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채능선
추석연휴가 바람 같이 지났다.
제사 지내고, 어머니 모시고 형제들과 어울리다 보니 3일이 훌쩍 지나간 거다..
제사를 준비하는 사람이 줄어들어 바빠지고 형제들과의 야외에서 어울리는 시간을
늘이다 보니 나의 시간은 대폭 삭감 되었다.
격세지감이다.
추석이면 어김 없이 새벽 산행을 떠나 일출을 보고는 했는데 이제 추석연휴 3일 중에 나의
시간은 없다.
내 영혼의 보충산행
추석명절 잃어버린 나의 시간을 되찾기 위한 후보지 선택에 골몰했다.
집으로 가는 길목 유난히 파란 하늘을 이고 서 있을 절벽 바위 위 청솔이 보고 싶었다가
마지막 날 갑자기 행선지를 바꾸었다.
화채능선
불현듯 가을에 마음이 공명했다.
창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가워 졌다 ·
나는 잊고 살아도
내 가슴이 잊지 못하는 계절
그리고 갑자기 가을이 지나가고 있을 화채능선과 만경대의 풍경이 그리워졌다.
고원의 바람에 붉어질 설악의 단풍이....
내 영혼을 불어 가는 가을 바람
친구를 버리고 혼자 떠나고 싶은 가을이 벌써 다가온 것이다.
생각해보니 작 년에 설악에 들지 못했다.
잘 못하다 올해까지?
그 생각이 머물자 갑자기 마음이 급해졌다..
괜찮을까?
인자 회갑도 훌쩍 넘긴 노인이 혼자 설악 비등을 간다고?
혹여 시고가 나도 동정의 여지도 없이 노망난 할배로 욕이나 잔뜩 먹을 것이다.
사실 정규등산로를 탄다고 해도 혼자 가는 설악이 쫄릴 판에 차를 왕복 2시간 운전하고
가서 잠 한숨 못 자고 10시간 산을 타고 나서 다시 2 시간 운전해서 돌아오겠다고?
“드디어 망령난 무릉객 ! “
혼자 사니 말릴 사람도 없고
걱정하실 어머니께는 친구와 간다고 구라를 때리고.....
망령이든 노망이든
가슴이 우는 데 주저 앉아 있는 게 더 문제인 거지
그래도 문막에 있으니 객기를 부리는 거구
대한 민국 설악산 제대로 못 가는 무릉객이 훗날 세상 어디를 떠돌 수 있을 것이여?
오색 가는 길
집에서 두어 시간 자고 출발해고 오색에 12시 쯤에 도착해서 다시 차에서 눈을 좀
붙이려 했는데 이것저것 준비하고 예기치 않게 회사 일로 늦게까지 통화하다 보니
출발이 늦어졌다..
홍천에서 인제를 거쳐 한계령을 넘어 가는데 거친 바람에 자욱한 안개가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고 안개 비로 길은 축축히 젖어 있다.
새벽 1시에 오색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는데 주차를 어디에 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늘 산악회 비스로 왔던 터라 가까이 있는 주차장 위치도 감이 안오고.
빨리 파킹을하고 잠시라도 눈을 붙여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일단 차를 세우고 탐방 센터에 가니 스산한 바람이 불어가는 탐방센터 들마루에
두터운 파카를 입고 잠을 자고 있는 산님이 2명 있다.
흐미~~
가을이 뭐고 설악이 뭐길래…..
등산로 철문은 나무 문으로 대체 되었는데 아마도 새벽 3시쯤 열어 줄 것이다.
그 옛날 일출에 마음이 급한 나머지 문을 열어주기도 전에 먼저 철문을 넘어가
끝까지 쫓아오던 국공님의 정성(?에 감복해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 나온 적이 있다.
오늘은 3시에 출발해도 해돋이 시간에 맞출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한계령과 오색에는 자욱한 산 안개가 흐르고 하늘에 별이 하나도 없어
해돋이를 보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거
들마루 한 켠에 배낭과 스틱을 내리고 근처에 주차할 만한 공간을 물색했다.
