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몽
흉몽과 길몽이 있다.
깊은 잠을 자는 것이 가장 좋긴 하지만 잠이란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데다 특히 심리
적인 상황에 따라 그 심도나 시간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가끔은 꿈을 꾸게 된다.
어느 날은 정말 기분 좋은 꿈이라 꿈에서 깨어난 것이 아쉽기도 하고 또 어느 날엔 가는 뒷
맛이 영 개운치 않거나 꿈이었음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경우도 있다.
태어남에 관한 꿈이 존재하듯이 세상과의 작별을 암시하는 꿈도 존재하는 지 모르겠다.
어쨌든 꿈이란 심리적인 상황의 반영 임은 그동안 꾸어 온 꿈을 통해 분명히 느끼고 있지만
그 꿈이 영적인 세상과 연결되거나 또 다른 힘에 의해 미래의 상황을 암시할 수 있는 영혼의
창이 될 수 았는 지 여부는 분명치 않다.
하지만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런 느낌의 꿈 자리를 만나는 일이 가끔은 있다.
세상 모든 일이 마음 먹기에 달려 있듯이 꿈이든 세상일이든 고요한 마음속에서 가장 안정
되고 이상적인 상황으로 구현되지만 어디 세상살이란 게 어디 그런가?
심지 굳은 마음으로도 감당하기가 어려운 세상 일이 한 둘이 아닐 뿐더러 수도자가 이닌
범인의 마음이란 세사의 바람에 쉽게 나부끼는 법이어늘……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주는 병원에서 맞이하는 두 번 째 주에 해당한다.
입원 전주의 갑작스런 상태 악화는 급속히 진행되었고 어머니 심신의 상태 변화는 충격적
이었다.
우린 부랴부랴 어머니를 막내의 병원에 모셨고 두 번째 토요일 밤 역시 지난 주와 마찬가지로
어머니와 함께 보냈다.
그 날은 영희와 같이 어머니 간병을 했다
어머니와 같이 밤을 보내면서 슬픔이 북 바쳐 올라 왔다 ㆍ
병원에서 영양제와 모르핀을 투여해서 상황이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아픔에 대해 무언가
말을 잘 못하시면서 불편해서 누워 계시지 못하고 자꾸 일어 나시는 어머니 모습이 가슴 아팠다
옆으로 소변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배설의 본능과 압박에서 헤어나시지 못하고. 자꾸 나오지
않는 일처리를 하시려고 몇번이나 침상을 내려오시려는 모습도 측은하고 안스러웠다
영희한테 먼저 자라고 했지만 자주 깨어나시는 어머니 때문에 깊은 잠을 들지 못하고 신음이나
반응이 심해지면 일어나다 보니 말이 교대지 둘이 함께 불침번을 서는 것과 진배 없었다.
새벽에 다소 진정되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 침상머리를 떠나 한 쪽 구석에 놓인 긴 의자에서
잠을 청했다
두어시간 잤을까 ?
자는 중에 꾸었는데 그렇게 생생할 수가 없었다 ㆍ
나는 내려와서 산을 바라보는데 그 큰 산 위에는 많은 등산객들이 있었다 ㆍ
그 큰 산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ㆍ
산 사태와 같은 상황이 아니라 산의 한 쪽 모서리가 거대한 흙 먼지를 날라며 허물어 내린 것이다.
그런데 한 번 무너져 내린 게 아니라 두 번이나 더 연달아 허물어졌다.
사람들은 모두 흙더미에 묻혀고 산의 형체와 흔적은 온전히 사라졌다.
가슴 한 구석이 그저 시리고 서늘하긴 했는데 무섭거나 당황스럽지 않았다.
내게 거기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같은 느낌도 없었다.
올 것이 왔다는 그런 담담함 느낌 인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짧은 시간 자면서 꾼 끔이 하도 생생하고 이상해서 동생들 한테 이야기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3일 만에 돌아가셨다.
