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여전히 무덥다.
아침에 충일과 함께하기로한 미인봉 신선붕 산행을 취소하고 근교산을 산행하기로 하다.
날이 무더우니 아침 일찍 산행을 했으면 좋으련만 갑작스런 결정의 번복이라 시간이 지체되었다.
오늘은 그냥 대전 둘레산길 4구간 식장산 –닭재 구간을 걸어보기로 하고 인단 신흥역 인근의
방일해장국에 들렸다.
“이왕 늦은 거 배는 채우고 가야지!”
식사를 하고 고산사출발점 까지 이동하니 벌써 7시 40분 !
고산사 아래 들머리에서 시작하여 정상을 찍고 만인산으로 진행하는 산줄기는 자못 웅장하다.
한 15년 전쯤 어느 겨울에 홀로 산행하여 만인산 앞의 정기봉 까지 진행했는데 거의 9시간 걸렸다.
그리고 기억에 엄청 힘겨운 산행으로 남았다.
그 당시 산을 펄펄 날아 댕길 때이니 지금까지도 힘들었던 인상이 남았다면 정말 쉽지 않았던 산행
이었던 게다..
자못 웅장한 산세와 만만치 않은 낙차의 능선길에서 끊임 없이 솟아나는 봉우리들은 백두대간
갈전곡봉의 추억을 소환했고 물통이 다 얼어서 추운 날에도 따라 붙는 갈증을 해갈 할 수 없었던
극기산행 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20km에 달하는 두 구간을 잇지는 못 할거라 닭재로 내려오면 그래도 어느정도
운동은 될 터이다.
본격적으로 해가 나지 않았음에도 은근히 푹푹 찌는 날씨는 만인선 능선의 분기점을 넘어서서는
몸에서 열기가 뻣쳐 올랐다.
요즘과 같은 무더운 때에는 주로 새벽 산행을 하다 보니 한여름 땡 빛의 위력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땀이 비오 듯 흘렀고 어정쩡한 날씨와 어정쩡한 산길에서 정신은 흐믈거렸다
화약고 !
내 몸이 흡사 불쏘시개처럼 불타올라 숲을 불바다로 만들고 흔적없이 연소되어 절멸의 무로 수렴
되는 상상을 했다.
.
오늘 갈은 날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들은 식장산에서 태양이 더 뜨거워지기 전에 회귀했고 그냥
별 생각 없이 사는 늙은 청춘에 그 노무 중독이 부채질 까지 해대니 이 길을 나선 거다.
“그래 매일 에어컨 아래서 탱자 탱자 하다가 말복이 지난 즈음에서 이 뜨겁고 광포한 여름을 경험
해 보는 것도 훗날의 교훈이 되겠다.
그나마 바람이 불어 주는 능선 길에서는 다리싐을 하기도 하고 풍경을 내려다 보기도 하면서 몸이
견딜만한 수준에서 산행 길을 이어 갔다.
일체 유심조라
정작 산길의 힘겨움을 침소봉대 하는 건 무더운 날씨가 아니라 어지러운 마음이다. ,
막판 망덕봉 지나 다시 솟구치는 봉우리를 패싱하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가 그 길이 삼천포로
빠지는 바람에 닭재에서 멀어진 채 하산로로 접어 들었다,.
아랫 쪽에서 닭재 하산로를 만나려니 했는데 길은 수직 낙하하 듯 떨어지다가 흔적마저 감추어
버렸다.
나는 그렇게 무더위에 꽁지를 내려뜨리고 인간의 길에서 벗어난 고라니 길로 패주했다.
나뭇가지에 할키고 무더위에 이지메를 당하면서…..
그렇게 황망히 안전한 도시로 후퇴했다.
도시의 보급창에서 시아시된 맥주 1000cc 한 캔과 더위 사냥 1개를 달아오른 몸퉁속으로 들이
붓고도 갈증은 해갈되지 않았다.
곱창 한 팩과 지평막걸리 한 통을 사서 영수와 술 한잔 하러 갔다.
어머니는 여전히 기력이 없으시고 힘드신 모습이었다.
그래도 내가 가니 소파에도 앉으시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시는데 여전히 어즈럼증과 통증으로
고통을 받고 계셨다.
시술이건 수술이건 역시 90 노인에게는 힘든 일이다.
어머니는 점점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몸에 대해서 두려움을 느끼고 그에 따라 마음이 많이
약해지고 있다.
시술을 안하면 패혈증이 심해지고 황달과 통증에 상확이 급속히 악화될거라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만 놓고 보면 어머니의 상태는 수술 전보다 한 단계 레벨 다운되었다.
암은 계속 진행중이고 의사들은 전후사정 가리지 않고 원론적인 수준에서 치료와 수술을 병행
하면서 그들의 이익을 취하면 그 뿐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믿고 따를 수 밖에 없는 가족들은 그들의 예상과는 동떨어진 진행 결과가
혼란스럽고 당황스럽다
세상을 살아가는 통행세도 만만치 않고 세상과 이별하는 작별세도 만만치 않다.
2023년 8월 19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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