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지리 종주
다시 먼 길을 떠나고 싶어졌습니다..
중국에서 돌아온 지 채 한 달이 안되었는데 다시 가슴이 울었습니다.
산신령님이 부르시는 건지 세상에서 빼앗긴 기를 이제 다시 채워야 할 때라고 몸이 말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느 날 갑자기 가슴이 울릴 때 그 때가 그 곳으로 갈 때입니다.
내게 지리산이란 여행이 아니었습니다.
그건 평화와 안식을 찾아가는 구도와 수행의 여정이었습니다.
저녁을 먹고 천천히 짐을 꾸렸습니다.
등산용 스틱,버너,코펠,캠핑용부스타, 경량오리털파카,바람막이,우비,바지1벌, 등산용
티셔츠 3벌, 하의내의1벌, 라면 2개, 빵4개 , 밥 1끼분, 청림이가 대형 박스로 보내주었던
오징어어묵 1봉지, 김치와 밑반찬 발포비타민,빈물통 2통. 차곡차곡 넣어보니
40리터 배낭에는 카메라가 들어갈 자리도 없습니다.
“이걸 다 지구 지리산 능선을 콧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을까?”
사실 필수품 빼고는 다 버린 건데 물도 빠진 그 무게에 다리가 다 휘청거릴 지경입니다.
밤12시 47분 열차이다 보니 한산한 역 대합실에 혼자 앉았습니다.
으레 하던 일이라 별로 외로움을 느끼지도 않았습니다.
지리산 종주 정도를 같이할 수 있는 친구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봉규는 다시 2막 일자리를 얻어서 출근 중이고 고부기는 지난번 한술 더 떠서 화엄사-대원사
종주를 했습니다.
갈만한 귀연 또래 산친구들은 아직 모두들 출근을 합니다.
나만 팔자가 늘어졌습니다.
그들과는 체력이 허락하는 날까지 함께 산에서 노래를 부르며 늙어가겠지요.
하지만 지리산 종주는 혼자하고 싶습니다.
예전처럼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며 혼자 그 길을 걷고 싶습니다.
허리를 다쳐서 무리한 산행을 하지 못할 때를 빼 놓고 지리산 종주를 하지 않고 보낸 해는
한해도 없는듯 합니다.
정규 등산로는 모두 다 걸었고 지리산 도사이신 산삼해 선배님 덕분에 비등구간도 무던히
빠대고
댕겼습니다.
심지어 지리산 둘레길 까지 모두 다 걸었으니 무릉객의 각별한 지리산 사랑이 그 누구엔들
뒤지겠습니까?
그러니 지리산 신령님도 무릉객은 알아 보시는 거지요.
지리산은 제 마음의 성지 입니다.
그 곳은 산꾼의 고향이고 어머니 가슴입니다.
그냥 그 길을 걸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살아감이 고요해 집니다.
천왕봉
아!
천왕봉엔 아무도 없습니다.
무수한 구름과 안개가 피어나면서 맑은 햇빛에 드러난 천왕봉에는 낯익은 표석 만이 조용히
앉아서 저를 기다렸습니다.
숱한 날 천왕봉에 올랐어도 아무도 없는 정상은 처음 입니다.
내 인생의 변곡점에서 말없이 나를 지켜보고 내 등을 토닥여 주던 산
그 가슴에 얼굴을 묻고 목놓아 울고 나면 후련해져서 난 다시 의욕에 충만한 채 세상으로
돌아 갔습니다.
나는 천천히 우주의 중심으로 걸어 가 다시 표석 앞에 섰습니다.
제가 세상에서 받은 그 어떤 감동이 이보다 더 클 수 있고 세상의 어떤 빛나는 교훈이 이보다
더 값질 수 있겠습니까?
“옴파로스!”
여긴 늘 내 마음의 성지이고 세상의 중심이었습니다.
평화와 감동이 펄펄 날리는 곳
나는 그 세상의 중심에서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우린 고통의 끝에서 희망과 기쁨을 만납니다.
오래 산길을 걸으며 산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고 바람이 전하는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산길을 오가며 오랜 세월을 보내다 보면 거친 길의 고통과 길 위에서 만나는 거센
폭풍우가 기쁨을 부르는 주술이 됩니다.
오래 살아보니 세상에서 전적으로 잃기만 하는 건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마음만 잃지 않으면 잃을 것도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가 걷는 길이 모두 소중하고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지리산은 늘 내게 말했습니다.
카르페디엠!
파랑새를 만나려면 오늘 떠나라.
행복해지려면 지금 노래하고 춤추라
네가 사는 오늘이 감사하고 기뻐해야 할 가장 소중한 날이다.
이반 데니소비치는 암울한 감옥 속에서 행복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이미 많은 것을 갖고도 마음은 스스로 가난한 방에 가두어 버립니다.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음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손에 행복의 열쇠를 쥐고도 문을 열어
보려하지 않습니다..
영생을 꿈꾸는 허망한 날개짓과 만족을 모르는 욕심 때문에 자유의 역설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스스로의 인생에 걸린 시간과 행복 그리고 삶과 죽음에 얽힌 함수를 풀 수 있는 건 자신
뿐입니다.
100년도 못사는 인생
찬바람 한 번 휙 불고 지나가면 등이 휘고 다리가 꺾이고 아름다운 기억마저 훨훨 날아갈
나약한 인간입니다.
봄처럼 짧은 인생길 입니다.
이 바람에 날려야 할 건 이 나이에도 덕지덕지 따라 붙는 욕심뿐만이 아닙니다.
광대무변의 대자연 속에 날아든 한철 나비가 영생의 기준으로 삶을 대하는 그 어리석은
미망도 이젠 내려야 할 때입니다.
독서와 명상의 즐거움 속을 오락가락하며 나는 다시 세상을 마주할 용기와 의욕에 충만한 채
그렇게 씩씩한 모습으로 도시의 숲으로 되돌아왔습니다.
지리산 순례는 무사히 끝이 났습니다.
인생이란 기쁨과 슬픔이 한데 뒤엉켜 흘러가는 강이라 해도 지리산은 한결 같은 감동의 산
입니다.
그 산 구비구비와 계곡 서리서리 마다 저의 젊은 날의 추억이 걸려 있습니다.
그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그 고통과 아픔은 지리산 바람에 모두 훨훨 날아가고 맑은 고요만
마음에 고입니다.
그래서 지리산을 잊을 수 없습니다.
숱한 날 바뀌지 않는 저의 생활 방식입니다.
언제 산신령님이 이제 고마 오라 하실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직 10년은 거뜬하다고 얘기하겠습니다.
하루 종주가 힘들면 지리산에서 이틀을 머물겠습니다.
그것도 힘들면 거림에서 올라와 세석에서 하루를 유하고 장터목을 거쳐 천왕봉에 서겠
습니다.
그것도 힘들면 중산리에서 하루를 유하고 천왕봉에 올라 하늘 높이 떠오른 태양이라도
마주하겠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간결함과 충만함
내게 삶의 기쁨과 행복을 누릴 멋진 비법을 전수해 준 지리산에 경배합니다.
2016년 6월 13일 ~14일
다시 읽어도 참 대견한 나 입니다.
퇴직 이듬해 쓴 글 입니다.
넘쳐나는 자유에 가위 눌리지 않고 단조로운 삶에 굴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동안 경험해보지 못한 참 험한 일을 하면서도 삶의 회의와 비관은 찾아 볼 수 조차
없습니다.
기쁨과 감동으로 그리고 삶의 희망으로 가득찬 나를 돌아보는 건 참 행복한 일입니다.
2017 지리 종주
또 혼자 떠나고 싶어집니다.
지리산. 그 심원한 수림의 바다.
6월 3일에 지리산으로 떠나려 했는데 산장 예약에 실패했습니다.
