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숙이 가족 톡방에 올린 엄마글을 찬찬히 보다.
그 문법에 맞지 않는 정성스런 글씨체는 엄마 글이 분명하다.
황산인가 간다고 할 때 오만원 넣어주신 봉투에 쓴 그 글씨.
“도영욱. 차조심 잘 다여와.”
그 글씨체 맞다
글을 보고 또 울컥 한다.
엄마는 일기를 쓰신 모양이다.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엄마는 화갑도 지난 늦은 나이에 한글을 깨치시고
멋진 서예 글씨도 쓰셨다.
한글 초보가 썼다고는 믿기지 않는 멋드러진 글.
엄마 글을 보니 즐겁고 기쁜 일만 기록해 놓으셨네.
ㅎㅎ
내 몸에 흐르는건 엄마 피가 맞네
난 블로그를. 운영한다.
그건 남들을 위한 게 아니라 순전히 나를 위한 글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의식해서 잘 쓰려고 할 필요가 없다.
글을 좀더 잘 쓰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주관적인 자신의 글이란 관심사가 다른
사람들에게는 공감대를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요즘처럼 자극적인 매체가 넘쳐나는. 시대에는 글 자체가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기 어렵다.....
결국 대다수 타인에게 내 글은 주관적이고 고리타분한 꼰대 글일 뿐이다.
그래서 나의 글은. 공개는 되었으되 잘 알려지지도 않고 또한 많이 읽혀 지지도
않는다.
가끔 함께하는 여행길의 글은 참여자와. 공유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은 내겐 여전히 소중하다.
즐거운 시간을 되새김질 하게 하고 몰입과 힐링의 기쁨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건 훗날 어느 때고 나를 돌이켜 볼 수 있는 나의 역사이다.
내 삶과 내가 누린 아름다운 시절의 역사 !.
내 글의 대부분은 산행기이다.
딱히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게 아니라 내겐 다른 취미가 있기는 해도 산행과 여행이
내 취미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산행은 자연 속에서 내 삶의 기쁨을 불러 내는 오랜 습관으로 굳어졌고.
언제부터 인가는 내 영혼의 순례길이 되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만나고 나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
가장 선 순위는 혼자 산행이지만 산행 길은 둘이 가건 ,여럿이 가건 명상과
사색으로 부터 동떨어져 있지 않다.
언제부턴가 내 글은 사실기록에서 감정과 느낌의 서술과 정신적 성찰로 옮겨 갔다.
산행의 기록이 대부분인 건 그 곳이 사색과 명상의 수련장이었기 때문이댜.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글과 그림은 몰입이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쓸데 없는 잡념이 끼어들지 않는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다는 건 내 마음을 고요히 하고 정화하는 작업이다.
그게 습관이 되면 고독은 황홀해지고 거기 외로움이 스밀 시간이 없다.
엄마는 좋은 일과 기쁜 일을 기록하셨다.
신기하게도 그것 역시 나의 블로그 운영 원칙과 정확히 부합한다.
내 삶의 모토 중의 하나 !
즐거움과 기쁨은 죽죽 잡아 늘리고 슬픔은 개무시하고 빨리 잊어 버린다.
기쁨은 날로도 먹고 지져먹고 데쳐 먹고 뽂아도 먹는다.
슬픔은 그냥 마셔 없애든지 미련 없이 버려 버린다.
나는 어머니를 몇개월 이라도 곁에서 모시지 못한 게 늘 마음에 걸렸다.
비 오고 천둥 치는 날이면 썰렁한 방에 홀로 누워 잠을 청하실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이 돌아 누운 가슴을 저미던 날들이 있었다.
그래도 우리 어미니는 행복하셨을 것 같다.
엄마의 글이 짠 하면서도 한 펀으로 드는 생각이었다.
사람들과 어울리시는 걸 좋아하고 늘 새로운걸 배우고 탐구하시려는 어머니의
성격은 혼자 있는 시간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시며. 나름 충만한 시간을 보내신
거 같아서...
거기에다 누구랄 것도 없이 다 착한 아들과 딸들 그리고 사위들은 다 각자의
방식으로 어머니와 교감하면서 기쁨과 사랑을 나누어 드렸다.
어머니가 베푼 사랑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사랑들이지만 그 사랑이 합쳐져서 어머니
에게 많은 기쁨과 위안을 드렸을 거라 생각하니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앞으로 우리 형제들과 사위들 중 그 누가 어머니와 같은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인가?
