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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진안 구봉산

 

 

 

나이가 든다는 건 세월에 조금씩 낡아가는 것이다..

조금씩 느려지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 좀더 둥글어 지고 너그러워 지는 것이다.

 

4년 만에 지리산 천왕봉 일출을 다시 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찬란한 일출 !

 

지리산이 내게 말했다.

조금 더 가벼워 지라고

등짐을 줄이고 가슴에 너무 많은 것을 쌓아두지 말라고

 

세상의 이치가 다 그렇다.

퇴직 후 일을 하면 하는 대로

일을 안하고 놀면 노는 대로  

득과 실이 그리고 명과 암이 늘 함께 교행한다.

무엇을 하던 세상을 살아가노라면 으레껏 크고 작은 고민들이 따라 붙고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다.

선택은 늘 그렇듯이 자기 몫이다.

중요한 건 마음을 바로 하고 고요히 하여 세상의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머지 않은 날에 내가 고민하고 아파하던 시간조차 소중하고 아름다운 나의 역사와

추억이 될테니까.

어쩌면 내년에는 버너를 챙기고 좀 더 여유로운 23일 순례 길에 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순례길에서 돌아와 다시 3일만의 출정이다.

매달 거르지 않는 조사장과의 산행 날짜가 나오지 않아 하루 휴가를 하루 쓴 탓이다.

속도가 그다지 느려지지는 않았는데 갑자기 늘어난 무게가 허리에 부담으로 다가왔다.

에전에는 아무리 힘든 산행을 해도 이틀 밤만 자고 일어 나면 거뜬 했는데 3일차 출정

전날에도 여전히 몸이 무겁고 장단지의 뻐근함이 가시지 않았다.

좀더 가볍게 오던지 좀더 여유롭게 오라는 지리산 신령님의 충고였다..

 

조사장에게는 선택지를 제안했다.

남덕유 설산 등정과 진안 구봉산 산행.

주제는 마지막 떠나는 겨울과의 낭만적인 이별이었다.

올해 눈밭을 많이 빠대서 눈에 관한 한 별 미련이 남지 않지만 덕유의 장대한 설국을

보고 싶었고 한 편으로는 조금은 가벼운 산행으로 몸의 피로를 풀어도 좋겠다는 마음

이었다.

남덕유는 6시간 걸리는 제법 긴 코스지만 그 장대한 설국에 서면   절절한 그 길의 감동에 

다시 가슴이 부풀고  설원의  들개처럼  당당해 질 것이다.

 

조사장은 4시간 30분 진안 구봉산을 선택했다.

안전지킴이 조사장 입장에서는 아마도 큰 산의 겨울 산행이 안전상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다.

괜찮다.

그 곳은 내년에도 또 언제든지 갈 수 있다.

마음만 먹으면 혼자라도 330분에 올라 남덕유의 일출을 보고 서봉을 찍고 오전

10시 쯤에는 다시 영각사로 돌아올 수 있다.

남들이 모두 위험한 곳이라고 하지만 내게는 내 살던 시골의 뒷동산처럼 편안하고

익숙한 산이다.

 

그 산에는 아직 그리움과 설레임이 있다.

내 야성을 깨우고 내 모험심을 자극하는 덕유산 

나는 그곳에서도   지리산처럼 나를 보호해주는 신의 존재와 큰 산의 기운을 느낀다.

 

구봉산 가는 길

6시에 조사장이 집으로 픽업을 왔다.

진안 가는 길은 여전히 차가웠고 최저 속도로 조심 운전을 했다.

 

구봉산은 20년 전에 산친구들과 운장산의 긴 능선을 따라 내려온 적이 있고

2016, 그러니까 8년 전에는 마눌과 같이 왔다

8년 전이면 마눌도 백대명산을 누비던 시절이라  출렁다리가 설치된 구봉산의 

1봉부터 9봉까지 모두 넘어서 5시간 만에 내려 왔다.

 

넓은 구봉산 제 2주차장은 한 대의 차도 없다.

더 넓어진 부지에 제 3주차장 까지 있는 걸 보면  그동안  구봉산의 인기가 더

높아진 듯 하다.

