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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망덕봉 소용아릉 - 신선의 나라

 

 

 

 

 

 

망덕봉ㅡ소용아릉

4
2주 한토 서회장이  제천 금수산에 간다고 했었다 ㆍ
자신이 산대장으로 리딩하는 산행이니 꼭와야 한다고 내게 당부했다..

금수산과 연결되는 망덕봉ㅡ소용아릉 코스는 꼭 가보고 싶었다
이십 년 전 쯤에 주체할 수 없는 절절한 감동으로 감탄사를 연발하며 걸었던 그길

그런데 그날은 고교 친구들과의  춘행일로 결정되었다.

모두들 가능한 날짜가 그 날 밖에 나질 않아서..
그래서 한 달에 한번은 그들과 같이하기로한 나의 약속은 깨어졌다

 

서회장에게 미안했지만 그 코스는  돌아오는 5월에 조사장과  가는 것으로 미루었다 ㆍ
5
1일 근로자의 날이 돌아왔다
원래는 혼자 제전의 둥지봉과 가은산을 가려 했는데 생각해보니 나 혼자 망덕봉에 가는

게  낫겠다.

논골에서 망덕봉에 오르는 산길은 비등인데다 들머리도 정확하지 않아 조사장과 가기

에는  무리 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ㆍ
비등이라고 미리 말하면 가지 말자고 할거고 설령 갔다고 해도 들머리를 찾기 힘들거나

비등로에 안전 시설이 없어 위험한 상황이면 조사장은 뒤집어 질거다.

 

그래
홀가분한 홀산으로 그날의 감동을 느껴보자 ㆍ


새벽 5 30분 쯤에 출발해서 기록되어 있는 장소에 네비를 찍고  논골에 도착했다 .
여기 도로변에 버스로 산객들을 내려주고 산우들은 어딘가에 있는 들머리를 따라 올랐

다는 얘기.

들머리 찾기
감각적으로. 맞을 것 같은 길을 따라 오르는 데 공터가 나오더니 길이 끊어졌다.

그냥 길이 사라지고 주변에 아무런 표지기도 없다.
이 길이 아닌 개벼 !”


그곳에서 바라보니 계곡 좌안으로. 트럭이 올라 간다.

"저쪽 길인 모양이네 !
다시 계곡을 건너 비교적 뚜렷한 그 길을 따라 올라 무려 30여분을 진행 했는데 그 곳

에서도 길이 끊어졌다.
한 장의 리본도 없고 산세의 방향도 맞지 않다 .
이 길도 아닌 개벼  !”

다시 턴 !
원점에서 다시 검토 하기로 했다 ㆍ
계곡 옆 바위 위에 앉아 선답자의 산행기를 꼼꼼히 검토하다가 얼핏  사진 속 
산객들이

우측 팬션으로 올라가는 모양새라 그 길을 따라 올라 가 보았다.

그 길 위에는 팬션 하나 덩그러니 서 있는 사유지였다.

팬션 양쪽을  다 뒤져 보아도 연결되는 산길은 없다.

흐미~~ 가능성 있는 길 세 곳을 모두 훝었는데  어디에도 들머리가 보이지 않는다.

블로그에 포스팅한 사진이 분명 이 곳의 위치와 맞아 떨어지니 3개 중 한 길인데 정규

등산로가 아니다 보니 명확한 위치가 포착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팬션을 기웃거리자니 나이 드신 팬션 주인이 나와 연유를 묻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망덕봉 올라 가는 길을 물으니 망덕봉 가는 길인지는 모르겠

는데 봄이나 가을 날에 아주 가끔 버스에서 배낭 멘 사람들이  내려서 아랫쪽 길로

따라 올라가는 건 보았다 한다 ㆍ
팬션뒤쪽으로는 산길이 없단다.

그럼 원래 애초에 진행했던 길이 맞는다는 얘기다. !
막힌 공터까지 다시 올라 가서 보니 우측으로 희미한 산길이 보였다 .
"
흐미 이 길 이었나 부네 !"
쾌재를 부르며 그 길을 따라 가는데 그 길 또한 몇개의 묘지를 지나 마지막 산소에서

길이 끊어졌다

도대체 뭐가 잘 못된 건가?
곰곰히 생각하면서 찬찬히 지도를 살펴보니 계곡 우안으로 융기된 이 산의 능선길이

망덕봉으로 이어지는 게 맞긴 맞다.

조금 전 산길은 능선의 뒤편으로 돌아가다 끊어진 것이기에 더 갈 것도 없이 맥점을

지나쳐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길이었다.

결국은 길이 끊어진 공터 초입에서 능선으로 올라가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첫 번 째 묘지 주변을 샅샅히 뒤지다가 결국 위쪽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산길을

발견했다.

온전히 거기 길이 있다는 걸 알지 못하고 오면 도저히 발견할 수 없는 그런 길이다.

이렇게 표가 나지 않는 들머리나 표지기 한 장 없는 시작점은 처음이다.

 

조사장하고 왔으면 낭패를 볼 뻔 했다.

아니 벌써 금수산으로 기수를 돌려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7시에 도착해서 1시간 30분을 허비하고 740여분에 등산로에 올라섰다.

혼자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오르는 길이지만 산세는 예사롭지 않다.

 

가끔 시계를 열어 주는 곳에서  충주호가 내려다 보이는 봄날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눈 부신 봄날이었고 온 산을 휘감은 초록의 향연에 가슴을 다시 부풀어 올랐다.

