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산
우중산행이 청승맞고 외로울거란 건 잘못된 생각이다.
그래도 둘이 가면 덜 외로울 거란 것도 맞지 않는 말이다.
비를 맞으면서 까지 산을 타는 게 너무 과도한 칩착이 아니냐는데
빗 속을 홀로 걷고 싶어지지 않거나
홀로 걷고 싶은 데 그럴 수 없음이 더 큰 문제 아닐까?
우리는 군중 속에서 더 외롭다.
둘, 셋이면 외롭지 않을까?
외로움은 혼자 있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깊은 외로움과 바닥에 내려가 그 고독의 심연에 은둔하고 있는 자신을 만나고
그 실체를 응시하지 못한 사람은 황홀한 고독을 느낄 수 없다.
사람들과 어울린다고 그 외로움은 떨쳐지지 않는다.
마음이 함께하지 않는 고독은 단절과 고립을 불러내고
영혼은 소통의 문을 닫는다.
두타와 청옥의 그리움에 내 마음이 울었고
난 그 곳으로 떠났다.
난 아직 가고 싶은 곳이 많고
가고 싶으면 그냥 배낭을 둘러메고 떠난다.
그게 습관이 되고 나의 자연스런 일상이 되었는데
그것이 또한 내 영혼을 춤추게 한다.
비가 제법 내려 땅과 초목은 해갈되어지만 나는 여전히 목말랐다.
이 여름은 내 삶에 다소 생소한 여름이었다.
“여름엔 큰 산에 들어야 한다.” 는 변함없는 나의 생각은 암초에 부딪혔다.
사실 코로나는 아무 문제가 아니었다.
산을 향하는 나의 발길은 거리낌이 없었음으로…..
하지만 결국은 코로나로 인해 야기된 문제였다.
깊은 산으로 떠나는 마차들이 방울소리를 울리지 않았고
산 친구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큰 문제는 문막에 둥지를 틀었다는 거다.
나는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만끽하기도 전에 다시 자발적으로 내 삶에 구속의 족쇄를
채웠다.
나는 공식적으로 아침 7시 30부터 오후 5시 까지 일에 내어주고 나머지 시간은 온건한
자유를 누렸다.
하지만 온건한 자유란 다소 어패가 있었다.
점점 소중해지는 나의 값비싼 자유는 다시 돌아오지 않은 나의 시간과 젊음을 위해
유익하고 알차게 써져야 하지만 먹고 자는 시간에다 요리하고 설거지 시간까지 더
해지면서 나의 자유는 대폭 삭감되었다.
Tv 채널 몇 번 돌리고 책 몇 장 넘기다 보면 다시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나의 자유는
그냥 변화 없는 단조로운 일상일 뿐이었다.
그래도 기꺼이 그 자유를 수긍하고 위안하는 거라면 어짜피 코로라 때문에 내가 누리고
싶은 더 넓은 세상은 당분간 물 건너 갔다는 거
주말 !
조사장과 예정한 여름 1박여행이 다가왔다.
그 자유를 낭비하지 않기 위한 그리고 이 여름을 후회하지 않기 위한 비장의 선택지는
두타.청옥의 위용이 살아 있는 무릉계곡이었다.
무릉객이 다시 돌아가는 무릉도원…
내 젊은 날 굵은 땀방울 속에서 들었던 내 영혼의 노랫소리와 오랜 세월에도 풍화되지
않는 젊은 추억이 살아 있는 곳
34년 전 홀로 걸었고
백두대간 종주시절 조사장과도 걸었던 길이었다.
내 어찌 고적대와 연칠성령 청옥산 두타산으로 이어지는 그 대간길을 잊을 수 있을까?
산 친구들과 걸었고
마눌과 걸었고 ‘아들과 걸었던 그 거칠고도 아름다운 길을 ……
하루 휴가를 내서 산을 타고 동해에서 하루 숙박하는 일정의 다목적 산행이다.
체력을 테스트하고 추억을 따라 가며 이 여름의 갈증을 해소하고자 하는 ….…
설왕설래
조금씩 수정되거나 변경되던 날씨가 출정 이틀을 앞두고 거의 굳히기 모드에 들어갔다.
거의 전국적으로 비가 내리는 데 두타.청옥이 있는 동해는 오전 흐리고 30% 강수확률
오후 2시부터 60%로 강수확률
그리고 하루 전 날엔 상황이 더 악화되어 강수확률이 70%로 증대되고 비소식이 1시간
빨라졌다.
