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30일 화요일
주은병원 측에서
아버님 장에서 출혈이 되는지 혈변이 보이고 빈혈수치가 올라간다고 했다.
암이 의심된다는 얘기와 함께
몇 일전 영숙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는데 시간이 안 맞아 오늘에사 휴가를 내고 가기로 했다.
대전역에서 영숙을 픽업해서 주은병원으로 갔다.
몇 주를 못 뵈었더니 더 수척해 보이신다.
여전히 알아보지 못하시면서 그래도 영숙에게는 반말을 쓰신다.
천안 영숙이네 병원으로 모셔서 피검사를 해서 분석 의뢰를 하고 다른 병원으로 모셔서 대장
검사를 했다.
심부전증 때문에 부분마취라도 어려우리라 생각했는데 가능하다니 한시름 놓았다.
다행히 대장에는 이상이 없었다.
혈변은 있었으니 좀더 상황을 지켜본 다음 다른 쪽 검사를 좀더 해봐야 할 것 같다.
검사 때문에 아침을 드시지 못한 아버님께 죽을 드시게 한 다음 천안 까지 와 준
주은병원 측에 아버님을 넘겨드리고 영숙과 나는 낙지비빔밥 한 그릇 씩 먹고 헤어졌다.
2019년 7월 18일 (토)
오늘은 아버님 면회가야 하는 날이다.
5시에 면회 약속을 잡아 놓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시간이 빠듯하게 일어 났는데 판암
톨게이트를 거쳐 유성까지 고속도로로 가니 정확히 5시에 주은병원에 도착했다.
아버님은 더 약해지셨는지 휠체어를 타고 나오셨다.
여전히 못 알아 보시고 존대말을 한다.
지난번 천안 병원에서 검진하고 나서 활동성이 두드러지게 떨어지신다고 했다.
말수는 더 적어지셨고 드시는 건 괜찮긴 해도 예전처럼 식탐을 부리시진 않으신다.
활력이 많이 떨어지신게 느껴진다.
식사를 하기 위해 앉고 일어서시는데 힘이 많이 들어가신다.
부축이 없으면 혼자 앉고 일어서기 어렵다.
휠체어 앉으시게 하기 전에 걸어 보시게 하니 걷긴 하시는데 예전처럼 빠르시지 못하다..
운동장을 세 바퀴 돌면서 바람을 쐬시게 했다.
훨체어에 앉는 빈도가 많아지면 점점 더 안 좋아 지실 텐데 걱정이다.
형제들이 자주 찾아뵐려면 대전 인근 요양원을 알아 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아버님께 식사와 과일을 대접하고 바람을 쐬어드리고 나서 구름이 깔린 우울한 하늘을
남기고 돌아 왔다.
짧은 인생길의 기억마저 훌훌 사라지고 난 건조한 삶엔 텅 빈 공허만 남는다.
그걸 바라보면 침울해지고 마음엔 스산한 바람이 인다.
2019년 7월 21일 (화)
영숙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주은요양병원에서 아버님 복막염으로 수술 안 하면 위급하시다고…
대전 쪽에는 내가 선이 닿아 알아 볼 만 한데가 없다.
영숙에게 “네가 그 쪽에 잘 아는 사람들이 많으니 천안에 있는 병원으로 모셔라”고 했다.
어머님께는 말하지 않고 형제들에게 모두 연락했다.
나중에 다시 영숙에게 연락이 왔는데 대전 건양대 병원으로 내려 가는 중이라고 했다.
천안 쪽 종합병원들은 응급 수술을 할 수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단다.
도착하니 아버님은 가쁜 숨을 몰아 쉬고 통증을 호소하고 계신다.
가래가 많이 끓어서 간호원이 정기적으로 가래를 제거하고 있었다.
지난번 면회 가서 뵈었을 때와는 양상이 180도 달라지고 상태가 위중해졌다,
여러가지 검사를 했는데 상황이 좀 심각한 듯하다.
대장이 터졌고 장의 내용물이 내부에 퍼져서 엉겨붙어 있다고 한다.
3주전 영숙과 모시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았을 때는 대장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했는데….
