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 빛 아침 햇살이 퍼져 나가는 가을이 붉게 불든 산 길을 걸어 보았는가?
그대 세월에게, 계절에게 그리고 흘러가는 시간에게 물어 본 적이 있는가?
왜 수 많은 가을을 잃어 버렸는지?
무엇을 찾아 방황했는지
행복은 어디에 있는지?
그동안 행복을 찾아 나서지 않았다.
너는 더 빛나는 내일의 행복을 위해 너무 바빴음으로…
너는 애초에 행복을 찾을 마음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너무 먼 곳을 찾아 헤멨는지도 모른다.
너의 행복은 그렇게 시시하지 않고 너무 원대 해서 그렇게 어리석고 바보 같은 곳에
있을리가 없으니….
이미 수 많은 행복 속에 살고 있었음을 알았더라면 삶이 더 행복했을 텐데…
넌 여전히 행복에 목마르다.
네가 열심히 쫓아 다닌 행복은 타인의 거울에 비친 너의 행복이었을 뿐
잔정한 너의 행복이 아니었다.
가을 숲으로 난 길은 명상과 치유의 길이다..
수 많은 시간을 방황하고 그 곳에 다달아서야 숲은 비로소 행복이 있는 곳을 아는
사람은 너 밖에 없다는 걸 알게 해준다..
우린 행복하다는 사실을 모르기에 불행한 게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다니는 행복을 알아 차리지 못해서 불행할 뿐이었다.
모든 흘러 가는 것 , 지나가는 것 , 사라지는 것에게 물으라
지금은 무슨 시간이냐고 ?
그러면 세월은, 바람은, 별은 대답하리라.
자금은 노래할 시간이라고
지금은 다시 행복할 시간이라고 ..
자연의 변화를 즐겨라
거기 이유 없고 조건 없는 무수한 행복이 있다.
아침 햇살이 번지는 황금 빛 숲이 우리를 취하게 하고 영혼을 노래하게 한다.
단지 아침과 계절을 잃지 않는 것 만으로도 삶이 즐거워 질 수 가 있다.
가을 여행
마눌과 두타산의 절경을 돌아 보고 나서 또 하나 야심차게 준비한 비장의 가을여행.
올 가을은 이 두 개의 여행 외에는 모든 게 다 들러리고 덤이다.
새벽 6시에 진잠 다목적체육관에서 만난 우린 아침 안개를 헤치며 그렇게 가을 속으로
떠났다.
그 좋은 여운과 잔상을 갖고도 오래도록 찾지 못했던 산이다.
두번 쯤 왔겠다.
20년도 넘은 어느 날 산 친구들과 산성산 까지 올라본 기억이 가물가물하고
13년 전 2009년 3월 1일 100대 명산길에에 마눌과 함께 왔었다.
오늘은 조사장과 작정하고 1박하면서 완전 풀종주를 하기로 했다.
조사장은 강천산을 1박 산행지로 낙점한 것에 대해 다소간 성에 차지 않아하는 것 같았다.
1박산행지로 선정하기에는 거리도 가깝고 산도 너무 낮아서 도시에서 잠자던 야성을 깨워
세상에서 쌓인 울분을 마음껏 풀어 제키기에는 많이 부족해 보인다는 생각을 은연 중에
내 비쳤다.
내 기억 속의 강천산은 아름답고도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주봉인 왕자봉을 올라 북문을 경유하여 산성산에 올랐었다.
광덕산으로 이어지는 예사로운 산세를 유보하고 계곡길로 내려왔었는데
지나간 기억임에도 꽤 만만치 않았던 산행의 기억이 남아 있다.
언제이고 다시 그 길을 걸어보리라 했지만 세월은 바람 같이 지났고 올 가을에사
그 해묵은 소망을 구체화 시키게 된 것이다.
강천산의 명물 출렁다리는 대둔산에 비해 그 규모가 많이 작았다는 느낌이 남아 있다.
강천의 전체적인 윤곽은 기억 속에 희미하고 가 보았던 강천사 절과 계곡의 풍경도
별로 떠오르는 게 없다.
그래도 매표소에서 개념도를 달라고 하니 강천산의 입체조감도가 그려 있는 지도를 건네
주는데 거기 넓은 강천 세상이 한 눈에 들어온다.
왕자봉 가는 길
바람처럼 지나간 오랜 세월 세월에도 입구의 인공폭포의 기억은 뚜렷했다.