등산로 앞으로 난 내림 길을 따라 내려가는 데 괸리소가 하나 눈에 띤다.
건물 옆에 작은 주차공간이 있는데 다른 데 찾을 겨를도 없어서 거기에 파킹하고
알람을 2시 40분에 맞추었다.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1시간 40분 정도 밖에 잠 잘 시간이 없다.
근데 나의 애마 코란도밴은 너무 불편하다.
의자를 뒤로 눕힐 수도 없어서 꼼짝없이 꼿꼿이 앉아서 쪽잠을 자야 한다.
자리는 불편하고 잠 때는 지나갔어도 타이머를 셋팅하고 잠을 청했다...
ZZZ~~~~
우야튼 눈을 좀 붙이긴 했는데 목이 뻐근하고 허리가 땡겨서 일어나니
시간이 2시 30분이다.
그래도 대단한 무릉객
그 와중에 1시간 30분 쪽잠을 잔 거다.
일어나자 마자 우유한 통에 떡부터 한 팩 꺼내 먹었다.
가다가 배고프면 힘들 것이고 등산 중에 꺼내 먹는 건 더 불편할 것이다.
필요할 때 자고 원할 때 먹을 수 있는 준비된 능력!
이 정도면 어디 내 놓아도 빠지지 않는 출중한 내공의 무릉객 아닌가?
안나푸르나에서도 처음 몇 일 정도 말고는 잠이면 잠, 음식이면 음식, 모두 완전히
적응해서 내 전생의 고향이 네팔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근데 더 웃긴 건
잠 자고 일어났다고 똥이 마렵기 시작했다는 거
그 옛날 단풍인파로 넘쳐 나던 오색 등산로는
차량정체보다 더 심한 인간정체에 걸리면 10분이상을 바람 부는 등로에서 그냥 서 있어야
했다.
나만의 가을이 아니고 나만의 설악이 아니었던 게다.
지나간 시절의 어느 모퉁이 오색을 오르는 중 설악 폭포 아래서 갑자기 내쳐가 콜스미를 했다
그 터져나오는 애슬픔을 참으려 몸부림 치다가 할 수 없어서 등산로 한 켠 불 빛의 가시권
내에서 꿩처럼 머리를 쳐 박고 애슬픔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내 생리타이머는 설악 출정이 있는 날이면 교묘히 알아차리고 그 슬픔을
유보해 주었는데 한 해를 거르면서 오늘 그 리듬을 잊은 모양이다.
조용하던 등산로 입구는 수많은 사람들로 술렁이기 시작했다.
대형버스가 와서 사람들을 내려 놓고 내가 차를 파킹한 아래 쪽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올라왔다.
나는 오색등산로 들머리에 있는 깨끗하게 정리된 남설악 탐방지원센터 화장실에서 느긋하게
볼일을 보았고 여장을 주섬주섬 챙기고 나오니 오색의 문이 활짝 열렸다.
잠은 부족하지만 몸도 마음도 가벼워진 채 오색의 문을 박차고 대청을 향해 출발하다.
대청봉 가는 길
내 생에 몇 번을 설악에 들었을까?
해 마다 한 번 이상을 왔으니 적어도 40번 이상은 족히 오지 않았을까?
마눌,아들,동생들, 친구들 다 데리고 올랐지만 홀로 산행이 압도적인 내 영혼의 성지
오색 등로는 내 생애 통산 두 번 환한 날에 올랐을 뿐이다.
그 길은 대청봉 턱 밑까지 오르는 중에도 별다른 조망을 보여주지 않는 끊임 없는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된비알 이다.
설악 폭포 아래서 평지 길을 좀 걷고 나면 시종일관 돌 계단 길과 바위 길을 올라야 한다.
그래도 요즘에는 군데 군데 데크 길을 많이 설치해 놓았고 오름길 한 켠에 가끔 쉼터도
조성해 놓았다.
