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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추억의 향기를 따라서 : 마분봉, 악휘봉 산행

 

완행열차

 

허영자

급행열차를 놓친 것은 잘된 일이다.
조그만 간이역의 늙은 역무원
바람에 흔들리는 노오란 들국화
애틋이 숨어 있는 쓸쓸한 아름다움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완행열차를 탄 것은 잘된 일이다.
서러운 종착역은 어둠에 젖어
거기 항시 기다리고 있거니
천천히 아주 천천히
누비듯이 혹은 홈질하듯이
서두름 없는 인생의 기쁨
하마터면 나 모를 뻔하였지.

 

 

 

 

나의 여행

그건 삶의 공허함을 떨치려는 소일과 단순한 도피가 아니다.

그건 행복을 불러내는 나의 주술이고 아름다운 세상의 빛이

내 삷과 영혼에 깃들게 하는 나만의 작품활동이다.

 

 

우린 세상에 세뇌 되었다

그래서 우린 사자보다도 불행하고

사자에게 잡혀 먹는 가젤 보다도 더 불쌍하다.

사자는 배부르면 그늘에 앉아 나른한 오수를 즐기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사냥을 나간다.

설령 기근이 들어 먹이가 없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당장 굶어 죽어도 굶주림을 미리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옛날 인간을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루 수십 키로를 뛰어 다녔다.

사방에 먹이가 넘치는 지금 인간은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인간은 수백 년을 살 수 있는 식량을 쟁여 놓고도 다시 사냥을 나간다.

인간은 배불리 먹어도 늘 배고프다.

곳간에서 곡식이 썩어 문드러져도 그 위에 다시 곡식과 재물을 쟁인다.

굶주림의 공포와 포식자의 두려움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대물림 되었다.

생태계의 지존으로 등극하고 나서도 그 트라우마는 극복되지 않았다.

욕심은 더 빨리 진화하고 불행의 주파수는 증폭되었다.

그래서

배터져 죽을 지언정 죽을 때 까지 굶주림 공포는 인간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지만 대나무 밭의 나무늘보 보다도 행복하지 않다.

쉬지 않고 늙어 가면서 당최 쉴 줄을 모른다.

내가 쌓아 놓은 먹이는 여전히 부족하고 쉬면 뒤쳐지고 불행해질 것 같아

단단히 병에 걸린 마음은 오늘도 쉴 수가 없다.

 

행복이란  굶주림의 공포와 포식자의 공포에서 벗어 나는 것이다.

근거없는 두려움을 떨치고 희망으로 새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다.  

"바보야 ! 나무 늘보처럼 놀아도 절대 굶어 죽지 않는다. "

"바보야 ! 진정한 내것이란 내가 가진게 아니라 내가 누리는 것이다. "

 

 

혼자 여행이다.

몇 달 전 남은 휴가를 셋팅해서 올렸었는데 가지 않아도 사용처리가 된단다.

격세지감이다.

아주 오래전 일주일에 하루만 쉬는 날에는 월차 휴가란 게 있었다.

그건 쓰지 않으면 돈으로 돌아 오는데 그 휴가를 하루 쓰는 게 참 눈치가 보였다.

어느 날인가 갑자기 무등산을 가고 싶었다.

시골에 일이 생겨 월차를 써야 한다고 얘기했다.

당시 가보지 않은 산이라 크게 7시간을 돌아볼 심산 이었다.

어둠을 헤치고 무등산의 무등을 타고 홀산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야생마처럼 산을

헤집었다.

지금도 무등산 바로 아래는 군부대 통신 시설이 있고 높은 철책이 쳐져 있다.

 

어디서부터 잘 못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난 군부대 안으로 정상에 오르고 있었다.

사계청소가 된 능선을 오르는데 멀리 초소에서 보초병이 난데 없는 침입자를 발견

하고 호루라기를 불고 난리가 났다.

그리고 1개 분대 가량의 군인들이 쏟아져 나와 나를 향해 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띠웅~~ “시방 이기 뭔일이여?”

난 뒤 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철책을 향해 냅다 뛰었다.

근데 그 철책이 보통 견고하고 높은 게 아니었다.

그 높이를 넘어가는 건 당초 불가능 했다.

 

그 짧은 시간에도 찌릿하게 뇌리를 강타하는 생각!