달포를 기다려 출근 때문에 아들에게 부탁했는데 신통하게 한자리를 만들었습니다.
2주전 마눌 따라 백화점에 갔다가 30곡 미숫가루1봉과 교반 물통 1개, 간식용 소시지
1통을 샀습니다.
엊그제는 퇴근 길에 1000원 짜리 조미료 통을 하나 샀습니다.
그리고 금요일(D-1일) 뚜레쥬루에 들려 빵을 네 개 샀습니다.
저녁을 먹고 배낭을 꾸렸습니다.
(의류)
비라도 만나 혹시 추울지도 모르니 오리털 파카를 비닐에 싸서 배낭 깊숙히 넣고 궂은
날에 대비한 우비도 넣었습니다.
여벌바지 1벌, 여벌상의 반팔2벌, 긴팔1벌, 갈아입을 팬티1벌, 토시1개, 쿨스카프1개
(먹거리)
배낭무게를 고려해서 코펠과 버너는 가져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30곡 미숫가루를 6큰술씩 6봉지를 만들고 다이소에서 산 1000원 짜리 조미료 통에
꿀을 담았습니다.
그 외 종상이가 보내준 콩고물 무친 쑥떡 2줄과 오늘 사온 빵 네 개
그리고 내일 점심 한끼용 도시락 한통 (밥,고추장,된장찌개,열무김치)
(기타)
선글라스, 선블락로션,카메라,모자,스틱,빈물통2개,등산스틱
배낭을 꾸리고 TV를 보다가 잠시 졸다 보니 밤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구례구로 가는 열차는 서울발 서대전 역 12시 43분 출발 열차 입니다.
마눌이 차로 데려다 주었는데 밤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 12시 15분에 서대전 역에 도착
했습니다.
쉰 목소리일망정 다시 기쁨의 노래를 부르고 싶습니다.
보아줄 이 없어도 내 장단에 맞추어 홀로 신명나는 한바탕 춤을 추고 싶습니다.
6월이 가기 전에 다시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난 지리산으로 떠납니다..
나에 대한 사랑
자연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사랑
난 압니다.
산은 어떻게 넘어가고 길은 어떻게 걸어야 하는지.
언제 내 영혼이 노래하는지.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고
느낄 수 있고
먼 길을 걸을 수 있는 건강과 떠날 수 있는 시간과 자유가 있으니
인생은 아름다운 여행길입니다.
그들을 보며 잠시 내 젊은 날의 상념에 젖었습니다.
떠남에 늘 목마르던 그 날들
달빛을 목에 걸고 하루 종일 걷고 새벽 같이 출근하는 고달픔도 잠재우지 못했던 야생의
허기는 내 삶의 동력이고 열정의 근원이었습니다.
세월은 언제나 똑 같은 속도로 흘러 갑니다.
그 속도를 제어하는 건 마음이지요
오랜 세월 마음은 높은 산을 오른 만큼 더 깊어지고 먼 길을 걸은 만큼 더 넓어졌습니다.
삶의 내공은 더 고강해졌습니다.
오랜 세월 산에서 도를 닦으면 등을 맞댄 기쁨과 슬픔이 보이고 손을 맞잡은 번뇌와
고요가 보입니다.
일체 유심조
모든 건 마음이 만들어 내는 조화이고 흔들리는 건 내 마음일 뿐입니다.
나는 나무이고 숲이고 바위이고 산입니다.
나는 무수한 가지를 내려 놓는 가을 나무이고 누군가의 숲이고 세상에서 중심을 잡고
흔들림 없이 거기 서 있어야 할 산 입니다.
가지가 부러져도 살아서 잎과 꽃을 피우고 향기를 날려야지요.
바람 부는 날에는 난 흔들림 없는 바위여야 합니다.
힘든 시간도 지나고 나면 모두가 아름다운 시간일 뿐입니다.
점점 순례 길의 피로가 밀려와서 발도 무겁고 어깨도 무거워 졌습니다.
세상살이 이치도 다 그렇습니다.
길이 멀고 등짐이 많으면 여행이 힘들어 집니다.
나의 우주가 팽창되고 내 책임이 많아지면 어깨가 더 무거워지는 법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 무게가 날 세월과 세상에 떠내려 가지 않게 붙잡아 두었는지도 모르
겠습니다.
이젠 인생의 가을날 입니다.
충혈된 두 눈을 부릅뜨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욕심과 욕망으로 살아온 날들은 저물
었습니다.
지리산이 말했습니다.
이젠 떠나야할 때라고 …
잃어버린 기쁨과 사랑을 찾아 길을 떠나야 할 때
이젠 채울 때가 아니라 비울 때라고….
욕심을 내리고 내가 가진 것으로 세상의 아름다움과 행복을 더 많이 누려야 할 때.
수 많은 먼 길을 걸어왔습니다.
험한 길에 지치고 동행이 사라져 적막한 외로운 길을 걷게 되더라도 단 한가지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나쁜 길만 계속되는 법은 없고 나쁜 길도 생각하기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거
길을 걷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즐겁게 걷는 거란 거
세월이 늘 말했습니다.
“살아가면서 고이는 오래된 슬픔과 외로움은 애써 퍼내지 말아라.
이 땅에서 아름다운 꽃이 피듯
지리산 안개비가 물 되어 흐르듯
수림의 바다가 바람에 출렁이듯
그대로 두라
그냥 고요히 바라보라.
그것이 네 삶의 역사이고 네 기쁨의 어머니고
그 고독과 슬픔이 네 삶의 새 물을 긷는 영혼의 샘터이거늘…”
세석산장
주섬주섬 어둠 속에 옷을 입고 배낭을 꾸립니다.
숲에서 어젯밤 갈무리한 떡과 계란을 회수하여 배낭에 챙기고 후렛쉬 불빛을 비추며
촛대봉 으로 떠납니다.
발걸음과 등에 진 배낭은 새털처럼 가볍습니다.
심산의 품에서 잠들고 일어난 오늘 다시 지리산의 마술을 온 몸으로 느끼며 몸맵시 날렵한
달을 보며 혼자 걷는 길입니다.
청명한 고원의 공기는 가슴과 머리를 상쾌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촛대봉이 둥둥 떠오르고 어둠 속에 실루엣이 드러난 천왕봉 주위에는 붉은 여명이 떴습니다.
무수한 별들은 희미해진 하늘에서 여전히 웃고 있는 아름다운 지리산의 새벽입니다.
아직 아이의 호기심과 젊은이의 열정을 잃지 않음에 감사합니다.
세상에는 아직 무수한 아름다움이 남아 있고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와 설레임이 있어 난
오늘도 기꺼이 배낭을 메고 새벽의 들창을 열어젖힙니다.
심산의 가슴에서 출렁이는 고요한 바다를 봅니다.
오랜만에 밀물처럼 밀려와 가슴 깊은 곳에서 소용돌이 치며 조용히 솟구쳐 오르는 감동을
다시 만났습니다.
세상은 아직 깨어나지 않았습니다.
나는 푸른 새벽의 어깨를 밟고 묵상하는 바위 능선을 따라 깊고 고요한 태고의 침묵에
다가 갔습니다.
신비로운 풍경과 가슴 시린 바람 앞에서 그 엄숙하고 숭고한 느낌을 함축할 어휘가 생각
나지 않았습니다.
어둠이 있어 동트는 새벽이 더 아름답고 빛나는 기쁨은 슬픔의 언덕 너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천왕봉 옆으로 붉은 해가 떠 올랐습니다.
결국 만났습니다.
늘 천왕봉 해돋이만 보다가 세석에서 천왕봉 옆으로 아름답게 떠오르는 아침 해를 바라봅니다.
촛대봉에서 처음 만나는 새날의 붉은 축복 !
"내 늙어도 아름다운 세상의 축복이 오래 내 곁에 머물게 하소서
내 늙어도 대자연의 사랑을 잃지 않게 하소서"
세상의 아름다운 것들은 다 너무 쌉니다.