어쨌든 눈에 들어오는 끊임 없는 비탈길이 기를 죽이는 오색 등산로는 깜깜한 밤에 눈에
뵈는 것 없이 올라야 그나마 힘이 덜 든다.
축축하게 젖은 등로는 좀 미 끄러웠다.
이마에 건 반디등에는 안개의 미세한 안개 입자가 가랑비처럼 흩날렸다.
처음에는 번들거리는 길가의 나뭇잎과 축축하게 젖은 등로가 안개 때문일 걸로 생각했는데
안개 입자가 자주 가랑비처럼 변하고 또 길 가운데 물웅덩이가 여기 저기 있는 것을 보고
어제 밤이나 오늘 새벽에 비가 내렸음을 알았다.
올려다 본 하늘은 여전히 별 하나 없는 흐린 날씨라 대청 일출은 물 건너 갔다..
기왕 일출을 못 볼 거라면 천천히 중간 중간 충분한 휴식을 하면서 오르기로 했다.
뜨거운 날씨를 예상해서 500ml 생수 3통과 포카리스웨트 1통
2리터를 넘긴 물무게에 2끼용 간식
떡, 빵3개, 제사 지낸 전, 1통, 양파 소시지 볶음, 오미자 액기스 1개
거기다가 날 샐 때 까지는 필요 없는 대포카메라까지
오르막이 계속되면서 어깨에 가해지는 무게는 점점 거세졌다.
지구력 싸움이니 속도를 빨리 한들 일찍 지쳐버릴 수도 있어 체력이 있는 초반에
굳이 스퍼트를 낼 이유도 없지만 등로에 사람은 많고 마땅한 쉼터가 없으니 자신의
페이스대로 꾸준히 오르는 게 더 중요했다. .
세월이 많이 흘렀다.
너무 많은 추억의 살아 있는 설악
그 설악이 이젠 조금씩 멀어져 갈지도 모른다. .
야생마처럼 질주하던 그 옛날에는 자신감과 알량한 자존심이 추월을 허용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한 때의 객기였지만 체력에 대한 자신감으로 오히려 헉헉대는 사람들을 제치고 오르면
쾌감을 솟구치고 힘이 더 펄펄 났었다.
무릇 모든 삼라만상이 영고성쇠의 섭리를 비켜 갈 수 없는 것이어늘….
신체리듬에 따르면 이젠 설악은 내 곁에서 멀어져야 하지만 아직은 그럴 때가 아니다..
아니! 난 안다.
가을 설악의 그리움에서 그리 쉽게 헤어날 수는 없을 거란 걸..
결국은 몸 보다 먼저 늙어가는 마음의 문제지만
속도를 줄이고 쉼표를 늘리면 설악과 지리가 멀어질 하등의 이유가 없다.
무박 산행이 문제지 하루를 설악의 품에서 유하면 70까지는 짱짱하게 설악의
추억과 감동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클릭 조정이 필요한데 난데 없는 코로나란 녀석이 나타나서
2년 가까이 설악과 지리의 대피소를 폐쇄해 버렸다.
그리고 기다림에 지친 난 그 대피소의 문이 열리기를 더 기다릴 수가 없어 다시 이렇게
야음을 틈타고 있다.
설악폭포 아래서 가랑비로 바뀌던 안개비는 빗방울이 점점 굵어 졌다.
등로에 바람이 불지 않아 추위는 느껴지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청옥산 때처럼, 길가의 나무들처럼 다시 맨 몸으로 빗물을 받아 냈다.
눈에 뵈는 것이 없으니 앞뒤 잴 것도 없는데, 비까지 내려 몸의 열기를 식혀주니 산행은
평상시 보다 오히려 덜 힘들었다.
가랑비에 나보다 젖는 배낭이 더 걱정스러워 설악 폭포 위 쉼터에서 방수포를 씌웠다.
대청봉 가까이에서 날이 깨어났다.
안개는 자욱하고 하늘은 여전히 찌푸렸지만 신기하게도 대청봉 수목 군이 관목 숲으로
바뀌는 마지막 오름 사면에서 단풍들이 그 붉은 손을 흔들어 줄 때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엄청난 바람의 기운과 추위가 느껴지자 사람들은 서둘러 파카를 걸쳤는데 나는 입을 파카도
없었다.
