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천 출장을 갔다.
저녁식사 약속이 되어 술을 한 잔 곁들이다 보니 토요일임에도 객지에 유하게 되었다.
새벽에 길을 나섰다.
운악산
2019년 6월에 갔으니 5년에서 2개월 빠진다
5년
파란만장한 역사의 시간 이다.
61세 회갑을 맞아 중국 계림 양삭을 다녀왔다.
그 날 이후 코로나가 창궐했고 주식 투자의 빛투 폭탄을 맞아 장렬히 산화했다.
그 와중에 1막 퇴직 했던 회사에 계약직으로 채용되어
내가 좋아하는 강원 산으로 가는 길목 수문장이되다,
회사에서는 2세 경영체제가 자리를 잡아가고 SAP ERP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다.
서슬푸르렀던 코로나가 물러가고 마눌 회갑기념으로 제주여행을 다녀왔다..
그 와중에도 수십회의 자녀 결혼 통지가 이어지고 수 많은 죽음이 내 곁을 지나 갔다.
조부장님이 돌아 가시고 남중이 죽고, 영수가 죽고 집안의 어른 관섭아재가 돌아 가셨다.
채이가 태어 났다.
나는 두 번 코로나에 걸렸고 200회 이상 산에 올랐으며 수 많은 섬과 조선 팔도 관광지를 여행했다.
그리고 양력 24년 3월 12일 (음력 2월 3일) 어머님이 영면하셨다.
앞으로 5년 이면 내 나이 71세 이다.
얼마나 많은 탄생과 죽음이 흽쓸고
얼마나 많고 또 얼마나 큰 희로애락의 산이 버티고 있을까?
나는 여전히 잘 살아가기에 골몰하지만
세상은 어떻게 변하고 나는 그 변하는 세상의 한 가운데서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며
즐거운 지구별 여행을 해나갈 수 있을까?
운악산 오르는 길
불과 5년의 기억인데 새벽 그 길이 너무 생소했다.
아무리 그래도 너무 이상타 했는데
5년 전에는 계곡 길 현등사로 정상에 올랐다가 소꼬리폭포를 거쳐 운악산 자영휴양림으로 내려왔다.
이번에는 눈썹바위 –병풍바위 –미륵바위-망경대를 거쳐 운악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청룡능선을 올라
탔다가 백호 능선을 휘돌아 내려 올 생각이다.
진달래가 수줍은 미소로 아침 인사를 한다.
왈칵이는 그리움.
어머니를 여의고 나는 봄도 잃어 버렸었구나 !
변산의 바람 꽃으로 어머님을 보내고 3주를 산에서 멀어져 있었다가 동강 할미꽃에서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생명의 기미가 없는 갈색 숲에서 홀로 피어나, 다가 올 봄을 알리던 당당하고 강한 꽃
그리고 내가 슬픔과 혼란에 빠져 있는 시간에 봄은 소리없이 깊어 갔다.
내 고향 산천에 가신 님들의 한을 흩뿌리 듯 피어나던 진달래
무덤가에는 피어난 할미 꽃이 소리 없이 지고 하얀 머리를 풀 때 쯤엔
노란 민들래가 하얀 솜털을 날리고 온 산 진달래가 연분홍 수줍은 웃음을 날렸다.
내가 봄의 들판에서 늘 가슴 두근거리던 반가움으로 만난 그 꽃은 “나의 살던 고향”
의 추억으로 피어나는 그리움의 꽃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봄날은 간다.
내가 얼굴을 들어 하늘을 올려다 보는 그 짧은 시간에
남도에는 산수유와 매화 꽃 잎이 떨어지고 벚 꽃과 목련이 만개 했을 터이다.
엄마 토치와 사부리에도 진달래 꽃이 피었는가?
세상사가 그렇지 엄마 ?
훌훌 털고 일어 나지 않으면 세상의 어느 봄도 나의 추억이 아니지 ?
꽃이 피면 외할머니 산소에도 가고 정순이 누님도 만난다고 했는데 그 만남의 기대마져
이젠 그 봄과 함께 엄마 곁에 묻혔네
쓸쓸하고 흐린 날씨
그래도 그 험한 길도 어머니의 영혼이 함께 하는 듯 마음은 편안 했다.
시린 가슴도 달래줄 수 있는 후련하고도 아름다운 풍경 이었다
그래도 난 괜 찮네 엄마.
늘 내 곁을 묵묵히 지켜 왔던 그 깊은 사랑이 떠나고 난 후에도
깊고 푸른 힘이 아직 남아 있네.
내 삶의 기쁨이 되고 내 삶의 변곡점 마다에서 용기를 북돋워 준 그 산이
다시 내게 힘을 줄 것이네.
병풍바위와 미륵바위 망경대의 풍경은 출중했다.
그래서 포천이면 운악 이었다.
마치 내 사는 계룡산의 모습과도 닮았다.
장군봉 능선을 따라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걸출한 산세는 황적능선을 바라보고
흘러 가는데 정작 쌀개봉을 지나 황적능선으로 내려서야 그 비등길의 수려한 산세가
한 껏 부풀어 오른 가슴을 마구 흔들어 대는 것이다.
청룡능선의 장쾌한 산세는 마주 본 말굽형 계룡산 산길처럼 백호능선을 마주 바라 본다.
두 능선은 허리춤에 서로 다른 비경을 품고 있으되 서로를 바라다 보아야 비로소
운악의 출중한 산세가 완성되는 것이다.
성전의 기둥은 서로 붙어 있지 않는 법이다.
사랑은 때로는 혼자 머물고 늘 적당한 거리에서 서로를 바라 본다.
어머니를 생각하는 그리움과 따사로운 봄날의 위로가 아지랑이처럼 피어 오르던 길이었다.
나는 순례길에 오른 구도자의 경검함으로 그 길을 걸어 내렸고 이름모를 야생화가 피어 나는
게곡가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은 다음 그렇게 미륵 세상에서 다시 속세로 돌아 왔다.
2024년 4월 6일 토요일 천붕 23일 째 소천 26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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