시골에 일이 있어 간다는 넘이 군부대 보안시설 침입자로 잡혀서 회사에 신원조회가

들어가면 워쩔 것이여?

참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생결단으로 철책을 따라 도망갔다.

어디가 허술한 구석이 있을까 확인하면서……

그리고 가까스로 파여진 구멍을 발견하여  빠져 나가는데

그 구멍이 강이지 정도나 드나들 만큼 작았다.

나는 문어처럼 온몸을 최대한 오그리고 빠져 나가는데

철책이 등을 훝어내는 아픔도 잊은 채 등어리에 깊은 화인을 남기며 

간신히 철책을 빠져 나갔다.

나름 사생결단이었다.

 

훔친 사고가 맛 있다고 남들 일할 때 혼자 놀러 나가는 맛은 참 각별했는데

그 날은 제대로 된통 걸린 날이다.

아무튼 난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무사히 무등 순례를 마치고 회사에 출근 했다.

 

요즘 같으면 중소기업 사장들이나 소상인 사장이 젤 불쌍한 사람들이다.

인건비는 해마다 오르고 빨간 날에 년차까지 다 놀려 줘야 한다.

그 것 뿐인가?

야근도 돈 주고 시키는데 돈을 많이 줘도 일이 힘들면 가타부타 이야기도 없이

보따리를 싸 버린다.

 

사장이 아니면 참 놀기 좋은 세상이다.

눈치는 고사하고 노는게 당연한 권리인 세상이다.

그렇게 노는 날을 학수고대하며 열심히 일하던 사람들도 막상 그 날이 오면

힘든 일이라도 못해서 안달하고 노는데 지치고 심심함에 미쳐 누렇게 뜬다,

놀 시간이 많아져도 사람들은 놀 줄을 모른다.

 

 

혼자 추억 여행을 하기로 했다.

마분봉과 악휘봉

그 옛날 사람도 떨어져 죽어 나가기도 했고 괴산에서 험한 산으로 회자되는 곳이라

조사장과 같이 가기도 힘들다.

 

거긴 내 젊은 날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 이었다.

이화령 버리미기재는 백두대간에서 가장 긴 구간 중의 하나로 준족들이 14시간 30

정도 소요되는 가장 긴 코스 중의 하나다.

그날 우리는 일행의 선두에서 파죽지세로 대간을 휘달리다가 악휘봉 삼거리에서

마분봉 지능선으로 알바를 하는 바람에 통산 16시간 40분 만에 정말 대간하게 대간을

마무리했다.

참으로 대단한 여정이었다.

그 여정 말미의 지난한 알바로 체력이 고갈되어 힘든 산행을 이어갔고 무수한 절벽지대의

수려한 풍경은 상처 받은 내 마음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지 못했다. .

 

거길 오늘 가는 거다.

은티마을에서 마분봉과 악휘봉을 거쳐 은티재로 하산하는 원점회귀 코스

원래는 지리산 종주를 위해 비워 놓은 금요일 휴가 일정이었다.

고부기와 둘이하던지 아니면 홀로 새벽열차를 타고 지리산 능선길을 걷고 일출을 보려한

날이다..

그런데 동생들과 가족모임을 조율하다 보니 11월 둘째 토요일이 낙점되는 바람에 그 금요일이

갑자기 어정정하게 공중에 떠버린거다.

휴가를 바꾸려면 결재를 다시 올려야 한다는 데 그럴 바에는 홀로 가을 여행을 하는 게 낫지….

 

 

530분 경에 숙소를 나서서 은티마을에는 7시에 도착했다.

마을어귀에서 고구마와 빵, 그리고  계란 하나와 우유로 아침을 해결하고 마을 경로당 앞에

떡허니 주차를 하고 산길을 오른다.

 

들머리를 좀 걱정했는데 선답자의 안내가 충실해서 별다를 어려움이 없었다.

마을회관 앞에서 이정표가 가르키는 길을 따라 산행 금지구역 표지판을 만날 때 까지

진행하면 거기 마분봉 이정표가 선다.

올려다 보면 그렇게 인상 깊은 산 세로 보이지는 않는데 저 길 한가운데 많은 대간 객들이

자주 빠져드는 알바몬 블랙홀이 있다.

 

산록에 산 안개가 흐르고 아침 바람은 제법 차가웠지만 기분은 좋았다.

