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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교산행

조사장과 식장산

 

 

 

어처구니 없는 하지만 정말 어리석은 사고 였다.

지나고 나니 어쩌면 이 사고 조차 신이 소맷부리에 감추고 계신 패가 따로 있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만사 새옹지마이고 세상사 일체 유심조라 !

 

 

사고 현장을 수습하면서  조사장에게 전화를 했다.

사고를 당해서 내일 산행을 어렵다고…..

 

조사장은 골프회동 후 술자리에 있었다.

나와의 빡센 산행이 예정되어 있으니 술은 자제하고 있던 참이었다.

한참을 통화하고 전화를 끊었다.

 

사고를 수습하고 돌아 오는 길에 조사장에게 다시 전화를 했다.

내일 산행을 예정대로 진행하자고….”

내게는 지금이 오히려 산이 더 필요한 때였다.

집에서  심란하고 우울한 하루를 보내는 것 보다는 산에서 쏟아내고 와야할 것들이 더 많은

날이었다.

나의 어지러운 심사를 생각한 조사장은 흔쾌히 그러자고 했고 산행 후 술 한잔 치자고 했다.

다만 항상 이른 산행을 고집하던 조사장이  만나는 시간을 6시로 늦췄다.,

늘 일찍 일어나 설쳐대는 새벽 새  조사장이....

 

 

조사장이 6시 정각에 집으로 픽업 왔고 우리는 조금씩 내리는 비에 젖은 도로를 따라 천등산

을 향해 갔다.

날은 마치 무거운 내 마음처럼 먹장 구름의 우울함 속에서 내내 깨어나지 못한 채 비몽사몽을

헤메다가 급기야 완주 쪽에서 거센 빗방울을 쏟아 내기 시작했고 날은 마치 저녁 인 듯 깊은

어둠속으로 저물어 갔다.

 

오전 내내 내릴 비라면 안전시설이 없는 천등산의 거친 암릉들은 위험할 수 있다.

조사장에게 대둔산으로 행선지를 바꾸자고 이야기 하고 대둔산 수락계곡으로 이동했다.

대둔산도 험하지만  안전시설이 잘되어 있고 익숙하고 편하다.

천등산이나 대둔산이나 5시간 정도의 등산코스를 염두에 두고 가는 길이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대둔산은 전면 통제다 .

등산로에서 진입을 막으면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산에 오르겠지만 주차장 입구에서 바리케

이트를 설치하여 출입을 통제하니 뾰족한 방법이 없다.

 

우린 기수를  돌려서 대전으로 복귀해 근교산 식장산을 한바퀴 돌기로 했다.

조사장과 함께 가는 길이니  한 번도 시도해보지 않은 식장산 가장 넓게 도는 산행을 해볼

심산 이었다.

수원지 산행로를 따라 식장 전망대에 오르고 거기서 중계탑이 설치된 정상을 거쳐 반대편

독수리봉을 찍고 구절사를 휘돌아 외곽능선으로 가장 크게 도는 산행코스였다.

 

식장루의 시원한 바람 속에서 구름을 두른 채 맑게 씻기운 내 삶터의  모습을 내려다 보았다.

그곳 까지 오르는 비등길은 거친 산길이었지만 중간에 비도 그치고 5km의 가파른 산길을

따라 전망대에 오를 때 까지는 그래도 괜찮았다.

동네 우중 산행 이지만 거리도 길고 낙차도 만만치 않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조사장은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우짠일이래?

서울 선수가 동내 깡패한테 멱살 잡히는 격일시...

폭포수처럼 흐르는 땀이야 트레이드마크지만 그래도 동네 산인데 의외의 모습이었다.

하기사 시간상으로나 거리상으로도 보아도 동네산으로 치부하기에는 만만치 않은 위세였다.

그랴도 체급이 있지....

결국은 조사장의 상태를 감안해서 마지막 외곽가 능선은 포기하고 계곡으로 내려서서 하산했다,

산행은 통산 6시간 소요 되었다.

 

나중에서 알았지만 조사장은 내가 산행 취소를 한 후 친구들과 허리띠 플고 두주불사 하다가

산행 재개 연락을 받는 것이었다.

거친 산행을 하기에는 너무 많은 술을 마신 상태였지만 나를 생각해서 가꺼이 동행해준

산행이었고 작취미상의 상태에서  나를 위로하고자 다시 나와의  술자리를 불사하고자 했던

것이다.

고마운 일이다.

말없이 통하는 친구란 그래서 좋은 것이었다.

 

산과 조사장의 위로 덕분으로 꿀꿀한 분위기에서 벗어나 한결 가벼워진 하루를 보낸 셈이었다.

원안대로 천등산 산행이 관철되었으면 조사장은 더 힘든 하루를 보낼 뻔 했다.

우야튼 상태를 보아하니 술 한잔 더기는 어려워 물에 빠진 생쥐 몰골에 무더위에 진이 다 빠진

조사장을 위해 내가 평소 좋아하지 않는 냉면 한 그릇을 사주고 술자리는 다음달로 미룬 채 우린

그렇게 헤어졌다.

 

 

 

 

2023812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