연로하신데다가 당뇨에 폐까지 좋지 않아 수술을 해도 결과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검사 후 곧 수술할 것처럼 이야기 하더니 정작 수술실이 없어 새벽이나 되어야 가능할 것
같다고 한다.
지금 수술대기 중인 환자도 위급한 환자인데 수술 끝나는 시간을 장담할 수 없다고 하니
영숙이 분노가 폭발했다.
응급 수술이 가능하다고 해서 이쪽으로 급히 왔는데 이제 와서 무슨 딴소릴 하냐면서 난리를
피웠다.
전화 담당자와 응급실간의 커뮤니케이션이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영숙이 소란을 피워서 인지 아니면 상태의 심각성 때문이지 모르겠지만 12시가 좀 넘어서
다른 수술실이 마련되고 아버님을 수술에 들어가셨다.
나중에 서울에서 영수도 도착했다.
수술은 두 시간 쯤 걸렸고 의사가 나와서 수술은 마무리했지만 워낙 연로하시고 상태가 심해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대장이 터졌는데 대장을 절제하여 소장에 연결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한다.
아버님이 마취상태로 중환자실로 옮겨진 것을 확인한 후 어머님께는 알리지 말라 하고 영숙만
남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7월 21일 (수)
집사람을 일찍 보냈다.
아버님은 아침에 깨어 나셨다는데 기력이 없으셔서 눈을 잘 뜨지 못하신다.
경과는 지켜보아야 한다
영숙이 더러 아버님이 어떻게 될지 모르시니 어머님께 알리고 내일 저녁에 영희가 오면
모시고 오라고 했다.
어제 한숨을 못 자서 피곤한 터라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2029년 7월 22일 (목)
저녁에 중환자 실로 면회를 갔다.
옷을 갈아 입고 가느라 좀 늦었는데 모두들 벌써 도착해서 아버님을 보고 있었다.
한바탕 울었는지 어머님과 영희 얼굴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영희 친구 도영이도 와 있었다.
어머님은 그냥 조용히 길 떠나게 하시지 어짜피 힘든 것 왜 몸에 칼을 대서 더 힘들게 하냐고
하신다.
그래도 수술을 안 하면 금방 돌아가신다는데 어찌 자식된 마음에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아버님도 말귀를 알아들으시는지 영숙이 말에는 고개를 끄덕거린다.
7월 28일 (수)
아버님은 별다른 증상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랫 잇몸이 많이 안 좋아져서 혹여 몇 개 이빨이 빠져 넘어 갈 까봐 지난주 이빨을 빼고 나서
여전히 기력은 약하고 발과 손위 붓기는 빠지지 않는데 의사들 말로는 연로하신 것에 비하면
회복력이 좋은 편이라 한다.
연세가 많으시니 언제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른다.
어쨌든 처음으로 의사의 입에서 중환자실을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그대도 상당히 사태의 진전이 있는 셈이다.
매일 병원에 들러 아버님 상황을 체크 하면서 이번엔 돌아가실 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었다.
7월 29일 (목)
나유미 의사 선생이 면담을 하자고 한다.
오늘 장인어른이 변비가 오래되어서 병원에 입원하셨는데 거기 가있는 마눌을 데리고 점심
시간에 건양대 병원에 갔다.
조직검사 결과 대장암이 맞다고 했다.
예상했던 부분을 확인한 셈이다.
장내 출혈이 있어 3주전 영숙과 천안 대장암 전문병원에서 내시경 검사를 했을 때는 왜 발견
되지 않았을까?
대장암은 오래 진전이 있었던 것이었는데 식사하는 거나 검사결과로 보면 아버님은 별다른
예후가 없었던 셈이다.
췌장도 좋지 않고 폐도 좋지 않고 전반적인 상황은 안 좋은데 수술 후유증은 없이 회복은 잘
하고 계시단다.
대장암 말기에 췌장기능 안 좋으니 오래 못 사시는 거 아니냐고 물으니 딱히 기간을 이야기
하기는 어렵다고 한다.
현재 인공호흡기를 뗏다 붙였다 하면서 적응훈련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몇 일 더 확인한
다음 일반병원으로 내려 갈 거라고 한다.
저녁에는 태현이 데리고 더존한우에서 식사하다.