우비와 바람막이 하나 가져 왔지만 아직은 견딜만 했다.
회춘하는 무릉객!
흠뻑 비를 맞고도 반팔인 채로 바람 부는 대청봉에 다시 올랐다
“ 설악 신령님 안뇽?”
“ 무릉객 오늘 여기 다시 왔습니다..”
울컥한 반가움인지 시름에 잠긴 설악은 말이 없다.
6시 20분
쉬엄쉬엄 움직였어도 3시간 20분 걸려 정확히 해 뜨는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것이다.
아무런 조망도 없이 대청봉은 완전 안개에 쌓여 있고 그리 많지 않은 산님들이 사진을
찍느라 분주하다.
잠시 갈등이 있었다.
조망도 없고 비와서 등로가 미끄러운 오늘 같은 날에 화채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근데 안개 자욱한 공룡능선도 제 작년에도 타 봤고 비에 젖은 천불동도 몇 번이나 흘러 내렸다.
그 길들은 눈감고도 훤하다.
오는 난 화채를 만나러 왔고 비가 그쳤으니 혹시 태양 빛이라도 비춘다면 운무와 단풍이
어우러진 멋진 설악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위험할 수도 있지만 장미 꽃을 꺾으려면 가시에 찔리는 고통쯤은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예정대로 진군의 나팔을 불었다.
거꾸로 내려서는 나를 의아하게 생각하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올라가고 나는 아래 쪽 화채
비등으로 스며 들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가지 않았던 길의 고행은 그 한 발자국으로 그렇게 예정되었던 것이다.
화채능선
화채능선은 벌써 현란하다 ··
관목들 사이로 난 금지된 구역의 작은 오솔길이라
걷다 보면 날 잡아채는 가지들이 너무 많다·
녀석들은 참 많이도 외로웠던 모양이다 ‥
그래서 어쩌면 오늘 우리는 통 할지도 모르겠다 ··
너는 사람이 그립고
나는 붉게 물들어가는 너의 외로움이 그리웠으니 ··
빗물에 젖은 너희들은 나도 같이 젖으라 했다 ‥
하늘은 말라가고 먹 구름은 조금씩 흘러갔지만
나무가 받아 놓은 빗물은 내 머리며 어깨를 적시고
팬티와 바지까지 적시며 흘러 내려 내 등산화 속까지 스며들었다 ··
가까이 앉은 새도 날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다람쥐도 곁에 다가와 재롱을 떨다 갔다.
나는 산길과 나무와 같이 젖고
내 몸에서는 세속의 냄새가 남김 없이 탈취되었으므로
"여긴 산이 험해서 우리 뒷산에 사는 고라니며 멧돼지도 살지 않는 모양이다 ··
그 녀석들도 물에 빠진 생쥐처럼 젖어버린 나를 보면 불쌍해서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었다· ··
나는 나무에 걸린 빗물을 온몸으로 받아서 다시 땅으로 돌려 보냈다 ‥
내 몸에서는 단풍 물이 뚝뚝 떨어지고 나의 그리운 가을은
그렇게 흥건히 젖은 채 축축히 해갈되고 있었다 ···
.
워낙 그 길이 안전시설 이라고는 하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길이었기에
풍경을 점점 꿈꾸듯 아름다워지고 길은 상대적으로 자꾸 위험해 졌다 ‥
여긴 아무 소리 들리지 않는다.
가끔 날아가는 새와 다람쥐가 지나가고 나면 그 길에서 살아 움직이는 건
나 밖에 없다.
가랑비는 아닌 듯한 미세한 안개 입자가 마치 공기처럼 묵상하는 대지 위를 떠돌았다·
어느 길 위에서
자욱한 안개가 불어가는 바람에 수 차례 흩어져 가고
내설악의 조망을 허락하는 능선 힌 켠에서 파란 히늘이 열리고
휘날리는 바람에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다··
“흐미 ~~ 이게 무신 조화여?”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이렇게 조금씩 하늘이 맑아지면서 멋진 화채능선의 기대가 펄펄 살아 났다.