이렇게 장엄하고 아름다운 새벽이 열리는 시간 위에 서 있는 것도
녹담 만설 고원에서 춤추며 내려 오는 눈들이 온 산을 뒤덮고 내가 그 눈 밭의 한 점 풍경이
되는 것도…
깎아지른 암봉에 걸터 앉아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산이 쓰는 시와 바람과 안개가 그리는
그림을 감상하는 것도…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두 다리 만으로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장터목 가는 길
황금 햇살이 쏟아 지고 눈부신 초록의 아침이 맑게 깨어납니다.
수풀 속에서 노래하는 새의 노래를 들을 수 있고 바람결에 실려오는 이름 모를 꽃들의
향기를 맡을 수 있습니다.
그것 만으로도 너무 상쾌하고 황홀한 지리산의 아침 입니다.
흐트러진 마음이 정돈되고 마치 도를 깨우치듯 마음이 고요하고 맑아 집니다.
그 느낌이 좋습니다.
상쾌한 향기와 바람이 나를 감싸는 느낌
그 멋진 능선 길을 걸으면 내가 가진 게 너무 많음을 느낍니다.
건강한 몸과 마음
가족들
좋은 친구들
그리고 이 아름다운 광활한 세상
어제 길동무와 다시 만나 산장까지 함께 걸었습니다.
새로운 하루를 부여 받듯 지치지 않은 기와 체력을 지리산으로부터 다시 리필 받았는지
몸이 가볍고 마음은 내내 즐거웠습니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데는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시간을 잊고 세상을 잊고, 자신을 잊을 수 있는 그 무엇인가를 일찍 찾아 낸다면 세상이
보편화하는 중요한 가치들과 상관없이 자신의 행복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천왕봉 가는 길
도착하자 마자 입추의 여지가 없는 취사장에 들러 배낭을 한 켠에 벗어 놓습니다.
스틱과 카메라만 챙겨 천왕봉으로 향합니다.
어쩌면 이것도 욕심이지요.
혼자 만나고 싶은 지리산 청왕봉 욕심
동행하던 친구가 너무 서두르는 저를 보며 의아해 합니다.
시간이 급해서 그런다고 그냥 천천히 오란 말만 남기고 서둘러 천왕봉으로 오릅니다.
제석봉을 지나 통천문을 지나 하늘로 연결되는 길
머릿속에서 변함없이 한결 같은 모습으로 남아 있는 길입니다.
오래도록 나의 삶을 지켜준 교훈과 영감의 큰 산
전 묵묵하게 막바지 순례의 길을 걸어 깊고 장엄한 세상의 끝에 다가 갑니다.
궁극의 기쁨과 도에 닿아 있는 길입니다.
제가 하는 것이라고는 그냥 바람과 구름이 피어나는 산길을 묵묵히 걸으며 산이 보여주는
풍경을 말없이 바라보는 것입니다.
지리산이 늘 비우고 채워 주었습니다.
돌아 오는 길에 알게 됩니다.
내가 나에게 준 선물과 지리산이 저에게 준 선물
내 가슴에 담긴 맑은 하늘과 바람 그리고 살아가는 날의 기쁨
천왕봉
만세! 더 오를 곳이 없습니다.
드디어 순례의 종착지 천왕봉에 도착했습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 6월에도 내 영혼의 성지 천왕봉에서 세상을 발아래 내려다 보며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습니다.
난 무릉객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 속을 바람처럼 떠도는 남자.
내멋에 사는 남자
산에 가고 싶으면 산에 가고
섬에 가고 싶으면 섬에 갑니다.
친구가 그리우면 친구에게 달려가고 지난 추억이 그리우면 홀로 배낭을 둘러 맵니다.
내가 가진 가장 값진 재산은 아름다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내 머릿속의 보물지도
그리고 내 가슴속에 쌓여 있는 추억과 감동
계절이 바뀌면 바람 편에 수 많은 전갈이 옵니다.
그리움으로부터
가슴 시린 추억으로부터.
난 늙어 갈 수가 없습니다.
더 아름다운 세상은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내 사는 곳에서 더 멀고 높은 곳에 있으니 …
세상에는 아직 걸어가지 않은 길과 돌아 볼 아름다움이 너무 많이 남아 있으니…
먼저 주능선의 바람이 저의 소프트웨어에 쌓인 먼지를 날려 주었고
지리산 능선을 흐르는 청수가 오장육보에 쌓인 세속의 때와 욕심을 씻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계곡의 맑은 물이 몸 밖으로 배출된 세속의 찌꺼기와 땀을 말끔히 씻어
주었습니다.
날아 갈 것 같은 상쾌함
그리고 정신이 다시 리셋되는 것 같이 맑아지는 청정함
이쩌면 그건 순례의 마지막 의식이고 한번의 득도와 현세에 경험하는 천국인지도
모릅니다.
함양가는 버스 안에서 타들어 가는 땡빛 산하를 나른한 눈으로 바라보면서 지난 이틀이
꿈꾸듯 몽롱 해졌습니다.
조금 전 까지 맹렬한 차가움으로 뼈속 까지 얼어 붙고 머리까지 얼얼했는데….
무릉도원을 거닐었던 이틀은 내 삶의 기억 속에 오래 남을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에필로그
그렇게 2017 지리산 순례 길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지리산은 늘 거기 한결같은 모습으로 서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을 보듬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넉넉함으로….
나는 단지 빈 가슴으로 그 장중한 침묵에 다가가 세상의 위대한 스승이 설파하는 삶의
교훈과 영혼의 울림을 만납니다.
지리산이 늘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인생은 견디는 게 아니라 즐기는 거라고
행복하기 위해서는 새털처럼 가벼워지라고
가슴에 담긴 무거운 돌들을 하나씩 내려 놓고
가벼워진 몸으로 훨훨 날아 오르라고….
멋진 미래를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건 그리 많치 않습니다.
세월에 술이 그윽한 향으로 익어가듯 내가 어제 아름다운 빛깔로 채색한 시간이 오늘 아름
다운 추억이 되고 오늘 내가 추는 신명나는 한바탕 춤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을 모아 행복한
내일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내년에는 5월에 이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더 가벼운 몸과 발걸음으로…
2017년 6월 17일 ~18일
말 그대로 명상과 묵상의 순례길 이었습니다.
해마다 지라산에서 돌아 오면 도의 경계를 기웃거린 구도자는 등을 맞대고 있는 삶의
고뇌와 기쁨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산이 설파한 삶의 진리와 깨달음의 편린은 내 기억의 모래밭에 남았습니다.
휘몰아치는 삶의 파도는 또다시 수없이 밀려오겠지요
괜찮습니다.
삶의 파도가 다시 지우겠지만 다시 바람이 그 사랑을 전하면 그 때의 기억이 다시
살아 올 겁니다.
그 침묵의 언어와 사랑은 이미 내 마음의 시가 되고 영혼의 노래가 되었습니다.
가슴이 우는 어느 날 나는 다시 배낭을 둘러메고 영혼의 순례를 떠날 것입니다.
2018년 지리 종주 (안나푸르나 전지훈련)
지리산은 늘 내게 말했다
카르페디엠! 현재를 즐겨라
인생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짧은 여행길이다.
걷고 뛰면서 바라볼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은 생각보다 더 빨리 지날 갈 것이다.
여행길은 즐거워야 한다.
다시 돌아 올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딘가에 무엇인가로 돌아온다고 해도
지금의 나의 기억은 레테의 강가에 훨훨 날린 채 또 다른 나로 돌아올 것이다.
수많은 이승의 천국을 외면한 채 저승의 천국만을 염원함이 무슨 의미 있을까?.
인생은 아름답고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고
행복은 길 위에 아무렇지도 않게 굴러 다닌다.
