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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설악산 깊은 곳

 

 

참으로 깊고 장대한 세상이다.

터질듯한 심장과, 거친 호흡 서말의 땀을 통행세로 내지 않고는 감히 넘볼 수 없는

새와 신선의 나라.

우리는 그 아름다움에 가까이 가기 위해 흔들리는 버스에서 잠을 설쳐야 하고

이마에 반디의 등을 켜지도 못한 채 70도 경사의 비탈을 감각으로 쳐 올라야 하고

몇 번 길을 잃어야 하고 겁먹은 개처럼 꽁지를 내린 채 거미처럼 바위를 기어야 한다.

 

거기 그렇게 거칠고 아름다운 세상이 있다.

우리가 감으로써 비로소 길이 되고 몇 군데는 찔리고 찢겨야 비로소 만날 수 있는 그런

풍경이 거기 있다.

 

바위 난간에 기댄 청솔은 바람 길에서 푸르고

가부좌 한 채 모진 세월의 침식과 풍화를 묵묵히 견딘 바위벽은 억겁의 깨우침을 설파한다.

그 곳에 서면 심대한 세상의 고요와 침묵은 천둥 같은 소리로 가슴을 후려 치고.

세사의 시름과 욕심을 비워낸 빈 마음은 대자연의 섭리와 맑은 세상에 공명한다.

그렇게 큰 산의 가슴은 우리 생각 보다 더 넓고

그 가슴에 품은 생각은 더 깊다.

 

 

난 대자연 속을 날아든 한 마리 나비

오늘의 영광과 행복을 간직한 채 내일 찬 바람에 홀연히 사라져 갈 한 철 나비가

겁을 이어 온 태고의 장엄함을 바라본다

 

단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한숨과 탄성을 올리는 거.

그건 아침 햇살과 능선의 바람에 홀연히 사라져갈 한 방울 이슬이 블멸의 자연에게 보내는

경의와 찬사다

 

그 걸출한 대자연도 아름답지만

영생의 세상을 나르는 나비의 힘겨운 날개짓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내일 찬바람에 떠나 갈 늙은 나비의 노래 !

머지않아 메아리 조차 남지 않을 그 짧지만 구성진 삶의 노래 또한 참으로 애틋하고

아름답지 않은가?

 

 

3년전 큰형제봉과 작은 형제봉의 내밀한 설악세상을 방황하면서

다시는 오고 싶지 않고 올 일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엊그제 설악 깊은 곳으로 떠나는 청백 마차의 소문을 바람결에 들었다.

 

! 나의 산은 뼈아픈 중독 이었고

내게 설악은 벗어날 수 없는 고혹의 여인

팜므파탈의 치명적인 유혹이었다.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진 인간들의 들뜬 분위기에 휩쓸려 도시에

칩거하고 친구들과 야산의 언저리를 배회 하다보니 체중이 79kg 까지 불었다.

 

워쩌?

무릉객이란 무릇 세상의 아름다운 무릉도원을 떠 도는 방랑가객 아니여?

여행의 값진 의미란 다시 돌아가서 잘 사는 것인데

이성을 잃은 무모한 사랑으로 불귀의 객이되어 설악을 떠돌 수야 없지 않은가?

 

설악의 가슴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큰놈이 왜 그렇게 말랐냐고 했다.

난 설악으로 가기 위해 2주만에 4kg 의 체중을 덜어 냈다.

그 거칠고 심란한 세상을 돼지고기 일곱 근을 지고 갈 수는 없어서

 

그래도 다행이었다. 그 거친 길 동행이 있으니

오래 함께 산에서 구성진 삶의 노래를 함께 불렀던 귀연 산친구들…..

산 선배이자 몽블랑 여행길 동행이었던 사계절님

후배 산친구 허공달과 큰놈

 

36명 모두 산행 참가자인줄 알았더니 신선의 땅 입국 희망자는 14명 이었다.

 

설악으로 가는 길

오랜만에 느껴 보는 흔들리는 버스의 익숙한 진동 이었다.

내 멋진 산행의 숨은 공로자는 단연코 머리와 등의 1/2 기대면  빠져들 수

있는 절세 신공의 슬리핑, 그리고 어디에 내놔도 째이지 않는 위대한 에피타이트

 

코로나 이후 완전 신분상승이여 !

48인승 버스로 오가던 그 길을 36인승 리무진을 타고 가다니?

우등 고속버스 같은 세 줄 좌석에 홀로 창가 좌석을 차지하고 설악으로 가는 버스는 더

없이 안락했다.

버스 안 불을 끄고 나서 왕왕거리는 마이크 소리에 잠을 깼는데 불은 켜 있고 시간은 세

시간이 흘렀다.

근데 난 나의 비장의 무기를  사용하여 설악으로의 순간 이동에는 성공했지만 뒤숭숭한

꿈 탓에 뒷맛이  영 개운 하지 않다.