땅과 하늘과 구름과 태양이 조화로워야만 빚어낼 수 있는 천상의 풍경
붉은 단풍과 피란하늘 그리고 비 온 후의 앍고 깨끗한 설악 세상에 눈부신 태양이
쏟이지면 천상의 영광이 지상에 임하고 그 노랫소리가 세상에 울려 퍼지려니 ‥
능선 바위전망대에서 안개가 일거에 걷히고 화채의 내밀한 숲 속
숨막히게 아름다운 풍경이 순식간에 드러났다 ·
나뭇잎들 사이로 보이는 마가목 열매는 붉디 붉은 데 차가운 바람이 산 안개를
깊은 골짜기로 이리저리 휘몰고 ·
몽환의 구름에 둘러 쌓여 있는 기암과 봉우리 사이로 정솔과 단풍은 깊어가는
가을의 수심에 먼저 젖는다 ·
운무는 마치 갈갈이 정해져 있다는 듯 능선 한쪽에서 서로 만나 능선의 반을 하얗게 가린 채
아직 푸르르이 더 짙은 내 가는 길 산등성이를 넘어가고 있다 ·
“이찌할거나 !
이 기막힌 풍경을 어찌할꺼나 !
이 깊은 설악의 가을을 어찌할꺼나 !”
그 풍경 하나로 거친 길의 긴장과 비등에 대한 두려움은 씻은듯이 사라졌다·
이 풍경 하나로도 오늘 위험을 무릎 쓰고 겁 없이 혼자 화채에 뛰어든 무모함까지
정당화되었다·
아름답고 사랑스런 설악의 가을
그리운 고혹의 여인
그리운 가슴 히나로 어둠을 뚫고 불원처리 달려온 그 사랑은
그렇게 애틋하게 서로를 감싸 안았다 ‥
나는 가대에 충만하고 다시 찾은 설악의 사랑에 한껏 고무되었다·
긴장과 두려움은 씻은 듯이 사라지고 난 내 옛 사랑이 보여줄 감동에 가슴이
벅차 올랐다 ··
"어쩌면 오늘 최고의 화채를 만날지도 모른다‥"
나무가 받아낸 빗물이 계속 옷 속으로 스며들어 등산화 속에서 개구리 울음 소리가
나도 좋았다 ··
가끔 불어가는 바람이 비에 젖은 내 몸을 차갑게 얼리고 지나가도 좋았다·
내 가슴은 뜨겁고 한없이 새로운 세상의 기대감에 부풀어 오르고 있었으므로 ··
그 멋진 회채의 산상공연을 뒤로하고 고도가 조금씩 높아지면서 등로는 산 안개가
두껍게 들어 찼다 ·
가끔 보이는 숲 사이 하늘은 자꾸 잿빛으로 어두워 가고
맑게 드러나던 내설악의 산릉들은 가득한 운무에 묻혀 버렸다 ·
산 안개에 쌓인 숲의 나무들 이외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길이 한 동안 계속되었다.
만경대 갈림길 전 봉우리아래서 빗 방울이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
불길힌 생각들이 고갯를 들었다 ‥
일단 허기가 동하니 혹시 모를 비에 대비해서 배부터 채워야 할 것 같아서
봉우리로 올라갔는데 사위는 자욱한 운무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여긴 정말 멋진 조망처 일 텐데 !”
전을 먹고 양파와 볶아 온 오뎅도 먹고 빵과 사과도 하나씩 먹었다 ··
빗방울이 떨어지는 바위 위에 앉아서 흠뻑 젖은 몸 위로 가느다란 바람이 던지는
위로는 오히려 알지 못할 불안과 착잡함을 몰고 왔다 ‥
"설악 신령님이 알아서 해주시것제 !”