오만가지 이유로 단지 찾으려 하지 않을 뿐
지상의 천국을 누리고 감상하는 것은 언제나 나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2018 지리산 종주 – 안나푸르나 산친구들과 전지훈련
혼자 떠나는 순례의 길을 누군가와 함께 간다는 건
어쩌면 많은 번거로움과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일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는 길에 무거운 배낭을 져야 하고
지리산의 얼굴만 바라보고 지리산이 하는 얘기만 들으면 되는데
그들과 생각을 나눠야 하고 그들의 애기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가슴 속 나의 공간을 내어 자리를 마련하고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의 댓가로 나의 황홀한 고독과 명상을 내주어야 한다.
나는 내 마음의 성지순례에 왜 그들을 끌어들였고
그들 또한 불면의 밤을 지새운 채 기꺼이 그 고행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가?
우리에겐 새로운 세상을 향한 열망과 뜨거운 가슴을 되찾아야 할 이유가 있다.
그 낯 선 먼 길을 떠나기 전에 지리산에서 먼저 만나야 할 것들이 있다.
우리가 꾸는 꿈은 아름답지만 무모하지 않아야 하고…
우리의 가슴은 뜨겁지만 메마르지 않아야 한다.
혼자만 칩거하는 가슴에 기꺼이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우린 비로소 더 먼 길을 함께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린 불면의 강을 건너 어둠의 베일에 쌓인 불멸의 산에 올랐고 하루 종일 그 장대한
능선길을
걸었다.
그리고 혼곤히 그 품에 안기어 잠들고 다시 깨어 났다.
세상의 아픔과 좌절을 모두 허리춤에 보듬고도 아무렇지 않게 거기 서 있는 산
내 삶의 변곡점에서 묵묵히 나를 지켜보고 말없이 등을 토닥여 주는 지리산
우린 축축히 젖은 시원한 수림 속을 걸었고
맑은 아침을 열어주는 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를 들었다.
능선을 차고 오르는 신비로운 산 안개와 구름바다를 만났고.
대자연의 화폭에 산과 구름이 함께 그려낸 변화무쌍한 아름다움을 보았다.
낯익은 길에서 마주하는 몽환의 풍경들은 늘 새롭고 경이로운 세상을 펼쳐 주었고.
우리는 대자연의 조화에 탄성을 올리며 즐겁게 그 길을 걸었다..
지리산에서는 늘 신과의 동행을 느낀다.
지리산 신령님께서는 언제나처럼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풀어 여정이 힘들지 않도록
배려해 주셨다..
출렁이는 구름바다를 펼쳐 가장 멋진 반야봉을 보여주시고
세석 촛대봉에서 푸른 새벽의 빗장을 열어 눈부신 아름다움 한 가운데 서게 했다.
천상의 화원을 걸어 올라 고요와 평화 속에서 정상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지리산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영적인 무엇이 존재한다.
그 곳에서 메마른 가슴은 부드러워 지고 내 영혼은 신과의 교감을 느낀다.
그 길에서 고통과 기쁨은 늘 등을 맞대고 있었다
힘들면 힘들수록 그만큼 기쁨이 가슴에 차 올랐다
그 힘겨운 순례의 길은 마치 이승에서 경험하는 천국의 느낌 같은 것이었다. .
한 철 나비가 자아의 심연을 들여다 보고 침묵으로 설파하는 장중한 삶의 교훈에 다가
가는데 필요한 것이라고는 단지 마음 하나뿐이었다.
산은 우리를 깊어지게 한다.
난 그곳에서 내 영혼의 울림을 듣는다.
자연과의 교감은 늘 나를 돌아보게 하고 세상에서 왜곡된 소중한 삶의 가치들을 되짚어
보게 해 주었다.
친구들과 함께한 2018년 지리종주는 그렇게 무사히 끝이 났다.
이틀 동안 지리산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 주었고 우린 저마다의 생각과 느낌으로
산을 받아 들이고 산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길을 걸으면서 가슴에서 비워내고 채우는 것은 각자의 몫이었다.
아름다운 풍경과 함께한 추억은 가슴속에 오래도록 남을 것이지만
비워진 가슴의 한 공간에 좀더 담아야 할 것은 배려와 사랑일 것이다.
그래야 우리가 꿈꾸는 안나푸르나가 더 아름답고 행복한 여정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24일 간의 네팔 대장정
우리의 힘으로 함께 만들어가는 내면의 나와 또 다른 신과의 만남
그 힘든 길에서 진정한 벗을 만나는 기쁨과 진정한 벗이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멋진
안나푸르나를 기대해 본다. .
2018년 6월 20일 ~6월 21일 (안나푸르나 전지훈련)
2020년 나만의 시산제 (지리산 천왕봉)
2월 4째주 일요일이 지나면 음력 정월이 넘어간다..
이 날이 지나면 새해 해돋이도 시산제도 다 효력이 없어진다.
십수년을 거르지 않았던 나의 순례 길을 열 수 있는 시간은 단 이틀만 남아 있는 셈이다..
2월 3째주 주말인 15일과 16일
15일 장터목 산장에는 자리가 없다.
이 겨울에 누가 그렇게 산에 오르는 건지 당최 이해가 안 된다.
우짜뜬 당일치기로 천왕봉에 올라 해돋이 보구 시산제 까지 지내구 내려 올라구 마음 먹었는데
그날 해가 안 뜬다고 했다.
오전은 흐리고 오후에는 비가 온단다.
지리 산신령님이 오지 말라는 거다.
길일이 아니라시네….
그랴서 나의 계획은 또 수정되어야 했다.
계룡산을 한 바퀴 돌아 쌀개봉에서 혼자만의 시산제를 지내고 내려 오던지
내 놀이터 대청호를 한 바퀴 돌고 나의 샴발라에서 시산제를 올리던지….
갑자기 산신령님이 전갈을 보냈다.
“무릉객 올라오너라….”
하루 전날에 들어가 보니 날씨가 바뀌었다.
토요일 오전에는 맑고 오후에는 흐리고
고부기가 HIOF 방에 톡을 남겼다.
“야들아 토요일에 모허냐?”
고부기가 모처럼 통발을 놓은 거 보니 쫌 한가한 모양
다른 친구들은 대답이 없어서 나만 답을 남겼디.
“ 나 오늘밤 혼자 지리산 간다. 천왕봉에 신년 해맞이 하러 !”
득달 같이 고부기 전화가 왔다.
코스며 일정을 꼬치 꼬지 묻더니 같이 가도 되겠냐고 훅 치고 들어 온다.
굳이 안 될거야 없지만 나 혼자 가는 명상순례 길에 난데 없이 동행을 자처하니 당황스럽다.
그랴서 이번에는 나 혼자 갔다 오겠다 했더니 굳이 같이 가겠단다.
우야튼 이건 산신령님이 같이 오라시는 거다.
고부기하고 같이 오라는 건
필시 무슨 깊은 뜻이 있으신 게지
11시 36분에 서대전역에서 고부기를 픽업했다.
2시간 쯤이면 백무동 주차장에 도착할거고 서둘러 오르면 6시쯤 장터목 도착하고
7시 20분쯤 천왕봉 해돋이에 차질 없이 맞출 수 있다.
장터목 가는 길
나도 백무동 빠방은 처음이다.
우린 캄캄한 계곡 아래로 내려가서 개울을 건너고 지킴이 센터를 넓게 우회해서 백무동
계곡길로 스며 들었다.
예상치 못한 난관으로 인해 달밤에 체조 좀 하느라 시간이 지체 되었다.
깜깜한 어둠 속에서 후렛쉬도 못켜고 달빛에 길을 물어 들머리를 찾고 나니 시간은 어느덧
2시를 넘어 서고 있다.