지나고 나니 여느 때와는 다른 예사롭지 않은 꿈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비로운 느낌이었지만 설사 그것이 예지몽이었다 해도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잠에서 깨어난 나는 불길한 느낌이나 불안한 마음 같은 건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잠드신
어머니를 보고 그냥 집으로 내려 갔을 뿐이다 ㆍ
그리고 일요일은 손주들과 집에서 보내다가 문막으로 올라왔고 나머지 이틀은
평상시 여느 때처럼 출근하여 루틴한 일정을 소화했다.
나의 탁상 달력에는 3,4월 봄놀이와 산행계획이 적혀 있고 엄니 캐어 일정이 표기되어
있었다 ㆍ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라는 누군가의 경고 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그 꿈을 지나쳤고 어머니는 더이상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어머니 임종은 그렇다 해도 한나절 이라도 더 곁에서 머물며 어머니와 작별인사를 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황망히 보내드렸고 허둥지둥 두서 없고 경황없는 몇 일을 보내야 했다.
할아버지는 돌아 가시기 몇일 전 까지 밭일을 하셨다고 들었다
할아버지는 위암이었다ㆍ
할아버지는 견딜수 없는 통증을 참기 위해 밭에 나가셨는지 모른다 ㆍ
할아버지는 오래 각혈을 하시고 그것보다 더 오래 고통을 참으셨을 것이다 ㆍ
존경받는 마을의 어른이었지만 세상의 아픔을 안으로 삼키고 스스로 삭혀가면서 속은
그렇게 썩어 갔고 아무도 그 아픔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ㆍ
할아버지는 재빠르지 못한 아들들과 허약한 지어미 그리고 서슬푸른 세윌의 칼 날을 마치
업인냥 받아 내며 묵묵히 자신의 인생 역정을 꾸려 가시다가 쓸쓸히 먼 길을 떠나셨다.
애증이 교차 할 어머니 품에 안겨 썩어내린 오장유보를 토해내고 그렇게 휠훨 하늘나라에
오르셨다 ㆍ
그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얼마 안되어 내 꿈에 나타나신 적이 있다.
나는 할머니 손 잡고 할아버지 새참을 나르던 때의 어린아이 모습 이었는데 그날 하얀
도포자락을 입은 할아버지를 계속 뒤 따라가다가 개울가에서 돌아가라는 할아버지 손짓에
울면서 돌아 왔다.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금강에서 친구들과 낚시겸 물놀이를 하다가 빠져 죽을 뻔 했다.
소풍가듯 즐겁게 나갔다가 코가 쭉 빠져서 돌아 왔다.
나는 그날 완전 스타일을 구기면서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허우적거렸지만 어쨋든살아서
돌아 왔다.ㆍ
내가 죽음 가까이 갔음을 인식한 건 그 짧은 공포의 순간에 내 인생의 중요한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뇌리를 스쳐가는 걸 지켜 보았다는 것이다 ㆍ
인생을 통 털어 이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그 느낌 !
그건 죽음은 가까이 다가가야 느낄 수 있는 것이었다 ㆍ
그 꿈은 생생해서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잊혀지지가 않았다.
나는 지금도 생각한다.
할아버지가 나를 불의의 사고로부터 구해주신 것이 아니었을까?
가끔 세상의 일들은 하나하나를 떼어 놓고 보면 독립적으로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보이지
않는 끈에 의해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내가 보호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신의 존재가 느껴지는 때.
어쩌면 그것은 신이 아니라 어떤 초자연적인 현상일지도 모른다
운명과 팔자라는 말로 통칭되기도 하지만. 세상 만사의 운행에 개입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
존재한다고 나는 믿는다
내가 꾼 또 한번의 신비스런 꿈이 있었다
꿈속에서 홀로 아름다운 신길의 숲을 걷고 있었다 ㆍ
마음은 평화로웠고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아마도 천국이 있다면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광휘에 싸이고 내적인 충만함으로 그 길을 걸었는데 백두산 가는 길이었다
내가 백두산을. 가보지 못했으니 그 길이 백두산 가는 길임을 알 턱이 없지만
아마도 가보지 못한 산의. 소망과 신비감이 투영된 듯 하다 ㆍ
그리고 나는 몇일 뒤 댓재에서 청옥산 정상 가는 길에 그 신령스런 느낌을 받았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소리, 목에 감기는 맑고 시원 한 바람
그리고 마치 미답의 길을 걷는 듯한 신비감에 쌓인 아늑하고 충만한 느낌
나는 현실이서 끔 속의 풍경과 바람을 느끼고 그 감정에 젖었다.