회장이하 임원진들 운집한 가운데 관리부문 전략을 발표하는데 자료검토도 하지 않아서

브리핑 내내 버벅대며 진땀을 빼다가 갑자기 깨어난 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는 했는데 설악의 깊은 곳으로 가는 긴장감이 무의식 속에서 표출된 것

같다.

ㅎㅎ 우야튼 동네 산에서 놀던 체력으로 전국체전 출전하는 거니 !

 

 

새벽 세시에 설악휴게소에 내려서 자동차 헤트라이트 불 빛 아래서 국밥 두 그릇을 비웠다.

감개무량하네!”

이것이 코로나에 게 빼앗겼던 산꾼의 일상회복이자 다시 찾아야 할 내 삶의 방식 아닌가?..

 

권금성가는 길

후렛쉬를 가져 오지 않아서 걱정 했는데 있는 후렛쉬도 꺼야 했다.

우린 지금 가지 말라는 금지구역의 길을 가는 거다.

1시간여 시종 70도 경사의 가파른 길을 흡사 무장공비 인 듯 쉬지 않고 올라 가는 데

처음 다리 쉼을 하는 곳에서 희끄므레한 새벽빛에 길의 윤곽이 조금씩 눈에 들어 온다..

 

등로의 형태가 조금씩 분간되면서 길은 비윗 길로 바뀌었다.

네발 거미처럼 바위에 찰싹 붙어서 더 가팔라진 경사 길을 정신 없이 오르 길 또 수십 여분

하다 보니 어느덧 동편 하늘에도 조금씩 붉은 여명을 뜬다..

잘 하면 오늘 권금성의 일출도 볼 수 있것네

 

산대장의 뒤 5~6 번 째에서 움직였는데 느닺없이 새벽의 적막을 가르며 앞 쪽으로부터

외침 소리가 들린다.

이 길이 아니여 !”

허걱 !

 

그 한마디에

권금성의 일출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던 약속의 땅의 희망도 모두 물 건너 갔다.

우린 다시 이 길로 내려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 했던 위험한 그 길을 되 짚어

내려 가야 했다.

내려가는 길은 더 위험 하고

그리고 별로 의식하지 않고 올라 온 그 길은 생각보다 훨씬 멀고 길었다.

초장 알바 너무 찐하게 한 거 아녀?

힘이 더 쭉 빠지는 건 지금 까지의 올랐던 고도를 반납하고 내려와서 다시 올라 가야

한다는 거.

 

계곡으로 내려와 권금성으로 이어지는 고색 창연한 돌 계단을 찾아 내고

80도 경사의 그 길을 따랄 다시 오랜 시간을 기어서 작은 암자에 올랐다.

 

그 곳이 설악 깊은 곳으로 가는 입국 심사대 였다.

그 곳에서 신선의 땅 입국 비자와 여권을 확인 받고 우린 비로소 신의 세상으로

들어 섰다.

 

어디를 보아도 파노라마 치는 푸른 산 그리고 파란 하늘

멀리 우리가 가야할 토왕성 폭포에서는 세찬 물줄기가 흐르고

북으로는 울산바위가 한 눈에 들어 온다.

암자의 기억이 없는 걸 보면 그 전에는 이 길로 하산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권금성

케이블카 승강장을 거쳐 권금성에 올랐다.

그 전에 케이블카로 한 번 오르긴 했지만

19년 전 2003년 가을에 백두대간을 마무리한 산친구들과 걸어서 올랐던 화채능선 종주의

마지막 봉우리가 바로 권금성이었다.

그날 오색으로부터 대청봉에 올랐다가 화채능선을 따라 화채봉과 칠성봉을 거쳐 권금성

으로 흘러 내리며 대한민국 아름다운 산하의 아름다운 풍경에 넋이 나가 힘든 줄도 몰랐다...

그 절절한 감동의 여운은 참으로 오래도록 내 가슴에 남았다.

그 이후로 케이블카 타고 한 번 더 올랐으니 내 생에 통상 4번 올랐던 곳이다.

 

압도하는 암릉미

푸른 수림을 두른 바위가 병풍처럼 버티고 산 아래 멋진 조망을 굽어 보는 권금성은

집채 같은 바위의 비탈사면에 다시 거대한 암봉을 보듬은 채 새털구름 번지는 파란

하늘아래 태산처럼 침묵하고 있다.

 

다시 오겠지만

내 발자국이 남아 있는 이 길 위에서 머지 않아 나의 흔적이 지워질 것이다.

체력보다 열정이 먼저 식어 버리는 날에는 설악의 추억만으로 살아야 한다.

 

늘 그렇듯이 내가 떠나기만 하면 나의 일정에 맞추어 미답의 설악은 항상 놀라운 세상을

펼쳐주었고 그 혹독하고 지난한 시간의 끝에서는 늘 감동과 기쁨이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만난 권금성은 그렇게 설레임 속에서 새날의 기대에 부풀게 했다.

 

 

칠성봉 가는 길

신의 나라 .

칠성봉은 지금 까지 올라 온 높이와 두 배를 다시 오르고 걸었던 길이의 두 배를

다시 기어야 오를 수 있다.