봄의 향기가 코를 뻥 뚫어 주고 만물이 소생하는 봄의 기운이 몸 안으로 밀려드는

기분 좋은 춘행이었다.

더 이상 바랄게 무에야 ?”

조금씩 길이 거칠어 지기는 해도 행복하고 호젓한 산 길이었다.

너럭바위에서 내려다 본 충주호의 풍광은  단연 압권 이다.

멋져부러!”

날씨가 약간 싸늘한 듯 하여 봄 바지를 그 대로 입고 길을 나섰더니 거친 산 길이

지속되면서 더위를 느끼게 했다.

617봉에서는 소 용아릉 능선과 우람한 비등의 산세가 올려다 보여 제대로 가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끊임 없는 오름길이었다.

산행 후 두시간쯤 지나 어느 봉우리에서 다시 한 번 충주호의 후련한 풍광이 터지고

나서 등로는  사위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본격적으로 거칠어 지기 시작했다.

이후의 후반부의 등로는 목적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난코스의 연속이었다.

깊은 수림에 가려 제대로 된 조망처는 기대하기 어렵고 된비알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비등이 전형을 보여 주는 길 이다.

아마도 거친 산 길을 찾는 산꾼들이 많았던 시절에는 그레도 제법 길이 뚜렷했을

지도 모른다.

요즘 젊은 친구들은 험하고 힘든 비등을 가려 하지 않으니 자꾸 길은 희미해 지고

비바람에 씻기워 흔적이 사라졌을 터이다.

서해문 회장이 이 길로 산우들을 데리고 왔다니 감탄할 지경이다.

 

도대체 내가 넘은 봉우리가 몇 개고 남은 봉우리가 몇 개여?

봉우리 너머 솟아 오르는 봉우리가 셀 수도 없다.

길은 끊어질 듯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그래도 조선팔도를 누빈 무릉객의 관록으로 나름 길을 잘 찾아서 움직여 나갔다.

길을 놓친 건 두 어 개의 봉우리를 남겨 놓았을 때다.

사실 두어 개의 봉우리가 더 남았을 거란 건 당시에 알지 못했다.

치고 올라가는 숲 속에는 봉우리 너머에 있는 다음 봉우리가 보이지 않으니 몇 개가

남아 있는지 알 길이 없다.

봉우리 수를 세고 올랐다면 마지막 봉우리에 다 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계산이 설 수

있을 것이다.

길도 없는 능선을 치고 올라가 작은 봉우리를 넘어 길을 다시 찾았는데 너덜 안부로

내려서면서 길은 다시 사라졌다.

8개의 봉우리를 족히 넘은 것 같다.

놓친 길은 사라진 게 아니라 드믄 인적으로 인해 자동 소멸 된 것이었다.

 

앞에는 다시 잔돌의 너덜과 낙엽으로 덮힌 거대한 비탈이 막아섰다.

무수히 넘어온 봉우리들이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라 해도 끊임 없이 이어지는 오름

길에서 나타나는 봉우리들이었기에  체력 소모가 많았다.

게다가 딱히 길이 보이지 않으니 감각적으로 찾아 오를 수 밖에 없는 길인데 경사는

갈수록 심해 지고 낙엽과 잔돌로 발이 죽죽 미끄러지는 통에 두배는 더 힘이 들었다.

 

무릉객 오늘 용코로 걸렸네 !

비탈은 발딱 서 있는데 길은 간 데 없고

물은 모자라 갈증은 더 심해지고

목적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이젠 이 봉우리가 끝일까? “

아니 내가 제대로 된 방향으로 가고 나 있는 건가?”

갈수록 산길이 힘들어지면서  더불어 쓸데없는 잡념도 많아지는 산길이었다.

 

산길 11km로 능선을 휘돌아 내리는 데 5시간 걸린다는 서회장의 공지와 지도만 믿고

나선 길이라 물도 꼴랑 700미리 가지고 왔는데 거친 길의 체력 소모와 갈증은 예상을

완전 뛰어 넘었다.

서회장 진짜 한밭 산우들 데리고 이 코스 진행한 게 맞기나 할까??”

만약 왔다면 아마 산우들에게 엄청 까였을 거 같다.

그리고 내 판단으로는 절대 단체 많은 사람을 데리고 올 길은 아니었다.

 

하여간 앞으로의 상황도 예측할 수 없어서 음수량도 줄이는 바람에 입이 쩍쩍 마르는

상태로 마지막 봉우리라 믿고  어렵게 올라 섰더니 봉우리의 모습은 없고 또 산 길이

길게 이어진다.

그나마 오름 길은 끝이 나고 실잔디가 바람에 펄럭 거리는 평탄한 능선 길이었다.

 

얼마 걷지 않아 망덕봉 갈림길이 나타났다.

직진은 망덕봉 급히 꺾이는 좌측길은 내 젊은 날 절절한 가슴으로 감탄사를 쏟아내며

감동에 마지 않던   소용아릉

그 길 몇 백 미터 앞에서 망덕봉이 앉아 있었으니 내가 힘들게 오른 봉우리가 망덕봉 전

마지막 봉우리가 맞긴 맞다.

 

ㅎㅎ 드ㅡ디어 도착했네 !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

여기 까지 오는 동안 살아 있는 사람이나 동물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이 능선은 오늘 무릉객이 완전 전세 낸 길이다.