평일의 이른 아침인데 벌써 한 무리의 젊은 여자 산객들이 히히덕 거리며 다리 난간에 올라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길 우축 강천산 왕자봉 가는 들머리의 기억도 나지 않는다.
Tv 모니터가 설치된 들머리를 올라서서 1km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올라치고 나니 신선봉
갈림길이 선다.
표지판에는 왕자봉 1.6km 이정표가 서 있다.
깃대봉 갈림길이란 이정표 때문에 잠시 홀망쳤다.
조사장은 이미 왕자봉으로 떠났고 난 깃대봉이 등로 우측에 있는 봉우리로 착각하고 배낭을
내려 놓고 깃대봉을 향해 떠났다.
오늘 8시간 장도에도 그노무 못말리는 야지리 근성
“ 하지만 이제는 다시 못 올 길 가터 !”
리본도 달려 있고 길의 형태도 뚜렸하여 의심없이 한참을 진행하여 어렵사리 봉우리에
올랐다.
그런데 정상부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깃대봉은 더 나가야 하는 건가?".
나무 잎 사이로 다음 봉우리가 보여 거기인가 하고 다시 진행해 가는데 등로가 너무 큰 낙차로
떨어졌다가 다시 오르는 모양새라 무언가 석연치 않았다.
지도를 꺼내어 찬찬히 챙겨보니 깃대봉은 왕자봉 가는 길 중간에 있는 봉우리였다.
헐~~~~
난 주의력이 약한 산만한 학생이었네
허탈한 마음으로 잰 걸음으로 갔던 길을 다시 돌아와 주섬주섬 배낭을 챙기다.
깃대봉을 거쳐 왕자봉을 가는 길은 경운기도 다닐 만한 신작로 길이다.
편안한 그 길에 푸근한 가을이 내려 앉아 있으니 단풍이 물들어가는 길섶의 나무들이며
길 위에 구르는 다갈색 낙엽들이 마음을 여유롭고 푸근하게 한다.
왕자봉
조사장은 그래서 왕자봉에서 또 한참을 기다렸다.
“ 길을 잘 못 들었어요” 하는 내게
“ 아니 거기 잘 못들 만한 길이 어디 있다구요?” 해서 자초지총을 이야기 하니
킥킥대는 조사장 .
스타일의 차이다.
아무리 지근거리에 봉우리가 있어도 리바이벌 할 길을 가지 않는 조사장 이지만
그렇게 우린 다르면서도 잘 통하는 셈이다.
1시간 만에 비로서 왕자봉에서 터진 조망인데 구름에 휘감긴 강천의 산 봉우리들이
몽환적이고 주변에 내려 앉은 눈부신 가을에 우리 기분은 완전 업 되었다.
북문 가는 길
왕자봉에서 형제봉은 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우린 북문에서 만나기로 했다.
서로의 페이스가 다르니 자신의 보폭과 컨디션에 따라 마음껏 산행을 즐기고 사전에
합의한 지점에서 만난다.
체력이야 조사장이 월등한데다 나는 오늘 같은 날이면 사진을 계속 찍으면서 가야 가니
대부분 조사장이 먼저 도착하여 기다리게 되는데 그게 오히려 서로에게 부담이 없고
마음 편한 산행이 된다.
그래서 우리 산행은 함께 하는 산행의 단점이 보완된 한 차원 높은 명상 산행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형제봉을 지나 등로는 능선 위가 아닌 산허리로 주로 이어졌다.
조망도 별로고 발이 불편 했다
지도상에 등로는 능선 위로 나 있는 데 식생을 보존하기 위해 산허리 길을 조성한 것인지
원래 그 길만 있었는지 좀 헷갈렸다.
주의 깊게 살피지 않아서 알아채지 못했는지는 모르지만 가다가 특별한 갈림길이 있었던
것도 아니어서 길을 따르다보니 북문 까지는 대략 산허리 길을 따라 진행 했다.
북문
일대가 후련하게 조망된다.
담양호를 끼고 웅장하게 솟아 있는 산은 아마도 추월산인 모양이다.
해발이 이곳보다 더 높은 데 추월산의 단풍 또한 그 명성이 대단하거니와 암릉이 어우러진
골격미가 단연 돋보이는 산이다.
우린 그 곳에서 제법 오래 다리쉼을 했다.
