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이 벌써 지나도 날씨는 춥고 바람결은 여전히 싸늘하다.
그래도 상주 구수천에 버들강아지가 봄을 올렸다.
몸이 근질근질하고 역마살이 달뜨는 걸 보니 봄이 오긴 오는 모양이다,.
토요일 제사일이 조정되어 하루의 자유가 주어졌다.
한밭토요와 함께하려 했지만 계룡산 시산제가 잡혀있어서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사량도와 호구산으로 떠나는 마차가 있어 구미가 땡기기는 하지만 봄나들이는
중순 이후에 하는 게 나을 것이고
아직은 겨울여자와 밀회를 즐겨야 할 때
그래도 이별을 얘기하고 봄처녀에게로 가는 게 순리지…
혼자 남덕유산에 오르기로 했다.
아직도 낫지 않은 발목부상의 흑역사가 태동된 곳……
아직 쌓여 있을 눈 밭에서 겨울여자와 마지막 탱고를 추고 싶다
대신 해돋이를 본다고 나대지는 말자 ….
아쉬움과 회환 그리고 새날의 희망과 기대로 올해초에는 무수한 해돋이를 만났다.
“마이 묵었다 아이가!”
눈덮힌 남덕유 산릉에서 그녀를 보낼 생각이었는데 날씨를 보니 오후에 비가
예상된다.
흐린 날애 오후에는 비 까지 ….
남덕유에는 눈이 내릴까?
그냥 계룡산을 타기로 했다.
홀로 운전해서 멀리 가는 데 구태여 흐리고 비오는 날 떠나고 싶지 않아서….
해돋이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대로 가서 야간 산행을 한 시간 정도 하면 좋았을 텐데
가 본지 정말 오래된 갑사를 들머리로..! !
일찍 일어나 유튜브를 하나 보느라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중독자인가?
아침 간편식을 챙겨먹고 사우나 준비까지 해서 출발하여 7시 20분에 갑사주차장에
도착했다.
오늘은 추억 여행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갑사에서 계룡산을 오르는 건 10년도 더 된 것 같다.
기억이 가물가물해서 검색을 해보니 2014년 12월 20일 날 감사에서 연천봉거쳐
금잔디 고개로 내려왔다.
2014년이면 퇴직 1년을 남겨 놓고 공장 부서장들과 영업부 단합산행 및 신년 고사를
계룡산 연천봉에서 하면 좋을 것 같아 나섰던 답사 길이었다..
연천봉 바로 아래 공터가 있어 고사 적지임을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다
보니 한 번 확인해 볼 필요는 있었다.
어짜피 가야하는 산이지만 공무로 가다 보니 식사비며 사우나비도 다 공짜 !
마눌과 당시 백두대간을 같이하고 있는 아들을 함께 데려갔다.
마눌도 눈이 많이 온 그 때 연천봉으로 올라 금잔디고개를 거쳐 갑사로 내려 왔으니
그 때 당시에는 상당히 준수한 체력이었다.
10년을 떼어 놓고 보니 세월의 위력을 새삼 실감한다.
나는 그 정도 코스면 그냥 산보 가는 수준이었는데 세월의 바람에 미세하게 풍화
된다는 느낌 말
고는 별다를 변화가 없었는데 작년 덕유산 부상 이후에 레벨 다운된 모과 마음을
다시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다. .
마눌은 이제 3시간 수준의 산행도 겁을 낸다.
그럼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될까?
세월이 보여주는 실증자료가 우리의 삶의 변화와 방향에 대해 명징한 답을 제시한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자연과 삶에 대한 비밀과 영고성쇠의 길을 따르는 만고불변의 진리에 관하여 ….
누군들 모를리 있으랴만 의식하지 못하 뿐이고 단지 깨어 있지 않을 뿐이다.
깨어 있지 않고 부단히 움직이지 않는 한 노화는 가속될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아까운 세월이 허망하게 흘러 갔음에 아연할 것이다.