하지만 즐겁게 호젓한 산행길을 이어가다가 후반부에는 당황스럽고 대략난감 했던

산 길 이었다.

조사장과 함께 넘은 칠보산 구봉능선 보다 한 수 위 였다.

조사장이 경악을 금치 못하고 혀를 내두르던 그 길.

조사장은 구봉능선 길을 작년 통산 가장 힘든 코스라고 얘기했었다.

칠보산 구봉 능선에서는 앞서 가던 조사장이 한 번 길을 잃고 엉뚱한 길을 갔다가 다시

올라오긴했지만 내가 길을 잃지는 않았고 가파른 길이었어도 등로는 비교적 뚜렸했다.

 

망덕봉 능선은 불친절한 비등 길의 완전 네박자를 갖추었다.

가파르고 희미하고 거칠고 불편한 길

망덕봉은 아주 대놓고 이래도 올래? “라고 말하고 있었다.

제 정신이면 다음에 또 오겠수?”

전반부 꼬드기기 풍광이 지나면 눈에 들어 오는 풍경이 별로 없는 그 길을....

심지어 망덕봉 조차 조망이 없다.

 

서회장은 분명 이 길을 오지 않았을 터이다.

본인이 산행대장을 하니 좀더 임팩트 강한 코스를 선정한 것 같은데 토탈 5시간 산행

시간을 공지한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가 별로 쉬지도 않고 계속 올라 온 시간이 꼬박 3시간 이다.

이곳에서 요기하면서 휴식하고 아름답지만 가시돋힌 거친 소용아릉길로 하산한다면

몇시간이 더 걸릴까 ?

ㅎㅎ  이 길 웬만한 산객들은 나자빠질 코스 맞네 ! “

 

우째든 20년이 훌쩍 넘어버린 나는 옛 추억의 현장에 도착했다.

망덕봉에는 금수산에서 올라온 산객들이 몇 명 사진을 찍고 있었고 내가 올라 온 길

쪽에는 출입금지 표시와 함께 두꺼운 로프가 쳐져 있었다.

그럼 소용아릉도 국가 공인비등 길 ?.

그런데 적발되면 벌금을 부과한다느니 하는 강한 경고성 문구는 없다.

망덕봉 표석 바로 뒤 내가 올라간 등로에 그렇게 출입금지 대자보가 걸려 있으니 능선

따라 하산해야 할 소용아릉도  명백히 비법정 출입금지 등산로인 셈이다.

흐미 조사장 델구 왔으면 육이오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닐 뻔 했네

여기 까지 오는 동안 맨탈은 붕괴되었을 터이니 소용아릉은 물건너 가고 금수산 쪽으로

하산해서 콜택시를 불렀어야 했을 것이다.

하여간 들머리에서 간편식으로 해결했던 배가 다 꺼져 버려서 나는 산객들에게 인증샷

을 부탁한 다음, 표석 뒷편 평지에 자리잡고 혼자만의 호젓한 만찬을 즐겼다.

만찬 이라고 해야 바나나 두 개, 고구마 하나 , 계란 하나 두유 하나

 

식사를 하는 중에 지난 4월 한토 일정이 의심스러워 가딩님한테 전화를 걸었다.

가딩님은 내  2차 백두대간 종주 동기이자 한밭 토요 산악회의 고문이고 또한 산행대장이다.

모시모시?”

시방 워디유?”

걷기 꾼이기도 한  가딩님은 오늘도 친구들과 둘레길 트레킹 중이다.

지난 번 4월 둘째 주 서회장이 기획한 망덕봉 코스 왔는데 그 때 다들 산행 잘 했는가를

물었다.

~  가딩님은 그 코스 자체를 알지 못했다.

주로 즐기는 산행을 하면서 험한 코스는 잘 타지 않는 분이라….

원래 그날 B코스는 상천 휴게소에서 정규루트를 타고 망덕봉에 올라 소용아를 비등을

타고 하산하기로 되어 있었다.

 

4 13일 코스를 물어 보니 그날 신선봉과 미인봉을 타기로 예정되어 있었는데 너무

험해서 코스를 바꿔 정방사 쪽으로 하산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힘들어서 모두 기진맥진 한 탓에 목소리 높여 서회장을 성토 했다고….

 

내가 논골에서 망덕봉 오르는데 세시간 꼬박 걸렸다고 하니 그 길에 올라보지 않아

실감이 나지 않는 듯하다.

소용아릉은 비등으로 낙차가 심하고 위험 구간이 많아서 가기 어려우니 금수산 얼음

계곡 쪽으로 하산 하라고 한다.

차도 논골에 있는데 소용아릉 타고 원점회귀 해야지요,,!”

내가 그 길로 내려갈거라 하니 역시 무릉객님 대단 하십니다.” 하면서도 자 가는

비등 길이 자못 걱정스러운 모양이다.. .

 

나중에 찬찬히 공지 글과 지도를 다시 보니 내가 핸드폰에 다운 받아 가지고 있는

망덕봉 산행 공지와 지도는 2020년도에 서회장이 올린 것이었다.

4년 전 봄날에 서회장이 이 코스로 산우들을 리딩했던 모양이다.

