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 다는 건 나이와 함께 세월로 들어 오는 것이다.
시간이 무엇인지 알고
시간과 함께 가고
시간 가운데서 시간을 거슬러 가기도 한다.
늙는다는 건 걷는 것이고
사라지는 것이고
자기 내면의 모습을 잃지 않으면서 변해가는 것이다.
그 때 그 때 작은 체험이 모여서 큰 희망 한가운데로 늘 새롭게 걷는 것이다."
안쉘름 그륀 신부 “ 황혼의 미학”중
산다는 건 가끔 허물어 지는 가슴을 끌어 안고 숨죽여 울음을 참는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슬픔과 고인 눈물이 있어 기쁨은 더 빛나고 우리 삶은 더 깊어진다.
어느 춥고 어두운 밤을 보내고 무수한 세월의 찬 바람을 맞고 나서야
등을 맞댄 기쁨과 슬픔이 보이고 손을 맞잡은 번뇌와 고요가 보인다.
늙는다는 건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는 것이지만 또한 자신이 쓰는 답이
정답 임을 아는 것이다.
세월에 낡아 가지만 조금씩 가벼워 지고 세상에 둥글어 지는 것이다..
기쁨을 불러내는 자기만의 주술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행복의 문을 열 수 있는 열쇠 하나쯤은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것이다
오래 산 길을 걸어야 비로소 깨달음이 온다.
길은 어떻게 걸어가야 하고 산은 어떻게 넘어야 하는 지
어떻게 살아야 내 인생이 즐겁고 무엇을 해야 내 영혼을 노래하는지..
달리는 버스 속 비몽사몽에서 깨어나 두껍게 언 차창을 입김으로 녹였다.
아~~~
거기 정대한 설국이 펼쳐졌다.
칙칙하고 우중충한 가슴이 갑자기 환해졌다.
나 시방 강원도에서 왔는데 강원도 보다 더 강원도 같은 전라도
옛말이 틀린 건 하나도 없다.
쇠뿔은 단김에 빼야 한댔는데 …
2011년 개방하고 한번 가야지, 가야지 하다가 10 년이 훌쩍 지났다.
1년에 통산 50산을 갔다고 쳐도 10년이면 500산을 너끈히 올랐는데 거기 쇠뿔바위봉은 없었으니
바다가 보이는 변산 요지에 위치한 풍경 맛집을 나는 이렇게 띠엄띠엄 알아도 되는가?
내 잘 못이 아녀!
내가 바쁜게 아니라 세상 사는게 원래 그런 거다.
갈까말까 하면 우선 떠나고 봐야지 차일피일 하다가는 암데도 못간다.
오죽하면 그 유명한 버나드쇼 옹이 죽을 때 묘비에 이렇게 썼것어?
"내 우룰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
만패불청 ! 한토 한자리 받아 놓고 전 날 집결시간 알아보러 드갔다가?
오잉? “산행지 입암산으로 변경 !”
흐미 ~ 뭔일 이다냐 ?
변산 신령님과 용왕님이 행선지를 바꾸신 건 필시 무신 곡절이 있겠지만
여전히 평행선 쇠뿔바위봉은 내 언제나 가볼거나?
11월 17일 남군자산에서 장한 첫 눈을 맞고 몇 번인가 흩날리는 눈발을 맞고 나니 눈에 대한
갈증은 별로 없었던 탓에 그렇게 까지 기대하지 않은 눈밭 이었다.
흥겨운 콧 노래를 부르며 겨울왕국으로 엘리사를 만나러 가는 길 !
햇님은 밝게 웃으며 인사하고 바람은 잠시 친정으로 나들이 갔다.
혼자 산 길을 오르는 중에도 발 길은 새털처럼 가벼고 마음은 종달새처럼 흥겨웠다.
눈을 가득 머리에 이고 있는 겨울 산이 이렇게 포근하고 길이 이렇게 편해도 되는가?
오를수록 나뭇가지 위의 눈은 적어지고 산길의 적설은 많아졌다.
간밤의 바람 탓이려니 ….
산 중턱에 개울과 습지가 있고 예전엔 마을이 있었다는 입암산은 후덕한 산세에 곳곳에
넓은 분지가 많아 노년에 쉬엄쉬엄 산수를 즐기며 오르기에 안성 맞춤인 산이다.
갓바위 입암산 분기삼거리에 도착하다.
