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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새해 첫눈산행 - 지리산 삼신봉

 

 

 

 

가슴이 뜨겁게 끓어 올랐다.

난 한마디 말도 안 하고 그냥 걸으면서 바라만 보았다.

세찬 비람과 눈이  내 얼굴을 사정없이 후려치고 광포한 바람은 내 손을 그렇게  꽁꽁얼려

아프게 했지만 가슴은 오히려 후련했고 마음은 고요 해졌다.

산이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치 내 영혼의 깊은 곳을 들여다 보는 것처럼..

 

그 장중한 침묵이 웅변처럼 내 가슴을 휘젖었다.

가슴으로 하는 대화에서 말이란 정말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가는 길 내내 산은 침묵하고 눈은 하늘 가득 휘날렸다..

나는 외롭고 차가운 길을 걸어가면서  역설적인 따뜻에 충만했고 바람이 승냥이 울음 소리로

울부짖을 때 내  마음은 내내 웃고 있었다.

 

 

 

가끔 어떤 풍경이  벼락처럼  뇌리를 강타하는 날이 있다.

밋밋한 세월 속에 잊었던 어떤 강렬하고 아득한 풍경은 어느 날 세월의 격랑을 헤치고 홀연히

내게 찾아 온다.

그 풍경이 심금을 울린다.

내 마음의 풍금이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면 그 감동이 메마른 내 가슴을 적시고 내 영혼을 다시

노래하게 한다.

 

대자연의 황홀경이 가져오는 오르가즘은 지독한 중독이다

우린 그 풍경을 찾아 더 먼 길을 떠나기도 하지만

어느 날 어느 곳에서는 영혼의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고 삶의 도를 깨우치기도 한다.

 

가 거친 산을 내려오지 못하는 것은 퍼내도 퍼내도 마르지 않은 감동의 샘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 구성진 산의 이야기 때문 일지도 모른다.

영혼과 가슴을 흔드는 절절한 삶의 이야기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탈속의 의식과 날개 옷을 입은 듯 상쾌한 기분으로 느끼는 그 뿌듯한

피로감이 나는 좋다.

그러면 내 몸에서 세로토민과 도파민과 다이돌핀이 마구 분출된다.

평상시 잠을 잘 자지만 더 깊은 잠에 빠지고

평상시 자타가 인정하는 불가사리 먹성이지만 음식이 더 맛 있고

대자연의 감동은 시심을 흔들어 술 맛을 띠운다.

 

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산에서 받은 그 좋은 기운들 그리고 삶의 모험을 통해 누리는 짜릿하고도 통쾌한 쾌감이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을 불러내고 내 삶에 향기를 날리게 한다.

 

 

마눌이 토요일은 전국 비라고 했다.

조금 축축하고 척척한 여행길이 되겠네 !”

근데 늘 쌀밥만 먹으면 물리는 법이다.

가끔은 칼국시도 먹고 떡복기도 먹는 거지..

 

일단 길을 나섰으니 걱정 붙들어 맬 일이다.

가는 내내 비몽사몽이라 신경도 안썼는데 삼성궁 주차장에서는 여름비 같이 장대비가 쏟아졌다.

날씨는 춥지 않은 영상이라 가벼운 행장에 일회용 우비를 걸치고 그렇게 비장하게 빗 속으로 떠났다.

지리산 길을 마치 둘레길 걷듯 우산까지 바쳐 들고 유람하 듯 오르는 길

길이 조금씩 가파라 지면서 우산 쓰고 지팡이를 든 행장이 불편해진다.

너무 일찍 젖어 버리면 거친 산길이 힘겨워 질 것이다.

안되면 스틱이라도 접어야지 !”

약간의 딜렘마에 빠져 있을 때 비가 진눈깨비로 바뀌더니 나중에는 갑자기 흰 눈이 펄펄 날린다.

~ 이기 무신 조화여 ?”

하늘 가득 춤추며 내려오는 눈은 순식간에 세상을 하얗게 뒤덮어 간다..

가슴은 벅차오르고 마음은 똥강이지 처럼 기쁨으로 들뜬다.

오늘 멋진 하루의 필이 팍팍 온다.

 

지리산신령님 무릉객이 온걸 아시는 개벼 !

미련없이 우산을 접게 하고 순식간에 단조로운 길의 풍경을 눈을 번쩍 뜨게 바꾸어 버리셨다.

대자연의 감동은 그렇게 느닺없이 찾아왔다.

다른 모든 것은 지엽적이었다.

펑펑 쏟아지는 눈과 흐린 날씨 속에 사라져 버린 조망도

차가운 바람과 눈보라가 몰아 치는 바위벽 아래 앉아 차가운 떡덩이를 베어물어야 하는 서거픔도

깨어질 듯 시린 손도

언 손으로 자꾸 흐려지는 렌즈를 닦아 내는 수고로움도 ….

양면이 노출된 능선에서 마치 채찍을 휘갈기듯 내치는 쌀락눈의 테러도

 

신과의 동행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순례의 여정이었다 .

그 길은 다이나믹하고 통쾌하고 후련했다.

대자연을 향한 발길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만이 만날 수 있는 그런 풍경이고

진정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만이 받은 수 있는 신의 선물이었다.

준엄한 꾸짖음 같은 냉혹한 바람에는 신과 산의 따뜻한 사랑이 담겨있었다.

 

살다 보면 이런 날도 있다.

인생 만사 새옹지마라고 서둘러 길흉화복을 예단할 필요가 없다.

오늘처럼 신은 소맷부리에 전혀 다른 패를 감추고 있을 지도 모른다.

바람 불어 재수 좋은 날이 있었다더니 오늘이야 말로 비가 오고 바람 불어 횡재한 날이다

 

 

 

동행 사진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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