올해 4월 둘째 주에 공지된 망덕봉 산행을 알고 있었기에 까페에서 망덕봉을 검색하고

지도가 포함된 공지글 링크를 복사하여 카톡에 갈무리 한 것인데 결국은 4년 전 자료를

다운 받은 셈이었다.

“4년 전의 포스팅한 정보였으니 산길도 그렇게 세월에 늙어간 모양일시.!”

그 때는 그래도 길이 괜찮았나 보다.

다음에 서회장 만나면 그 때 그 길이 어땠었는지 물어보면 되것다.

우쨌든 서회장이 4년 전 봄에 산우들과 이 코스를 완주 했다면  무릉객이 인정하는

대단한 준족들이다..

 

아무리 소용아릉이 힘들다 해도 그래도 내려가는 능선 길인데 올라 온 길 만큼 힘들

기야 하겠나?

이제 12시가 넘어가는 시간이고 오래전 멋진 기억으로 남아 있는 곳이니 천천히

산수와 경개를 즐기면서 내려가면 될 일이다.

그 엣날의 추억을 떠 올리면서…..

 

 

소용아릉 하산 길

가시 달린 장미처럼 위험하고도 거칠지만 한숨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촛대 바위인가 중국 황산의 몽필생화를 닮은 바위 봉은 눈에 익었다.

그 길 위에서 어렴풋이 그 옛날의 기억들이 살아 났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걸어

가는 그 길의 풍경은 더 웅장했다.

사진을 찍느라 발길이 밀리고 이젠 유연성이 엣날 보다 떨어지는 늙은 몸이라 조심

느라 속도는 더 늦어졌다.  

조심조심 어렵게 그 유명한 산부인과 버위에 도착했다.

남은 물은 나누어 마시고, 두유 한 통을 마시며 갈증을 달랬다.

사위의 풍경이 출중한 넓은 바위 위로는 시원한 바람이 마구 불어 갔다.

여기가 쉼터네 !”

부드러운 바람과 소나무 그늘의 유혹을 저버리지 못하고 그 아래 배낭을 놓고

머리를 낮은 곳으로 하여 누웠다.

등산화와 양말, 토씨까지 다 벗어 던지고 세상에서 가장 편한 자세로

신선이 따로 없다.

다람쥐 한 마리 얼씬하지 않는 비인간의 선계에 누워 푸른 하늘을 올려다 보며

지난날의 상념에 잠긴다.

피로를 풀 겸 눈이라도 좀 붙이렸더니 이러저런 생각이 오간다.

 

아무도 없는 쓸쓸한 산 길에서 나는 왜 황홀한 고독에 취하고 역설적인 충만함에

젖는가?

오랜 세월 떠나는 습관이 체화된 탓 일게다.

내가 수확한 세상의  감동들은 마치 유전자처럼 내 염섹체와 세포에 아로새겨 졌다.

인간이 먹이를 구하기 위해 산야를 뛰어다니던 그 시절, 방랑의 유전자가 오랫

동안의 정주와 칩거를 못 견디게 하듯이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의 향기와 눈부신

신록의 자태가 내 안의 역마를 달뜨게  한다.

마른 대지에서 피어나는 연초록의 발아와 산록을 뒤덮는 초록의 물결은 내게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고 헤어날 수 없는 중독이다.

어떤 그림이, 어떤 절륜한 세상이 늙은 가슴을 이렇게 축축히 젖게 할 수 있으랴?

임제 선사가 그랬지?

물위를 걷는 게 아니라 길 위를 걷는 게 기적이라고

이 길은 박인희 노랫말처럼 꿈으로 이어지는 영원한 방랑자의 길이다.

 

누워서 싸늘한 바람을 맞으니 금새 몸의 열기가 식고 으실으실 한기가 느껴진다..

회자정리 거자필반의  삶의 섭리가 새삼 가슴을 저민다

나는 20년 만에 다시 돌아와 그 바위 위에 다시 누웠고 어머니는 먼 길을 떠나셨다.

 

세상의  많은 것들이 그렇게 내 곁을 지나 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사람도 모두 오랜 세월에 말없이 흩날려 갔다.

어머니 까지 보내드리고 나니 이젠 이별에 담담해 진다.

이제 다시 슬픈 이별이 메마른 나의 마음을 아프게 흔들지 않기를!

아니 슬픈 이별에도 내 마음이 흔들리지 않기를!

고희를 바라보는 내 나이면 이젠 거미줄 같은 세상의 인연에도 또 강물 흐르듯 흐르는

세상의 슬픔에도 초연할 수 있어야 할 때가 된 거 아닌가?

걱정과 연민으로 내 삶의 강에서 허우적거리는 것 역시 나의 아까운 삶을 낭비하는

것일 것이다.

내가 다시 이 능선에 돌아 온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회자정리의 진리는 완성을 목전에

두게 될 것이다.

나와 세상의 이별!

 

세상이 아무리 눈부시고 아름다워도 내 마음 하나 편안하지 않으면 세싱은 암울하고

어두운 곳이.

단지 마음 하나다.

슬퍼하되 그 슬픔을 초월하고

무시로 흔들리되 다시 고요함으로 마음이 돌아 올 수 있는 건

 

이러 저러 생각을 떠 올리다 잠시 선잠에 빠져 들었다.

10여분이나 잤을까?

선잠에서 깨어나니  몸이 한기로 저려 온다.

너무 오래 있었네, 이젠 가야지 ..”

다시 일어 나니 다리가 휘청이고 중심이 잡히지 않는다.