2019년 7월 30일 (금)
어제 시간이 없어 들르지 못하고 장인어른 문병을 갔다.
갑자기 두 집안 어른이 모두 입원하셨다.
그 동안 변비약을 드시면서 참으신 모양인데 심해져서 성모병원에 입원하셨다.
원래도 가스가 차서 배가 부른 상태였는데 관장하고 대장 내시경 검사를 하려고 물 1.5
리터와 약을 함께 먹고 나서도 변이 나오지 않으니 배가 더 부풀어 오르고 고통스러우신
모양이다.
아마도 장 어딘가에서 오래된 숙변이 굳어진 채로 막고 있는 모양인데 병원에서는
관장이 안되면 별달리 취할 조치가 없는 모양이다.
밤에는 손위 처남댁께서 간병을 하신다 해서 마눌과 돌아왔다 .
8월 4일(화)
화요일 아침에 의사가 면담하자고 해서 형님께 연락해서 가도록 했는데 한 시간 기다렸다
결국 못 만나고 그냥 왔다고 한다.
일찍 와달라고 해서 간 건데 의사들 그렇게 바쁜가?
형님이 의사를 못 만났는데 낮에 아버님을 일반 병동으로 옮겼다고 한다.
간병인도 구했다고 한다,
저녁에는 중국어 강좌 때문에 마눌한테 아버님께 가보라고 했는데 어제는 눈을 뜨고서도
기운이
없으시더니 오늘은 건강하시단다.
호흡기 떼고 미움 삼키는 연습을 하시는데 잘 넘기지 못해 콧줄로 음식을 공급한다고 했다.
머리 있는 데를 누르면 아프다고 하고 간호사가 발 있는 쪽을 만지니 신경질적으로 차고
한단다.
한결 여유가 새겨 발을 펴기도 하고 꼬기도 하시고 유심히 사람을 쳐다보기도 하시고
하여간 아버님은 특이체질 알아줘야 한다.
몇 년 전 겨울에도 의사들 다 돌아가신다고 야단이더니 다시 살아나시고
이번 악조건에서도 보란 듯이 회복되셨다.
어쨌든 아직 아버님 천수가 다하신 게 아닌 모양이다.
2019년 8월 5일(수)
저녁에 병원 측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내과 간호사인데 주치 의사가 다시 면담을 하잖다.
좀 짜증을 냈다.
지난번에도 약속해서 갔는데 한 시간이나 기다리다 그냥 왔다고 …
간호사가 여의사를 바꿔주고 정중히 사과를 하면서 다음날 오전 중에 오면 된다고 했다.
저녁에 마눌과 병원에 갔다.
간병인 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얌전하신 것 같아 묶은 팔을 풀었더니
마구 움직이시며 코와 손에 줄을 떼려고 해서 혼났다고 했다.
기력이 없으셨는데 다시 회복되셨는지 자기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세다 하신다.
호흡기 약 투약하는 거 도와드리고 늦은 시간인데도 마침 주치 의사가 있어 면담을 했다.
일반병동에서 호흡기를 떼고서도 별다른 이상이 없고 입으로 죽을 드렸는데 잘 삼키지
못하셔서
코로 음식을 넣고 있는데 점차 적응훈련을 시킬 것이라 한다.
수치상 별다른 이상이 없단다.
고비를 넘겼고 상황이 호전되니 일반병동에서 계서도 되고 노인병원으로 모셔도 된다고
하면서 필요한 소견서는 써 준다고 했다.
금요일은 일정상 내가 근무 중에 나오기가 힘들고 내일은 가능할 것 같아 내일 가까운 요양
병원을 알아 보기로 했다.
2009년 8월 6일 (목)
아침에 산내 보광병원에 들렀다.
남대전 톨게이트에서 5분거리라 어머님 댁에서도 가깝고 교통도 괜찮은 편이다.
공기도 좋고 건물도 아담하다.
허기사 그런 것들이 모두 아버님껜 무슨 소용일까?
어머님 친구분이 소개하신 성연숙부장님과 원장님과 말씀을 나누었다.
원장은 나이가 아주 젊은 분이었다.
한달 요양비용은 80만원에 특별 약제비 별도라 한다.
성부장 께서 70만원 까지 해주겠다 했다.
