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인에게 도가 멀리 있는가?
명상과 수행이 따로 있는 가?
번뇌와 미망을 내리고 고요한 맑은 마음의 평화를 누릴 수 있으면 그것이 명상이요 수행이고
내 마음속에서 그 기쁨이 넘쳐나면 그 곳이 천국이고 극락이지
직장생활 열심히 하며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동생은 갑자기 불교대학에 등록을 했다.
형제들과 고스톱 칠 때도 염불을 외운다.
“옴마니 반메홈~”
아침마다 운동 삼아 108배를 한다고 하는데 운동도 되고 마음이 편안해 진단다.
백련암에서 8시간 동안 3000배의 절을 하는 아주머니도 있다..
4시간 동안 절을 하면서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의 눈 높이를 맞추는 거라고…
그러면 마음에서 괴로움이 사라지고 하심(下心)이 일어 범사를 감사하는 마음이 된다고…..
그리고 내게 닥치는 어떤 어려운 일도 다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강한 의지가 생긴다고…
비명에 떠난 시누이의 극락왕생을 위해 처음 절을 올리기 시작한 아주머니는 이제 가족과 친지들
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도반들과 더불어 고난의 만 배를 올린다고 했다.
24시간동안 10000 배를 드리며 고난의 순례를 통해 니르바나의 문을 두드린다.
어마어마한 공력이고 지극한 정성이다.
무엇인가를 비는 마음으로 절을 시작하지만 삼천배쯤 넘으면 아마도 머리가 하얘지고 아무런 생
각이 머물지 않을 것이다.
세상을 잊고 궁극에는 자신을 잊어 자신을 둘러싼 세속의 집착과 번뇌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
는 공의 시간을 만날 것이다.
불자가 경험하는 극락은 세상과 자신이 함께 사라지는 아타락사가 아닐까?
이쩌면 이 경지가 속인이 가장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는 도의 경계인지도 모른다.
24시간의 끊임없는 절을 하는 것은 필시 백두대간에 42 번 올라 도를 닦는 것에 필적할 것이다. .
나도 늘 명상과 수행을 한다.
명상과 수행은 부처님 앞에서 절을 하거나 벽을 바라보고 참선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나는 단지 걷는다.
나는 걷는 것 또한 움직이는 명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백두대간에서 두 번 도를 닦았고 7정맥을 따라 명상과 수행의 길을 걸었다.
함께 떠나는 나의 산 친구들은 명상과 수행의 도반이었다.
비록 산상동굴에서 좌선과 참선은 하지 않지만 무시로 한국의 명산에 들어 입산 수행한다.
산을 오르건 가까운 들 길을 걷던
도시의 블록이 사라진 길을 걸으면 마음에서 무언가 비워지고 또 무언가 채워진다.
그 길 위에서 마음을 흔드는 복잡한 생각들은 단순하게 정리되고 마음은 차분하고 고요해진다.
그리고 그 맑은 고요가 기쁨을 불러낸다.
그래서 길은 도와 맞닿아 있고 내겐 걷는 게 명상이고 수행이다.
아직 절세신공이라 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이젠 어느 정도 공력의 경지에 올랐다.
오래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하는 말을 듣다 보니 대자연의 섭리와 삶의 이치를 깨우치게 되고
심상이 고요해지니 발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더 자유로워진다.
나의 도는 이제 높은 산과 깊은 숲에만 머물지 않는다.
혼자이건 또는 마음 맞는 그 누구와 함께 걷던 상관하지 않는다..
나의 도는 사람은 알아 보되 낯가림은 하지 않는다.
내가 도를 깨우쳤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혼자 있지 못하는 외로움은 어느 날 내 곁을 떠나 갔고
순례와 수행의 시간에는 항상 내 마음은 맑아지고 고요해지고 기쁨이 넘쳐났다.
사람의 몸이란 늘 마음을 따르는 것이기에 마음이 평화로우니 몸도 자연히 그 마음을 따랐다.
난 이제 침대에 홀로 누워서도 눈 덮힌 백두대간을 주유할 수 있고 지난 길의 추억을
정리하면서도 그 멋진 풍경 속을 다시 걸어 갈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속세에 발을 딛고 있지만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비급을 손에 넣었고
나의 기쁨을 불러 낼 수 있는 주문을 해독했다.
세속의 욕심을 모두 내리지 못하고 혼탁한 속세의 삶 가운데서도
나와 마음을 잃지 않았으니 어쩌면 난 이미 신선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난 세상의 무수한 길을 걸었다.
그리고 앞으로 또 많은 길을 걸어 갈 것이다.
내가 궁극의 도에 닿지 못하더라도 상관 없다.
그 길을 걸으며 내 가슴의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했으므로 …
가끔 찾아오는 고통이 여전히 나를 힘들게 하지만
난 그것으로 삶의 기쁨을 잃지 않는다.
삶이란 그런 것이고 고통은 오래 지속되지 않음을 알기 때문에….
때론 고통이 삶을 더 값지고 빛나게 함을 알고 있기에…
아직 걷지 않은 많은 길이 남아 있는데 날은 저물어 간다.
그래도 괜찮다.
험하고 거친 길 뒤에 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동안 쌓은 내 삶의 내공으로 한적하고 편안한 소로 길도 즐겁고 행복하게 걸을 수 있다.
나는 어둠 속을 걸으면서도 오감으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내 마음은 보이지 않는 아름다운 것에도 쉽게 공명할 수 있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 위를 잠시 날아가는 한 마리 나비.
나비의 눈에 비친 눈부신 봄날의 짧은 기억으로도
나비는 충분히 행복하다.…
세상의 아름다운 길을 다 못 걸으면 또 어떠랴?
꽤 멀리 까지 즐겁게 잘 걸어 왔으니…
잠시 스쳐 지난 이 세상도 그렇게 아름다웠으니…
나는 그 길 위에서 무수한 기쁨과 사랑을 만났다.
나는 그 길 위에서 누군가의 사랑이었고 믿음이었고 동행이었다.
그 사랑만으로도 족하다
나는 조금씩 세월에 낡아가고 느려지겠지만
그 속도로 세상과 자연과 교감을 계속해 갈 것이다.
세상에서 그 기쁨과 감동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잊혀가도
난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다시 솟아 오르는 새날의 기쁨과 감동을 만날 것이다.
나는 떠나는 날 까지 미완으로 남을 나의 길을 천천히 걸으며 살아 있음의 축복과
그 길의 아름다움을 누릴 것이다.
죽음이 나와 세상을 갈라 놓을 때 까지….
숲은 나무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고
꽃은 나비의 죽음을 아파하지 않는다.
단지 나무는 살아서 숲을 만들고
꽃은 나비의 날개짓으로 열매를 만든다.
그것이 그냥 아름다운 자연이 듯
살아 있는 나도 하나의 아름다운 자연이다.
영혼의 샘물를 찾아 오랫동안 방황했지만
내 안에 늘 맑고 고요한 샘터가 있었다.
현자와 도인의 길을 쫒기 위해 노력 했지만
내 안에 신이 있고 부처가 있었다.
삶은 물처럼 바람처럼 그렇게 무심히 흐르는 거다.
나의 세상은 그렇게 짧아서 더 아름답고 그 아름다움은 마지막 죽음으로 완성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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