 

산세로 보면 역방향 산행이 훨씬 수월한 지형이다. ..

오늘은 시내산 교회 옆에 있는 등산로를 따라 역방향 산행을 계획했다.

곧바로 치고 오르는 것 보다 주차장에서 시내산 교회까지 워밍업을 하고서 오르는

게 훨씬 몸에 좋을 듯 싶다.

 

주천 벌의 싸늘한 냉기를 목에 감고 오르는 길에 여전히 발걸음이 무겁다.

팽팽하게 긴장한 장단지는 아직 그날, 자라산의  엄중한 하중을 기억하고 있다.

 

멀리 올려다 보이는 9봉은 머리에 하얀 상고대를 덮어 쓰고 있다.

제법 높은 곳이라 아래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녀는 아직 떠나지 않았구나 !”

 

9봉 가는 길

바람이 들이치지 않는 골짜기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가다가 몸에 열이 나고 힘들어져 자켓을 벗고 가벼운 바람막이로 바꾸어 입었다.

조사장은 멀찌기 앞서서 갔고 나는 무리가 되지 않게 천천히 속도를 늦추어 올라 갔다.

 

예전에는 없었는데 8부 능선 쯤에서는 가파른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조사장은 능선 끝에서 뜨거운 물을 마시며 나를 기다렸다.

내가 지리산 등정 피로가 풀리지 않아서 힘들다 했더니 대한민국에 제 이름 가지고

있는 산치고 만만한 산은 없다.”는 단골 레파토리를 되뇌이며  체력과는 무관한 등로의

힘겨움을 역설했다..

우리는 구봉산의 황홀한 상고대 숲을 거닐었다.

어제도 눈발이 날렸는지 길과 계단에는 얇은 눈이 쌓여 있고 아무런 발자국도 없었다.

우리는 바람의 호휘를 받으며 그렇게 겨울 여인과 이별을 고했다.

바람에 흩어지는 상고대가 햇빛에 무수히 반짝이며 축복처럼 휘날리는 낭만적인

이별이었다.

모든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녀와의 아름다웠던 추억도

이 멋진 야생을 누릴 수 잇는 건강도

풍경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새벽 같은 친구가 있음에도……

 

9봉 하산 길

정상에서 8봉으로 내려서는 길은 참으로 위험했다.

낙차가 큰데다가 적설이 얼어 붙어서 빙판처럼 미끄러웠다.

우리는 아이젠을 하고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 갔다.

가는 길에 한 산님을 만났다.

우리가 시내산 교회 방향으로 움직일 때 도착했던 분으로 정방향으로 산행을 해서

9봉 아래서 교행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한테 빨리 왔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 쪽 발걸음이 더 빠른 것 같다,

 

8봉 가는 길 절벽에서 고드름을 따서 마치 얼음과자인 듯 빨면서 내려 갔다.

삶의 단조로움에서 벗어나는 모험과 동심을 같이 돌려주는 고마운 산

내가 평생 산에 빠진 것은 행운 이었고 내 삶의 축복 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인지 9개의 봉우리를 지고 있는 구봉산의 자태는 더 웅장해 보였다.

우리는 한 봉우리 한 봉우리 올라서며 사진도 찍고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주천벌의

풍광을 내려다 보기도 하면서 행복한 아침의 상념과 기쁨에 젖었다.

 

구름다리 건너 4봉에서 쉘터를 치고 점심식사를 했다.

바람을 막아주고 따뜻한 햇살이 들이쳐서 여유롭고 평화로운 만찬 이었다.

서두를 이유도 없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 그리고 조금씩 자세를 낮추어 가는 능선의 흐름에 보조를 맞추는

편안한 마음으로 남은 여정을 이어갔다.

화룡정점은 1봉이 찍었다.

멋진 풍광을 감추고 있는 1봉에 올라 우리가 걸어 내린 능선의 웅장한 풍경과 주천

벌의 평화로운 풍경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세월은 다시 흘러 갈 것이다.

