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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불행한 인간과 더 불행한 노인

 

 

 

우린 세상에 세뇌 되었다

그래서 우린 사자보다도 불행하고

사자에게 잡혀 먹는 가젤 보다도 더 불쌍하다.

사자는 배부르면 그늘에 앉아 나른한 오수를 즐기다가 배가 고프면

다시 사냥을 나간다.

설령 기근이 들어 먹이가 없어도 걱정하지 않는다.

당장 굶어 죽어도 굶주림을 미리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옛날 인간은 먹이를 구하기 위해 하루 수십 키로를 뛰어 다녔다.

사방에 먹이가 넘치는 지금 인간은 그렇게 열심히 뛰어다닐 이유가 없어졌다.

하지만 인간은 수백 년을 살 수 있는 식량을 쟁여 놓고도 다시 사냥을 나간다.

인간은 배불리 먹어도 늘 배고프다.

곳간에서 곡식이 썩어 문드러져도 그 위에 다시 곡식과 재물을 쟁여야 한다.

 

굶주림의 공포와 포식자의 두려움은 유전자에 각인되어 대물림 되었다.

생태계의 지존으로 등극하고 나서도 그 트라우마는 극복되지 않았다.

욕심은 더 빨리 진화하고 불안의 주파수는 증폭되었다.

그래서

배터져 죽을 지언정 굶주림 공포는 인간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인간은 멸종하지 않을 것이지만 대나무 밭의 나무늘보 보다도 행복하지 않다.

쉬지 않고 늙어 가면서 당최 쉴 줄을 모른다.

내가 쌓아 놓은 먹이는 여전히 부족하고 쉬면 뒤쳐지고 불행해질 것 같아

단단히 병에 걸린 마음은 그래서 오늘도 쉴 수가 없다.

 

 

 

세상의 바람은 차가워 지는 데  

나는 더 느려지고

더 약해지고  

더 외로워 진다.

신체적인 피로와 심리적인 고갈은 더 자주 찾아오고

회복력은 점점 떨어진다.

 

 

나는 도망자 신세다.

늙은 나는 세상에서 버려졌고

세월에 쫒기고

삶에 쫒기고

내 마음에 쫒기고

두려움이란 보이지 않는 적에게 쫒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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