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오늘도 흐리다고 하네요
어제 목포에서 돌아와 일찍 자리에 들었어요
아침에 비가 좀 올지도 모르지만 오후에는 그칠 테지요
어제 친구들과 떠들썩하게 즐거운 하루를 보냈으니 오늘 아침은 일어나는 대로 대둔산으로
떠날 생각이었어요
비가와도 좋고 안 와도 그만이지만 어쨌든 맑고 깨끗한 풍경이 함께하는 황홀한 고독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어쩌면 어제보다 더 나답게 보내는 행복한 시간이겠지요
어제 10시가 좀 넘어 잠들어서 아침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창 밖을 보니 좀 젖어 있기는 한데 비는 멎은 것 같습니다.
따뜻한 물 한 잔을 마시고 주섬주섬 배낭을 메고 새벽 길을 떠납니다.
유난할 것도 없는 밥 먹는 거나 진배 없는 일상과 같은 산책길입니다.
엄마 아프신 때에도 새벽에 나가 마천대 일출을 보고 10시 30분 쯤에 돌아와 점심을 같이
하기도 했지요
늘 그렇듯이 혼자 떠나는 새벽 길은 홀로 충만하고 감미로운 여정 입니다.
음악이 없어도 마음은 흘러간 노랫가락을 떠올리고 지난 상념을 들추어 냅니다.
오늘 맑고 깨끗한 하늘 아래 눈이 시린 대둔산의 신록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랜 세월 멈추지 않는 나와 봄과의 교감 입니다.
젊은 날에는 남도의 무수한 벌판과 산자락을 헤집고 다녔지요…..
그래서 찾아 냈던 보석 같은 섬들과 남도의 해변들은 이젠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았습니다.
내 삶의 끝없는 영감과 감동의 여정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6시 15분 그 넓은 수락계곡 주차장에는 내 차 말고는 한 대의 차도 없습니다.
익숙한 그 길을 묵상하 듯 걸어 올랐습니다,.
대둔산의 모든 새벽 풍경이 아름답다는 걸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합니다.
단풍이 아름다운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눈발이 휘몰아 치는 겨울 새벽에 장엄한 그 길을
오르면 또 생각이 달라지겠지요
산은 그 때 그때 마다 다른 얼굴로 우릴 맞이합니다.
그 권태롭지 않는 무수한 연인들과 즐긴 평생의 밀회 였으니 몸도 마음도 아직은 청춘입니다.
바람의 느낌이 전해져 왔습니다.
오늘 또 다시 대둔산 최고의 풍경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아무도 없는 길
누구의 눈길도 머물지 않는 신새벽의 아름다운 풍경을 홀로 바랄 볼 수 있다는 건
눌 가슴 벅찬 행복입니다.
약간 쌀쌀한 바람
코를 뻥뚫어 주는 신선한 대둔의 새벽 공기
그리고 어제의 비에 맑게 씻기운 아름다운 초록 빛 산 세상
고마운 마음으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마천대에서 거세게 휘몰아치는 바람 앞에 섰고 아무 것도 보여주지 않는 자욱한
산 안개가 들어찬 허공을 말없이 응시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그것으로 충분하고 또 충만한 아침 입니다.
인적없는 그 안개에 쌓인 길을 걸어 또다시 바람과 말없는 대화를 나누다 그렇게 안개 속을
헤어나와 내가 가장 멋진 풍경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던 바위 쉼터에서 홀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계란2개, 바나나 하나, 떡 한 개 그리고 두유 하나
참으로 아름다운 내 산하
내 가까이서 있어 언제든지 찾아 가면 만날 수 있는 오랜 친구 같은 산 입니다.
나의 묵상터에서 수락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은 세상의 가장 편안한 길 중의 하나 입니다.’
대전에 사는 많은 사람들도 잘 알지 못하는 그 길을 나는 마치 내 정원의 산책로인 듯 계절이
바뀔 때는 잊지 않고 찾아 옵니다.
3시간 40분 걸렸네요 엄마
마치 변화 무쌍한 오케스트라 연주처럼 때로는 다이나믹하고 때로는 부드럽고 감미로운 그
길은 사색과 명상의 길이었습니다.
내 영혼이 콧노래를 부르게 하는 혼자만의 황홀한 여정을 그렇게 마무리하고 귀로에 올랐습니다.
좋은 곳으로 가셔서 편안한 저승의 삶 누리시다가 가끔은 꿈 길로 찾아와 주세요
그리고 앞으로 제가 가야할 수 많은 길들을 밝혀주시고 행복한 이승의 삶 누리다가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보살펴 주세요 ..엄마 !
2024년 4월 21일 일요일 천붕 38일 째 - 소천 41일 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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