어쩌면  에 생에 다시 구봉산에 오르지 못 할지도 모른다.

첫 구봉산에 오른지 20년이 지났고 마눌과 그 정상에 오른지도 8년이나 되었듯이

대한 민국의 산이 3300개이고 내 삶의 시간도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으니 ...

하지만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붉은 빛으로 내 인생의 남은 

시간을 물들일 것이다.

 

내 어머니가 88세까지 건강하시다가 작년 89세 때부터 건강이 안 좋아 지셨다..

띠띠 동갑인 어머니와느 24살 차이

인생여백구과극(人生如白駒過隙)

10년쯤은 문틈으로 말이 지나가는 말을 보는 것처럼 또 그렇게 훌쩍 지나갈 것이다.

산을 내려와도 그 상황에 맞게 또 즐겁게 살 방도가 있겠지만 친구와 75세 까지는

가고 싶은 산에 가며, 마시고 싶은 술을 나누며 그렇게 살고 싶다.

 

진안 읍으로 가서 사우나를 하고 진안 토속음식 애저탕이나 흑돼지 두루치기를

먹으려 했던 당초 계획은 수정되었다.

우리는 역방향으로 20여키로를 이동해야 했기에 대신 금산에 둘러 어죽을 먹고

일찍 대전으로 돌아 왔다.

 

산 행 일 : 216일 금요일

산 행 지 : 진안 구봉산

산행코스 : 2주자장 시내산교회-9~12주차장

소요시간 : 5시간

   : 맑음

   : 조사장

 

 

 

 

2016년 산행기

  

겨울 날씨가 좋다니 구봉산엘 가야지

10년은 넘었지 싶다.

연석에서 운장을 거쳐 구봉으로 내려서던 그날은

2년전인가 출렁다리가 놓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고 했다.

그냥 겨울엔 차량 이동거리가 두 시간 이내가 좋고 근교산이 좋다.

신체의 건강리듬을 잃지 않으려면 특히 겨울엔 산행을 한 주라도 걸러서는 안 된다.

나야 그래도 운동량이 많은 편이지만 마눌은 주말마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점점 쇠약해질 것이다.

그럼 60 넘어서 세계여행은 불가능하다.

그 땐 나 혼자 떠날 수 밖에 읍따.

노후대책 1순위는 당근 부부 건강관리여야 하는데 몸이란 건 마음을 따르는 것이니

매사 먼저 마음이  편안하고 운동에는 즐거움이 따라야 한다.

꾸준한 산행이라지만 건강을 위해 억지로하는 운동이 아니라 자연에 숨겨진 아름

다움을 찾아가는  여행길이니 그 자체가 삶의 활력과 힐링이 된다.

그 한 번의 땀이 일주일의 건강을 지켜주고 즐거운 여행습관이 평생의 건강을 지켜

줄 것이다.

 

 

구봉산 가는 길

날씨가 풀렸다더니 웬걸 새벽공기는 너무 차갑고 체감온도는 엊그제 추운날 보다 더

낮은 것 같다.

차창밖으로 안개에 쌓인 금산 국도변 풍경을 탄성을 올리며 감상하다 급기야 금산과

전라도의 경계 지점에서 멋진 상고대에 홀려 갓길에 차를 세우다.

다른 사람에게는 별다른 감흥이 없겠지만 적어도 내겐 그냥 무턱대고 찍는 사진이

아니라 느낌이 이끄는 찰라의 미학이고 훗날 추억의 실마리가 되는 소중한 기록이다.

 

자욱하게 퍼져나가 아침의 고요한 물상과 풍경을 이방인으로부터 감추던 안개는 구름

사이로 황금 햇살이 몇 번 일렁이자 신비의 베일 아래 조금씩 실루엣이 드러난다.

수변공원 너머 건너다 보이는 강가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국도변 정자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아얘 물가로 내려가 고요한 아침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구봉산

연석산과 운장산으로 부터 거침없이 연결된 장쾌한 산줄기는 복두봉을 거쳐 구봉산

 9봉으로 이어진다.