그리고 만경봉 갈림길에서 빗방울이 굵어 졌다 ‥
등로는 자욱한 산안개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
선답자의 Gpx 파일은 다운받아 왔지만 이렇게 비가 오면 얘기가 달라진다 ··
어디에서나 길을 잃을 수 있고 어디에서나 미끄러져 큰 사고를 당할 수도 있다.
가파르게 솟구치거나 하강하는 물러진 등로에서는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돌들이 쏟아져
내리고 물을 잔뜩 머금은 바위와 나무등걸은 기름을 바른 것처럼 미끄럽다 ··
원래 계획했던 루트는 만경대 찍고 되돌아 나가서 회채봉과 칠성봉을 거쳐 권금성이나
토왕성 폭포로 내려서는 것이다 ··
일단 만경대 쪽 갈림 길로 접어 들었는데 빗줄기가 거세지자 그냥 만경대를 거쳐 천불동
양폭으로 탈출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만경대에서 양폭 하산 길도 만만치 않은 낙차를 가진 험한 길이지만 예정된 길로 되돌아
가면 오늘처럼 비오는 날은 너무 멀고 위험할 것이다..
권금성이나 토왕성 폭포 쪽 길은 15년도 넘어서 그 위험을 전혀 예상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비는 그칠 기미가 없다..
문제는 만경대 쪽 하산 길도 금지구역의 비등길이라 사람의 왕래가 없고 안전시설이
전무하다
예전의 기억 또한 희미하고 트랙 파일도 없어서 제대로 길을 찾을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하지만 다른 뽀족한 방법이 없다·
설악이 이렇게 젖고 있으니….
.
일단 만경대까지 진행 해 보기로 했다.
파노라마치는 설악 풍경의 웅장한 조망대 만경대 바윗 길은 우울하고 음산했다.
아래가 내려다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에서는 거센 바람이 솟구치며 산 안개를
흩어 놓았다.
그 아찔한 절벽 장성 길을 내 일찍이 알고 있으니 눈에 보이지 않는 양쪽 계곡의 회색 빛
심연이 오히려 공포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 절벽 난간을 걸어가면서 멋진 화채에 대한 기대감은 흩날리는 안개바람에 순식간에
사라져 갔다.
얼마 전 까지도 아름다운 설악의 기대에 들뜬 마음이 순식간에 고립감과 두려움으로
뒤 바꾸었다.
다시 능선으로 되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앞도 잘 보이지 않는 대찬 가을비기 계속 퍼붓는 바람에 이미 전의는 상실했다.
지도도 없고 선답자의 루트트랙도 없다.
그 옛날기억을 더듬어 하산로를 찾아 내려야 하는데 하산로가 어디쯤이었는지도
도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다행이 두려움을 안고 절벽길을 걸어 만경대의 마지막 봉우리에 도착하니 그 아래로
비에젖은 표지기가 몇 개 매달려 있는 하산 루트가 있었다.
그 만경대의 끝에서 계속 내리는 비와 세찬 안개바람을 맞으며 한참 서 있었다.
“ 무릉객 오늘은 그냥 내러가라 “
마음의 동요가 있을 수 없도록 설악 신령님은 오늘 내 갈 길에 그렇게 쐐기를 박고 계셨다.
큰 산의 두려움이 눈덩이처럼 커지지 동행의 필요성이 절절해지는 그런 길이었다.
수 년 전 길에 대한 아무런 걱정 없이 사계절님의 뒤를 따라 내리며 혼곤히 설악의 가을에
젖던 그 길에 대한 정보는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단지 뇌리에 아직 남아 있는 그 날 여행길의 기억은
너무도 아름다운 설악의 가을을 만났다는 것과 다만 가슴을 흔드는 풍경을 만나기 위해
그것에 걸 맞는 고통과 땀의 대가를 지불했었다는 것 뿐
회사직원의 전화와 관리소 앞에 새워둔 차 때문에 온 몇 통의 애꿏은 전화를 받느라
밧데리만 소모되고 핸드폰은 축축히 젖었다.