그 옛날 흘러 간 길도 있겠지만 세월과 유한한 인간이 기억이 지워버린 그 길 위에서

나는 다시 되찾은 거친 야생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순례자의 고뇌와 한줌의 땀을

공양하며 기쁨과 감동으로 그 길을 걸었다.

 

어느 바위 절벽에서 참담한 두려움과 다시 대면했다.

천 길 낭떠러지

거기 떨어지면 찾으러 내려가기도 힘들 것 같다.

젊은 친구들도, 여자들도 잘 내려 가는데

확실히 예전 보다 몸의 유연성이 떨어지다 보니 아찔한 고도감에 따른 공포도

증식된다.

몸에 힘이 들어 가서 자세가 엉거주춤해지고 손잡을 곳과 발 디딜 곳을 가늠하기가

어렵다.

한 발 앞서 내려가 절벽 한 켠에서 자세를 잡아주던 산대장이 무릎을 꿇지말라고 했지만

나는 추락의 공포와 가득한 두려움에 설악 산신령께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다.

내 무릎에는 신선의 땅 내방을 증거하는 신의 화인이 영광의 상처로 남았다.

 

뒤틀리며 돌아 가던 산 길이었는데 두 사람이 사라졌다.

등로는 계곡 아래로 이어지는 데 능선 위로도 길이 있고 그 길이 결국을 만나게

될 거라며 2명이 능선 길로 올랐던 것이다.

실종 !

소리쳐 불러도 메아리만 돌아오고 전화도 터지지 않는다.

속속 사람들이 모여드는 데 여기저기서 웅성임이 인다.

한 명의 여자와 카메라맨이 사라졌다고

다른 누군가를 지칭하는 줄 알았더니 그 실종 카메라맨은 바로 나였다.

헐헐~

대포 카메라를 가져온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사람들이 날 그렇게 부른 거다.

나 여기 있슈 !”

실종된 한 남자는 나처럼 청백에 자주 오지 않는 비 회원인 모양이다..

동행들은 산길에서 어떻게 할지를 몰라 우왕좌왕 했다.

뒤늦게 도착한 산대장이 두 사람이 떨어지면 문제가 커지니 그들이 간 길을 따라

다 같이 가자고 한다.

일부는 산대장을 따라 올라 가는데 몇 명의 사람들이 그냥 정규 등로를 따라 가자고

움직이지 않았다.

사람들은 아침에 대찬 알바를 해보았기에 미심쩍은 길에 대한 모험을 하지 않으려

했다.

반란이었다.

사계절님은 산대장을 따랐고 나는 반란군의 편에 남았다.

능선 위에 길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무리 중에는 그 길을 걸어본 사람이나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비록 좀더 거리가 멀더라도 길의 흔적이 뚜렷한 쪽을 따르는 것이 맞을 것

같았다.

실종된 그 둘은 어쩌면 그 능선 길을 걸어보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과의 차이는 벌써 많이 벌어졌기에 따라잡는 다는 보장도 없다.

잘못하면 많은 사람들이  길 없는 비등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자 산행대장이 볼멘소리를 하며 일행들을 이끌고 되돌아 왔다.

산에서 산대장의 말을 안 들으면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거냐고?”

두 패로 갈리면 더 어려운 상황이 만들어 질 수도 있으니 산대장의 또 다른 고뇌에 찬

결단 이었다.

하지만 옳은 결정이었다.

 

그래 !

살아보니 홀가분하고 마음 편한 게 최고다 .

사업가 보다는 월급쟁이가 마음은 더 편하고

리더 보다는 평회원이 차라리 속 편하다.

나도 산 대장을 많이 해보았지만 리더는 같이 걷되 등짐보다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이 있어

더 힘든 산행을 해야 한다.

하지만 하고 싶지 않다고 안하고 좋은 것만 하면서 살 수가 있나?

시대의 소명의 있고, 많은 사람들의 여망이 있고 그 자리의 무게를 감당할 능력과 자질이

있어야 한다.

더 나은 조직을 위해 힘들어도 누군가는 그 소명과 책임을 짊어 져야 한다.

 

등로는 바닥으로 내려 설 것 같은 기세로 내리 꽂다가 계곡아래서 비로소 하강을 멈추었다.

아직은 물이 많이 남았지만 차가운 계곡수를 빈 병에 담았다.

 

그 깊은 산자락에 텐트를 치고 비박을 하는 40대 중반의 부부를 만났다.

둘다 훤출한 키와 건장한 체구를 가진 매력적인 모습이다.

여자는 늘씬한 몸매에 연예인을 뺨치는 외모다.

바라 보는 곳과 좋아하는 세상이 같은 부부들!

산꾼에게 이보다 더 인상적인 부부의 모습이 또 있을까?

텐트를 정리하며 남산만한 배낭을 꾸리는 데 에베레스트라도 오를 것 같은

건강하고 당당한 두 남녀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칠성봉으로 길게 이어지는 능선

날은 무서울 기세로 뜨거워졌고 등로가 다시 가파른 오름길로 바뀌어지니 힘이

배로 들었다.