갑자기 다리에서 쥐가 나기 시작해서 앉아서 등산화를 신을 수가 없다.

~~

바람 길에 너무 오래 누워있다 보니 몸이 식어서 굳어진 모양이다.

예전에 다드미 돌 베고 누웠더니 입이 돌아갔다 하드만...

처음 겪는 일이었다.

상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난감 했다.

서서 뭄을 풀고  계속 다리를 주무른 다음에야 간신히  정상으로 돌아 와서 등산화를

다시 신고 가던 길을 재촉했다.

 

비교를 거부하는 거대한 너럭바위에서 바라 보는 세상의 풍경은 압권 이었다.

그 옛날  젊은 시절 지치지 않는 체력으로 탐하던 세상의 아름다운 풍경들이었으니

그 절절한 감동을 어찌 주체할 수 있었으랴? .

소용아릉을 내려가면서는 내가 올라 온 산길의 형태가 고스란히 한 눈에 들어 온다.

저 능선 길을 내가 치고 올라 왔었구나 !

눈부신 초록 빛에 흽싸인 능선 길은 마치 거래한 초록뱀의 꿈틀거림처럼 역동적이다.

"무릉 할배 너무  나갔어 !"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고 애초에 그렇게 힘들지 몰랐으니 겁없이 뛰어든

거지.  

얼마나 우습게 보았으면 물도 제대로 챙기지 않고...

 

지속되는 풍경의 감동으로 사진을 찍느라 발길이 많이 밀렸다.

여러 각도로 내가 치고 올라간 능선의 동영상을 핸드폰으로 담았다.

 

내려가는 길에  갈림길은 발견하지 못했다.

지도상 갈림길에서 좌측 안부로 떨어지면 개활지가 나오고 내가 아침에 알바하던

길을 따라 논골로 내려 갈 수 있다.

어짜피 그 쪽 길을 찾으려 하지는 않았다.

능강계곡을 따라 내려서도 1.5km 정도 도로를 따라 가면 내 차가 주차되어 있는 곳이다.

 

지게곡을 따라 가다가 아껴 두었던 남은 물을 모두 마셨다

계곡수를 마시고 싶었지만 수량이 작고 흐름이 약해서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지계곡은 능강계곡의 본류로 합류하고 합수된 능강계곡의 수량은 점점 불어 났다.

계곡 하류에는 차가운 물이 넘쳐 흘렀고 계곡에는 아무런 인적이 없었다.

내 전용 목욕탕이었다.

너무 차가운 물이지만 준비운동을 하고  옷을 입은 채로 물을 끼얹은 다음 물 속으로

뛰어 들었다.

먼저 계곡물을 마음껏 마셔 갈증을 해소하고 하나씩 옷을 벗었다.

5월 첫 날 !

올 최초의 알탕이자 근로자의 날 기념 알탕이었다.

이로써 바야흐로 2024년 알탕 시즌이 도래한 셈이다.

너무 차가워 오래 머물 수 없었지만 약 1분 가량 두 번 물속에 머물렀다.

그런 다음 머리를 감고 땀을 깨끗이 씻어 낸 다음 팬티와 상의를 빨아서 짜 입었다.

체온이 강하하고 추위를 느꼈지만 다시 계곡 길을 따라 햇빛 속으로 걸어가니

따뜻해지고 몸도 마음도 날아 갈 것 같이 가벼워 졌다.

싱그러운 신록의 봄은 또한 그렇게 즐거운 삶의 유희를 선물했다.

나는 충만함 느낌으로 나른한 봄 길을 느리게 걸어 나의 애마가 기다리는 주차구역

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 여유롭게 솟대 전시관과 호수 조망처를 돌아보고 귀로에 올랐다.

 

 

핸펀사진 

 

 

 

솟대전시관 

 

 

에필로그

 

체력소모가 많고 허기도 심했다.

돌아 오는 길에 맥주 한 캔을 마시고 문막에 돌아와 시장 김치찌개 집으로 갔다.

얼큰한 게 먹고 싶어서

시장에는 마주보고 두 개의 묵은지 김치찌개 집이 있다.

한 집은 김치찌개 전문점이고 맞은편 집은 고기와 함께 판다.

산을 타고 나면 으례 그 고기 집으로 간다.

김치 맛이 다르기에 두 집 다 맛의 개성이 뚜렷하다.

맛의 우열을 가리기 어렵지만 사람들은 김치찌개 전문 집을 더 많이 찾는 것 같다.

별도의 넓은 주차장을 사들인 걸 보면 

하지만 내가 산을 타면 으레 가는 집은 돼지 고기를 100그램 넣어주고 김치량도 많다.

게다가 라면사리와 공기밥은 무한 리필이다

사실 한 공기에 그 김치찌개 량을 다 먹는 것도 배부르지만 이렇게 거친 산을 타면

반 공기밥을 더 먹을 수 있어 배고플 때는 그 집이 좋다.

너무 배부르게 맛 있게 먹어서 현금을 드렸더니 현금은 1000원을 도로 빼 주신다.

 

집으로 돌아와  마눌에게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받지 않는다.

8시쯤 잠이 둘었는데 9시가 넘어 마눌 전화가 와서 받고 내쳐 다시 잠이 들었다.

그리고 새벽 5시에 일어났다.

9시간을 푹 잔 셈이다.