웬만큼 일이 마무리되고 나자 만일을 생각해서 핸드폰도 끄고 젖지 않도록 배낭
깊숙히 밀어 넣었다.·
바탈은 가파르고 길은 너무 미끄러웠다.
길의 흔적은 희미 했고 올 여름 비가 많이 왔었는지 군데 군데 뿌리 뽑힌 나무와 토사가
흘러내린 곳이 많이 보였다.
가끔 보이는 낡은 표지기와 오랫동안 산행을 통해 몸에 밴 감각에 의지한 하산 길이었다.
어느 곳에서는 발을 디딘 큰 바위가 힘 없이 허물어 내리고 비탈에서 잡은 물먹은 나무는
밑둥이 힘없이 빠지기도 했다
긴가민가한 희미한 길을 따라 내리다가 길이 낭떠러지에 의해 막아선 곳에서는 낭패감
과 실망감 속에 가득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오랫동안 표지기도 보지 못했고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채워졌는지 도통 몰라 한동안
우왕좌왕 했다.
.
오늘은 단지 비로 인해 완전 한심하고 무모하고 무능한 무릉객으로 전락했다..
차근 차근 길을 되짚어 리본이 있는 곳까지 진행해도 별다를 갈림길이 없어 되돌아와서
수림이 쌓인 절벽을 휘돌아 가는 길은 다시 찾아 냈다.
빗물과 같이 비탈을 흘러내리기를 반복하다가 거대한 바위로 한 굽이 능선을 휘돌아
계곡으로 접어들자 길은 계곡을 따라 흔적이 제법 뚜렷해 지면서 한 동안 완만한 흐름을
유지했다.
길은 다시 계곡의 너덜 속으로 녹아 들었다.
길이 희미해 지고 표지기가 보이지 않아도 계곡을 따라 가는 길 말고는 어디에도 길이
있을 만한 곳은 없어 감각의 비상등이 작동하지는 않았다..
등로는 계곡 아래로 다시 가파르게 하강을 계속했다.
그래도 길을 잃지 않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얼마간 가파르게 내려가다가 앞 쪽에 보이는 산세와 느낌으로 천불동 양폭에 다가왔음을
직감했다.
올바른 하산길 이었고 이젠 무사히 내려왔다는 안도감에 마음이 다소 편안해질 즈음에
가장 큰 난관에 봉착했다.
정말 내려가기 힘든 바위 길
한 켠에 달려 있었을 로프는 윗부분이 싺뚝 끊어져 있다.
통제를 막으려는 누군가 일부러 끊어 놓은 것이다.
비가 오지 않아도 힘들 판에 비는 멈출 기미가 없는데 ...
그 길을 굴러 떨어지면 죽지는 않겠지만 다리가 부러지거나 머리가 깨지거나 어디
한 군데는 절딴 날 수 밖에 없는 위험한 곳이었다.
막판에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맑은 날이면 어떻게든 바위를 내려가 보겠지만 빗물에 미끄러운 바위를 내려간다는 건
만일의 경우 그냥 굴러도 이의가 없다는 얘기라 쉽사리 움직여 지지 않는다.
알무리 높은 산이라도 정상으로 가는 길이 있다지만 정말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설악에 들 때는 로프 한 줄은 꼭 가지고 가라는 선배의 충고가 그리 통절했다.
내가 훗날 다시 자유로워지면 등산학교는 꼭 수료 하리라
험한 비탈이지만 그래도 옆으로 조금 내려가서 비위를 건너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
비탈 길을 진행하는데 발을 디딘 제법 큰 돌이 굉음을 울리며 계곡아래로 쳐박히는 소리에
완전 혼비 백산 했다.
혹시 천불동 아래로 굴러 떨어져 사람이 다치기라도 할 까봐 완전 넋이 나가고 간담이
서늘했다.
하여간 우여곡절을 겪으며 난 떨어지지 않고 무사히 바위를 내려섰다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이 감행한 도박이었다.
해서는 안될 너무 무모하고 위험한 시도였지만 마냥 그러고 있을 수도 없어서
감수할 수 밖에 없었던 위험이었다..