멋들어진 노송들이 도열한 그 길은 어마무시한 암괴인 칠성봉 바위 리지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 옛날 하와이처럼 땡 빛이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는 등이 따갑고 바위벽 그늘 아래는

시원하다.

 

오르는 중에 실종된 2명이 건너편 능선에서 소리쳤다.

동행하던 여자산님이  일행임을 확인시켜 주었다.

~~ 쌀아 있었네 !

한 참 앞서서 진행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바닥 까지 떨어졌다가 올라 온 우리와 위도가

비슷하다.

아무튼 소재와 위치를 알았으니 다행스럽다..

우린 그들 때문에 아래서 오랫동안 지체 했는데 아직도 그쯤 온 걸 보면 능선 길의

난이도가 만만치 않았고 그들이 우리 보다 훨씬 힘들었던 거다.

 

절벽 아래서 잠시 휴식을 하고 내처 칠성봉 바위 능선을 오르는 데 절벽 난간에

공터가 있고 그늘진 그 곳에 몇몇 산님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후련한 조망에 고원의 시원한 바람이 천혜의 쉼터다.

우리 팀들이 속속 합류하고 사계절님도 올라 왔다.

모두들 오름 길에 힘들고 지쳐서 식사를 할 엄두를 못내는 데 나와 사계절님은 식단을 풀었다.

지급 받은 쌀밥과 김에 각자 집에서 가져온 배추김치와 열무김치.

창 밖으로  이 세상 어느 레스또랑의 풍경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를 바라보며

들창가의 시원한 바람을 누리며, 고원의 식사를 즐긴다

소박하지만 영혼의 순례자가 누리는 호사스런 만찬이었다.

 

대부분의 우리 일행들은 그 곳에서 간식을 먹고 한참을 휴식하다 길을 잡았다.

2/3는 산대장을 따라 계곡 길을 따랐고

나는 감자님과 몇몇 일행을 따라 바위벽을 기어 올랐다.

아까 올라 올 때 다른 팀들이 그 길을 내려오는 걸 보았고 일행 중 한 명이 이 길이

훨씬 편하고 빠르다고 확신에 찬 얘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한 편으로는  쫄깃해지는 심장과 벌렁거리는 간의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첩성과 흡착력이 약해진 늙은 거미의 손과 발을 한탄하며 어렵게

진행했지만 난 위험한 그 길을 무사히 기어 올라 다른 방향을 잡은 일행들보다 한 참

먼저 칠성봉 용골마루에 올랐다.

그리고 역경을 딪고 약속의 땅에 힘겹게 도달한 실종된 두 사람을 만났다.

 

더 오를 곳이 없다.

참으로 조화롭고 신비로운 세상 !

발아래 노적봉을 가운데 두고 장쾌한 설악 세상이 웅장하게 파노라마 친다.

난 푸른 하늘을 등에 업고 그 경이로운 세상을 활공하는 한 마리 야생의 독수리 였다.

젊은 가슴에서 잠자던  야생의 본능은 늙어 가는 방랑객의 가슴 속에서 다시 꿈틀거리며

깨어났다

힘겹고 혹독한 세상이지만 대가를 치를 가치가 충분했다.

그래서 그 거친 아름다움의 의미는 더 각별했고 난 가슴을 흔드는 이런 풍경으로 인해

중독처럼 그녀의 고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 곳에서 6월의 마른 하늘은 파란 빛으로 추임새를 넣었고 메말라 가는 가슴은 다시

부풀어 올랐다.

 

옴파로스! “

오늘 내가 서 있는 여기가 세상의 중심이다.

아니 내가 어디에 서 있건 내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었다..

메멘토 모리!”

인간은 언젠가는 죽는다.

그 날까지 난 내 인생의 주인이고 내 제국의 지배자며, 제국의 번영과 행복은

내 어깨에 달려 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 놓을 것이라 !

하지만 그것이 나를 영원한 평화와 안식의 땅으로 인도할지니….

 

 

토왕폭

우리의 샴발라 !

길은 한참 다시 뒤틀리다가 비로소 토왕 폭 상단으로 내려섰다.

그 길을 찾지 못해 감히 범접 할 수 없었던 신들의 계곡이다.

1000고지를 흘러가는 바위 계곡 길은 신비로움이 가득했다

전부 돌로 이루어진 계곡에는 맑은 물이 넘쳐 흐르고 군데 군데 웅덩이도 있다.

그 계곡 물이 토왕폭을 통해 신선의 계곡에서 인간의 땅으로 떨어진다.

그 끝단이 토왕성 폭포여서 물과 함께 떨어져 내라면 아래까지 한나절은 걸릴 것

같은데 마치 숲에 가린 나무를 볼 수 없는 것처럼 그 위험한 절벽 난간에서는

아래를 내려다 볼 수가 없다.

 

거기 수 많은 순례자의 무덤들이 있다.