조사장은 오늘 산행이 예상대로라는 듯 준비에 비해 너무 한량한 강천의 산세와 평이로운
산길을 계속 얕잡아 보았다.
오늘 산행은 “좀 싱겁겠다”느니 상대적으로 해발이 낮은 산행이라 “역시 클라스가 틀리다”
느니 하면서 강천을 비하했다.
송낙바위 갈림길을 지나 처음으로 산님 하나를 만났다
처음 강천에 들었다는 데 주봉(왕자봉)이 있는 동쪽 능선은 조망이 없다는 지인의 말을 듣고
서쪽으로 올라 왔는데 정말 예사롭지 않은 출중한 조망이라고 했다.
지금까지 진행 상황으로 보면 그의 정보가 맞는 듯하다.
동문 가는 길
북문을 지나면서 강천은 지금과는 완전 다른 표정의 얼굴을 보여 주었다.
지난 길의 단풍은 단지 예고편일 뿐이었다.
강천의 성곽이 드러나면서 짙은 숲에 가렸던 조망이 펄펄 살아 나는데 강천의 웅장한 산세와
곱게 물든 단풍들이 어우러진 조화로운 풍경이 가히 명불허전 이다.
우리가 지났던 장쾌한 산릉이 건너다 보이고 성곽길 좌우로는 이제 절정을 시새우는 단풍과
들꽃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소금강의 명성으로 회자되었던 이유가 다 있었고나 !
13년 전에는 왕자봉을 올랐다가 계곡 길을 따라 구장군 폭포로 내려서서 강천사를 거쳐
하산 했기에 걸어보지 않은 길이긴 하지만 20년이 훌쩍 넘었다고 마치 전체 메모리를 포맷한 것
처럼 한 가닥 실마라 조차 남아 있지 않는 허약한 기억이 놀라울 따름이다.
더할 것도 뺄 것도 없는 지금 있는 그대로 가장 아름다운 때임을 알리는 듯 강천의 단풍색은
참으로 고왔다..
다양한 수종이 어우러진 조화로움도 그렇고 골짜기 마다 단단한 암반 위로 깨끗하고 맑은
물이 솟아난다는데서 유래된 산이름처럼 서리서리 품고 있는 골짜기에 넘치는 맑은 물이
고운 빛 단풍을 빚어 내는 모양이다.
여리고 풋풋한 신록이 아름답고
한여름 한껏 수액을 올려 푸른 하늘로 치솟아 오르고
무성한 가지와 잎으로 번성하는 욕망의 여름도 아름답지만
찬바람에 나부끼고 땅 위에 뒹굴어도
붉은 잎 뒤에서 달콤한 열매가 익어가는 가을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찬바람에 주눅들지 않고
무서리에 겁먹지 않고
아침 이슬에 곱게 씻기우다
햇살 고운 날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가을 잎들이 참으로 아름답지 않은가?
인생의 계절 또한 그렇지 않은가?
시들어 가는 인생이 피어나는 젊음보다 더 아름다울 수 있겠냐만은
젊음의 고뇌와 욕망을 훌훌 벗어 던지고
삶과 자연을 누리며 여유롭고 세월에 익어가는 인생의 가을 또한 아름답지 않은가?
난 아침 햇살보다 더 붉은 가을 숲이 아름답고
젊은이 보다 더 뜨거운 그대가 꽃보다 아름답다.
치열했던 나의 전쟁은 끝났다.
들판에는 평화가 깃들었다.
전쟁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 가는가?
자유와 평화를 관조하고 누리며 살아가는가
그건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그 여름을 치열하게 보냈으므로 나는 이 아름다운 가을을 누릴 자격이 있다.
요즘 그렇게 무거운 배낭을 지고 산행을 떠난 적이 없어서 어깨를 내리 누르는 짐의 무게가
장난이 아닌데 발걸음은 더 가벼워 지고 입에서는 콧노래 소리가 절로 났다.
8시간 예상하는 거친 길이라 난 1.5리터의 물에 대포 카메라를 지고, 땀이 많은 조강쇠는
무려 3리터의 물을 지고 가니 등짐 만 놓고 보더라도 회갑이 넘은 할배들이 메기의 추억을
흥얼거릴 낭만적인 상황이 아니거늘…..
우리 말고 아무도 없는 강천 세상에는 셧터 누르는 소리와 내가 내는 앓는 소리만 가득했다.