흐미 휴가는 이미 냈고 비가 많이 와서 계획을 취소하게 되면 낭패다.
우중산행일망정 혼자라도 치악산이나 백운산을 타고 싶은 데 저 번 주에 내려가서 차를
대전에 두고 왔다.
대전에 내려가서 움직여야 하는데 아랫 지방은 비가 더 세게 온다.
조사장에게는 지난 번에 혹여 출정일 오후에 비가 오더라도 내려오면서 좀 맞자는 의견은
피력했지만 워낙 험한 산이라 많은 강수량이 실리는 우중산행이라면 내 고집만 피울 수는
없는 법이다.
당연히 계획을 취소를 주장하리라 생각했는데 예상을 뒤엎고 조사장은 예정대로 진행하자며
오히려 30분을 앞당겨 올라 오겠다고 했다.
그랴서
조사장은 개발에 땀나게 4시 30분쯤 집을 나서서 문막으로 차를 몰고 나는 6시에 숙소
앞으로 나가면 되는 꽃놀이패 산행은 원안대로 진행이 확정되었다.
알람을 5시에 맞추어 놓고 밤 10시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4시 30분에 눈이 떠졌다.
6시간은 잤으니 평상시 만큼 잠을 잔 셈이다.
우야튼 일찍 일어났으니 느긋하게 볼일을 보고 , 떡을 찌고 간식을 챙기면서 여장을 꾸렸다..
그리고 거친 산이라 내 배도 좀 채우고 가야 한다.
라면을 끓여서 먹고 그 국물에 밥 한 숟갈, 김치 반 종지, 계란 두 개를 넣어서 깨끗이 먹었다.
설거지 하고 안 정리까지 다하고 나니 5시 40분
식사를 마치고 조사장에 전화를 하니 5시 50분 도착이란다.
흐미 ~ 시간이 언제 이렇게 지나 간 거여?
무릉계곡 가는 길
예정대로 8시 전에 조사장과 만나 동해를 향해 출발했다.
예보대로 흐린 날씨에 비는 오지 않는다.
조사장이 이러저러 얘기 하다가 말 수가 적어 지더니 연신 하품을 해 댄다.
8시부터 잠자리에 들었는데 뒤척이다 잠들어 3시반에 깨서는 잠을 못잤단다.
잠하면 나보다도 한 수 위인 조사장도 장거리 이동과 우중 거친산행이 부담으로 작용한
모양이다.
강릉 휴게소에서 내가 운전을 하고 눈을 좀 붙이라고 했다.
8시 무릉계곡 주차장 도착 !
흐린 날씨 임에도 주차장에는 제법 차량들이 주차해 있었고 여기저기 배낭을 멘 사람이
눈에 뛴다.
매표소 앞에 세워진 개념도 입간판에서는 우리가 오르려고 하는 학등길 등산로가 사라졌다.
두타산성으로 오른 두타산 길과 청옥산을 우회하는 연칠성령 길만 뚜렷한 등로로
표시되어 있고 중간의 박달령 길과, 학등길은 아얘 표시되지 않았다.
8시간 예상하는 산행인데 영칠성령으로 오르면 1시간은 더 늘어날 것이다.
본격적인 출발전 느닺없이 볼일을 먼저 보아야 한다는 조사장 때문에 조금 시간 지체가 있었다.
학등 등산로에 관해 매표소 아가씨한테 물으니 표시된 등산로를 도에서 관리하고 나머지
길은 산림청에서 관리하는데 산림청 관리 길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좋지 않고
희미할 거라고 한다.
입장권은 인당 2000원
우야튼 표지판 지도에는 우천시에는 연칠성령 하산길이 폐지 된다고 하니 원안대로 학등이나
연칠성령으로 올라야 한다.
무릉계곡
무릉계곡에는 제법 탕탕한 흙탕물이 내려가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고 무릉반석을 지나 학동 갈림길로 접어 들었다.
엉겁결에 신선봉에 올랐다.
내 기억으로는 처음 오르는 봉우리 ….
가장 먼저 범상치 않은 두타.의 산세를 느끼게 해주는 곳이 아닐까?.
계곡을 따라 좀 더 올라간 곳에서 학등과 연칠성령 갈림 길이 분기된다.
우측에 꼭지점이 있는 삼각형의 직선길이 학등이라면 두 빗면 길이 연칠성령 길이다.
소요되는 에너지 총량은 어떨지 몰라도 1.5km 정도 더 돌아가는 길이다.