천신만고 끝에 신들의 땅에 도착했으나 신으로부터 노여움을 샀던 사람들 ….

 

우린 그 계곡의 끝자락에서 배낭을 내렸다.

식사를 하지 않은 일행들은 점심을 준비하고

나와 사계절님은 웃통을 벗고 계곡수에 서로의 등멱을 해주었다.

정수리까지 날카롭게 파고들어 골수를 뒤흔드는 강렬한 차가움이 일었다.

무더위는 머리를 풀고 순식간에 훨훨 날아 갔지만

그래도 해갈되지 않는 아쉬움이 남았다.

 

홀로 일행에서 떨어져서 연어처럼 계곡을 거슬러 올라 갔다.

나처럼 일행에서 먼저 떨어져 나간 산님 한 분이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옷을 훌훌 벗어 던지고 물에 뛰어들고 있었는데 그 날선 차가움에 소스라쳐

금방 뛰쳐 나와 몸을 씻고 옷을 입는다.

 

나 역시 한 켠에 옷을 벗어 놓고 푸른 소에 뛰어 들었다.

차갑긴 하지만 견딜만 했다.

5월의 아침 오대산 계곡 물의 차감움과는 비교되지 않았고

소백산 하산 길의 계곡 청수 보다도 차지 않았다.

난 겨울에 얼음 얼은 백무동 겨울 계곡에서도 알탕을 했던 경험이 있다.

사람들만 없었다면 얼음물이 녹아 흐르던 안나푸르나 계곡에서도 알탕을 했었을 게다

내게 알탕이란 몸을 씻는 것 뿐만 아니라 산의 기를 받아 영혼과 정신을 정화하고

대자연과 합일하는 경건한 의식이었다.

오랫동안 물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은 나를 보고 그 산님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나는 계곡 소에서 나와 그 물은 배가 부를 때 까지 마셨다.

차갑고 맛도 그만인 천상의 물은 몸 속 까지 짜릿하게   정화했다.

나는 비로소 물처럼 나무처럼 토왕에 자연의 한 점으로 동화되었고 그렇게 심신이

가벼워진 채 설악의 신선으로 입적했던 것이다.

1000고지 고원의 알탕은 오랫동안 잊지 못할 신비롭고도 멋진 추억 이었다

 

다시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니 콩국수를 해먹고 있었는데

양푼 안에는 떡이진 국수가 뒤엉겨 붙은 채 많이 남아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에 미각까지 탐하는 사나운 욕심이긴 한데 .

누군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콩국물과 그 많은 양의 국수 등짐을 지고 이 곳에 올라온 그 정성이

갸륵하다..

누구는 오미자 주스를 댓병으로 가져와서 일행들에게 한 잔씩 돌리고

누구는 샤베트처럼 얼음이 동동 뜨는 차가운 맥주를 용광로 같이 불타는 산 길에서 한 잔씩

건네 준다.

그건 오늘 함께했다 회군한 후배  큰놈이  전공이었다.

난 불타는 여름산행이면  맛의 깊이를  논할 수 없는 그렇게  차갑고 맛 있는 맥주를 큰놈한테

엄청 자주 얻어 먹었다.

그리고 또 다른 누구는 잘 익은 과일들을 보기 좋게 썰어서 커다란 통에 넣어와 일행들에게

돌린다.

정작 자기 입에 들어가는 건 얼마 되지 않는데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꺼이 그 고난의 등짐을

지고 온다.

이 장엄한 설악과 영원히 사는 바위벽 만이 내 스승이랴 ?

그들 또한 내 영혼의 순례 길에서 마주친 부처요 스승이었다..

무게를 신경쓰다 보니 산 친구들을 위해 준비해 온 건 별로 없지만 어찌하다 보니

그래도 엉겁결에 사진 보시는 하게 되었다

 

토왕폭은 세상에서 조금씩 약해져 가지만 아직 짱짱한 나를 다시 돌아보게 했다.

오늘은 내가 설악의 신선 이었다.

장엄하고 위대한 자연은 그렇게 남김없이 우리에게 배푼다.

거기에 영감과 감동 까지 얹어서

나는 그렇게 신의 세상을 배회했다.

 

토왕폭 계곡이 천상의 도솔천이었다.

선계의 물은 그 곳에서 천길 인간의 땅으로 떨어졌다.

 

 

별길능선

도솔천을 건너면.

거기 수미산이 선다.

아무런 걱정과 근심이 없이 부처의 자비와 평화가 넘치는 불국

극락정토 한가운데 별길이 버티고 있다.

누군가 붙였을 낭만적인 이름

 

폭염에 주저 앉은 일행들은 그 곳을 다녀오기를 거부했다.

그들은 아마도 언젠가 별길을 다녀 온 사람들일 게다.

 

수미산 순례객은 3명 이었다.

여자산님 2명 과 나

난 명성 드 높은 그 풍경을 보고 싶었고

여자산님 두 명중 한 명은 초행이고 또 한명은 다시 온 길인데 그들은 인증사진을

남기고자 했다.