장터목 까지 5.8km 정도 가파른 바위산길이지만 눈에 뵈는 것이 별로 없으니 4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고부기와 같이 가는 길이니 좀 늦을 것 같으면 스퍼트를 내면 그뿐이다.
야간산행은 둘이 같이 가는 순간 180도 분위기 반전이다.
긴장과 스릴이 먼저 사라진다.
밤길의 두려움이야 젊은 날에 이미 훨훨 털어 버렸다.
세상에서 무서운 건 사람인데 이렇게 깊은 산중에는 나처럼 정신 나간 넘들조차 거의
없으니 마음 속의 두려움만 떨쳐 내면 무서울 게 딱히 없다.
단지 동행이 있다는 사실 하나로 마음도 몸도 편안해지고 근육과 신경도 느슨해진다.
길이 편안해 지니 좋은 일이긴 하지만 혼자 느끼는 깊은 고독의 질감과 황홀한 적막에서
멀어진다.
대자연의 경외와 길의 신비감, 그리고 어둠 속에서 만나는 깊은 성찰과 명상이 사라
천왕봉에서
천왕봉에는 거친 바람이 불었다
제법 차지만 그래도 뼈골에 스미는 그런 차가움은 아니었다.
여전히 하늘은 새날의 붉은 빛에 인색하다.,
반색하는 고부기를 만나 잠시 하늘의 기색을 살피고 나는 바람을 피할 곳을 찾는다.
고부기도 그렇고 사람들도 일출은 물 건너 갔다고 수근거린다..
기다려라 고부가 오늘은 쫌 늦게 해가 뜰 거이다.
신령님이 날 괜히 불렀것니?
그리고 무릉객이 일출 한 두 번 보니?
‘척’하면 삼천리고 ‘툭’하면 담 넘어 호박 떨어지는 소리지 ….
많은 사람들은 추위를 견디지 못해 내려갔고 남은 사람들은 비람길에서 천왕봉의
날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떨고 있다.
나는 북동 쪽 절벽으로 가려진 곳으로 내려 갔다.
바람을 가리는 작은 공간이 있는데 좀 험한 곳이라 사람들이 거기 까지는 가지 않아
비어 있는 곳 이었다.
신기하게도 바람이 하나도 들이치지 않았다.
바람이 차단되고 보니 오늘이 참으로 따뜻한 날임을 알겠다.
바람을 맞아 얼얼한 볼따구에서 비로소 열이 나고 장갑을 빼도 손이 안 시렵다.
고부기한테 들어오라 해도 여전히 분주한 고부기는 잠시도 가만히 있질 않는다.
고부가 오늘은 장기전이여 …
한참을 더 있다가 고부기의 전갈이 왔다.
“그 분이 오셨네.!”
푸르스름한 잿빛 구름 위로 힘겹게 태양이 고개를 들었다.
우리 사는 세상처럼 혼란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다소 지친 듯한 모습으로
새날의 태양이 솟구쳐 오른다.
여느 때처럼 맑고 깨끗한 모습은 아니지만 새날의 태양은 어김없이 떠 올랐고
나는 변함없이 한국 영산 제 1봉에서 새해의 태양을 향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렸다.
늘 평화와 기쁨 속에 있게 하소서….
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나의 가슴으로 세상을 느끼며 살게 하소서
나와 내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더불어 행복한 삶을 살수 있게 하소서
우리는 여러 각도와 포즈로 기념촬영을 했다.
바람이 세찬 천왕봉에서….
그리고 사람들이 대부분 내려간 한 참 후에야 비로소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 한가운
데서 빛나는 태양이 눈부신 붉은 빛으로 온 누리를 환하게 비추었다.
서로의 많은 사진을 찍었지만 나중에 보니 정작 고부기와 둘이 사진을 찍지 못했다
헐~~~
고부가 영원한 마음의 벗은 사진 따위로 규정되지 않는다..
올해의 우리 모습은 11월 응봉산 눈밭의 기념사진으로 가름하자….
가물에 콩나듯 올해처럼 눈가뭄이 심한 때 그래도 장한 눈밭을 두 번이나 너하고
걸었구나
우리가 어둠을 깨우며 만난 해돋이가 한 두 개냐?
우리가 함께 썼던 웅대한 삶의 서사시는 여전히 불후의 명작으로 남아 있다.
진군의 북소리는 아직도 귓전을 때리고 있다.
충북알프스를 주유한 속리산 문장대 일출
한겨울 덕유산 종주길의 향적봉 일출
새해 첫날의 남덕유산 일출
그리고 오늘 천왕봉 일출 까지….
모두 다 내려간 천왕봉을 마지막까지 고부기와 둘이서 지키며 고사를 올리고 돌아 오려
했는데 아가씨 두 명과 홀로 산님 한 명이 사진을 찍느라 끝까지 내려 갈 생각을 안 한다.
고부기는 추워서 내려갈 생각만 하고….
할 수 없이 천왕봉 표석아래 조촐한 고삿상을 차렸다.
먼저 천지신명과 지리 산신령님께 감사의 잔을 올리고 삼배와 함께 또 한 해의 무사산행을
엎드려 기원 했다.
드넓은 대자연의 감동과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늘 보살펴 주심에 감사 드립니다.
올해도 세월에 먼저 늙어가지 않는 마음과 지치지 않는 체력을 허락하시고
아름다운 세상을 향한 여행을 계속하게 하시고 그 가는 길을 지켜 주소서
하늘에는 하느님이 있고, 극락에는 부처님이 있고, 산에는 산신령님이 있다
시산제는 신과 통하고 산과 소통하는 영혼의 교감이다.
종교와 무속을 초월하여 대자연 속 하나의 피조물인 인간이 불멸의 신에게 드리는 경배
이고 신과 소통하고 산의 영기를 받아들이는 영혼의 교감이다...
그건 미신과 무속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의이고 우릴 돌아보는 겸손함이며 산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성스러운 의식일 뿐이다.
가끔은 산길에서 나를 보호하는 신과의 동행을 느끼지 않는가?
나만의 시산제다
차린 건 없지만 그 마음은 알아주시겠지
내 영혼의 순례지 지리산.
처음 천왕봉 오른 때부터
그리고 백두대간을 완주하는 마지막 날 뜨거운 눈물을 흘리던 그 날로부터
늘 가슴에 담았던 내 마음의 성지
묵묵히 내 삶을 바라보고 늘 그 삶의 변곡점에서 마음을 어루만지고 등을 토닥여 주었던
깊고도 푸른 힘
그것은 어머니의 가슴이고 내 영혼의 심연이었다.
어지러운 세상의 길을 인도하는 내 인생의 스승이고 삶의 고뇌와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늘 한결같은 친구였다.
세상을 밝히는 지혜의 등불은 언제까지나 꺼지지 않고 오랜 세월에도 친구는 늙어가지
않는다.
우린 가슴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소통한다.
날바람 부는 천왕봉에서 가슴으로 듣는다.
산이 하는 말 바람이 전하는 사랑에 관하여....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조급하지 마라 !
올해 지리 산신령님의 화두는 도광양회 (韜光養晦)다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른다.
겉 멋이 아니라 내공이다.
중요한 건 남의 눈에 비치는 나의 모습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바라보는 진정 아름다운
세상이다.
가슴에 늘 출렁이는 바다가 있게 하라!!
산처럼 침묵하고, 바다처럼 여유롭고 물처럼 자유로워야 한다.
올해도 너끈하다.
이렇게 지리산의 새벽진기를 가슴가득 받았으니.....
산신령님께 술 한 잔 올리고 엎드려 고했으니...
오늘은 고부기 찍사가 있어서 경건한 그 순간의 추억을 많이 남길 수 있었다.
ㅎㅎ 고부가 너랑 같이 오니 좋다.
해마다 가는 지리산 순례길에서 오늘이 내 사진을 가장 많이 남긴 날이다.