구봉산은 이 거대한 능선상 9봉에서 폭포수처럼 급격히 고도를 낮추어 1봉으로 낮게

파도치다 주천벌로 자즈러 진다.

사실 산세로 보면 9봉은 다른 이름을 붙여 별도의 산으로 편입시켜야 하고 구봉산은 

8봉산으로 불러야 마땅할 듯 하다.

사람들은 대부분 구봉산 주차장에 산행을 시작하여 1봉과 2봉 사이 능선으로 올라 붙은

다음 제법 깐깐한 1봉을 다녀와서 암릉으로 연결된 주능선을 따라 8봉까지 진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8봉에서 까마득한 9봉의 위세에 눌려 장부상 주봉으로 잡힌 9봉의 등정을

포기하고 하산하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누구야?

백대명산에 빛나는 무릉객 부부가 아닌가?

우린 1봉에서 8봉을 모두 아우르고 8봉에서 내려선 갈림길 삼거리에 배낭을 벗어 두고

 9봉을 향해 올랐다.

9봉 까지 거리는 500여 미터에 불과하나 거칠게 일어나 앉아 있는 산비탈을 따라 가쁜

숨을 몰아 쉬며 쉼 없이 40여분을 올라야 한다.

대차게  치고 오른 곳이 이제 마지막 봉우리 일 것이란 곳에서 다시 한 봉우리를 휘돌아

올라야 하지만 그곳에서 내려다 보는 기골이 장대한 구봉나라 풍경은 가히 압권 이었다.

12년 전에도 그 풍경을 바라 보았겠지만 이미 희미한 잔상마저도 세월에 훨훨 날아가

버렸는지 아무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정상에는 정상의 위엄에 걸 맞는 커다란 표석과 벤치 그리고 연결되는 능선의 개념도

표지판이 하나 서 있었다.

아무도 없어서 기념사진을 못 남길 줄 알았는데 해발 1002미터의 고봉에서 일대의

조망을 즐기며 천천히 시간을 보내다 보니 다행히 반가운 부부산님이 올라와서 간신히

기념사진을 한 장 건졌다.

 

구봉산의 매력은 멋진 암릉의 봉우리에서 바라보는 일대의 후련한 조망이었다.

1봉 가는 길의 북쪽 조망과 1봉에서 바라 본 남쪽의 산세상도 훌륭했지만 5~6봉 사이의

출렁다리에서 일망무제로 펼쳐지는 사위의 조망과 거칠 것 없는 바람은 후련한 힐링과

멋진 겨울의 추억을 일깨워 주었다.

최고의 풍경은 제 9봉을 한굽이 남겨 놓은 바위봉 소나무 아래서 내려다 보는 구봉산과

주천벌 그리고 멀리 용담댐 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조망 이었다.

 

원점회귀에는 5시간이 걸렸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내려온 길 구봉산 가든 옆으로 난 길을 따라 정상에 오르고 고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8봉을 따라 1봉으로 진행하는 역방향 등산로를 따르는 것이 좋을 듯 싶다.

눈이 쌓인 겨울 날을 택해 피암목재를 올라 운장산과 복주봉을 거쳐 운일암 반일암 계곡

으로 겨울산행도 한번 해보고 싶다.

거부기와 봉규와 함께하면 장쾌하고 후련한 산행이 될 것이다.

 

내려와서 뜨거운 오뎅국물과 오뎅 2개 그리고 번데기 한 컵을 사서 먹었는데 막간의

시장기를 틈탄 그 맛이 또 가히 일품이다.

월요일 결혼 29주년 기념이라 아들녀석을 불러내어 군산에서 아구찜과 문어숙회를 시켜

한 잔의 소주와 함께 뒤풀이겸 무탈하게 잘살아온 29년 결혼을 자축하다.

 

 

산 행 일 : 2016 12 18

산 행 지 : 진안 구봉산

산행코스 : 주차장-1~8-8봉 갈림길-9-8봉갈림길-주차장 원점회귀

소요시간 :  5시간

     : 흐린 후 맑음 / 아침엔 다소 춥다능선에 차가운 바람

     : 마늘과 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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