할배가 아홉 시간 잘 수 있는 사람 나와 보라고 그래 ! (조사장 말고 )”

피로가 오래 갈 줄 알았는데 자고 일어나니 일상처럼 가뿐했다.

회복력도 더 좋아졌다.

잠을 푹 잔 탓인 모양이고 체중이 좀 는 이유도 있는 듯 하다..

 

단지 3시간 기름 값으로 18년 전 비경을 누리고 9,000원으로 황제의 수라를 즐겼으니

이만하면 근로자 할배 대접 받은 근로자의 날이다...

내 친구 산은 올해 근로자의 날에도 내게 멋진 풍경과 맛 있는 음식과 단잠을 선물해 주었다.

 

 

세월은 유수와 같이 흘렀다.

블로그에서 망덕봉과 소용아릉의 기록을 찾아 보니  18년 전 이었다.

20064월에 이 멋진 소용아릉의 길을 걸었다.

20년 세월이 지나면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길을 준비할 때쯤이 아닐까?

그 글을 찬찬히 읽어보니 그 때가 내 체력의 전성기 였지만 지금도 크게 째일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도 그 날에 못지 않은 거친 길을 7시간 걸었다.

오름 길 후반은 힘들었지만 멋진 산행이었다.

 

그 때나 지금이나 무릉객 음유시인 이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나 홀로 시인 !

이번 산행기를 쓰고 18년 전의 기록을 읽어보니 세월의 흐름과 내 감정의 변화가

눈에 잡힌다.

재미 있는 일이다.

 

그 때 그런 생각과 마음으로 이 길을 걸었구나  

그 글은 힘이 있고 자신감에 넘쳤다.

늘 그래왔듯이 세상의 아름다움과 삶의 기쁨을 누리는 열정적인 나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겁날 것이 없었고 지금 보다 훨씬 더 나 다웠던 시간들 이었다.  

내가 쓴 글이지만 내 스스로 칭찬 하고 싶은 글이다.

 

 

산  행  일 : 2024년 5월 1일 근로자의 날 

산  행  지 : 제천 금수산 일원 

산행코스 :  논골 -  약 9개 봉우리 -망덕봉 -소용아릉 -능강교

산행거리 : 11km + 도로회귀 1.5km

산행시간 : 7시간 (알탕,휴식 포함) + 도로회귀  20분  

                 (대약 오름길 3시간 , 내림길 3시간  소요)

날       씨 : 맑음 

동       행 : 나홀로 

  

 

                        202451() 근로자의 날 .

 

 

 

2006년 7월     망덕봉-신선봉-금수산 -소용아릉 주유기  

 

어느날 전혀 의도되지 않은 변화와 파격이 갑작스런 희열을 가져오기도 한다.

그 희열은 전염성이 강하다.

우중산행을 각오하고 나선 길에서 예기치 않은 기쁨과 아름다움을 만난다.

지 지난주 장대한 비를 지리산에서 만났고

지난주에는 계룡의 주 능선에서 비 대신 이슬과 나뭇잎에 고인 빗물에 흠뻑 젖었다.

안개가 오락가락하는 인적이 없는 능선을 거친 호흡으로 흐르다 황적능선의

아래 계곡에서 비에 불어나 차가운 물에 몸을 내 맡기고 나서

뼈에 사무치는 차가운 물이 시간이 흐르수록 따뜻하게 느껴짐이 놀라웠다.

나혼자 남겨진 계곡에서

육체의 땀을 씻어 내면서 정신까지 맑게 정화되는 느낌은 참으로 황홀한 경험이었다.

마르기가 무섭게 비에 젖는 등산화를 보며 마눌은 중독이라 했고 나는 살아가는

날의 새로운 변화와 기쁨이라고 했다.

 

산행지     : 학현리-신선봉-금수산-망덕봉-소용아릉-능강교

산행일     : 2006 7 9

       : 흐리고 비 후 갬 

       : 새여울 산악회 26

 

산행소요시간 : 7시간 40

 

학현리     : 10:50

말바위     : 11:14

물개바위   : 11:19

못난이바위 : 11:25

신선봉/미인봉 갈림길 : 11:45

식사       : 12:00~12:20

절벽지대   : 12:35

신선봉     : 13:21

살바위고개 : 14:27  금수산 0.3km  상학리 2km

금수산     : 14:42

망덕봉     : 15:40

능강교하산 : 18:30

 

태풍이 온다고 했다.

고원의 능선에서 진군하는 기병대처럼 달려와 얼굴을 때리던 차가운 비의 희열

을 느껴본 사람은 비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 비가 지나고 고원을 스쳐오는 진한 수림의 향기

그 바람을 목에 걸고 새롭게 열리던 푸른 하늘과 맑은 풍경을 내려다 본 사람

 젖는 걸 두려워 하지 않는다.

비가 와도 좋고 안 와도 좋다.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기쁨이 콘크리트 둥지에 칩거하는 즐거움을 넘어

선다면….

 

내가 가지 않은 나라에서 구름이 흘러가는 길에 서 있는 기암과 청솔을 만나고 싶었다.

우리국토 허리의 강건한 암릉미야 백두대간을 주유 후에 가슴에 사무치도록 각인

되었다.

길을 잃고 방황하다 신의 나라에 발을 들여  놓은 수 많은 흐린 날들이 있었다.

사유와 낭만이 비구름되어 떠도는 날 !