무사히 내려서고 나서도 모골이 송연하고 한동안 두방망이치는 가슴은 쉽사리 진정되지
낳았다.
건너편에 양폭 산장이 보이는 곳에서 다시 한 번 난감한 바윗길과 씨름을 하고서야
나는 간신히 그리고 무사히 천불동으로 내려섰다.
양폭은 만신창이었다.
계곡은 큰 물에 흽쓸리고 철제 난간과 데크들은 다 무너져 내렸다.
그 옛날 태풍 매미 때와 같은 처참한 모습이었다.
비로소 안도감에 젖기는 했지만 나 역시 처참한 하루였다.
고통과 인내를 통하지 않고는 다가갈 수 없는 아름다운 세상이지만
가슴을 흔드는 그리움과 뜨거운 열정 하나로 떠난 길 끝에서 늘 가슴 저린 감동과
아름다운 상념을 선물했던 설악이 내게 보여준 살기등등한 세상은 충격이었다
설악이 내게 보낸 엄중한 경고였다.
어쩌면 설악 산신령님이 에정된 길을 바꾸아 큰 사고를 모며하게 해주신 것일지도 모른다.
다시 분별력 있는 호산자로 돌아가야함을 가슴 깊이 깨달았던 산행이었다.
비가 계속 내려는 천불동을 내려가면서도 알탕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에 젖기만 했으면 다행인데 계곡에서 미끄러지거나 흙더미에 주저앉아 바지가
너무 지저분했다..
천불동에서 택시를 타야 하는데 힘뻑 젖은 몰골에 바지까지 더러우니 택시를
타기도 미안했다.
비가 멈추지 않아 최대한 설악동 가까이에서 알탕을 하려 하다 보니 기회를 놓쳤다.
두어 번 물가로 내려 갔는데 지대가 높아 너무 위험했다.
하는 수 없이 설악동까지 그대로 진행해서 택시들이 기다리는 가게 앞에서 수건으로
바지의 흙과 몸의 물기를 씯어 내고 새 우비를 꺼내어 입고 택시를 탔다.
4만 6천원 정도 나올 거라는데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 옥룡설산 이후에 내가 이런 극강의 공포를 느끼기는 처음이었고 무사히
산행을 마친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두 번이나 쏟아지는 졸음으로 두 번 씩이나 길가에 차를 세우고
30여분씩 잠을 잤다..
결국 원주발 대전행 3시 30분 차는 놓치고 5시 30분 차로 대전으로 돌아왔다.
진한 아쉬움이 남았다.
가슴에 비수를 꽂고 냉담하게 돌아서 빗 속으로 떠났던 가을 여인이 야속했지만
무모하고 분별없는 나의 거친 사랑 또한 상응한 대가를 치뤄야 했다.
날씨 때문에 문제가 커진거지만 악천우를 대비한 준비가 소월 했던 건 베테랑 산꾼 답지
않은 무모함이었다.
만일을 대비한 탈출로의 GPX 파일이나 비상로프들을 준비하지 못한 건 정말 치명적이었다.
그 만큼의 마음의 고통으로 날 용서해 주신 설악 신령님께 감사하는 마음이다.
내년에는 산 친구와 함께 가던지 날 좋은 날 산악회 차를 타고 가서 홀로 그 길을 다시
걷고 싶다.
구름 같은 많은 날들이 남아 있으니 다시 가는 건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다만 화채를 처음 걸어던 그 날의 기억이 아직 생생한 데 벌써 15년이 흘렀고
화채와 만경대를 걸었던 그 날이 고작 5~6년 밖에 되니 않은 줄 알았는데 벌써
9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때 이후로부터 지금까지도 줄곧 금지구역으로 묶였으니 그렇겠지만 그렇게
세월이 빠르다.
무릉객 !
내년에는 치밀하게 준비하고 더 성숙한 사랑의 모습으로 잊지 못할 가을 여인을
자시 만나러 자자..
2021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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