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4월 25일 (토)
주은 병원을 가는 길은 늘 우울하다.
잘 드시는 삼계탕과 죽을 쑤어서 아버님을 뵈러 다녀왔다.
아버님은 이젠 내게도 존대말을 하신다.
어머니는 몰라볼 때도 마지막 까지 난 알아봐 주시더니
지난 번 면회 때부터 존대말을 하시기 시작하셨다.
그래도 중간에 이러저런 말을 걸면 조금 기억이 살아 나시는 듯
반말로 돌아오시더니
이번에 처음부터 끝까지 존대말을 쓰신다.
복지과장이 날 보며 이사람 누구냐고 물으니 망설이듯 ‘우리아들’
이라고 하시는데 주야장창 존대말을 쓰던 은비엄마한테도
‘딸’이라 하신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기억력 마저 바람에 날린다.
드시는 건 여전히 잘드신다.
간간히 정신이 돌아오면 입버릇처럼 하시던 “이래 살아 뭐하나?
니들 고생 안 시키려면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하시는 말씀도 이제 안 하신다.
인간의 존엄성이 허물어 지는
당신의 삶을 바라보면
가슴 한 켠에 쾡한 바람이 인다.
어머님이 늘 찾으시는 부처님께서 그냥 이제 그만 데려가셨으면 싶다.
아버지를 보면 삶이 두려워진다.
열심히 살았던 시절은 온데간데 없다.
당신에게서는 모든 것이 사라졌다.
아내와 아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친구들 모두가…
존재의 근원도 모른 채
살아가는 이유도 모른 채 ….
박탈된 자유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다.
바람에 흩어져간 그 기억들처럼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모래시계처럼
메마르게 흘러내린다.
내가 기억하는 모든 것이 사라진다면?
내가 걸었던 고원의 아름다운 풍경과 깨달음
내가 기쁨을 위해 찾았던 모든 것들
그리고 훗날을 위해 쌓아 놓은 그 수많은 추억들
내가 기억하려 노력했던 많은 것들이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면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살아 가야 한다면
삶이란 얼마나 황당하고 허망한 것인가?
엄마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오네
아버지 돌아 가신지가 벌써 오래 되었네
그러고 보니 엄마가 15년이나 홀로 사셨네
참 인정 없는 아버지 셨지 ?
그 고생 다 시켜 놓고
즐겁게 살만한 날에 어머니 홀로 남기고 훨훨 하늘나라 가셨으니…
그것도 좋은 날들과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마저 세월의 바람에 죄 날리고
한스런 모습만 남기신 채 무책임하게 그렇게 가셨잖아 .
엄마 아버지는 만나셨는가?
뭐라고 하시던가?
아버지와 엄마가 많이 다르긴 했지만 같은 건 하나 있네
평소 남한테 부담 주는 거 싫어하시고 폐 끼치는 거 질색하시는 성격이라
가시는 길도 자식들 고생시키지 않으시려고 그렇게 서두르셨지 ?
아버지 돌아 가시고도 수 많은 가까운 죽음이 내 곁을 지나가더니 엄마마저 그렇게
훌쩍 내 곁을 떠나셨네.
삶이란 그렇게 허망하네
생로병사가 모든 살아있는 삼라만상의 섭리라하지만
하루아침에 존재의 흔적이 사라지고 영원한 침묵과 어둠의 심연 만이 거기 있네
슬픔은 남은 자의 몫으로 남지만
그 추억과 삶의 기억조차 세월 속에 풍화되어 조금씩 잊혀지리라는 거
이제 죽음이 손에 잡히 듯이 가까이 와 있는 듯하네 엄마!
더 열심히, 더 잘 살아야 하는 데 요즘은 사는 게 시들하고 영 맥이 풀리네 ….
마지막 이승과 저승 구경 두루두루 잘 하시다가 좋은 데로 가세요 .
2024 년 3월 28일 천붕 14일 째 - 소천 17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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