그랴 고부가
더 늙기 전에 너랑 좋은 추억 마이 남기라고 산신령님이 함께 부르신 거지…
니가 어제 무다히 나의 스케쥴을 물었겠느냐?
다 신령님이 시키신거지..
고부가 !
난 니가 좋다.
가끔 퉁을 주고 심통을 부려도 그려려니 해주고
늘 먼저 연락 해주고…
오래 적조하면 술 한잔 치자고 대전까지 달려오고…
멀리 살아도 같이 산에 가자고 통발하고….
험한 길 기꺼이 동행이 되고…
우리 살아가는 모습은 그렇게 비슷해서 좋다.
백 년도 못사는 짧은 여행길에
천 년을 살 것처럼 천방지축 나대고 있지만
비워내지 못하는 사나운 욕심은 드글드글 살아 있지만
얻고자 하는 것이 지고가지 못할 재물이 아니고
구하고자 하는 것이 더 나은 명성과 명함이 아니고
단지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과 감동이려니
가슴 하나에 담길 추억이고 사랑이려니
그래 살면서 더 욕심 낼 게 무엇이 있는가?
아름답고도 거친 세상이 있고
그걸 누릴 뜨거운 가슴과 튼튼한 다리가 있고
함께 춤추고 노래할 좋은 친구가 있으면 되지
하늘의 해는 이렇게 가슴에 담고
하늘의 달은 한 잔의 술 잔에 담으면 되지
100살 까지 산에 가자
쟌뮤어도 가고
산티아고도 가고 마추피츄도 가자
너 은퇴하믄 그 때는 에베레스트도 가자.
여서 뜨는 해나 거서 뜨는 해나 다 마찬가지지만
여서도 보고 거서도 보자
암데라도 가고 암데라서도 술 한잔 치자….
백무동 난리 부르스
백무동 내 전용탕은 지나쳤으니 다시 등로에서 잘 보이지 않는 소를 찾아 계곡을
내려 갔다.
제법 물이 많이 고이고 은페엄폐가 양호한 곳을 찾아 냈다.
물색이 시푸르등등 한데 발을 담그니 완죤 살기등등하다.
내가 3월달에는 알탕을 한 경험이 있지만 눈 덮힌 2월(음력으로는 정월)은 처음이다.
일단 옷을 다 벗고 소 한가운데로 들어 갔는데 이건 완죤 순간 냉동고 수준이다.
그 쇼크에 놀라 반사적으로 뛰쳐 나왔다
근데 시방 나가 볼쌍 사납게 옷을 벗었다가 무릎까지만 씻고 주섬주섬 옷을 입어야
하는 겨?
이기자 부대 출신 육군하사 도하사가?
산전, 수전, 공중전, 드론전 까지 마스터한 무릉객이?
신령님도 보고 계신데 정말 모냥 빠진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다시 들어갔다.
이를 악물고 머리를 감았는데 하반신이 얼어 붙는 바람에 도저히 몸을 담글 수는 없다
할 수 없이 세차게 물을 온 몸에 뿌려 대며 대충 씻고 다시 감전된 깨구락지처럼 웅덩이
밖으로 뛰쳐 나왔다.
온 몸을 물에 적셨는데 물 밖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나?
언 몸이 해동되기는커녕 몸을 스쳐가는 차가운 계곡의 바람이 숫제 내 주리를 틀어댄다..
물고기가 차가운 물 속에서 얼어 죽냐? 물 밖으로 나와서 얼어 죽는 거지
진퇴양난이다.
칼은 빼어 들었는데 수전증 땜시 고구마가 잘 안 깎인다.
가슴살과 양 날개는 씻었는데 등심과 사태살은 아무래도 좀 미흡한 거 가터…
잔뜩 오그라든 고주도 덜 씻었지 아마?.
다시 심호흡을 하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2차시기 재도전
다시 한 번 물속에 뛰어들어 허리춤 까지 주저 앉자 그 뼈속까지 얼릴 기세의 차가움은
이젠 죽음의
공포를 들이 댄다.
내 심장이 멎어버릴 수도 있을 것 같은 공포
와신상담, 절치부심 끝에 다시 시도한 물속에 푹 잠기기는 또 다시 실패로 돌아갔다.
나는 다시 한 번 온몸에 물을 끼얹으며 물 속에서 한바탕 망나니 춤을 추고 나서 물 밖으로
도망쳐 나왔는데 그 뼈 속 까지 스미는 차가움과 추위에 완전 얼이 빠져나갈 지경이다.
혼비백산, 맨탈붕괴 !
특히 물에 잠겨 있던 발은 아프다 못해 완죤 마비 수준
흐미 이러다 생사람 동태 맹글어 버리겠네 …..
서둘러 양발을 신고 옷을 입었지만 발은 완전 깨어져 나갈 것 같이 아파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
물 속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수건에 물을 묻혀 몸을 닦아내는 고부기한테 한마디 말도
못하고 일단
계곡 밖으로 뛰쳐나와 발의 통증이 사라질 때까지 속도를 내서 하산 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까딱 잘못하다가 지리산 계곡에서 얼어 죽을 뻔 했다.
고부가 너가 나 중국 갔다 왔다고 보건소 가보라 그랬지?
안 가도 까딱 마이신이다.
남아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넘들 오늘 다 얼어 죽었다.
그래도 오늘 또 새로운 역사를 썼다.
무릉객 천왕봉 당일치기 해돋이 및 시산제 산행 성공리에 마무리하다.
그리고 음력 정월에 서슬푸른 지리산의 눈물 속에서 눈뜨고 못 봐줄 눈물겨운 알탕으로
탈 속한 끝에 신선의 반열에 오르다..
뼈를 깎고 살을 에이는 발의 통증이 잦아 들고 나서 비로소 난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고
난 계곡의
양지바른 바위 위에 느긋하게 걸터앉아 고부기가 내려오길 기다렸다.
워낙 우리가 계곡 날머리 가까이에서 몸을 씻어서 별로 오래지 않아 우리의 하산은
끝이 났다.
우리는 뿌듯하고 의기양양하게 달밤에 체조했던 백무동 탐방지원 센터로 내려왔고 센터
국공님들에게 여유로운 인사까지 건네며 우리의 위대한 여정을 마무리 했다.
2020년 2월 15일
나만의 시산제는 새로운 시도 였고 최초의 기록이었다..
당일 천왕봉 일출 산행에 시산제 까지
2월의 계곡 알탕은 순전히 사우나를 거부한 고부기
뒤늦게 산이 내려 온동네 빠대고 다니는 고부기와는 더 많은 거친 산의 역사를 쓸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2년이란 짧은 시간에 백두대간에 백대명산 그리고 정맥 일부 까지 숨가쁘게 섭렵하고
지리산 왕복종주까지 서슴지 않았던 고부기는 어느 날 갑자기 산에서 내려왔다.
마치 산이 내리고 신이 내린 듯 설치고 다니던 고부기의 하산도 시작처럼 그렇게 갑작
스러웠다.
나는 그 정도 산에 깊이 빠진 사람이 순식간에 산을 등지는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나는 친구와 함께 누릴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거친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쉬웠지만 더
이상 아무 것도 묻지 않았다.
그의 시정이었고 그의 선택이었다.
내 기준에서 친구는 삶의 큰 기쁨을 잃어 버린 것이지만 본인 스스로는 더 큰 행복을
찾아 나선 길이었을 것이었다.
2024년 나 홀로 천왕봉 일출 산행 1일차
2020년 나만의 시산제 이후 나의 지리산 명상 순례길은 막혀 버렸다. .
코로나로 산장은 폐쇄되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원래의 고독으로 돌아 갔다.
지리산에서 멀어졌을 뿐 나는 코로나나 흐르는 세월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나는 거친
산에서 내 삶을 노래했다.
생각이 머물지 않은 건 아니었댜.
체력이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그런 어리석은 생각 같은 건 더욱 아니었다.