어머니는 내 태몽으로 맑은 물에 많은 고기가 노니는 꿈을 꾸셨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과 찰 화합하고 도와줄 사람이 많다는 꿈 해몽을 전해 주셨다.
어머니는 참 깨끗하고 맑은 물이라고 하셨는데 오랜 세월을 보내고 보니 맑은 물이란 게
내가 어울리는 환경과 만나는 사람들을 의미함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일찍부터 산을 좋아하다 보니 다른 사람들 보다는 세상의 잡다한 고민에서 벗어나
마음의 평화를 누린 시간이 더 많았을 듯한데 이 맑은 물이 궁극적인 마음의 평화를 상징
함이 아닐까 생각 해본다.
잘 나가는 삶은 아니었을지라도 순탄한 삶이었다.
진짜 풍요로운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그로 인해 의기소침하지 않았고 마음으로 그 부족함을
채워가며 즐겁게 살았다.
지금으로 따지면 조기퇴직에 해당하는 허울좋은 정년퇴직 후 마주한 임금절벽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았고 세상을 향한 호기심과 나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다.
빈틈없고 예리하지는 못하지만 다소 헐렁헐렁하고 두루뭉실한 덕분에 큰 인심을 잃지는
않으면서 살았다.
단조로운 삶이 었지만 산을 좋아한 덕분에 변화와 모험을 즐기는 역동적인 삶의 재미를
누렸고 주어진 카테고리에서 도전과 성취의 삶을 살았다.
돌이켜 보면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내 스스로에게는 만족한 삶이었다.
한 쪽 문이 닫히면 한 쪽 문이 열리고
닫힌 문을 누군가 열어 주었다.
나의 삶은 세상에서의 나의 빈약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태몽이나 사주와 같은 정해진
팔자와 나를 보호하는 보이지 않는 힘에 의해 부족함이 채워져 갔는지 모른다.
다 엄마 태몽이 맞는 거구 엄마를 닮은 성격 탓일 게다.
지금 까지 잘 살아 왔으니 앞으로도 잘 살아 갈 거다.
엄마의 점쾌에 난 천수를 누린다고 했으니 난 엄마만큼 오래 건강하게 살거다.
내가 좋아하는 거 하면서…
하지만 엄마 보다는 더 오래 살고 싶지 않다.
사는 날 까지 건강하고 즐겁게 살기를 바랄 뿐이다.
설마 건강이 나쁜 상태로 오래 사는 걸 천수를 누린다고 하지는 않겠지…
ㅎㅎ 오늘은 엄마 꿈을 떠올리다 보니 별 영양가 없는 애기가 길어 졌네
엄마. 오늘은 어디 다녀 오셨어요 ?
꿈을 통해 좋은 일을 미리 알려 주시는 것도 좋고 옛날 좋은 시절의 추억을 깨워주시는
것도 좋으니 자주자주 꿈길로 찾아 오세요.
2024년 3월 27일 천붕 14일 째 - 소천 17일 째
'어머니49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천붕 15일 째 - 진흙 속 연꽃처럼 (0) | 2024.04.01 |
---|---|
천붕 14일 째 - 아버지 일기 (0) | 2024.03.28 |
천붕 12일 째 - 어머니가 씌워 준 효자 탈 (0) | 2024.03.26 |
천붕 11일째 - 봄비 (0) | 2024.03.26 |
천붕 10일 째 - 맑은 슬픔에 관하여 (0) | 2024.03.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