그렇게 추운 날씨라고는 할 수 없지만 몸으로 스미는 갑사 쪽 계곡의 냉기는 유독
싸늘하다..
연천봉 가는 길은 낙차가 커지면서 상당히 미끄러웠다.
아이젠을 차고 딱딱한 빙벽길을 차고 오르면 발목에 무리가 가서 되도록 안하고
버티려 했는데 결국 할 수 밖에 없었다.
오르는 중에 설산의 익숙한 풍경 외에 돌 하나가 눈에 들어 온다.
신기하게도 칼로 자른 듯한 삼각탑 형 돌이다.
누가 자르지도 않았을 텐데 ….
무게가 오석처럼 꽤 무거웠다.
왜 그 돌이 갑자기 내 눈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지만 이 또한 인연이다.
활용방안은 나중에 연구해 보자.
무엇에 쓸지는 모르지만 가파른 산길에서 무게를 늘렸다.
하여간 여전히 차가운 냉기가 흐르고 눈이 아직 채 녹지 않은 길을 따라 연천봉에
올랐다.
50대 후반쯤 보이는 산객 한명이 휴식하고 있다.
인사를 나누고 산진 한 장을 부탁했다.
매일 신원사에서 운동 삼아 올라온다고 했다.
등산로가 비교적 완만하고 햇빛이 잘 드는 탓에 겨울에도 눈이 잘 녹아 가장 좋은
아침운동 코스라고 신원사 길을 추켜 세운다.
계룡산 3대 사찰 등산로 중에서 가장 부드럽기는 하다..
매일 오르다 보니 속도가 빨라져서 50분이면 올라 온다고 한다.
3.2km 정도 거리를 50분에 올라올 수 있다고 하면 완전 준족인데
동네 고수가 무섭다는 말이 실감이 된다.
뒤이어 또 한 분의 할배 산객이 올라오는데 둘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신원사 아침운동을 같이 하는 사람들인 모양인데 곧 넘어 갈 것 같은 허약한 체형을
한 노인이다..
젊은 산객이 소개하는데 80세이신 교사 출신 할배라고 한다.
근데 살이 너무 없고 너무 마른 상태라 진짜 연천봉 아침 산행을 할 수 있는지 의심
스러운 지경이다.
한 동안 못 올라왔던 모양인지 둘이 이러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선생님이 갑자기
“이제 내가 언제 올라올지 모르니 오늘 밥 한 번 같이 먹자”고 한다.
친구들도 하나 둘 떠나고 나도 갈 날이 멀지 않았다고 덧 부치시는데 내가 끼어들어
힘을 북돋아 주었다.
“아침에 신원사에서 연천봉 올라 올 정도면 아직 10년은 끄덕 없습니다.”
말씀하시는 거나 예전 보다 자주 오르지 못하는 상황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스스로도
조금씩 느낌이 오는 모양이다.
그래도 80까지 신원사 연천봉 아침 운동을 할 정도면 체력관리를 잘 하신 분이다..
지금까지도 훌륭히 잘해 오셨는데 내가 보기에도 이젠 연천봉에 오르지 못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나와 조사장은 워쩔 것인가?
우리 목표는 75세 인데 연천봉 아침 운동을 하느 ㄴ할배를 보면 아즉 희망은 있다.
나는 보문산 아침운동 팀이나 찾아보아야 겠다.
그래도 수확은 있었다.
아까 좀 젊은 산객과 얘기하면서 3월부터 운행되는 동학사, 갑사 ,신원사 셔틀버스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동학사에 차를 놓고 셔틀버스를 타고 갑사나 신원사로 가서 등산으로 하여 동학사로
넘어올 수 있는 편한 교통 길이 열렸으니 이젠 신원사도 가끔 들릴 수 있겠다.
두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헤어져서 등운암을 지나 관음봉 쪽으로 가는데 눈이 거의
녹아서 아이젠을 벗었다.