이맘 때면 도지고 깊어지는 가을 병이 올해는 일찍 나을 모양이다.
탄성을 올리다 신음이 터져 나오고 그러다 말문이 막혀 버린다.
2주를 연달아 대한민국 대표 가을을 만났으니 가을이면 도지는 속앓이는 완전 해갈이여!
가을 병이란 제대로 푹 앓아야 떨어져 나간다.
그러면 난 이 가을의 방황을 끝내고 겨울 속에 잠들 수 있다.
우야튼 “희안타 !”
이런 길이었으면 한창 젊음과 체력이 물올랐던 때에 만만치 않았던 산행의 기억이 남아
있을리가 없는데 ….
중간에 산성산 (연대봉)을 지났다.
산성산은 능선위로 돌출한 봉우리가 아니라 평이한 능선 위에 표석만 하나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성곽의 끝단은 천혜의 조망 명소 였다.
장대한 강천 산 세상이 한 눈에 들어오고 속세를 등진 선계의 풍경이 만화경처럼 파노라마 친다.
강천 댁 미모가 너무 출중 할시 !
“호남의 금강산 답다”말에 암묵의 동의를 표하는 것 말고는 달리 할 말이 없다..
가히 필설과 어휘의 기근이다.
목석 같은 조사장도 감탄하는 강천댁의 빼어난 자태였다.
시루봉 가는 길
한 눈에 딱 보아도 시루를 엎어 놓은 것 같은 봉우리 하나가 눈에 뛴다.
가는 길에서 우측으로 휘어지는 능선 상의 봉우리로 우리가 가야할 능선은 광폭으로 크게
범위를 넓혀 간다.
진행 속도로 보아 시루봉에 도착하면 대략 12시 쯤 될 듯하다..
적당히 맞아 떨어지는 점심시간이다.
사단은 동문터에서 났다.
아무 생각없이 뚜렷한 길을 따라 진행 했는데 등로가 한 동안 평평한 숲 길을 따라 진행
되었다,
길은 순하고 처음으로 교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다가 성벽이 하나 막아 서는데 동문이라 써 있어서 지도를 보니 등로상 동문표시가 되어
있어 제대로 온 길이라 생각하고 하나 밖에 없는 외길을 따라 계속 진행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방향이 맞지 않는다.
게다가 어느 정도 더 가니 길이 계속 아래로 떨어졌다.
등로가 더 가파르게 내리꽂자 찌릿한 충격이 뒤통시를 강타하는 감각의 비상경보가 전해진다.!
“알바다!”
엎어진 김에 누워 간다고 내친 김에 바닥까지 내려서서 산행을 마무리 했던 연어봉과
신선봉의 뼈아픈 알바의 추억이 돠살아 났다.
조금 전 조망대에서 본 봉우리가 시루봉이 맞는다면 우린 100% 길을 잘 못 들어 선거다.
조사장도 같은 생각 이었고 우린 다시 분루를 삼키며 고난의 회군을 해야 했다.
배도 고픈데 갑자기 내림길을 치고 오르는 것은 힘들었다.
문제는 우리가 동문이라고 생각한 곳이 내동문이었다.
애당초 성곽길 조망처에서 멀지 않은 동문터라는 곳이 동문이었는데 진행방향의 등로가
희미하고 그곳이 중요한 갈림길임에도 이정표가 없어 무심코 큰 길을 따라 가다 보니
내 동문이라는 쪽문으로 내려선 것이었다.
주 능선에서 가지를 친 그 등로는 담양 쪽에서 주능선으로 올라오는 등산로 였다..
우린 내동문을 동문으로 착각하고 외길을 따라 엉뚱한 방향으로 열심히 하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정표 상으로는 왕복 3km 정도 되는 먼 거리 였는데 실제 거리는 약 2km가 채 안되는
거리이고 그나마 500미터 가량은 순한 평지길이어서 그나마 선방할 수 있었다.
시루봉
되돌아 온 동문터에서 시루봉은 그리 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 길의 흔적이 뚜렷치 않고 이정표도 없는 건 종주객 외에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길이란 반증이었다.
우리는 1 시간 가량 지체하여 시루봉에 올랐는데 그 곳에서 내려다 보는 강천의 풍광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우린 고난의 행군 뒤에 편안한 마음으로 배낭을 내리고 출중한 풍경 한가운데 전원 레스또랑을
오픈 했다.