 

별길을 건너 가는 길은 아찔 했다.

옆으로 먼 발치에 우리가 노닐었던 토왕폭의 상단이 바라다 보인다.

여전사 둘은 거침 없이 진군했다.

 

천상의 절경, 별유천지 비인간이라는 말 외에 할 말이 없다.,

마치 황산의 풍경을 다시 대하는 듯

설악의 숨겨진 비경을 두려움과 경외의 눈길로 바라 보았다.

처음 대하던 공룡능선 그리고 망경대의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 왔다.

그곳은 마치 우주와 교신하는 전파기지국 같았다.

인간 세상과 유리된 곳에서 신과 자연 그리고 광활한 우주와 교신하는 통신대.

 

내 사는 세상의 감동은 어디까지 인가?

아무리 가물어도 끊이지 않고 물줄기가 가늘어지지 않는 차가운 임결령 샘물처럼

설악의 감동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 없이 솟아 올라

세상에서 메말라 가는 늙은 가슴을 축축히 젖게 한다.

 

두 여자산님의 서커스는 보는 사람의 가슴을 쫄아 붙게 했다.

예전에도 왔다던 여인은 바위 장성과 침봉에서 공연을 하듯 자유롭게

포즈를 취하고 초행길 겁이 나서 중간 절벽에서 망설이던 여인 또한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아 침봉에서 만세를 부르기에 이르렀다.

난 초행길 그녀가 추락하는 공포에 사로잡혀 빨리 내려오라고 소리 쳤다.

첫번째 여자와는 달리 불안한 자세로 절벽과 침봉 난간에서 위태롭게 매달리는 모습은

내가 직접 그 곳에 오르는 것보다 더 공포스러웠다.

 

그녀들이 무사히 내려 오는 모습을 보고 나는 일행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서둘러 돌아 왔다.

돌아와서 왜 올라가서 사진을 찍지 않았느냐고 그녀들이 물었는데.

바라보는 것만으로 족하고 감동스런 풍경이라고 했다.

우리의 오랜 지체를 기다릴 사람들에게 미안스럽기 때문이기도 했다..

 

 

돌아 오니 일행은 모두 먼저 내려 갔다.

같은 청백회원으로 오늘의 후미를 맡고 있는 감자라는 닉네임의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청백의 두 여자산님과 끈끈한 유대를 이어온 듯 그는 여자 산님 한 명을 누님이라고

불렀다.

감자는 인쇄업을 하는 육척 거구의 젊은이로 독도에 능하고 오미자 주스나,콩국수도 전부 이

친구의 등짐으로 실려 올라왔다.

 

 

지계곡2 하산 길

마지막 비경까지 보았으니 이젠 내려갈 일만 남은 것 같아 마음은 홀가분해졌지만

태양빛은 점점 더 강렬해져서  그 시원했던 토왕폭의 선녀탕과 신선놀음이 무색해졌다.

 

 

급하게 하강하던 등로는 다시 산허리를 끼고 휘돌아 고도를 조금씩 낮추어 가다가

다시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떨어졌다.

두 계곡물이 합수된 그 곳에서 먼저 내려온 일행들이 우리를 기다리며 메기탕을 즐기고 있었다.

남녀 구분 없이 모두 등산화만 풀고 온 몸을 물속에 담그었다가 나와서 쉬고 있는 중이다.

 

얼씨구 ! 그 모습에 주위가 산만해지고 경계가 풀린 탓에

내림 길 등로를 가로지르는 계곡물을 건너 가다가  창졸간에 미끄러지면서

보기 좋게 공중부양을 했다.

모두들 게곡에서 쉬면서 우리가 내려 오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데

난 그대로 나동그래져서 어깨과 발이 반쯤 물에 빠진 채 계곡 한 켠에 쑤셔 박혔다.

~~

일행들의 탄식과 걱정 소리가 가득한데 정작 다친 데 보다도 내 몸과 같이 나가떨어진

카메라가 더 걱정이었다.

3년전 형재봉 비등 때도 똑 같은 상황에서 카메라를 바닥에 부딪혀 수리비가 많이 들었다.

걱정하는 일행들에게 괜찮다 얘기하고 쭈그리고 앉아 카메라를 이리저리 확인하는데

카메라 집은 물에 닿았지만 다행히 카메라에 물은 들어가지 않았고 카메라 기능도 정상 이었다.

스타일은 좀 구겼지만 다친 데는 없으니 괜찮다.

 

엎어진 김에 쉬어 간다고

계곡소의 좋은 자리를 양보하는 그들의 안내대로 이왕 젖었으니 거리낌 없이 등산화만 벗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담그기 적당한 차가움 이지만 토왕성 상단폭의 물과는 수온이 달랐다.

선계를 흐르는 물과 인간세상을 흐르는 물과의 차이

 

메기탕 까지 마무리 했으니 분위기는 완전 하산 마무리 분위기

하지만 설악 비등 답게 마지막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으니

 

 

신선의 나라에 들어 올 때 그리 힘들었는데 나갈 때라고 호락호락 할까?