해가 뜨면서 황금빛 햇살이 암벽 난간과 그 층층 절벽 위에서 여전히 푸르름을

잃지 않는 노송의 머리 위로 쏟아지는 모습은 장관 이었다.

기억에 없지만 오랜만 일세! “

“ 20년 만에 다시 찾아 온 날 기억하는가 ? “

 

 

새로운 풍경이었다.

그날 알바의 고난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거미처럼 네 다리로 기어서 절벽을 오르내리던   

내 지친 마음을 흔들지 못했던 풍경들이었다.

 

 

마분봉이 백두대간에 없는 봉우리임을 모른 채 당도한 그날의 마분봉의 감회를 난 이렇게
적었다.

 

봉우리를 세개 쯤 너머  로프 끝에 대롱거리며 오른 마분봉 풍광은 장쾌하고 수려하다.

저 깊은 계곡과 봉우리를 지나 벌써 여기에 왔다니…..

새삼 대자연 한 가운데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작은 인간이 내딛는 짧은 보폭의 위대함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그리고 우린 의기양양하게 진군했다.

 

이 길이 아닌 개벼 !

 

난리가 났다

우리의 길 앞에는 장성봉이 남았는데

갑자기 내리 꽂히며 하강하는 길은 금새 마을과 들판의 모습을 드러내고 차 소리를 들어

올리고 있다.

장성봉은 어디에 있는가?

그러면 마분봉에서 우리 뒤쪽으로 높이 흘러가는 능선이  백두 대간인 모양이다.

 

그래도 그 때 까지는 좋았다.

마분봉 뒤 능선이면 알바 구간이 얼마 되질 않으니….

 

거의 바닥근처 까지 내려온 길을 다시 허우적 대며 오르는 길

항상 느끼는 일이지만 그 짧은 시간에 우리가 내려선 구간이 그렇게 엄청나다는 사실

똑 같은 길을 더 힘겹고 멀게 느끼며 다시 로프에 대롱거리며 가는 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입증 되듯

이제 아름다운 풍광은 기쁨과 희망이 아니고

내 어깨에 지워진 짐이고 고통일 뿐이다.

 

마분봉을 거쳐 다시 앞 봉우리로 이동하고 경악을 금치 못한다.

 

이 길도 아닌 개벼 !

이와 도의 단지 조사 한글자 차이의 위력은 정말 대단했다.

그건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정말 모른다.

 

우리가 대간이라고 생각했던 쪽으로 길은 만들어 지지 않았다.

우리의 단추는 아마도  저 멀리 악휘봉에서 잘못 끼어진 모양이다

그 심연과 같이 깊은 계곡과 절벽들 그리고 봉우리를 거쳐 다시 온 길을 되돌아 가야 한다.

 

목적지를 향해 기대와 희망에 부풀었던 발걸음은 맥이 풀리고

어깨의 배낭 끈은 천근의 무게로 어깻죽지를 당기고 있다.

김대장에게 보낸 핸드폰은 메아리조차 남기지 않는다.

가장 긴 산행 길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좌절과 상심에 있다.

14시간 예정산행에서 거친 암봉구간을 2시간이상 헛발질로 체력 소모를하고 게다가 

순간의 판단미스 안타까워하는 자책과 낙담

같은 길을 걸어 나가면서 그 순간을 고비로 그렇게 달라지는 산행을 오늘은 처절하게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모든 인생의 즐거움과 괴로움은 정녕 사람의 마음 속에 있다.

변한 것은 하나도 없다

산도

바람도

따뜻한 태양도 그 대로 인 걸

다만 내 마음이 바뀌었을 뿐이다.

아득한 한계상황과 고통 속에서도 산의 깨우침이 다가온다

 

1진을 바짝 추격하던 선두그룹 4명은 졸지에 꼴지로 전락했다.

4명의 무대포 전차 군단은  두시간 10분의 알바를 마치고  다시 악휘봉

삼거리로 복귀했다.

 

악휘봉을 지나 10분쯤 지난 거리에서 비로소 휴식하며 김대장에게 핸드폰을 하는데  

앞서가던 사람들의 실종으로 난리가 한바탕 났던 모양이다.

