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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49제

천붕 16일 째 - 제례

 

 

 

제례

 

어머니 돌아가시고 화장한 유해는 구암사에 안치 했다.

그리고 반혼제는 평소 어머니께서 자주 가시던 고산사에서 올리고 위패 또한 고산사에 모셨다.

반혼제는 육체를 떠난 영혼이 돌아와 부처님 법당의 영가단에 편안히 앉아서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편안한 마음으로 길을 떠나게 하고자 하는 영혼 위로식 이다..

 

위패를 영단에 모시고 삼귀의를 빌며 합장한다.

거룩한 부처님께 귀의 합니다.

거룩한 가르침에 귀의 합니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 합니다.

 

고산사 주지스님께서 3배의 의미를 설명해주셨다.

부처님께는 삼배

삼배의 의미는 부처님께  업장소멸을 소원하는 의식으로  세가지 각각의 삼업죄를 씻어내는

것이다.

1배는 몸으로 지은 죄를 씻고자 함이고

2배는 입으로 지은 죄

3배는 마음으로 지은 죄를 씻어내는 것을  의미한다.

 

산 자에게는 1배를 하고 죽은에게는 2배를 하는데 죽은 자는 몸과 혼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두 번 절을 한다. .

 

삼우제

장례를 치른 후 3일 째 되는 날 치루는 제례이다.

전라도 군산 지역에서는 3우제를 지내고 나야 상복을 벗을 수 있다.

고인의 영혼을 위로하고 보살피기 위해 진행되고 가족들과의 결속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한

제례이다.

삼우제는 대부분 지내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고산사 스님은 삼우제는 특별히 지내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이야기 하셔서 조금은 의아했다.

아마도 요즘 시대의 변화와 바쁜 상주들을 배려한 추세의 변화가 아닌 듯 싶다.

 

49

임종한 날로부터 매 7일 마다 7명의 저승대왕들에게 심판을 받고 마지막 49일 째 염라대왕의

마지막 심판을 받아 6도로 간다.

6도란  전생에서의 자신의 업인에 따라 가게 되는 존재양상의 여섯가지 세계로

천상계, 인간계.아수라계,축생계,아귀게,지옥의 6가지 세상이 그것이다..

천상계,인간계,아수라 를 삼선도라고 하고 축생계,아귀계,지옥을 삼악도라 칭한다.

천상계는 모든 즐거움이 온전히 갖추어진 세계로 도을 깨우치지 못한 범인 들이 가는 최상의

세계지만 극락이나 열반 보다는 한 차원 낮은 세계다.

공덕을 쌓아 이 세계에서 살게 되더라도 그 공덕이 다하거나 그 곳에서 업을 지으면 또다시

다른 세계로 윤회된다.

인간계는 악행을 저지를지 않고 오계와 심선을 닦은 이들이 인간으로 다시 윤회할 수 있는

곳이다.

아수라는 지혜는 있으나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축생계는 고통이 많고 낙이 작은 곳으로 악한 일과 어리석은 일을 많이 저지른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이곳에 가는 사람들은  인간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짐승이나 가축으로 환생한다.

아귀계는 욕심을 부리고 인색하여 보시를 하지 않았거나 다른 사람의 보시를 방해한 행위를

하는 자들이 가는 곳이라고 한다. 하여간 벌 받을 짓을 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어쩌면 윤회 자체가 되풀이 되는 인간의 고통이고 슬픔인지 모른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로 태어나는 것이 더 나쁜 것일까?

인간세상 보다 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곳이 없을 진대.....

인간보다 더 사악한 존재가 없을 텐데  정말 공덕을 많이 쌓은 선한 사람이 아니면 대부분의

인간들은  다음 생에 축생으로 태어나는 것은 아닐까?

 

사후 7번 째 일 마다 7번의 심판은 현세에서 지은 공덕과 업에 따라 진행되는 데 후손들이

정성껏 제사를 올리면 공덕을 인정 받고 죄를 덜어 좋은 곳으로 가시는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심판 받는 49일 동안은 구천을 떠도는 영혼의 상태로 중음이라는 곳에 머무는 영가가 된다.

 

내가 안나푸르나 둥정을 위해 네팔에 갔을 때 그곳에 영혼의 숲이라는 곳이 있었다.

부모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떠나 보낸 후손들이 그 곳에 가서 망자의 부르면 그곳으로 영혼이

찾아 온다고 한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자주 찾는 영혼들이 내세의 좋은 곳에서 머무른다고 한다.

그래서 먼저 간 사랑하는 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나 망자가 좋은 곳에서 영혼의 안식을

누리를 바라는 착한 후손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서로 다른 나라의 이런 사상 또한 49제의 의미와 부합되는 걸로 보여지는데 불교에 기반한 한

뿌리의 동양 사상이기 때문일 둣 하다.