그냥 내려가는 길이 아니었다.

등로는 내려가다가 다시 바위 벽의 난간을 타고 산등성이를 올라간 다음

골짜기로 넘어간다.

설악을 한바퀴 도는 풍경의 장엄함은 계속 살아 났지만 고도는 쉽사리 낮아지지 않았다.

가는 중에 나무 둥치 솟아 나온 곳에 머리를 세차게 부딪혔다.

띠웅~~~

그 충격의 여운이 오랫동안 가시지 않았다.

그걸 못보고 그냥 들이 받았으니 무더위에 집중력이 흐트러진 탓이다.

균형이 깨어진 듯 한쪽 머리가 계속 무거웠다.

내려가다가 그 균형을 맞춘답시고 가만히 서 있는 소나무를 들이 받았다.

근데 너무 세게 받아서 이번에 좌측 두개골이 너무 아프다.

놀란 소나무가 그렜겠다.

날 더워 짜증나는데 별 미친 넘이 다 승질 돋구네!”” .

 

그리고는 계곡을 따라 한참 내려가다 보니 어느 지점부터 시나브로 길의 흔적이 사라졌다.

일부 간뎅이 부은 사람들만 멧돼지처럼 빠대고 다니다 보니 비가와서 토사가 휩쓸려 내리면

길의 흔적이 사라지는 천수답 길이다.

특히 이 계곡은 토질이 마세토 흙으로 군데군데 쏟아져 내린 돌들이 많이 쌓여 있어

조금만 충격이 가해지거나 발을 디디면 가차 없이 아래로 굴러 내렸다.

70도 경사의 계곡은 완전 지뢰밭이었다.

일행들은 계속해서 ! !” 라는 경고를 수도 없이 남발 해야 했다.

 

계곡의 어느 부분 에서는 돌 위에 낙엽이 수북히 쌓여 돌의 안정성과 바닥의 깊을 가늠할 수

없는 상태여서 잘 못하면 다리를 접질리거나 부상을 당하기 쉬웠다.

신경이 곤두서고 발과 무릎에는 엄청난 하중이 걸리는 내림 길이 한 시간여 계속되었다.

최악의 길이었다.

차라리 캄캄한 새벽에 80도 경사를 치고 올라가는 게 더 낫지….

이 길만 놓고 보자면 노땅들이 절대 걸어서는 안될 길이었다.

멧돼지나 고라니들도 다니지 못할 길 이다.

야생 산양들이나 다닐 수 있으려나?

이 길을 걸어서 내려서 오면서 최대한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도록 스틱에 체중을

실으면서 조심 했지만 어쩌면 오늘의 무리수로 내 관절의 내용년수가 1년 정도는

상각되었을 거란 억울함을 떨칠 수 없었다.

 

! 올 가을 설악 비등 원정은 정말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 봐야 돼 !”

 

계속될 것 같았던 계곡은 끝이 났다.

그라고 신의 세상을 엿보았던 우리의 자난한 12시간이 여정도 그렇게 끝이 났다.

우리는 토왕성 폭포로 가는 등산로 중간으로 내려 왔고 난 긴장감으로 뻐근해닌 해골과

마지막 엄청난 하강의 무게를 감당하느라 악전고투한 두 다리

그리고 난데 없는 하산 길 중노동으로 다시 땀범벅이 된 몸을 3번 째 토왕폭 계류에 누였다.

허허~~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다

늘 신과의 동행 그리고 신의 보살핌을 느끼며 떠나는 길이지만 그 길은 내게 엄중한

경고를 잊지 않았다.

무릉객 너무 무리하면 네 남은 여행길 그날 부로 종 치는 거여 !”

 

오늘의 치열한 하루는 뿌듯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갈무리 되겠지만 설악과 저 푸른

하늘은 알겠지

무릉객의 일일 고라니 체험학습에 관하여 ….

아직은 쌩쌩하고 지난 번 형제봉 비등처럼 파김치는 되지는 않았지만

아직 시들지 않은 내 젊은 날로 오래 기억될 다이나믹하고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오늘 설악에서 갑자기 들이 친 감동의 쓰나미

 

권금성의 재회
칠성봉 바위벽의 바람쉼터

칠성봉에서 내려다 본 설악 세상

토왕폭 상단 계곡의 신선놀음

별길능선

 

 

마냐냐 !

내일은 태양 만 뜬다.

근거없는 낙관은 그 긍정만으로 좋은 걸까?

 

오늘도 허리띠를 졸라메고, 오늘의 기쁨과 즐거움을 내일로 이월하면서

빛나는 내일을 위해 열심히 살아가는 게 최상의 삶의 방식일까?

요즘 세상은 너무도 변화 무쌍해서 하룻새에도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일어나고

1119달러까지 올랐던 가상화폐 루나는 3일만에 97%가 하락해 1달러가 된다.