충북알프스 능선을  흐르던 몽환의 산 안개는 춤추다 내 어깨위에서 잠들고  

황정산과 수리봉 암릉 난간에  비를 긋던  청솔은  비 개인 맑은 하늘의  탄성을 남겼다.

오늘도 내가 태풍의 눈 한 가운데서 서 있을지 모른다.

그 아름다운 시간은 먹장구름과 비 사이로 잠깐 머물다 사라질지 모를 일이었다.

 

 비가 내리지 않는 하늘은 조용히 가라앉아 있다.

그렇게 빨리 하늘로 비상하는 가파른 산세도 드물었다.

비보다 먼저 쏟아지는 굵은 땀방울은 신선의 나라 입국 비자였다.

고원 망루를 치고 오르는 비상하는 독수리의 눈으로 바라보는 산릉은 점입가경이다.

예사롭지 않은 산세에 가슴은 속절없이 또 부풀어 오른다.

오대산에서 발원하여 정선 영월을 거쳐 단양 제천을 가로지르는 남한강물은 충주

에서 고여서 거대한 호수로 차고 오른다..

그 물길과 산이 어울려 만드는 풍경은 높이 오를수록 더 수려해진다.

 

내 사는 세상의 감동은 어디 까지 인가?

첩첩산하의 구비구비 마다 숨겨진 세상의 아름다움을 난 얼마나 찾아낼 수 있을까?

아니 가지 않은 길 뿐 아니라 지나간 추억을 따라 가는 순례의 여행 길에서도

낯선 기쁨과 설레임은 그렇게 쉽게 따라 나선다

해마다 한번씩 떠나는 지리산,소백산, 덕유산  종주길에서도 난 여전히 새로운

아름다움과 가슴 벅찬 감동을 만나고 있질 않은가?

그래서 살아간다는 건 존재한다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서서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여행길이다.

가는 길 비도 오고 바람도 불지만 세상을 담을 수 있는 가슴의 크기 만큼

세상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다.

 

신선의 나라로 가는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읽었던  한 귀절이

고원의 산상에서 다시 나의 가슴을 흔든다.

비극은 인생이 짧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너무

  늦게서야   깨닫는 것이다

삶은 하나의 기회이며 아름다움이고 놀이이다. 그것을 붙잡고 감상하고 ,

  누리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린 일이다.

  세상이 보여주는 최상의 것을 배우는 일은 우리 자신의 몫이다.

  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가슴을 흔드는 건 절륜한 어휘와  표현이 아니다.

나의 영원한 스승

대자연 속에서 내가 숱한 날 받았던 영감과 교훈이 가슴에 와 닿는 언어로

묘사되어 내 가슴을 관통하고 있음에 전율을 느꼈다.

 

누구에게나 기쁨과 희망을 불러내는 자기만의 주술이 있다.

가슴이 울리는 대로 살아간다는 것

가장 단순한 그 삶의 방식이 행복을 찾아가는 가장 쉬운 길이고 뜬구름 같은

세상사에 좀더 너그러워 질 수 있게 한다.

들개처럼 산야를 떠돌고 자연으로 돌아 가는 숱한 길 위에서

많은 것들이 돌아와 있었다.

동심 ,열정, 그리움, 설레임

 

직벽을 올라서자 차가운 바람이 몰아친다.

바람에 이끼냄새 축축한 나뭇잎 냄새 그리고 비릿한 흙냄새가 실려온다

숲이 들썩이고 내 피부와 대기가 팽팽하게 긴장한다.

오감은 말하고 있다.

비가 들이치고 있다

올 것이 왔다.

그래도 후회는 없다.

신선골의 멋진 풍경을 눈과 가슴에 미련 없이 담았다.

수채화처럼 조용히 가라 앉아 있는 낭만적인 하늘 빛 마저도

 

서둘러 능선의 평반에 자리를 잡아 점심부터 해결한다.

신선봉 전방 1.2km  지점이다.

식사 중에 한두 방울 빗방울이 떨어진다.

다시 먼 길을 떠날 여장을 수습하고 배낭에 방수포를 씌우고 출발을 하자

마자 날씨가 어두컴컴 해지더니 굵은 빗방울이 얼굴을 때린다.

예상했던 비

바람이 차지 않아 편안하게 몸으로 빗물을 긋기로 했다.

 

신선봉에는 신선의 그림자도 없고

쓸쓸한 돌무덤과 표석만 비에 젖고 있다.

빗물에 번쩍거리는 나뭇잎이 무성한 길을 헤치며 금수산으로 간다.

금새 축축히 젖어간다.

빗길을 혼자 거닐면 청승이겠지만

깊은 산중에서 만난 사람들이야 신선이 아니면

나와 동색인 사람들일 터

드러내놓고 온몸으로 받아내는 차가운 비에 야릇한 쾌감마저 인다.

30분 진행하여 898본 갈림길을 만나고 오른쪽 금수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왼쪽 길은 갑오고개로 떨어진다.

 

아무런 풍경이 없는 긴 길을 흠뻑 젖으며 걸었다.

자욱한 산 안개에 가리워져 어둑해진 산길은 인적마저 드물어

혹시 길을 잘못 잡은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자아낸다..

가끔 금수봉 쪽에서 넘어오는 일단의 무리들을 만난다.

누군가 물었다

사팔이세요?”

아닌데요내 눈은 멀쩡한데요.”