목이님과 감주님 일행이 도착해 있었는데 임압산 등로가 막혀서 못 간댄다.
이 산책 같은 길에서 갓바위만 올라 돌아내리기에는 너무 아까운 날이고
두고 가기에는 아까운 풍경이라 혼자 등로를 찾아 반대편 능선 길을 잡는다.
바람의 성벽길이라 적설은 무릎까지 빠지는데 길의 흔적도 사람의 발자욱도 없다.
긴가민가 하면서 바람이 쌓아 놓은 눈밭을 홀로 러셀하변서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데 세상이
온통 눈이고 내가 눈에 파묻힐 지경이다.
스패치없는 발목으로 눈이 들어 오고 나무를 건들면 쏟아져 내리는 눈은 배낭이며 카메라며
내 목 깊이까지 파고 든다.
다행히 중간에 눈발에 빙결된 표지기와 출입금지 표지판을 만나 길이 있음을 알았지만 입암산은
정식등로가 아니라 통제된 등산로 였다.
내 발자국이 묵묵히 따라와 길을 잃을 염려가 없으니 오늘은 내친 김에 제대로 눈 밭을 한번
빠대보자 !
힘이 들긴 하지만 그래도 눈 꽃의 풍경은 압권이고 흰 눈 길에 내 발자국으로 새 길을 내는
쾌감이 있어 고독 또한 황홀했다.
갓바위가 건너다 보이는 바위봉을 찜해놓고 입암산 정상을 댕겨올 심산으로 길인 듯 길이 아닌듯
이어지는 눈 쌓인 성벽 길을 따라 임입암산으로 가는데 표석은 나타 날 기미가 없다.
시계를 보니 12시 !
더 이상 진행하다가는 삼거리 내려가서 갓바위 찍고 2시 30분 까지 하산하기에는 무리라 오늘은
여기까지!
러셀하며 올라가기는 힘들었어도 내려서는 길은 광속이었다.
내 발자국을 따라 바람 같이 전망 좋은 바위봉 전원 레스또랑에 다시 내려와 흐뜨러진 여장을
수습하고 투명창가에 앉아 홀로 식사를 했다.
가경을 앞에 두고 메마른 시심은 심산의 눈물로 물기를 머금는데 나그네 수심은 아쉬운 발길을
재촉한다.
다시 하산을 서둘러 삼거리로 내려서다.
입암산은 우리가 올라온 골짜기를 내려다 보며 올라온 방향으로 상당한 거리를 진행해야 만날 수
있다는 애기다.
아마도 나는 입암산 정상 못미쳐 어는 능선에서 회군 한 것 같다.
다행히 갓바위에서는 후미가 마지막 기념촬영을 하며 하산을 준비하고 코끼리 고문님은 하산
길목에서 마지막 후미믈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흑장미님과 셀리총무님에게 귤을 얻어 먹고 목교에서 가딩님을 만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같이 하산하다.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재료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어쩌면 가장 맛 있는 요리를 맛 보게 하는 건 내 안의 허기와 입맛일지도 모른다.
서해안의 싱싱한 산수라는 메인 재료에 눈과 화창한 날씨란 부재료가 요리의 풍미를 더하고
추위에도 아랑곳 않는 아름다운 세상의 허기가 맛 있는 요리를 탄생시킨 거지
꿩고기 샤브샤브 먹으로 갔다가 재료가 떨어져서
꿩고기 대신 닭백숙 먹었는데 그랴도 그 닭고기 국물 맛도 기가 막혔던 거지
동행사진첩
삶의 고수
당신들이 삶의 고수 입니다.
늘 떠나는 습괸이 몸에 배어
차갑고 어두운 날에도 거리낌 없이 새벽의 들창을 열어 젖히는 당신
어디론가 떠남이 조용히 흐르는 아침 개울처럼 자연스럽고
산길에서 노래하는 종달새처럼 즐거운 당신
불이 꺼지면 버스의 진동 소리로 잠을 불러 낼 줄 알고
산길을 즐겁게 걷는 방법을 알며
자신 입으로 들어가는 단지 한 젓가락 라면을 위해 기꺼이 무거운 등짐을 지고
그들의 웃음과 기쁨을 자신의 행복으로 돌려 받을 줄 아는 당신
음식을 정말 맛 있게 먹는 방법을 알고
한 잔 술에 세상 사는 즐거움과 사랑을 담아낼 줄 아는 당신
정말 낙천적인 당신
바람이 불면 후련해서 좋고
날씨가 흐리면 멜랑꼴리하고 우수에 찬 날이라 좋고
눈이 내리면 똥강아지처럼 길길이 뛰며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어서 좋은 당신
여전히 뜨거운 가슴으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재미를 누릴 줄 아는 당신
당신이 인생 고수입니다.