1 2진이 모두 실종되고 정선배는 행방불명이고 몇몇은  중간 탈출로로 은티마을을

거쳐 하산했다

오늘의 풍비박산 산행으로 한참 마음 고생했을 김대장은 전화가 통하자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했고 오늘 우중산행의 체력소모를 염려하여 은티마을로 되돌아 하산할

것을 강력 권고했다..

 

다음에 다시 은티마을에서 악휘봉으로 올라와서 장성봉을 거쳐 버리미기재로 다시

내려서라고?

그거야 말로 더할 나위 없는 고통이고 악몽이다.

기껏 두시간

우리의 속도를 유지하여  후미도착시간과 1시간 이내로 줄여준다면 대원들에게 크게

미안할 건 없다.

지금 상태처럼 후반부의 산행구간과 체력이 뒷바침 해 준다면 크게 문제될 건 없다....

그래도 모두들 비상식량을 갈무리하고 있어서 물부족과 허기로 인한 탈진은 피해갈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비에 젖은 뻣뻣한 옷에 쓸려 어깻죽지 며 사타구니가 쓰라려 오고

처참하게 일그러져 있을 얼굴에  거친 숨소리

잠을 자지 못해 때때로 멍해지는 느낌과  내리누르는 피곤함에  지쳐가는 몸과 발걸음

으로도 우리는 전혀 속도를 흐뜨러뜨리지 않고 별다른 휴식 없이 장성봉으로 내달았다.

아니 생각보다 빨리 저무는 해를 생각하면 속도를 늦출 수가 없었다.

 

빛과 어둠이 완충되는 시간에  버리미기재에 내려섰다.

그 진한 감동과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숨가쁜 긴 여정의 파노라마 

정선배는 문경으로 내려서서 택시를 타고 되돌아 왔고 우리 앞에서 움직였던 1진도

길을 잘못 들었다가  예상보다 늦게 내려오는 등 반수이상이 알바를 했고 또 몇 명은

중도에 하산했다.

 

 

난 그 날 산행기 후미에 이렇게 적었다.

 

운명처럼 잘 못 되짚은 길은 인생 길을 닮았다.

순간의 판단미스로 인해 선택한 길이 우리의 인생판도를 바꾸기도 한다.

형극과 고통의 길이 열려 있었지만

그 길 또한 소중한 나의 길이고 그 길에도 녹양방초가 우거진 길처럼 우리 마음을

흔드는 아름다움과 기쁨이 있었다.

나의 인생 동안 어쩌면 한번도 올라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를  마분봉과 한폭의

동양화처럼 수려한 대간의 지릉을 주유했다.

산신령님의 선물이었고 운명처럼 다가온 소중한 시간이었다.

 

대견한 무릉객

20년 전에도 난 그렇게 산으로부터 삶의 도를 전수 받으며 한줄기 깨달음의 빛을

찾아 광야를 철환하고 있었다. 

 

20년의 세월이 바람 같이 지났고

난 오늘도 그 거친 길에서 내 영혼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그것이면 족하다.

아직 떠나고 싶고

그 거친 길의 아름다움에 젖을 수 있을 만큼 가슴이 메마르지 않았으니

그 길을 다시 걸을 수 있을 만큼 아직 내 두 다리는 이렇게 짱짱하니….

 

 

소문난 길은 요즘 이동 막걸리 같이 싱거웠다.

그 옛날 허기진 청춘 시절에 달디 달게 마시던 이동 막걸리는 그렇게 닝닝했고

군부대를 떠나고 뻬치카의 라면 맛은 도시에서 결코 다시 재현되지 않았다.

 

마법의 성을 지나고 몇 굽이 절벽을 돌면서 유에프오 바위도 보지 못한 채

어이없이 마분봉에 올랐다.

그날 내가 쌩고생 했던 길이 겨우 이거였어?

그날의 문제는 그 길의 굴곡과 낙차가 아니라 10시간 이상 누적된 피로였고

내 어깨를 짓누르던 세끼 양식과 물이 가득 담긴 채 내 어깨를 짓누르던 배낭의 무게였다.

그리고 그 길의 말미에서 터저나온 화려한 헛발질로  심리적인 부담이 가중되었기

때문이었다.

기대와 경계심이 커서 였을까?

소문난 잔치에는 별로 먹을 것이 없었다.

군데 군데 위험 표지판이 설치되고 위태로운 바위벽 마다 로프가 휘감겨 있어 설악

비등과 같은 스릴과 서스펜스는 느껴지지 않았다.