학동길 입구에 여하한 출입금지 표지판이 없어서 우린 계획했던 대로 학등을 따르기로 했다.
청옥산 가는 길
그래도 적지 않은 날에 두타.청옥에 들었지만 학등길은 처음 가는 길이었다.
세상에 더는 없을 길이었다.
한참을 계곡을 거슬러 올라 왔는데 청옥산이 3.6km 남았다는 이정표가 선다.
뱀사골과 칠선 계곡 길이 10km 길이니 그 길이 어디 멀다고야 하겠냐만은
3.6km 수직 상승의 길은 평지라고는 거의 없는 하염없는 급경사 오름 길이다.
대한민국 산 길에 그런 길은 한 둘이겠냐 만은 정말 그 계속되는 오름 길 중간
어느 한 곳에서도 조망을 열어주지 않는 무 풍광의 길은 단연 독보적이었다.
회사에서 몇 통의 전화가 오고
감사실 이실장 전화가 와서 거친 길을 오르며 계속 통화를 했다.
10시가 넘어가면서 계속되는 오름 길에 힘이 쭉 빠졌다.
10시 30분쯤 되어 사위가 더 어두워 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지지 시작했다.
빗줄기가 심상치 않아질 것 같아 방수포를 씌우고 대포 카메라를 배낭에 넣었다.
배낭이 더 무거워지고 거친 비탈길에서 그 하중이 더 엄중하게 체중에 실리며 허기를
자극하니 속도는 점점 떨어졌다.
아무리 비탈길이러 해도 체력이 급격히 방전되어 혹시 백신 맞고 3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런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행이 조금 더 오른 곳에서 조사장이 빗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불청객 비
그나마 빨리 식사하지 않으면 빗줄기는 더 굵어질 기세고
경사가 심한 오름 길 중간 일 망정 숲의 나뭇잎이 비를 가리는 곳을 벗어나 능선에
서면 마땅한 간식처를 찾기가 더 어려울 지 모른다.
아침도 안 먹은 조사장은 여느 때처럼 빵과 초코파이와 사과와 에너지바를 가져 왔고
난 왕사과 2개와 계란과 떡과 빵과, 고구마 오미자 액을 가져 왔다.
물은 조사장이 2.5리터 , 내가 2리터
조사장은 체질상 나보다 2배는 땀을 더 쏟고 1.5배는 더 물을 마신다.
준비물에서 내공의 차이가 드러난다..
체력에 대한 자신감을 갖고 있다 해도
조사장은 청옥, 두타를 아주 띠엄띠엄 알고 있는 거다.
허기사 전성기의 시간소요를 통보한 내 잘못도 크다..
우린 가지고 온 것을 나누어 먹고 나는 다시 원기를 회복했다.
비가 본격적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다행이었다.
점점 굵어지는 비가 수냉식으로 엔진 과열을 막아준다.
이 유례없이 거친 길에서 8월의 태양이 작렬했다면 완전 파김치가 되었을 게다.
두타.청옥 산신령님 겉으로는 찌푸리신 시큰둥한 표정이지만 새삼 속 깊은 정과
배려가 느껴지는 시간 이었다.
학등에서 그냥 거리와 시간을 잊었다
매사가 그렇듯이 시간이 흐르면 모든 게 제자리로 귀결되 듯
적절한 시간이 흘러가면 나는 능선에 설 것이다.
비란 내가 받아들이기 나름 이었다.
내 생각에 따라 그건 황홀한 고독과 명상의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시야를 가리고 산행을 불편하게 하는 거추장스러운 불청객이 될 수도 있다.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즐거웠던 우중산행의 기억들처럼
오늘의 비는 내가 기다리던 목마른 추억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저런 상념들을 떠 올리며 몸이 주장하는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고도를 높여 갔는데
아직 많이 남았으리라고 생각한 곳에서 능선은 홀연히 나타났다.
그 곳에서 청옥산 정상은 50미터 였다.
청옥산
나는 한잔의 물로 자축하고 비에 젖는 나무 등걸에 배낭을 기대어 놓고 청옥에 올랐다.
아들과 함께 했던 2016년이 가장 최근이었으니 5년 만이다.
마눌과 함께 올랐던 100대 명산 길은 2013년으로 8년 전이지만 그 때는 댓재에서
두타에 올라 바로 하산 했으니 청옥의 능선을 거치지 않았다.
최초에 두타 .청옥에 올랐을 때가 1987년이었다.