 

우린 전생의 업보를 상쇄할 복을 많이 짓고 있는가?

내일은 비가 올 수도 있다.

정말 열심히 성공이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심사가 뒤틀린 신께서 몽둥이로

네 뒷통수를 내려칠 수도 있다.

그러니 날씨 좋은 오늘은 재미 있게 놀고 .

비오는 내일부터 열심히 일하면 어떨까?

 

하고 싶은 건 지금 해라

싱싱한 야채를 냉장고에 너무 오래 보관했다가 다 시든 상태로 요리하면

맛 없는 저녁을 먹어야 한다..

 

 

열심히 잘 놀며 살다 보니 점점 노는 기술도 늘어난다..

잘 놀다 보니 내가 무엇을 해야 즐거운지 명징하게 깨우치게 되었고

세상의 많은 곳을 돌아 다니다 보니 보고 싶은 곳과 가고 싶은 곳이 더 많아졌다.

 

뛰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

내 경험상 정말 열심히 잘 놀고 마음으로 잘 놀았다는 뿌듯한 생각이 들면 하는 일도

술술 더 잘 풀린다.

산을 오르고, 길을 걷는 것이 동적 명상이다 보니 삶을 대하는 마음도 깊어지고

아낌 없이 내주는 자연과 자신의 이익 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생각하는 이타적인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내 마음도 더 너그러워 지기 때문인 거다.

 

설악의 거친 풍경과 바위 벽 뒤의 세상을 좀 더 젊은 날에 돌아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내 젊은 날에도 나를 취하게 한 많은 것들이 있었다..

그 시절에도 나의 마음과 혼을 빼앗고  열정을 흔들었던 시대의 향기가 있었고

변함 없이 내가 좋아하는 산친구들과 산세상이 있었다.

 

지금 그 동안 돌아보지 못했던 거친 세상을 내가 바라 본 거구

설악 산신령님이 오라고 내게 통발을 넣으신 거다.

 

 

내 삶의 방정식은 그래서 늘 간단하다.

할까 말까 망설여 지면 그냥 해라.

갈까 말까 망설여 지면 그냥 가라

먹을까 말까 망설일 때는 먹지 마라

대신 먹고 싶은 것은 먹되 맛 있게 먹자.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잔뜩 굶주린 다음에 먹는 것이고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 먹는 것이다.

내 경우에는 힘든 산타고 먼 거리 걸어서 쫄쫄 굶어서 먹는 음식과

목이 타 들어갈 때 마시는 막걸리와 맥주가 가장 맛 있었다.

 

사랑스런 연인.

바럼결에 날리는 강한 카리스마와 고혹의 향기

무수한 가시의 덩굴 장미처럼 아무나 그녀를 욕심낼 수가 없고.

가까이 가되 쉽사리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여인

 

내가 어찌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가끔은 나를 물고 할키고 뜯어 대지만

심신을 단련 시키고

내게 맛 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고

꿀잠을 자게 하고

좋은 친구를 만나게 해주는 그녀를 !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을 주고

영적인 카타르 시스를 선물하는 오랜 내 사랑 그녀를

 

 

설악에서 세 번째 목욕재개 하고 마시는 막걸리와 김치 묵사발은 임에 쩍쩍

달라 붙었다.

큰놈이 행님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녀유하는데

나왈

큰놈아 아무리 내가 많이 먹는다 한들 너보다 더 먹기야 하것냐?

넌 일찍 내려와서 맛 있는 것 잔뜩 먹고 왔으니 묵사발 맛이 있것냐?

 

완전 입장이 바뀌었다.

내가 울산 바위에 올랐다가 대포항에서 회한사라 치고 유유자적

설악에 노닐고 큰넘이 별길에서 뺑이를 틀어야 하는 건데….

허기사 큰놈은 별길을 에전에 댕겨 왔으니 가도 그만 안가도 그만이지

 

ㅎㅎ 가을에 또 통발이 오면 갈까 말까 하다가

난 또 떠나겠지

 

드높아진 맑은 하늘에 그리움이 번지면

난 다시 떠나리라

야간 버스의 진동을 베게 삼고

절벽과 바위장성을 사다리 삼아

그녀를 만나러 다시 떠나 리라

구름 떠도는 신선 나라

고운 옷 갈아 입고 날 기다리는

그녀에게로….

 

그 때는 무릎 관절 보호대를 차고 근육 테이핑 까지하고 가야지

75kg 몸은 73kg 까지 감량하고 물 정보도 미리 확인해서 물량도 줄이고

카메라 보시를 하니 음식도 최소화해서 점심 외에는 좀 얻어 먹고 다녀야 겠다.

 

난 안다.

몸의 기억력이란 참으로 비상해서

내가 12시간짜리 건친 산행을 무사히 마치고 나면

6~7 시간 정도 산행은 거뜬해 진다는 거

 

내친 김에 올해는 설악 비등의 여세를 몰아 금원 기백 종주와 지리종주도

함 해야 하지 않컷어?

 

 

20227 3일 일요일 청백 산우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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