심산의 가슴으로 가는 그 길은 두려움 보다는 기대와 소망이 앞서는 길이었기에 늘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단지 마음 하나 였다..
내 가슴이 다시 울리는가?
그 소리를 따라 어둠 속으로 한 발을 뗄 수 있느냐의 문제일 뿐 이었다..
나머지는 지리산과 산신령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 것이었다.
창궐하는 코로나로 지리산 산장이 폐쇄되고 난 어느 날 구례행 야간 열자가 사라졌다.
지리산이 닫혔으니 이용객이 없어서 였으리라!
그것 또한 세상에서 가장 빨리 늙어가는 대한민국의 비애였다.
성지순례의 교통편이 예고 없이 사라진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간 역사를 허물고 누군가의 고단한 인생길을 밝혀줄
낭만의 등불을 걷어차 버렸다.
더 중요한 것은 내 가슴이 그리움에 울지 않았다는 것이다.
코로나 세상도 그렇게 너울너울 세월은 잘도 흘러 갔다..
새벽열차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푸석푸석한 얼굴과 잠에서 들깬 몽롱한 눈으로 구례구
플랫폼을 스산하게. 불어가는 새벽 바람을 서늘한 가슴으로 껴안던 젊은 노인은 그렇게
세월 속에 늙어 갔다.
구례열차의 폐쇄로 1박 2일 종주는 어려워 졌다.
차량을 가지고 가면 되겠지만 차량회수에 막대한 비용(?)이 들 수 밖에 없다.
옛 회사로 돌아가 다시 일을 하다 보니 2박 3일을 지리산에 할애 하기가 어려웠다.
사라진 야간 열차와 함께 1박 2일 지리산 종주는 내. 인생의 뒤안길로. 떠나간 것이다.
기적소리조차 남기지 않은 채
하지만 그게 끝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단지 해마다 떠나던 순례 길은 좀더 자유로운 훗날로 이월되었을 뿐이었다.
어쩌면 두려워 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나를 다시 시험대에 올리고 그 먼 길을 걸어갈 용기가 사라졌는지도 모른다.
마음이 세월보다 더 빠리 늙어 가지는 않아도.언제부터 두눈 부락리며. 대들고
멱살잡고 드자비할. 호기는 사라 졌다.
내가 세월에 낡아가고 세상에 주눅든 만큼 시간은 늘리고 속도는 줄여야 할 것이다.
왼성된 시나리오도 있다
훗날에는 삼일 동안 혼곤히 지리의 숲에 물들고 그 바람과 물로. 가슴을 씻어내어 그 큰
산의 기로 내 영혼을 정화할 것이었다.
충분히 잠을 자고 서대전역 첫차로. 구례구로 간다.
1일차
집에서 아침식사 .
7시 40분 서대전역 출발 10시 30분. 도착
노고단 산장에서 점심.식사 (라면)
벽소령 산장에서 저녁식사, 숙박, (햇반)
2일차
벽소령 산장 아침식사 (오댕탕, 햇반)
세석산장에서 점심식사 (라면, 떡국)
장터목 산장에서 저녁식사(햇반) 숙박
3일차
지리산. 천왕봉등정
장터목 산장으로돌아와 아침식사 (누룽지, 미숫가루)
식사후 백무동하산 알탕.
밑반찬, 김치
관건은 무게를 최소화 하는것
어머니 병세의 위중함으로 설날 명절에 가족 전체 회동을 하지 않기로 했다.
이 번 뿐만이 아니라 돌아 가실 때 까지….
제사 후 내려올 동생들과의 가까운 곳을 걷고 술 한잔 치고자 했던 일정도 무산되었다.
오랜만의 돌려 받은 시간으로 인해 내 영혼의 순례 길을 다시 열고자 했다.
남덕유 당일 일출 해맞이
아니면
지리산 1박 연하선경을 경유하는 천왕봉 해맞이
결국은 지리산으로 결정했다
오랫동안 멀어져 있던 내 마음의 성지
백무동 한신계곡으로 세석에 올라 점심을 먹고 장터목에서 1박하고
그 다음날 천왕봉에서 해맞이.하고 백무동 계곡으로 내려오는 일정이다.
준비물
산장에서 모포는 지급하지 않는다고 했다.
겨울에 지리산 산장에서 하루를 머무른 기억이 없다.
방한복(경랼 오리털 패딩, 고어텍스점퍼),방한모,스패치, 아이젠의 기본 장비에
부피가 큰 침낭 대신 띠뜻한 담요 하나 챙겨 넣고 걱정이 되어 내복 까지 챙겼다.
거기에 비에 젖을 경우에 대비한 스웨타 하나 더
취사장비 버너와 연료..
먹을 것은 라면 두 개와 오뎅 한 봉, 빵 두개, 김치 한통, 떡 2개 , 군계란 3개 ,
보온물병 1개와 생수 1통 이외에 햇반과 취사용 물은 산장에서 살 예정이다.
새로 바꾼 35리터 그레고리 배낭이 너무 작아서 이전 45리터 배낭에 챙겨 넣었는데 그
무게가 장난이 아니다.
“고생 좀 하겠다.”
관절과 허리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체중도 감량하고 간편식 점심만 챙겨 넣은 가벼운
행장으로 등짐의 무게를 줄여 왔던 터라 엄중해진 배낭의 무게는 큰 부담이었다.
“ 무릉할배 괜찮으까?”
관건은 해 내는 산행이 아니라 여전히 즐기는 산행이 가능한가의 문제 였다.”
6시 30분쯤 집을 나서서 함양 휴게소에서 국밥을 한 그릇 먹었다.
기분 좋게 지리산 IC를 빠져 나가는데 인월 벌판 위로 붉은 해가 떠오른다.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를 꺼내어 사진을 찍으려는데 흐미 “ 메모리 카드가 없다.”
“일헐수가!”
지난 번에 찍은 사진 작업 하느라 카드를 빼 놓고 끼워 놓지 않았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이는 개벼 !
어제 출정 준비한다고 그렇게 설레바리 치고도 카메라 테스트 한 번 하지 않은 것이다.
밧데리만 충전하고 예비 밧대리 까지 갈무리하면 무슨 소용인가?
모처럼 지리산 신령님이 초대하신 산상 파티에서 모냥 빠지게 핸펀으로 그 추억을
갈무리 해야 한다니…
김 팍 샜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혹시나 해서 가는 길에 편의점 두 군데를 찾아 들렸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한신 계곡 오르는 길
어젠가 겨울에 한 번 오른 적이 있다
그 고요와 황홀한 고독은 내 기억의 한 모퉁이에 지금도 남아 있다.
몇 일 전에 제법 많은 눈이 내린 모양이다.
아직 눈 빛은 싱싱하고 발목 높이의 눈 밭에는 다져진 작은 길은 얼어붙은 계곡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감사할 일이다.
나는 아직 떠나고 싶고 그리고 나는 이렇게 떠날 수 있다.
가내소 폭포를 지나고 부터 풍경은 더 수려해졌다.
2.8km 지점에서 배낭을 나무 등걸에 뜨거운 물을 한 잔 마셨다.
무게를 줄인다고 간의 의자를 가져 오지 않은 것은 실수 인 듯하다.
계곡의 풍경이 좋은 곳의 사진을 찍으며 여유롭게 산행을 이어가는 중에 세석 산장에서
하루를 유하고 내려오는 부부가 있어 산장의 난방 상태를 물으니 밖은 추어도 안은 전혀
춥지가 않다고 한다.
대대적인 산장 보수 후에 숙박 여건이 좋아진 모양이다.
3/2 정도 지점을 넘어서면서 경사는 가파라지고 피로가 밀려 왔다.
잠시 나무 등걸에서 기대어 다리쉼을 하는데 거친 숨을 몰아 쉬는 산님 한 명이 올라왔다.