내 생애 처음 두 봉우리에 내 발도장을 찍은 날 이후로 34년의 세월이 흘러간 것이다.
그 때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홀로 금수강산을 빠대던 그 날의 두타와 청옥의 감회는
어땠을까?
지금도 두타와 청옥에 대한 그리운 감정과 마치 고향인 듯 푸근하고 아련한 이 느낌은
34년 전 첫 산행으로부터 시원된 것일지도 모른다.
조사장은 100여미처 아래 샘터에서 차가운 물을 마시고 뒤쳐진 나를 위해 한 통의 물을
받아 놓았다.
엄청난 체력소모와 갈증의 끝에서 만난 투명하고 시리도록 차가운 물맛
그 물맛은 내 인생 최고의 물맛이라던 하늘샘의 하늘빛 물맛을 닮았다.
비는 계속 내리고 나는 목젖이 꿀럭이는 소리를 내며 대차게 청옥의 이슬을 마셨다.
존재 자체의 기쁨과 행복이 넘치는 곳
마음의 고요해지고 궁극의 평화가 누리에 펄펄 날리는 보배로운 불국정토가 청옥이었다.
우린 두타의 문을 들어서지 않고 곧장 평온한 복락의 땅에 먼저 도착한 것이다..
두타산 가는 길
빗방울은 점점 굵어지고 기분은 점점 좋아졌다.
이 길은 하늘 길이다.
1403미터의 청옥산과 1355미터의 두타산을 연결하는 하늘 길로 산소와 피톤치드가 가득한
고원의 구름길이다.
안개가 아니라도
바닥에서 솟구친 그 길은 1400미터를 넘나드는 고봉 준령임에도 나무가 빽빽하여 뜨거운
태양을 들이지 않고 쉽사리 조망을 허락하지 않는다.
점점 세차게 오는 빗속에서 우리는 아무도 만나지 못했다.
조사장은 우비를 입고 나는 나무처럼 온몸으로 비를 받아내며 오랫만에 흠뻑 젖었다..
구름을 밟고 지나는 하늘 길에는 바람이 불지 않아 맨몸으로 받아내는 빗물도 춥지 않았다..
둘이 같이 가되 혼자하는 명상의 산행이었다.
이렇게 마음 놓고 푹 젖은 날이 언제였던가?
아이들의 즐거운 날궃이 같은 우중의 희열과 기쁨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내가 걷는 길은 구도와 순례의 길이다.
두타의 문을 열어 니르바나 (열반)에 다다른다.
고행을 통해 현세의 욕심과 미망을 내리고 깨달음의 길로 들어 서는 것이다.
도란 것이 뭐 그리 거창할 것도 없다.
무릇 범인이 좌정하고 면벽 한다고 깨달아 지는 게 아니고
내 마음의 고요와 평화를 이루고 무수한 번뇌와 미망 속에서도
감사와 기쁨을 잃지 않고 나의 근본을 잃지 않으면 그것이 도가 아닐까?
그냥 말없이 걸으면 마음이 비워지고 또 채워진다.
그러면 대 자연의 기가 내 발을 타고 내 몸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마음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무엇이 있다.
오늘은 비가 내 내면의 더 깊은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간다.
친구와 둘이 함께 산행을 해도 꼭 대화를 소통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비를 그으며 말없이 걸으면서 우리는 더 많은 마음을 나누고 있는지 모른다.
오래 살아보니 고독과 침묵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 더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다.
친구는 새벽 4시에 대전에서 움직여 비오는 1400고원을 나와 비와 그리고 대자연과
함께 걷고 있다.
50미터 가량 높은 청옥산에서 활처럼 길은 휘어져 내려 2.5km 정도 거리의 안개와 구름
속을 평탄하게 흘러가다가 두타산 근처에서 다시 하늘로 솟구쳐 오른다.
이 구간이 힘든 것은 1400고지까지 올라 오느라 쌓인 피로가 또다시 솟아오른 봉우리로
인해 충분한 휴식을 만나기도 전에 다시 가중되는 것 때문일 것이다.
두타산
추억의 두타산은 축축히 젖고 있었다.
조강쇠도 두타오름길이 너무 힘들었다고 혀를 내둘렀다..
내 젊은 날의 사랑이 떠돌고 있는 두타산정은 자욱한 비안개에 쌓인 채 그래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서성이고 있다.
언제 세워졌는지 봉우리 한 켠에는 낯선 대형 표석이 비를 맞으며 서 있다.