나 역시 호기심 많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지만 여럿이 어울려서도
잘 놀고 혼자는 더 잘 논다
다른 사람은 이의를 제기할 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내가 사람 부자이고 감정 부자
인데 그건 순전히 엄마를 닮은 거다.
같은 형제들이라 어머니의 글을 보고 모두 마음이 울컥 했는지 저녁 늦게 영태가
가족 톡방에 글을 올렸다.
생각을 말아야 하는데
자동적으로 새벽에 깨어 엄마 생각에 훌쩍 거립니다.
휴대폰에 저장된 엄마 사진을 넘겨보다 울컥하고
귀엽게 틀린 맞춤법으로 써 내려간 엄마 일기를 읽으면서 먹먹해 지고
곳곳에 스며든 엄마 흔적을 보며 귓전까지 멍멍해 집니다.
그만 울어야지 하면서도
쪼르르 흘러내리는 눈물샘은 언제나 마를 런지요?
저 또한 예전에 엄마집을 경유하며 강의를 가면서 엄마에게 혜택만 받았네요.
엄마랑 단둘이 함께 찍은 사진이 오히려 최근 아프실 때만 자주 있었고
거동 양호하실때는 그 좋은 모습을 가슴에도 사진에도 담지 못했네요
생전에 엄마가 베풀었던 그 많은 사랑과 희생
그 무게의 100만분의 1도 캐시백 하지 못해드리고 황망히 떠내 보내는 아픔이
이렇게 가슴에 사무칩니다.
49재는 계획된 일정이니
행여 생기는 강의조차도 버리고
편히 이승에서 저승으로 엄마를 보내드릴까 합니다.
엄마,
부디 천국과 극락으로 영생하세요
3월 17일 일요일 오후 8시 37분 영태가 올린 글
다들 같은 마음 인가봐
엄마가 생전에 우리 엄마는 어린 딸 두고 가서는 꿈에 한번도 안 찾아 온다고 하시면서
외할머니 말씀 종종 하셨는데
나도 꿈에서라도 엄마 한번 보고픈 마음이 간절한데 안오시네~~
파란 하늘을 보면서도 이제 엄마 못 보지 하는 생각이 들면 먹먹하구
진짜 엄마 많이 보고 싶다.
3월 17일 일요일 오후 8시 41분 둘째 영희가 올린 글
아버지 때 하고는 또 다르지?
엄마를 보내면서 이젠 헐 벗은 채 바람 길에 선 느낌이 들어ㆍ
시리고. 아린 허전함 .
아픈 엄마를 돌 볼 수 있었던 것도 행복이었네 ㆍ
오늘은 깨어나 멍하니 앉아 있자니
집에서 엄마와 보냈던 이틀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아ㆍ
일주일 새 변해버린 그 충격적인 모습
누울 수도 앉을 수도 없이
미어캣처럼 하염없이 서서 고통을 달래시던 어머니 모습ㆍ
그 상황에서도 아들의 목소리를 알아채고
붙잡고. 우는 아들의 등을 두드리시던 어머니ㆍ
내가 이렇게 싸돌아 다니는 걸 좋아 하는 것도 다 어머니 닮은 것인데
어버이날이나 가족모임 빼고는 어머니 모시고 여행 한 번 제대로 한 적이 없네 ㆍ
좀 더 일찍 사부리고,,동로고 예천이고 모시고 다니고
양산 통도사나 부산 용궁사도 모시고 가 볼 껄 ㆍ
그노무 시간은 다 지나갔는데. 나는 뒤늦은 껄껄껄 타령으로 가슴만 아프네ㆍ
어머니가 손수 쓴 정성스런 글
즐거운 일을 기록한 그 일기에 또 가슴이 아팠네ㆍ
엄마 아직 우리 곁에 있지요 ?
49제. 마치고 떠나시기 전에
엄마 영정이라도 태우고 둘이 여행 한 번 떠나야 할까 보네 ?
늘 그랬던 것처럼 세월이 또 그 슬픔을 무디게 하겠지만
더 오래 더 많이 슬프고 싶네 ㆍ
그 시간과 그 슬픔이 어쩌면 어머니와 더 많이 만나고
연결될 수 있는 끈인 것 같아서 ㆍ
3월 17일 일요일 오후 9시 10분에 내가 올린 답글
2024년 3월 17일 (일) 천붕 3일째 (소천 6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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