50대 정도, 배낭의 부피가 일반 산행 수준이라 산장에서 자는가 물었더니 나처럼 장터목
에서 잘거 란다.
자기도 겨울 산장은 처음이라고…..
그는 나를 지나 빠르게 계곡을 치고 올라갔고 내리누르는 등짐의 무게로 인해 나의 걸음은
점점 더 느려 졌다.
정신 나간 할배 또 한 명이 내려왔다.
오늘 새벽 백무동을 출발해서 천왕봉에 올랐다가 내려 가는 길이라고 …
ㅎㅎ 나외 역방향 산행인데 1박 하지 않고 하루에 끝내는 산행이다.
가벼운 행장으로 민첩하게 움직이는 대단한 내공의 노익장이다.
배낭의 무게가 가벼워 나역시 충분히 할 수는 있겠지만 장터목의 망중한과 천왕봉의
일출이 빠진 전투적인 산행은 내겐 별 의미와 감흥이 없다.
다리는 이상 없는데 8부 능선을 넘어 서면서 허리에 통증이 나타났다.
2년전 치악산 동계 일출 종주 때도 배낭이 그리 무겁지 않았는데도 말미에 허리 통증이
나타났었는데 젊은날처럼 늘린 베낭의 무게를 허리가 감당하기 힘든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앞으로 이런 배낭의 무게로는 이 코스를 가기에 무리가 따를 거라는 거.
순례길이 끝나게 되면 견적이 나오겠지만 결국은 담요 빼고 취사 장비 빼고 햇반과
간편식으로 요기를 해야 무리를 느끼지 않을 것 같다.
세석 산장 숙박
배낭의 무게가 만만치 않은 터라 새월을 보낸 만큼 노고단에서 장터목 까지의 장거리
능선 종주는 체력에 부칠 것 같아 2016년 부터는 세석 촛대봉에서 일출 맞이를 했다.
장터목 일출과는 그 의미와 감동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세석 촛대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
일출 또한 장관이었다.
세시간 30분 여유를 두고 세석을 출발하면 천왕봉 해맞이를 할 수 있기는 한데 촛대봉과
연하선경은 어둠에 묻어야 한다.
어쨋든 앞으로의 지리종주는 구례구행 열차편이 없어짐으로 해서 충분한 잠과 함께 2박
3일의 순례 길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
세삭산장은 예전과 다른 모습이었고 몇몇 산님 만이 따뜻한 햇살이 내리 쬐지만 기온이
싸늘한 야외 벤치에서 휴식하고 있다.
허기가 느껴져서 취사장으로 먼저 갔다.
세석산장에는 생수가 떨어졌다.
물을 구하러 갔는지 아얘 근무자도 보이지 않았고 판매 창구에는 생수 없다는 안내판만
붙어 있었다.
“참 불친절한 세석씨 !”
누군가 샘터도 얼어 붙었다고 했다.
“이게 뭔 일이래?”
물도 없으면 굶던지, 눈을 녹여 라면을 끓여 먹던지 해야 하는 건가?
예전 아들과 백두대간 주유할 때도 삿갓봉 대피소에 물이 없다고 근무자가 받아 놓은
물 한 통을
건네주어 간신히 면을 끓일 수 있었다.
오늘도 샘터로 한 번 내려가려 했는데 산님 한 분이 남은 물을 주겠다고 나섰다..
나는 고맙게 받아 버너에 오뎅을 끓여서 먼저 건져먹고 남은 물에 라면을 한 개 끓여
먹었다.
그리고 천천히 휴식을 하며 가파른 산길의 여독을 풀고 1시 30분 쯤에 장터목으로
출발했다.
장터목 가는 길
촛대봉에는 나를 밀어 버릴 만큼 센 바람이 불어 갔다.
그 옛날의 기억을 떠 올리며 거센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눈 위에 발자국이 나지 않은 촛대봉
바위 멀리 까지 다녀 왔다.
3.7km 연하선경 능선 길은 멀리 노고단과 반야봉 삼도봉을 연결하는 주릉을 뒤돌아 보면서
가야할 천왕봉을 앞에 두고 걸어 가는 아름다운 길이다.
그 길 위에서 웅장에게 파노라마치는 광대한 지리 세상을 바라 볼 수 있다.
내 젊은 날 수도 없이 걸었던 길이다.
하지만 그렇게 세월은 내 걸음보다도 빨라서 이제 좀 여유롭게 나댈만 할 때가 되었거니
했는데 해는 벌써 서산에 기울고 어느 결에 나는 60고개 중반을 넘어 섰다
오메가 포인트
잠시 다리쉼을 하고 뜨거운 물을 한 잔 마셨다.
능선 바위 위에는 너무 거센 바람이라 서 있을 수가 없는 데 그 아래 양지 바른 바위 길 반석
위에 걸터 앉으니 바람 한점 들이치지 않는다.
위에서는 승냥이 울음소리를 내며 바람이 불어가는데 이 곳은 마치 따뜻한 햇빛이 쏟아지는
봄날의 정원 같다..
그 따사로운 평화에 이끌려 20여 분은 족히 고요히 앉아 있었다.
그냥 세찬 바람소리 들으며 지나온 길의 풍경을 바라 보면서…
가는 길에 거대한 배낭을 맨 두 산님을 만났다.
촛대봉에서 잠시 교행했던 사람들.
누가 보기에도 야영을 위한 엄청난 크기의 등짐이라 비박이라도 하느냐고 물의 장터목에서
하루 유할 거라고 했다.
크기만 크지 그렇게 무겁지는 않다고….
제사를 지내고 탈출해 온 부자지간 이었다.
나보다 한 살이 적은 아버지와 서른 다섯 살의 아들
아들은 세살배기 아들이 있다고 했다.
연하선경 풍경 만큼이나 흐믓하고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우리는 산 길에서 이러 저런 애기를 나누다 내가 먼저 인사를 하고 산장으로 출발했다.
장터목 산장에는 4시 30분쯤 도착했다.
세시간 정도 여유롭게 걸은 길이었다.
여장을 풀고 산장 안으로 들어갔는데 완전 5성급 호텔이다.
목재 침상은 쾌적하고 안락했다.
방한용 이불과 옷가지를 바리바리 가져올 이유가 딱히 없었다.
한 겨울에도 배낭의 부피는 충분히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나중에는 2층 침상 역시 많은 사람들로 채워 졌지만 경로 우대를 목전에둔 노인이라
구석 한적한 곳의 자리를 배정 받았고 내 옆에는 결국 아무도 들이지 않아 나는 정말로
쾌적한 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산장에서 만만 부자지간 역시 2층 반대편 침상 좋은 자리를 부여 받았다.
아직은 장유유서의 오륜이 살아 있는 동방예의 지국이다.
햇반과 준비해간 김치 그리고 김으로 식사를 하고 느긋한 휴식을 취하다가 일출 만큼
아름다운
장터목 해넘이를 감상했다.
해가 서산 위에서 노을의 븕은기가 강해질 때쯤 고요하고 평화로운 장처목에 미친듯한
바람이 불어가기 시작 했다.
바람은 산비탈에서 싸락눈을 퍼 올려 눈을 뜨지 못하게 만들면서 사람을 날려 버릴
기세였다.
사람들은 야외 벤치에 나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큰 카메라를 가져오지 못한 게 너무나도 아쉬운 비장하고 아름다운 일몰이었다.
나는 두 번이나 나가서 장엄한 일몰을 핸드폰에 담으며 그렇게 내 인생 길의 다이나믹한
또 하루와 안녕을 고했다.
그렇게 장터목은 어둠 속에 묻혀 갔고 나는 산장의 아늑함 속에서 어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황홀한 고립과 감미로운 고독을 즐기다가 8시 소등과 함께 깊고 푸른 잠에 빠졌던 것이다.
2024년 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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