 

어머니와는 2띠의 24년 생이 긴데  내가 그 때쯤 염라대왕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되면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쌓은 공덕도 없고   나를 기억하고 나의 죄를 빌어 줄 사람도 별로 없을 텐데...

 

장례문화 자체도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특히 보수적이고 좀더 예의를 중시하는 동양에서 슬픔과 애도의 무거운 분위기를 벗어 던지고 

즐겁게 놀면서 고인을 추모하는 장례문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일본에서는 평소 고인이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가족들과 즐겁게 어울렸던 영상물을 조문객

에게 보여주거나 고인의 평소 좋아하는 물건들을 전시하기도 한다.

 

또 다른 문화에서는 장례식이 축제다.

문상객들은 비트 음악에 맞춰 신나게 즐거운 여행을 배웅한다.

옛 기록에서도 그런 풍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중국 역사서 수서 동이천의 고구려 편을 보면 사람이 죽으면 북을 치고 춤을 추며 노래를 지어

부르면서 주검을 묘지로 옯겼다는 내용이 전한다.

악기를 켜고 , 춤추고 노래 한다는 건  죽음이 슬픈 일이 아니라 힘겨운 삶의 고행을 끝내고

비로소 평화와 안식을 찾는 기쁨이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도 진도에 다시래기라는 유형문화제 81호로 지정된 특이한 장례문화를 찾아 볼

수 있다.상여가 나가기 하루 전에 동네 사람들이 상주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한 놀이인데 가짜

상주로 분장한 사람이 제상에 차려진 음식을 함부로 집어 먹으며 이 집에 경사가 났으니 한

바탕 놀고 가자 라고 시작하여 방 안에서 밥만 축내고 있던 당신 아버지가 죽었으니 얼마나

얼씨구 절씨구 할 일이요등의 망언을 쏟아내며 상주를 희롱한다.

그 신명나는 한 바탕 놀이판은 판소리,창가,민요,북춤,병신춤 등의 갖은 음악과 춤으로 흥을

돋우며 떠들썩한 마을의 잔치로 치뤄진다.

다시래기라는 단어 자체가 다시 태어나기란 의미로 불교의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게 된다면 그것을 간단히 상 것의 문화라고 치부하기에는 죽음을 대하는 더 심오한

삶의 철학을  내포되어 있는 지도 모른다.. 

 

그 논리에 따르면 죽음은 슬프거나 기피할 대상이 아닌 것이다.

상주와 더불어 즐거워 하는 모습으로 가시는 분의 발 길을 가볍게 하고 아직 죽음의 경계 밖에

있는 산 자들은 살아 있음의 의미를 잊지 말고 더 잘살아야 한다는 한 차원 높은 삶의 지혜를  

은유하고 있다.

 

죽은자 보다는 산자에게 더 포커스가 맞춰진 의식이라 볼 수 있다.

 

 

 

매장이 보편화 되었던 장례문화도 80%이상 화장하는 문화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선산이나 산에 땅을 사서 문중이나 가족단위 거대 납골묘 방식으로 변화해가던 화장장의 형태도 

공원묘지나 공용 납골당등의 방식으로 정착해가고 요즈음은 수목장이나 특정 장소에 뿌리는

방식도 늘어 나고 있다.

세상은 변하고 있고 어짜피 한 줌의 흙으로 돌아 가는게 인생이니 평소 고인이 자주 가던 곳에서

뿌려지고 자손들은 그 장소와 더불어 고인을 추모하는 것도 과히 나쁘지 않은 듯하다.

 

사실 죽음의 절차와 시신의 안치가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삶이란 한 송이 꽃이 피어나는 것이고 죽음이란 그 꽃잎이 한 줄기 바람에 흩날리는 것인데….

우리가 알지 못하는 우리가 원래 왔었던 그 곳으로 되돌아가는 것인데…..

 

죽음은 무거웠지만 이젠 가벼워 져야 할 것 같다.

사실 죽음을 그렇게 무겁게 만들어 줄 후손들도 없다.

어머니의 죽음이 아프고 슬프지만 이 시대와 이별하는 노인의 마지막 행복이었는지도 모른다.

개개인을 놓고 보면 그렇게 극진 하다고 볼 수 없지만

받은 사랑에 비해 너무 작긴 하지만 자식들은 자신에게 할당된 몫의 작은 사랑이나마 돌려

드렸기에 모아진 사랑은 저울의 눈금은 그래도 행복 쪽으로 조금은 기울어 졌을 것이다.

 

나의 죽음은 어떠할 것인가?

~~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다.”

나는 굳이 죽음을 걱정하기 전에 쓸데 없이 그리고 영양가 없이 길이만 늘어난 내 인생을 어떻게

잘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

 

 

2024330() 천붕 16일 째  소천 19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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