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붕 6일 째 - 부처님의 뜻 (소청 9일 째)
출근하는 날이다.
새벽 문막 출근 길 영동 고속도로에서 찬란한 해가 떠 놀랐다.
인생이란 그런 거다 .
지구의 한 쪽에서는 해가 떠오르고 다른 한 쪽에서는 해가 진다.
누군가 항구를 떠난 배를 바라보고 배가 떠난다고 소리치지만 다른 누군가는
배가 들어 온다고 소리친다.
한 쪽에서는 죽고 또 한 쪽에서는 새 생명이 태어 나는데 그 균형이 깨어지니 살기 힘든 세상이
온다고 야단 들이다.
7일간의 해가 지고 다시 태양이 떠 올랐다.
황망한 어머니의 부고 소식을 듣고 정신 없이 보낸 12일 밤
그리고 삼일 동안의 어머니 장례와 유골 안치 그리고 반혼제까지 ...
지나간 시간이 마치 꿈 인양 아득하다.
그리고 삼 일이 더 지나 나는 오늘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간다.
아직 몽롱하지만 조금은 담담해졌다.
“그래도 참 평소 어머니 답게 가셨다 !
자식들에게 짐 스러운 것 그리 싫어 하시고 다 한 없이 베풀기만 하시더니 ! “.
하지만 어머니는 그렇게 훌쩍 가시며 내 마음을 더 짠하게 하고 이별은 더 긴 아쉬움의 여운으로
남았다.
49제 까지는 어머니 영정사진을 카톡 대문에 걸어 두려 했는데 우성 베트남 법인을 떠나 화승에
둥지를 틀었던 후배가 내 카톡 사진을 보고 메시지와 부의금을 보내왔다.
곽과장도 뒤늦게 조의금을 송금하고 미안하다는 인사를 전했다.
“이건 아니겠다.”.
장례까지 모셨는데 그 또한 민폐고 불편함 일 것 같아서 어머니 사진을 내리고 노루귀와 바람꽃을
걸었다.
지난 번 아픈 어머니 두고 변산 쇠뿔봉에 갔다가 만났던 봄소식과 변산 벌 사랑이야기...
노루귀의 꽃말은 "인내"이고, 바람꽃의 꽃말은 "괴로운 사랑"이다.
이 또한 어머니와 내 상황에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왜 죽음은 내 존재를 가득 채우며 고동치고 내 일생을 몇 초의 날개짓에 묶어 두는가?
아도니스 말이 통절한 아침이다.
결국 죽음이란 무로 회귀하는 것으로 삶의 완성이고 영원한 휴식이란 말로 위안을 삼아 본다.
지나고 나면 모든 게 미리 예정된 운명이고 부처님의 뜻인 것 같다.
어머니가 첫 사랑과 이별하고 아버지와 만나 그리 마음 고생하시고 어머니와 내가 모자의 인연
으로 만난 것도…
맨 몸으로 대전에 올라와 그 어려운 고초를 겪으며 우리를 교육시킨 것도 ..
지현네와 멀어진 것도
가시는 길이 그렇게 힘들지 않으시고 또 자식들과 많은 시간 보내셨던 것도…
어쩌면 내가 퇴직하고 문막으로 멀리 와서 지내게 된 것 까지도 부처님의 뜻이고 은덕일 것이다.
내가 곁에 있었으면 어머니 한테 좀 더 나으셨을 수도 있지만 아직 시푸루둥둥한데 빌밸대는 아들
걱정 하나 더 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2018년 3월 3일 어머니 생신
어머니는 각 형제들의 태몽에 관해 자주 얘기 하셨다.
나의 태몽은 맑은 물에 많은 고기들이 놀고 있는 꿈이었는데 그 해몽이란 모든 일이 무난하고 순조롭게
진행되고 사람들과 잘 화합하고 도와주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란다.
지나고 나니 그 해몽이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어려움을 느끼는 매 순간 마다 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고 도와줄 사람이 나타났다.
어릴적부터 대학까지 가난한 환경에서도 궁색함을 느끼지 않도록 계속 어머님이 보살펴 주셨다.
군대시절 고달펐지만 아껴 주는 선배들이 많았고 군번도 좋아서 순식간에 졸병 신세를 면했다.
게다가 평생 같이 갈 친구 둘이나 얻었다.
회사 현역 때도 내 능력보다 직원들의 노력과 성과로 빛을 본 날이 많았다
지금도 그런 셈이 아닌가?
이 나이에도 옛 직장에 다니고 다른 사람들은 현장에서 열심히 발로 뛰면서 일하는 덕에 사무실에서
편안하게 근무한다.
그것도 산을 좋아하는 내가 강원도 관문에서…..
다 부처님의 자비고 팔도 산신령님들의 보살핌 덕분이다.
나의 영원한 멘토 산 또한 오랫동안의 몽매에서 벗어나 두려움 없이 살아 있는 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앞으로도 오랫 동안 그럴 것이다.
삶에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우쳐 주고 더 가벼워 지고 맑아지고 고요해지는 방법에 대해
알려 주었다.
싱싱한 나이에 일을 잃고 상심하고 낙담한 나를 산이 붙들어 주었듯이 다시 어미니의 빈 자리를
채워 줄 것이다,
그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생각하는 또 시간을 갖게 해 줄 것이다.
어머니는 한 해도 빠지 않고 사월 초팔 일 날 고산사에 자식들을 위해 등을 거셨다.
불교 신자가 아닌 내가 건들 건들 산엘 가도 부처님 계신 절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도 순전히 그 어머니 정성을 알기 때문이다.
어쨋든 어머니가 돌아가셨어도 어머님의 진심과 독실함으로 자식들에 대한 부처님의 가피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24년 3월 20일 천붕 6일 째 (소천 9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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