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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꿩대신 메추리 - 적상산

 

 

 

 

 

 

조사장과 남덕유에 가기로 했다.

어머님 댁에서 자고 새벽 5시에 동태찌게 한 그릇 비우고 판암역으로 갔다.

한달 만에 만나 이런저런 얘기 나누며 남덕유로 가는데

조사장이 한 걱정을 한다.

잠을 4시간 밖에 자지 못했단다.

~ 그만하면 많이 잤구먼….

 

근데 잠에 관해서는 나 보다 한 수위인 조강쇠가 먼 일이래?

거래처와 저녁 겸 술 한 잔하고 일찍 집에 들어가 9시부터 잠을 잤는데 1시에 깼단다.

그 때부터 잠이 안 오고 말똥거려서 뒤척이다 나왔다고

동토의 나라 안나푸르나에서도 그리 잘 자던 슬리핑머신도 고장날 때가 다 있네...

그래도 많이 잔 거 아녀?

한잠 도 안자고 9시간 지리산 종주도 하는데

설령 뜬 눈으로 지새웠다 해도 6시간 30분 남덕유 주유가 먼 걱정 축에나 든다고

웬 호들갑?

 

 

영각사 공터 주차장

차가운 공기가 온몸을 휘감고 맑은 산 공기에 코가 뻥 뚤리며 정신이 번쩍 난다.

여장을 수습하고 오랜만에 덕유의 가슴으로 가는데

또 먼 일이래?

남덕유 탐방지원센터를 가로 막는 차단기가 설치되고 산행금지 대자보가 떡허니 붙어 있다.

1115일부터 1215일 까지 경방기간 입산통제

이 때가 그 때 쯤이긴 한데

미리 상화 파악도 안하고 온 건 불찰이긴 하지만….

우짜 이런 일이?

.

 

참 난감한 상황이다.

불감청이언 고소원이라

지킴이아자씨도 없겠다

나 혼자라면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소리없이 스며들  길인데

동행은 바른생활 사나이다.

불법, 탈법을 끔찍하게 생각하고 그 악행(?)을 자행하는 사람을 극혐해 마지 않는….

그랴서 아무도 없는 호젓한 남덕유를 신선처럼 주유할 절호의 기회는 그렇게 아쉽게

가을 바람에 날리어 가고 우린 분루를 삼키며 회군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것이다...

시나리오에도 없는

이름하여 영각사 회군

 

행선지를 고민하다가..

조사장이 오늘 잠 못자서 한 걱정을 하니

대전으로 돌아가는 길

적상산에나 오르기로 했다.

 

기온은 많이 떨어졌지만 아즉 11월 아닌가베?

자켓을 벗고 향로봉을 향해가는데

그리 오래지 않아 온 몸에 열이 나더니 막상 적상 능선에 올라서자 날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

이런 날은 쉬는게 더 추워서

그냥 향로봉을 향해 진행하다 보니 생각지도 않은 무휴등정의 위업(?)까지 달성하다.

적상산 조망처는 딱 세 군데

향로봉

안렴대

그리고 안국사  

향로봉에서 시원한 풍경 한 번 굽어 보고  장쾌하게 불어가는 바람 속

쉴자리를 찾느라 인증샷도 잊어 버리고  .... 

 

쉼터가 마땅치 않아  엉덩이도 붙이지 않고 다시 빽!!!! 

향로봉 찍고 내려오다가 요기를 하고 뜨거운 커피 한 잔하고

안렴대에서 장대한 덕유 세상을 굽어보고 나서 안국사로 내려서다.

 

평화와 휴식이 머무는 절

서창마을로 그냥 원점회귀 하려 했는데 따뜻한 햇살이 내리쬐는 안국사 뜨락에서 부처님의

자비와 충만한 불국의 평화에 감화된 조사장이 치목의 길을 강력 제안하다..

몇 년 전 대학 친구들과 같이 걸었던 그 길….

 

치목 하산길은 안국사에  도로변을 따라 제법 내려 간다.

하산 들머리에 도착 했는데...

헐 ~~ 여그도 출입금지네 !

센 바람에  오토바이 앤진 소리를 내면서 펄럭 이는 출입 금지 현수막 ...

.

흐미 ~~  산넘어 산이네 ....

워쩔 것이여 시방 ?

내가 먼 힘이 있나?

조용히 조사장의 선택을 기다릴 수 밖에…..

근데 인자 나도 배짱이여

"임자 맘대로 하소 !

여그 까지 힘들게 내려 왔는데 서창으로 다시 돌아 갈라믄 가고

그냥 갈라믄 현수막 무시하고 가고….."

 

코가 한 참 땡기는 조사장

다시 돌아가자니 리바이벌 길이 멀고

그냥 내려 가자니 소신에 기스나고, 단속도 걱정이고….

 

그랴서 조심스레 묻는다 .

단속에 걸리지 않을라나?”

나왈 ~~

여그는 뻑하믄 통제되는 코스여 ! "

"2년 전 가을에도 통제가 걸렸는데 대학 친구들하고 아무 문제 없이 내려 갔지라..”

 

그랴서 결론은 버킹검

우린 그 길에서 한 사람의 산객도 만나지 못하고 등산로를 통째로 전세 내어

방귀를 뿡뿡 껴대며 내려 갔다.

좋다.

방구를 끼건 길 한 가운데 서서 소변을 보던

거릴낄 것 아무것도 없는 이 고요한 산 길이….

이거이 무릉객 취향일시 !

 

남향인 치목 길은 낙차와 굴곡이 커도 처음부터 끝 까지 따뜻한 가을 했살이 함께하는  

양지 바르고 기분이 좋아지는 하산 길이었다.

내려가면서 25,000원에 서창 가는 택시를 섭외하고 불시 검문도 없이 무사히 내려가다.

택시를 타고 서창에 주차한 차량을 회수하고 버섯 전골 한 냄비와 맥주한 병 기분 좋게   

비우고 대전으로 돌아 오다.

꿩 대신 메추리 .

조망이 쾌청한 날에 남덕유 주유를 못해 다소 아쉽긴 해도 나름 여유롭고 즐거웠던

적상 산책이었다.

 

20201121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