젊은 날에는 관음봉 앞에 있는 문필봉에도 올랐는데 등로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관음봉을 지나 삼불봉을 가는 능선에서 바라보는 눈이 아직 채 녹지 않은 반대 편
얼룩말 능선들의 카리스마는 여전히 인상적이었다.
자주 오지만 해빙기에도 계룡은 큰 산의 위엄을 잃지 않고 있었다.
겨울여자와 애증의 계룡산에서 추는 마지막 탱고 인 셈이다.
삼불봉 가까이 갈수록 녹지 않는 눈이 미끄러워 다시 아이젠을 찼고 배가 고파서
삼불봉 삼거리 에 있는 소나무 조망바위 아래서 요기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산은 이렇게 혼자 가는 산이 젤 편하다.
내 세상이고 내 페이스다.
오롯이 내가 좋아하는 풍경과 내게 마음을 뺏기는 거 말고는 신경 쓸 일이 없다.
때론 무수한 생각들이 구름처럼 솟아 오르지만 그 대로 내버려 두면 다 알아서 지
갈 길을 간다.
삼불봉에 올라 익숙한 계룡산의 위용을 감상하고 삼불봉을 내려서니 완전 응달진
등산로라 아이젠 없이 가기는 너무 가파르고 미끄러웠다.
번거롭지만 다시 아이젠을 타고 금잔디 고개를 향했다.
세월이란 바쁘면서도 또한 참으로 무심하다..
계절이 바뀔 때나 멀리 가지 못할 때면 편하게 자주 오는 계룡산 인데 금잔디 고개가
10년만이라니 ….
그 바람 같은 세월이 믿겨지지 않는다.
10년 후면 76세
꽃 잎은 바람결에 떨어져
강물을 따라 흘러 가는데
세월 따라 바람 따라 흐르는 나는
또 한 번 강산이 바뀌는 이맘때 즈음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코스는 기막히게 잡은 셈이다.
금잔디 고개에서 갑사로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완만하고 눈이 모두 녹아서 아이젠을
찰 필요가 없다.
역방으로 산행을 했다면 연천봉 갑사 구간은 위험한 하산길이 되었을 것이다.
천천히 내려가다가 전화를 받느라 쉬는 통에 한 산님이 내려와서 동행하게 되었는데
이 양반 나이가 또 79세라고 한다.
오늘은 경로 대잔치 날인가?
사업을 하다가 40세 후반에 사업을 접고 그 때 번 돈으로 생활을 한다는데 몇 년 전
췌장암을초기에 발견해서 수술을 하고 치료를 하느라 고생을 했는데 지금은 완치되어
이 산 저 산 혼자 떠돌아 다닌다고 한다.
그래도 먹고 살 돈은 있는데 요즘은 물가가 올라서 외식비가 많이 들기도 하지만 자식과
손주들이 와서 외식을 가자고 해도 밖에서 사먹는 게 별로 입에 맞지 않아 집에서 먹자고
한단다.
음식이란 게 이렇게 힘을 쓰고 배가 고플 때 먹어야지 맛이 사는 거지 집에서 내내 빈둥
거리면 밥맛도 나지 않고 사람도 망가진다고 한다.
활동적인 늙은이들 누구나 하는 말이다.
나의 나이를 묻는다.
66세라도 얘기하니 참 좋을 때라는 말을 덧 붙이시는데 ...
내가 정말 한참 때라고라?
육본에서는 대령이 식기 닦고 경로당에서 70세가 방청소 한다드만
대한민국도 나와 같이 늙어 가는 거다.
나도 우짯든 5년 더 써서 조사장하고의 명산 주유를 80세 까지로 늘려 잡아 볼까?
75세로 늘린지 얼마 된다고 또 잡아 늘리냐고 하겠지…..
그걸 신 말고 누가 알겠는가?
흐미 낚였다.