사람들이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서둘러 우중 인증샷을 했다.
비 내리는 고원을 배경으로 한 남은 내 생애 가장 젊은 날의 사진
앞으로 다시 1300고지의 빗물을 몸으로 받아 낼 일이 있을까?
이 시간 또한 아쉽고도 소중한 추억이 될 것이다.
참 희안한 몰골이다.
딱 보면 영락없는 땅그지들 ….
물에 빠진 생쥐처럼 처량하고, 파김치처럼 축 늘어진 정신나간 노인들이다.
불쌍해 보여도 이게 무릉객 다운 거지
남들이 왜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사냐고 답답해 해도
이게 나답게 사는 걸세
그게 내 기쁨과 행복을 불러내는 내 삶의 방식이니 걱정만 고맙게 받는 다네
사진 속에 내가 웃지 않고 찡그리고 있다고 내가 고통과 후회 속에
그 길을 걸었다고 생각진 말게
난 포카 페이스일지 몰라도 내 마음은 조용히 웃고 있으니 ….
오늘 하루 내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 올랐으니 난 오늘 구름 속 무릉도원을
거니는 부처이고 신선이었네
고 장영희 교수가 생전에 한 말도 못들었능가?
내가 살아보니까,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
내리는 것이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벌써 6시간이 경과되었고 6km 하산길이 3시간 정도 걸린다면 토탈 9시간
무릉계곡 출발점에 도착하면 5시쯤 될 것이다.
두타의 정상에는 벤치가 두 개 있다.
배도 좀 출출하고 혹시 하산 길에 체력저하가 우려스러워 나는 비에 젖은
벤치에 앉아 내리는 빗 속에 빵을 먹는다.
난 군대시절 빗 속에서 먹어도 먹어도 줄지 않는 국을 먹어본 적도 있고
비 내리는 벌판 나무 아래서 철모를 깔고 앉아 쪽잠을 잔 적도 있다.
추위에 좀더 노출된 조사장은 좀 당황스러운 표정
“ㅎㅎ 금강산도 식후경이유! 새참은 좀 먹구 가야쥬~~~
사위가 노출된 봉우리의 비바람이 거세다..
한 폭의 수묵화 아닌가?
나는 온 몸으로 세찬 비를 맞으며 벤치에 앉아 빵을 먹고 조사장은 우비를 입고 옆에서
새파래진 입술을 한 채 오들오들 떨고….”
두타의 후련한 세상을 빗 속에 남기는 아쉬움을 떨치고 그렇게 수미산을 뒤로 했다.
비는 여전히 장하게 내리고 등산화 속에서는 오래전에 잊어 버렸던 개구리 울음소리가
되살아 났다.
바람이 부는 정상에서의 체공시간이 길었던 탓에 체온이 내려가서 추위가 느껴졌지만
견딜 만 했다.
내 지나간 젊음의 궤적을 따라 내 곁을 스쳐 지나간 모든 것들이 콧날이 시큰한 추억들
이었다..
11시간을 고스란히 몸으로 비를 긋던 그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도 나는 오늘도
옛 추억의 그 길에 서서 그날의 함성과 내 영혼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하산 길
가파른 두타 산길은 그래도 학등 길에 비하면 양반 이었다
군데 군데 조망처에서 비에 젖는 두타.청옥의 장엄한 풍경이 드러났다.
산주름에는 운무가 채워지고 구름과 안개는 산 허리를 부여잡고 서로 뒤엉켜 바람에
이리저리 휩쓸려 다녔다.
험한 산 속 비가 축축히 내리는 와중에도 오가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시간은 세시 반이 넘어가는 데 이제 겨우 두타산 길을 반쯤 올라 놓고 두타산 찍고
박달령이나 학동길을 묻는 어이없는 산객들도 있었다.
두타와 청옥 같은 거친 산에서 젊음과 건강을 믿고 무대포로 들이대는 건 위험한 일이다.
2차 백신 맞은 3일 째 9시간여 산행
오늘 나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선을 넘어 오만 방자하게 나댄 건지도 모른다.
신 앞에 그리고 산 앞에 항상 겸허하고 조심할 일이다.
내려가는 중에 비는 시나브로 그쳤다.
어디선가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젖은 옷을 말려 주고 축축히 젖어들었던 마음도 조금씩
말려 주었다.
처음으로 등로 한 켠에 앉아서 사과를 한 쪽씩 나누어 먹었다.
갈무리 했던 대포 카메라도 꺼냈지만 별로 찍을 일은 없었다.