비오는 날 내가 만든 썰렁한 죠크에 웃는다.

신선봉으로 회군하는 사파리 산악회 사람들이 참 많이도 왔다.

망덕봉에서 얼음계곡으로 하산하거나 금수봉 안부에서 상학리로 하산하는

것이 훨씬 빠를텐데 굳이 지나왔던 먼길을 따라 신선봉으로 되돌아 가니

이 비속의 그들이 걱정스럽다.

아까 절벽 난간에서 힘이 빠져서 오도가도 못하던 사파리 아가씨는

괜찮을까?

대한민국 비경 탐험을 위해서는 21세기 교각 같은 다리와 지칠 줄 모르는

체력 그리고 위대한 먹성은 필수과목인데

 

금수산을 300m 남겨둔 살바위 고개는 상학마을 2km라는 이정표를 걸고 비에

젖어 있다

다시 되돌아 와서 암릉을 올라서야 망덕봉 방향이지만 악천우라 해도 여기

까지 와서 금수산을 지나칠 수는 없어서 다시 안개 속으로 혼자 길을 잡는다.

질척이는 등로를 따라 두 번의 계단을 지나고 나니 더 오를 곳이 없다

퇴계 이황이 그 절경에 감탄해 마지 않아 이름마저 바꿔버린 금수산은 비단

같은 풍경대신 자욱한 안개만 풀어 놓았다..

봉우리에서 식단을 펼쳐놓은 일단의 사람들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소용아릉을 가고 싶은데 자욱한 비안개와 추실거리는 비로 전의 상실이다.

위험한 길을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다녀만 왔다는 건 무의미 할 것 같아

계곡하산을 생각했는데 운명의 수레바퀴가 준비된 시간을 위하여 내 발길을

되돌려 놓는다.

 

산으로님 일행과 합류하여 망덕봉 가는 길에 거짓말처럼 비가 그쳤다.

하루종일 내릴 것 같은 그 비가 멎고 순식간에 산안개가 허공으로 흩어져

간다.

무성한 수림사이로 금수산이 드러나 보인다.

참으로 변화무쌍한 대자연의 조화이다.

간발의 차이로 파노라마처럼 물결쳐 갈 금수산에서 바라보는 웅장한 조망을

잃었다.

언뜻언뜻 보이는 너무도 파란 하늘과 하얗게 피어나는 구름이 만들어 내는

황홀한 풍경에 목이 메는데 일대에 걸출한 망덕봉에서도 빽빽한 나뭇잎들이

사계를 가리고 있다.

 

어쨌든 얼음골로 하산할 생각은 멀리 달아나 버렸다.

신들의 경고장을 받고 퇴각하려던 사람들은 다시 전열을 가다듬고 신의정원

으로 잠입을 시도한다.

산으로님,황태자님, 그리고 두분의 여자 산님들

신선나라 유람단은 5명이다

낙차 큰 능선과 절벽의 난 코스로 방어선이 구축되어 있는 신선의 나라는

큰 비가 지나고 난 맑고 푸른 하늘아래서 꿈길인 듯 아름다운 비경을 펼쳐

보인다.

정말 이름처럼 설악 용아장성의 위용을 닮았고 황산의 빼어난 산수와도

견줄만 했다.

산으로님이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골수 산꾼들에게만 알려진 절경의 능선

이라고 했다.

 

한숨이 절로 난다.

숱한 대자연의 경이로운 길을 걸어 왔는데

또 오늘 만나는 풍광이 눈에 시리다.

푸른 세상이 아름다운 빛깔로 동화되어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다.

필설의 의미가 무색해지는 시간이다.

이 시원한 바람과 수려한 풍경이 던지는 그림 같은 평화가

세속과 신선의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쉴새 없는 탄성을 올리며

경개에 취해 혼미해진 채 그 길을 걸어 내리며 행복했다.

 

수 많은 날을 산으로 가고 되돌아 오면서

오랜 세월 동안 처음 보는 오늘의 풍경처럼

하루하루 특별한 나의 날을 만들어 왔다.

맑은 구름이 일고 하늘 빛이 저리 푸른 이 능선에서는

한탄할 그 무엇도 없다.

  

내 청춘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렸다고?

내 꿈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암릉과 절벽을 타고 먼 길을 돌아와

첩첩이 흐르는 능선 위에서 저 아름다운 풍경에 취할 수 있으니

젊음은 아직 내 곁에 있지 않은가?

아직 돌아볼 것이 남아 있고 꾸어야 할 꿈이 남아 있으니

내 남은 시간이 더 아름답지 않을까?

 

구름이 피어나고 스러지듯

비바람이 몰아치다 맑은 하늘에 고운 무지개 걸리 듯

산행 길은 인생길을 닮았고

인생은 그저 무심하게 흐르는 거다.

그 길 위에서 때론 슬픔에 잠기고 때론 기쁨에 들뜨고

가슴 끌어안고 등 두드리며 그렇게 흘러 가는 거다

인생길에서 만나는 것들은 우연이 아니고 찾아가는 것들이 스스로의 선택임을

산은 명징한 세상의 이치로 깨우치고 있었다.

 

신선의 나라를 돌아 내려

텅탕히 흐르는 계곡에 몸을 눕히고 하늘을 본다.

차가운 물이 따뜻해 진다.

세상사 슬픔과 기쁨은 다 내 가슴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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