안전 지킴이 조사장도 큰 불평없이 접근하여 한 바퀴 크게 돌 수 있겠다.  

 

마분봉에서 악휘봉을 바라보며  별 어려움 없이 대간길에 접속 했다.

우측은 악휘봉을 거쳐 장성봉을 거쳐 버리미기재로 이어지고

죄측길은 구옹봉과 희양봉을 거쳐 북진하는 대간 코스다.

 

젊은 날의 내 땀이 서려 있고 거친 숨소리와 내 영혼의 노랫소리가 떠 돌고 있는 곳

70이 넘은들 다시 올 수 없으랴 ?

나는 세월에 썩어 문드러지는 게 아니라 달게 익어 가고 있다.

아직은 !

 

 

익어가는 많은 것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떫은 감은 달아지기 위해 시간이 필요하고

된장과 술 또한 제 맛을 내기 위해 오랜 세월이 필요하다.

하지만 잘 익어 가기 위해서 바람과 비와 햇빛이 또한 필요하다

 

우리도 그렇다.

눈 내리는 차가운 들판에서 두 손 든 채 날 바람과 마주해야 하고

어느 여름의 폭우를 견디며 쉼 없이 벼랑길을 걸어야 한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보내고 가슴이 수백 번 허물어지고 다시 깨어나야

비로소 내가 보이고 세상이 보인다.

그래야 가을이 오면 우린 익어갈 수 있다.

 

가을에 곡식이 영글고 과일이 맛있게 익어 지듯이

우리 인생도 이제야 맛이 들고 달달해 질 때다.

비바람과 폭우를 견디고 태양을 향해 열심히 달려 가던 너의 여름이 있어

이렇게 멋진 가을이다.

이 가을이 그냥 우리를 달아지게 한다,

 

 

아무도 없는 그 옛날 악휘봉에 올라 그 날의 감회에 젖는다.

내 체력이 물오르고 전투력이 가정 왕성하던 40

분별력보다는 돌파력이 강하던 그 때 

턱에 까지 차오른 거친 숨으로 하루에 두 번을 거쳐간 길이다.

 

거기서 회군해야 하지만 앞 쪽의 대슬랩의 풍광이 워낙 출중하다는 소문이 나서

그곳에 전원 레스또랑을 차리기로 했다.

아까 낙엽에 미끄러져 공붕부양하여 등으로 떨어졌는데 배낭 속의 고구마와

귤들이 다 찌그러지고 뭉개졌다.

갸들이장렬하게 몸을 던저 내 허리를 구했다.

 

거센 바람이 숨 죽은 뒷 편 바위에 앉아 혼자만의 소풍을 즐긴다.

차지 않은 바람은 춤추고 시드는 계절의 길목에서도 바위 위의 청솔은 저리 푸르고

내려다 보이는 풍경은 평화롭다..

이 호젓한 낭만과 고요한 기쁨을 어디에 비할까? 

아마도 나는 소풍을 떠나지 못하는 날이 가장 슬플 것 같다.

 

삼거리로 돌아와 북진하는 대간을 타고 은티재로 내려서서 마을로 내려서야 하지만

그 길은 내가 걸어 본 길이라 마분봉 쪽으로 되돌아 가서 계곡 길로 하산을 했다.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죽죽 늘린 6시간의 싱거운 마무리가 아쉬워 봉암사가 열리는

봄에는 구왕봉과 희양산 까지 한 번 휘돌아야 겠다.. .

 

 

산 행 일 : 20111118

산 행 지 : 마분봉 ,악휘봉

산행코스 : 은티마을-능선등로- 마법의성-마분봉-대간 삼거리 악휘봉-대슬랩 악휘봉

-대간 삼거리-계곡하산로-은티마을

산행시간 : 천천히 6시간

   : 맑고 바람 시원

   : 나홀로

 

 

PS) 산행 중에  경택에게 연락이 왔다.

       동생 영택이 죽었다고....

       어짜피 가야할 짧은 인생 무에 그리 서둘러 갔는가?

       참으로 바보처럼 살다간 녀석은

       살아 남은 사람은 더 뜨거워야 한다는 걸 죽음으로 보여주고

       그렇게 어머니의 눈물을 타고 훨훨 날아 갔다.

       그 곳에서는 마음의 고통 모두 내리고 평안 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