두타 하산길의 대표 풍광은 6년전 마눌과 하산 길에 대부분 카메라에 담았고
그 모습들은 내 기억 속에도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다.
베틀바위 가는 길
두타산성 앞에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배틀바위 갈림길이 선다.
옛날에는 없었던 새로 조성된 길이다.
이 길과 마천루 잔도길로 인해 두타산이 새로운 흥행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했다.
베틀바위 1.7km
시방타임 4시
여기서 무릉계곡 까지가 2.5km 정도 되니 갔다가 되돌아와서 내려간다면 졸지에
야간산행이 되어 버릴게다.
설마 ‘~~~
약간 횡설수설하시는 아저씨 말로도 그 쪽으로 난 길이 있다고 했다.
난 어쩌피 다음에 또 올 테니 굳이 베틀바위를 안보고 가도 상관이 없는데
마운틴 TV 매니아인 조사장은 TV에서 본 절경이 환상이라고 내게 꼭 보여 주고
싶다고 했다.
인터뷰한 누군가 황산 보다 더 멋진 풍경이라고 했다고…
베틀바위 가는 길은 산허리를 따라 지그재그로 조성된 산길 이었는데 다른 여타의
등로와는 다르게 잘 정비되어 있다.
포스트 코로나를 겨냥한 강원도의 야심찬 비전 이었다.
4시간 넘어가니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도가 낮아지는 그 능선을 가면서 자욱한 산 안개가 밀려 왔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미륵바위에 도착 했을 때는 한 치 앞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등로는 미륵바위에서 휘어져 매표소 까지 1.6km 정도의 하산 길을 남겨두고
있었다.
하산 길은 가파르게 하강하는 길이었지만 데크가 잘 조성되어 있어 전혀 위험하지 않았다.
미륵바위 아래 베틀바위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신기하게도 운무가 걷히고 걸출한
풍광이 드러났다.
오락가락 하는 운무 속에 펼쳐진 장엄한 풍경이었다.
내리는 비로 인해 바위 능선에서는 군데 군데 비단 폭포가 만들어져 보기드문 선경을
연출했다.
신비롭기 짝이 없었다.
흡사 신들의 거처인 듯 몽환의 구름과 고고한 청솔에 기댄 바위벽의 절경은 우리가 떠날
때 쯤엔 다시 자욱한 안개에 휩쌓였다.
베틀바위 산성길은 동해시와 동부지방산림청에서 무릉계곡 숲길 내 안전사고 예방과
보호가치가 높은 산림보호구역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실시된 공동산림사업으로 2019년
9월 착공해 2020년 8월 1일 베틀바위전망대가 1차 개방되고 지난해 6월 10일 두타산
협곡 마천루까지 4.7km 전 구간이 2차로 완전 개방됐다.
두타산정에 오르지 않고 무릉계곡과 베틀바위 그리고 마천루 잔도 만으로도 꽉찬 하루를
보낼 수 있게 됨으로써 이제 두타.청옥은 백두대간 산객들과 준족들의 전유물에서 벗어나
명실공히 많은 사람들이 더불어 누릴 수 있는 대중적인 산으로 탈바꿈했다.
차가운 날씨 였지만 34년지기 친구와의 오랜만의 가슴 따뜻한 만남이었다.
하늘에 더 가까이 다가가 있어 잠재의식 속의 내가 신과 쉽게 소통할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신과의 동행이 느껴지는 산행이었다.
힘들 때 비를 불러 원기를 복돋워 주고
땀에 젖은 옷을 깨끗한 빨래해 주시고
내려가는 길에는 탈수기 까지 돌려 깨끗이 말려 주셨다.
어디 그것 뿐인가?
군데 군데 조망처에서 근엄하고 신비로운 두타의 얼굴을 보여 주시고 그 깊고도 넓은 가슴을
느끼게 해 주셨다.
다시 학등으로 청옥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내심 어쩌면 이번이 두타.청옥의 마지막 산행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댓재에서 두타와
청옥을 거쳐 이기령 까지의 대간 길은 다시 걷고 싶다.
젊은 날 밟고 지나간 그 추억이 너무 가슴 시려서…
고적대의 웅혼한 풍경과 아들과 함께했던 그 겨울의 추억은 잊을 수가 없다.
일부분의 풍경을 놓고 보면 장가계나 황산의 풍경과도 견줄만한 절경이었다.
9월이나 10월 쯤에는 마눌이나 가족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다.
옛날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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