조사장은 배가 고팠는지 엄청 먹었다.
사과하나,고구마 하나 , 떡 하나 , 보름달 하나 계란하나, 초코파이하나, 약과 하나, 두유 한통.
가을 날의 소풍이고 시장이 반찬 이었다.
광덕산 가는 길
식사 후부터는 완전 분위기 반전이다.
햇빛에 노출된 등로는 무더워 졌고 굴곡은 심해졌다.
무성한 숲에 둘러 쌓인 길은 조망이 차단되었다.
등로는 시루봉에서 하염없이 내려 갔다가 광덕산 정상 아래에서는 흡사 깔딱고개처럼
다시 가파르게 솟구치면서 길손들에게 과중한 통행세를 요구했다.
조사장이 전화를 하는 사이 추월하여 먼저 광덕 산에 올랐다.
일대에 우뚝한 산이라 장쾌하기는 해도 남쪽 성곽에 서 바라본 강천의 풍경에 이미 눈이 사치
스러워 져서 큰 감흥은 일지 않았다.
그래도 마지막 인고의 고통을 감내하며 여기까지 올라 오자 마치 오늘 일정이 다 마무리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조사장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강천에 대한 견해와 평가를 수정했다.
“세상에 그렇게 호락호락하거나 만만한 산은 없다”
체력적으로 무리가 되지는 않지만 만만한 상대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훅 치고들어오니
화들짝 놀란거다.
기별도 안가는 잔 펀치 몇 대를 우습게 알고 가드를 내린 상태에서 된통 한 방 맞고
어안이 벙벙해진 거다.
이례적으로 먼 길이고 후반부에 낙차가 크니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의 무게와 누적되 피로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탓이다.
젊은 산님 한 명이 올라와서 우리는 함께 기념 촬영을 할 수 있었다.
그건 또 다른 시작에 불과 했다.
광덕 산에서 신선봉을 거쳐 옥호봉을 휘돌아 내리는 길은 아직 5km의 거리가 남아 있었고
굴곡과 낙차는 전반부와는 양상이 사뭇 달랐다.
내 컨디션은 괜찮은 편이었다.
그래도 배낭의 무게가 줄었고 물은 적당히 안배를 잘 해서 그다지 힘들지는 않았는데
후반부 조사장의 얼굴은 힘든 기색이 역력했다.
강천을 얕잡아 보던 오전과는 달리 코가 쑥 빠졌다.
예상치 못한 강천의 거친 반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고 옥호봉으로 휘돌지 말고 신선봉을
따라 강천사로 내려가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까지 했다.
그 길도 계곡으로 내려설 때 까지는 그리 만만치는 않은 길이겠지만 도상으로는 둘러가는
산길이 아니라 계곡으로 내려서서 물 따라 내려 가는 길이니 지름길인 셈이다.
계곡의 단풍이 더 수려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늘은 생애 처음 강천을 완전 풀 종주 하는 의미 있는 날인데 5km를 남기고
그러기는 너무 아까운 일이라서 난 계획대로 GO를 외쳤다.
“ 글루 내려가면 우린 강천산 종주를 한 게 아니라 강천 산행을 한 거유 !”
그리고 우리는 묵묵히 남은 길을 치고 나갔다.
애써 목적지에 안달할 필요가 없다.
시간이 우리를 목적지로 데려다 준다.
우리가 할 일이란 평소에 그 산과 거리에 걸맞는 충분한 체력을 만들어 놓는 일이다.
그래야 거친 길에 압도 당하지 않고 그 길의 풍경을 즐기고 그 길 위에 굴러 다니는
행복을 배낭에 담아 낼 수 있다.
우리는 지나 온 장대한 능선이 바라다 보이는 옥호봉에서 마지막 다리쉼을하고 깎아지른
수직 절벽으로 위험하게 설치된 긴 계단을 따라 다시 강천의 들머리로 내려섰다.
알바까지 포함하면 약 21km
8시간 소요된 긴 여정은 그렇게 끝이 났다.
세월이 더 빨리 내 기억 위에 망각의 휘장을 덮으려 하겠지만 강렬한 강천의 추억은 오래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작년 두타- 청옥산 종주 이후 오랜만의 월척이다.
큰 건 하나 했으니 그 뿌듯한 성취감에 주차장으로 향하는 발길은 더 가벼웠다.
산은 내 삶의 비무장지대였다.
