡하고 싶다.

잘하지 못해도 목청 껏 내 삶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음정 박자가 안 맞고 삑사리 나도 내 장단과 내 신명에 겨운 나의 노래를

 

변해버린 백두대간에 대한 실망과 한숨 그리고 여전히 장쾌 하고도 수려한 모습으로 우리의

가슴을 부풀게 했던 백두대간 추억 산행은 즐겁게 끝이 났다.

 

언제 다시 찾을지 모르겠지만 그리고 그 때는 어쩌면 성형된 대간 길조차 힘이 부칠지 모르겠지만

바람길 에 떠도는 아자개의 전설은 오래도록 우리를 즐겁게 할 것이다.

 

우린 조령 3관문에서 가을 단풍이 한창인 어사길을 걸어 내렸고

맑은 가을 날의 허허로운 여행길의 추억과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한 잔의 막걸리에 그렇게

타서 마시고 조령의 불타는 가을을 뒤로 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