병원비가 문제가 아니고 이 요양병원이 아버님을 제대로 돌볼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오다가 산내에 있는 온누리 요양병원도 한 번 들렀는데 거리는 가까워도 큰 도로에서
한참을 걸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차 없이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꽤 불편했다.
게다가 요양병원이 아니라 요양원이라 가격은 저렴해도 의사가 상주하지 않아서 아버님
께는 적합할 것 같지가 않다.
8월 7일 (금)
비가 추실거린다.
오후 4시 반쯤 병원 측에서 연락이 왔다.
아버님이 갑자기 열이 올라가고 밥을 넘기는 코 쪽 호스로 검은 점액이 나온다고 한다.
상황이 좋지 않으니 의사가 어떻게 하실 거냐고 묻는다.
가족들과 상의해서 건양대로 다시 옮기시던지 안 옮기시더라도 상황이 좋지 않은 건
알아 두셔야 한단다.
형도 연락이 안되고 마눌 말고는 딱히 상의할 사람이 없다.
내일 아침에 건양대 병원으로 모시겠다고 했다.
어머님께 내일 병원가서 상황보고 아버님 다시 옮겨야 할지 모른다고 했더니 펄쩍 뛰신다.
어머님은 저번 아버님 수술 받게 한 것도 못마땅 하시다.
그냥 고통만 줄여서 빨리 가시게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지 정신도 없는 분 뭐 하러 몸에
칼을 대고 중환자실에서 오래 연명치료를 하느냔 거다.
하지만 또 그런가
자식들 눈 앞에서 호흡을 가빠하시고 수술 안하면 곧 돌아 간다 하시는데…
하여간 어머님과 함께 가서 상태를 보고 의사와 상의한 다음 결정하기로 했다.
착잡하다.
그냥 노인 병원에서 잘 적응하시면 좋으련만 또 가시면 지난 2주와 같은 상황을
되풀이 해야 할 것이다.
2009년 8월 8일 (토)
어머님과 요양병원에 가는 중에 의사가 전화가 왔다.
열이 많이 내리고 상태가 좋아졌다고 한다.
코 호스로 역류되는 것도 없다고 한다.
가는 중이니 뵙고 말씀 나누겠다고 하고 보광병원에 도착해서 먼저 의사와 면담을 했다.
이동 스트레스 때문이지 자기도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드렸다고 했다.
상태가 안정되고 있으니 좀더 지켜보아도 되겠다 한다.
다행이다.
아버님은 피곤한지 눈을 감고 계시는데 부르니 잠시 깨셨다가 다시 잠드신다.
손의 붓기도 현격하게 빠졌다.
이를 빼서 아랫 입술이 입안으로 오므라 든 것 말고는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인다.
아줌마 말로 열과 역류는 삼출물 때문에 코로 넘기는 식사는 잠시 유보 중 이란다.
곧 코로 음식을 공급하다가 식사 적응훈련을 할거란다.
돌아 오는 길에 산내에서 포도 한 박스를 사서 어머님과 장인어른 입원하신 성모
병원에 들렸다.
둘째 처남댁 께서 간병중이시다.
장인어른은 혈색도 괜찮으시고 건강도 좋으신 듯하다.
어머님과 아버님 근황에 대해 한참을 묻고 이야기하다 이것저것 병원에 대한 불평
불만을 늘어놓으신다.
조직검사 결과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사말로는 대장암이 확실하다고 했다.
가족들은 장인 어른께 말씀을 드리지 않고 용종을 떼어내고 숙변 막힌 곳을 뚫어
내는 수술 정도로 이야기할 모양이다.
장인어른은 아직 수술을 할지 안 할지 확정이 안되었고 만약 하게 되면 다음 주초에
하는 걸로 알고 계시는데 이미 수술과 날짜는 확정되었다.
의사들 휴가로 날짜가 밀려 18일 정도나 가능한 것으로 이미 결론이 나 있다.
영양제로 버티시는 통에 음식이 먹고 싶어 안달이 나 있으신데 가족들은 장인
어른의 한바탕 소란이 또 걱정이다.
40분쯤 말씀을 나누다 돌아 왔다.
2024년 4월 4일 천붕 21일 째 – 소천 24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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