페이스를 조정해서 좀 빨리 내려가야 하는데 말동무가 되다 보니 뿌리치고 먼저 갈
수가 없어서 그의 속도에 맞추어 천천히 진행했다.
하여간 길동무가 있어서 심심치는 않는데 상투적인 대화를 나누려니 조금은 답답했다.
30분은 늦어졌겠다.
빗방울이 조금씩 떨어지다가 갑사에 다다를 때 쯤 빗방울이 굵어졌다.
비가 계속 올 것 같아서 나는 절 모퉁이에서 배낭 방수포를 씌우고 우비를 꺼내 입었다.
할배는 천천히 걸으면서 나를 기다리는 듯 했지만 나는 갑사로 들어가서 경내 사진을
몇 장 찍고 부처님에게절을 올렸다.
내림 길은 부도가 있는 산책 코스를 휘돌아 내려 갔다.
봄비를 맞으면서 …
봄 비가 말하고 있었다 .
"봄처녀가 올라 오고 있어요 ."
차갑지 않는 비는 그렇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 봄엔 바빠질 것이다.
다음주는 복수초를 보러 가고 그 이후 주말에는 남도의 봄을 만나러 갈 것이다.
4월과 5월의 주말은 이미 자물쇠로 채워졌다.
.
주차장에서 시간을 확인 해 보니 2시 20분이 다되어 간다.
아침 7시에 20분에 시작했으니 시간 계산상 6시간이나 걸렸다.
혼자 했는데도 꽤 오래 걸렸다.
10년 전 산행 때는 눈이 훨씬 더 많았다.
그 때는 셋이 5시간 걸렸는데 오늘 내가 홀로 6시간 걸렸으니 세월 무상이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더니…..
무릉객 ! 인자 늙는 거이다.
오늘같이 늘어지는 시간이 많았던 날은 꼭 시간이 지표가 될 수는 없지만 이젠 나도
어느 덧 세월 속에 퇴행하고 있다.
마눌도 10년전에는 그렇게 짱짱했는데 이젠 산행에 몸을 사리며 3시간도 어려워 한다.
늦게 황산옥에 들러 복어탕을 한 그릇 비우고 유성사우나에서 사우나 2시간을 하고
6시가 다 되어 집으로 돌아 왔다.
10년 만의 갑사는
겨울여자와의 조촐하고 낭만적인 이별식 이었고 오롯이 나를 위한 힐링의 시간이었다.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하여 계룡산 3대 사찰 셔틀버스에 대해 알아보니 다음과 같다.
운영기간 2025년 3월 ~12월
운영요일 : 토요일,일요일,공휴일, 백제 문화제 기간
운영시간 : 08;30~07:30 (1일 총 3회)
운영장소: 동학사주차장,감사주차장,신원사주차장,신관동 육교
운영대수 : 1대
비 용 : 1일 이용권 /표 구입은 버스에서
일반 : 1500원, 경로우대자 1000원
탑승권 판매처 : 셔틀버스에서
티켓문의 : 공주시 관광과
산 행 일 : 2025년 3월 1일
산 행 지 : 갑사
산행코스 : 갑사 –연천봉-관음봉-자연성릉 – 삼불봉 –금잔디 고개 – 갑사
소요시간 : 6시간
날 씨 : 흐림 후 비
동 행 : 나홀로
2016년 갑사
https://go-slow.tistory.com/17940180
계룡산 갑사 - 연천봉-관음봉- 금잔디고개 - 갑사
go-slow.tistory.com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봄 여행의 서막 -화암사 복수초 (0) | 2025.03.14 |
---|---|
2월의 마이산 (0) | 2025.02.19 |
육구종주 이어가기 - 덕유산 시산제 (0) | 2025.02.01 |
속리산 새해 산행 - 내 가까운 친구들..... (0) | 2025.01.14 |
대둔산 새해 일출 산행 (0) | 2025.01.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