수 많은 적들로부터 나를 보호해주는 벙커였다.
그래서 나의 전쟁조차 낭만적이었다.
나는 수 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삶을 깨우치고
나만의 은신처에서 전열을 가다듬고 심기일전했다.
그래서 다시 용기백배하여 전쟁터로 나설 수 있었다.
내가 올랐던 무수한 산들
그리고 오늘 걸었던 거친 길이 나에 관한 많은 애기해 줄 것이다.
난 새벽과 계절에 공명할 만큼 낭만적이고
늙어가는 가슴은 아직 아름다움에 흔들릴 만큼 감성적이다.
내 마음은 배낭을 메고 먼 길을 떠날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내 몸은 거친 길을 웃으며 걸을 수 있을 만큼 건강하다..
내게는 고난과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좋은 친구가 있고
나는 늙어가도 여전히 다다르지 못하는 별을 꿈꾼다..
조사장이 무얼 먹으면 좋겠냐고 묻는데
무엇이든 다 좋다고 했다.
그 전처럼 개고기 잘하는 향토 식당을 찾아서 근처에다 숙소를 잡아도 좋고…
일단은 순창의 특산음식이나 유명한 맛 집을 먼저 물어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조사장 갑자기 매표소로 가더니 표를 받고 있는 젊은 처자 에게 묻는다.
순창에서 개고기 가장 잘 하는 집이 어디냐고?
갑자기 훅 치고들어오는 할배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지킴이 처자
헐~~~
같이 얼쩡거리는 이 할배도 무식한 야만인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네….
내가 지역 특산 음식과 유명한 식당을 물으니 자기들은 잘 모른다고 아래 쪽 관광안내소에
문의 하란다.
차를 가지고 가는 길에 번거롭게 그러지 말자고 했다.
순창 보신탕 맛집을 쳐서 그리 가자고….
조사장 “왈 촌스럽게 보신탕이 뭐냐고요 영양탕이지 !”…
그리고 검색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급기야 “개고기 맛집”을 치더니
검색어 상단을 차지하는 순창 강천 보양탕으로 전화를 걸어 수육과 무침이 되는 지를 묻는다.
“웬 무침 ?”
무침을 하는 집 이어야 제대로 요리할 줄 아는 집 이란다.
난 요즘 거의 조사장이 아니면 보신탕 먹을 일이 없는 데 보신탕은 조사장이 한 수 위다”
철저한 자기 관리자고 건강 제일주의자여서 대창, 막창, 곱창은 절대 안 먹는다.
의사 친구들이 그건 몸에 좋지 않다고 절대 먹지 말라고 해서…
실제로 의사 친구들 중에 내장 먹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고 했다.
고기는 그렇지 않지만 동물의 내장부위에는 독소와 유해물질이 침착되어 있어 건강에
아주 좋지 않다나 어쨌다나 !
조사장 논리대로 라면 내장탕과 순대 좋아하는 나는 일찍 죽을 거다.
괜찮다 .
늙어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고생하면서 벼름빡에 똥칠하면서 까지 오래 살고 싶지는 않다.
강천 보양탕 또한 월척 이었다.
예상대로 지금까지 보신탕을 고집하는 식당이라면 그 맛에 관한한 검증이 끝난 곳이었다.
주인은 음식 명장의 표창을 받으신 분이고 지역의 유지들이 많이 찾았던 토속 맛집 이었다.
게다가 우린 완전 허기져 있었고 근처 호텔에 숙소를 잡고 목욕 한 후에 날개 옷을
갈아 입은 다음이었으니.
우린 대짜배기 수육 하나에 영양탕 한 그릇 씩 비웠는데 난 한 그릇 더 먹었다.
대신 배가 너무 불러 술은 많이 마시지 못했다
맥주 한병에 소주 세 병
그랴서 8시간의 엄청난 체력소모 였지만 아마도 체중은 그대로일 것 같다.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의 향기를 따라서 : 마분봉, 악휘봉 산행 (0) | 2022.11.17 |
---|---|
가을 새벽 순례 - 대둔산 (0) | 2022.11.13 |
홀로떠나는 가을아침 - ( 월령산 출렁다리 -부엉산-자지산) (0) | 2022.10.29 |
두타산유람기2 - 마천루 (0) | 2022.10.24 |
두타산 유람기 1 -베틀바위 (0) | 2022.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