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시인, 1950-)
아픔과 슬픔도 길이 된다 - 이철환
오랜 시간의 아픔을 통해 나는 알게 되었다.
아픔도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바람 불지 않는 인생은 없다.
바람이 불어야 나무는 쓰러지지 않으려고
더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이 나무를 흔드는 이유다.
바람이 우리들을 흔드는 이유다.
아픔도 길이 된다.
슬픔도 길이 된다.
(소설가, 1962-)
길
어떻하다 보니까 육십 중반이다.
해마다 밀어닥치는 장마에 세월의 둑이 터졌나 ?
내 걸어온 길의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내 인생길만 큰 토막이 통째로 떠내려 간 모양이다.
나름 후회하지 않으려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하지만
뒤를 돌아다 보면 내가 넘었던 산들은 아득하고 지나 온 길의 흔적은 희미하다.
내가 지금 걷는 길은 여느 때와 다름 없는 길이지만
외로운 내 마음이 길 가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저 지나쳐 가고
내 무거운 발은 인생의 모래밭에 얕은 발자국도 남기지 못한다.
아무리 체력이 넘쳐나도 메마른 가슴이 다시 젖을 수 없다면
삶에서 감동과 우수가 떠나도 아파할 수 없는 가슴이라면
걸어가는 길 위에는 자욱한 먼지가 펄펄 날리고
살아 있는 나는 죽어가는 것이고 살아가는 나는 애써 살아내는 것일 뿐 ….
거친 길은 좀 평탄해 졌지만 길 위의 풍경은 많이 바뀌었다.
물들었던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고 스산한 바람이 불어 간다.
가끔 그 바람이 쾡한 가슴 한 가운데로 바람이 불어 나가 가슴과 등이 .시리다.
겨울이 다가 오고 있다..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계절이 겨울인데
앞으로 내가 걸어야 할 그 길은 고산 설릉처럼 장엄하고
빙결된 가지끝에 피어난 눈 꽃처럼 감동적일까?
나는 그 황량하고 차가운 대지가 그리는 아름다운 수묵화와
그 추억이 내 가슴에 쓴 시를 기억하고 있다.
나는 여전히 여행중이다.
날이 추워도 여관에서 뭉그적거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삭바람이 몰아치고 길이 거칠어도 돌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하루를 살아도
살아가는 건지 살아지는 건지 구별이 안되게 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설레임과 그리움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아직도 무수한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을 남은 그 길을 웃으며 걷고 싶다.
성질 급한 세월이 빈 수레에 거적 대기 올려 나를 눕혀고 끌고 가기 전에 ….
2024년 7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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