메리 구리막스 엔 해피뉴이어!
또 한 해가 간다고 하네요.
한 해의 후반부에 님들을 알고 함께 한 해의 산행을 마무리하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다시 선물 받을 새해의 빈 노트에는 다른 사람 얘기보다 자신의 얘기를 더 많이 쓰고
더 많은 사랑과 행복의 사연을 채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대자연의 빛나는 감동과 기쁨을 더 오래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디언 기도문으로 빌어 한토 여러분의 새해 축복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모든 건 당신의 뜻이지만
당신 발 밑에 언제나 길이 나타나기를……
바람은 언제나 등뒤에서 불고
얼굴에는 항상 따사로운 햇살이 비추길….
이따끔 길에 비가 내리더라도 곧 무지개가 뜨기를…
능히 바람을 즐길 수 있기를
길에 내리는 비를 웃으며 맞을 수 있기를….
무릉객 배상
2023년 12월 23일 토요일
-
23.12.24 17:15
첫댓글 살짝 따분한 무릉계곡 계시다
재미난 현실 세계 내려온 객 같습니다
핵심 컷 & 감상은 담으셨네요!! 👍 -
23.12.24 17:15
입암산 멋진설경 즐감하고 갑니다 수고하셨어요.
-
23.12.24 17:30
멋지십니다.
따라가다가 포기하고 뒤돌아 섰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던거 같네요 ㅎ
글도 너무너무 잘 쓰셨는데
천촌살인을 하자면 쫌 기네요 ㅎㅎ
쇠뿔바위봉은 또 다음 기회를 기다려야 하는군요 ㅎ
항상 안산 즐산 하세요 -
23.12.24 21:44
제목처럼 송년동화 같은 날이었어요....
자주 오셔서 늘 행복한 산행하세요~~ -
23.12.24 22:04
산다는 건 가끔 허물어 지는 가슴을 끌어 안고 숨죽여 울음을 참는 것이다..
하지만 흐르는 슬픔과 고인 눈물이 있어 기쁨은 더 빛나고 우리 삶은 더 깊어진다.
이 글귀가 눈시울을 적시네요^^
요정님 댓글에~~
"미투"입니다
와~
한편의 긴 시를 읽는듯 합니다!
후기인지 한편의 시!인지?
가늠하기는 쉽지않지만
글귀 하나하나 문맥 하나하나가
감동입니다!
한편의 시처럼
감성이 흠뻑 묻어 있는 명품후기
푹~빠져서
감상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
23.12.25 02:24
한방에
한토산꾼들을 사로잡으셨습니다 .
글로
사진으로
붙임성으로 -
23.12.25 08:36
저 또한 쇠뿔바위봉에 다시 오르길 무척 기다린 1인 이였습니다 ~
한토의 첫 산행지가 쇠뿔바위봉 이였거든요~ㅎ
그때는 6월이였는데 12월 겨울은 어떨지 궁금했는데 살다보면 뜻대로 가는 것이 아닌걸 알지만 많이 아쉬웠네요~^^
재미나게 잘 읽고 제 사진도 가져 갑니다~^^ -
23.12.25 09:31
설국의 멋진 사진과 무릉객님의 감성에 잠시 빠졌습니다
하얀 눈길에 첫 발자국을 내는 기분도 참 좋지요 -
23.12.25 12:31
갑작스런 대체 산행지라 입암산 정상이 통행금지인지 몰랐네요.
준족에 사진 작가, 이야기꾼 삼박자를 다 갖추셨군요.
명품 한토에 큰 바가지 그득 복을 보태주실 분이라 기대합니다.
다음 산행이 우수회원 산행이라 알고 있습니다.
우수회원과 함께 산행할 수 있기를 기대해 봅니다.. -
23.12.25 13:19
무릉객님 매번올리시는글 늘감동입니다^ 뒷풀이때 동석해서 맛있는 음식과 술한잔 기울여서 넘 좋았어요.^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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