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福일지? 禍일지?
세상만사 塞翁之馬~ ❤️
옛 이야기 하나 전합니다. 세상만사 塞翁之馬(새옹지마)라 합니다. 삶을 영위하면서 만나게 되는
일마다, 一喜一悲하지 않는게 현명한 처사라고 가르치는 말씀으로 압니다. 한국판 塞翁之馬입니다.
💢 "福일지? 禍일지? "
옛날에 황해도 해주사또인 어판득은 근본이 어부였습니다.
고기잡이 배를 사서 선주가 되더니 어장까지 사고, 해주 어판장을 좌지우지하는 큰 부자가 되었
습니다.
그는 어찌어찌 한양에 줄이 닿아 큰 돈을 주고 벼슬을 샀고,
평양감사 아래에서 얼쩡거리더니 마침내 해주 사또로 부임했습니다.
그는 그렇게도 바라던 고향 고을의 원님이 되어 권세도 부리고 주색잡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웬지 즐겁지 않고 뭔지 모를 허망함만 남을 뿐이었습니다.
처서도 지나고 가을바람이 솔솔 불어오던 어느날, 사또는 동헌에 앉아 깜빡 졸았습니다.
사또는 원래의 어판득이가 되어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끌어 올렸습니다.
조기떼가 갑판 위에서 펄떡이자 그도 조기와 함께 드러 누워 껄껄 웃었습니다. 꿈을 꾼 것입니다.
이튿날, 사또는 백성들의 눈을 피해 어부로 변장하고 동헌 전속 의원인 마 의원만 데리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준비해 둔 쪽배를 타고 노를 저어 망망대해로 나갔더니 가슴이 뻥 뚫렸습니다.
옛 솜씨가 그대로 살아난 듯 그가 던진 그물엔 조기와 우럭이 마구 펄떡거렸습니다.
그는 호리병에 담아온 막걸리를 들이키며 껄껄 웃었습니다.
그러다가 손을 잘못 짚어 오른손 중지가 못에 찔려 피가 뚝뚝 흘렀습니다. 마 의원이 그 자리에서
약쑥을 붙이고 붕대를 감았습니다.
“괜찮겠지?” 사또가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눈을 내리깔고 있던 마 의원이 조용히 대답했습니다.
“좋아질지, 나빠질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관아로 돌아왔는데 못에 찔린 손가락이 부어 오르고 통증이 심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며칠 후 마 의원이 사또의 다친 손가락을 칼로 째 고름을 빼내고 고약을 발랐습니다.
“내 손가락이 어떻게 돼 가는 건가?”
사또가 묻자 마 의원은 이번에도 똑같은 대답입니다.
“좋아 질지, 나빠 질지 누가 어찌 알겠습니까 ?"
사또는 몹시 화가 났지만 마 의원이 연배도 위인데다 뭇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꾹 참았습
니다.
사또의 손가락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가 손가락을 잘라내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또는 무당 손에 들린 사시 나무처럼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고함을 쳤습니다.
“여봐라! 저 놈의 돌팔이를 당장 옥에 처넣어라.”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사또는 그 날 밤 감옥으로 마 의원을 찾아 갔습니다.
“이 돌팔이야, 옥에 갇힌 맛이 어떠냐?”
그러나 마 의원은 목에 긴 칼을 쓴 채 무덤덤하게 대답했습니다.
“이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누가 알겠습니까?”
사또는 화가 머리 끝까지 올랐습니다.
“또, 또, 또, 저 소리!
여봐라, 저 놈을 끌어내 당장 곤장 열대를 안기렸다.”
한 달여 지나 사또가 붕대를 풀었습니다.
잘린 상처는 말끔하게 아물었지만 오른 손은 중지가 빠져나가 영락없는 병신이 되어 있었습니다.
시름에 잠겨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사또는 또 다시 바다가 그리워져, 날을 잡아 어느 날 혼자 쪽배
를 몰고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 때 수평선에 불쑥 솟아오른 황포돛배가 순풍을 타고 쏜살같이 파도를 가르며 다가왔는데, 이럴
수가! 그 배는 해적선이었습니다.
해적선 위로 잡혀 올라간 사또는 사색이 되었습니다.
해적들은 갑판 위에 걸쭉하게 제사 상을 차려놓고 용왕제를 지낼 참이었습니다.
이들은 사또를 제물로 포획해 바다에 빠트릴 작정이었습니다.
이를 눈치챈 사또가 울며불며 발버둥을 쳤지만 부질없는 짓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또를 묶던 해적이 무언가 이상한 듯 두목을 불렀습니다.
“쯧쯧쯧, 이런 손가락도 없는 병신을 제물로 쓸 수는 없어!”
사또는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는 바로 의관을 차려 입고 감방으로 달려 갔습니다.
“의원님의 깊은 뜻을 미처 몰랐습니다. 손가락이 없는 덕택에 제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런데도
의원님을 이렇게 옥에 가두다니….”
사또는 손수 옥문을 열고 마 의원을 정중히 동헌으로 모셨습니다.
“죄송합니다. 모두 제 잘못입니다.” 사또가 거듭 머리를 조아리자 마의원이 나직이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나으리 덕택에 제 목숨도 부지했습니다.
소인을 옥에 가두지 않았다면 틀림없이 바다에 동행했을 테고, 소인은 사지가 멀쩡하니 제물이
되어 지금 쯤 고기밥이 되었겠지요.”
새옹지마처럼 다양한 변수가 인생을 풍요롭게 하기도 하고 반대로 힘들고 어렵게도 하는가 봅니다.
부디 일상에서 一喜一悲하지 마시고 차분히 대처하시며 보람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날씨도 세상도 너무 현란하게 변합니다.
세상이 눈 앞에 보여주는 길흉화복에 너무 휘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좀 더 따뜻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좀더 너그럽게 세월에 익어 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삶을 누리고
즐기시기 바랍니다.
옮겨 온 좋은 글
내 얘기하나 해볼까 ?
새옹지마 글을 읽다 보니 불현듯 옛 생각이 나네ㆍ
젊은 날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산에 반 미친 사람으로 치부되었지ㆍ
백두대간 왕복종주
9정맥 종주
백대명산 종주
대한민국 오지 산행
다수의 해외 원정 산행
열심히 살았네만 평생 자랑스럽게 내세울 위업 이라고는 산 말고 달리 없다네ㆍ
산으로 난 그 길 위에서 살아가는 날의 기쁨과 행복을 노래했고 내 영혼의 흥겨운 콧노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으니ㆍㆍ
거칠것 없었던 폭주 기관차를 멈추게 한 건 계룡산신령님 이었네 ㆍ
스스로의 삶의 방식에 고무되고, 제 흥에 겨워 처방지축 나대며 살았어..
세상 오지의 비경을 탐하던 젊었던 무릉객은 2007년 1월 겨울 계룡산 철계단에서 무참히 추락
하는 사고를 만났었지.
참으로 참담하고 두려운 사고 였다네 .
정상으로의 회복에 관해 스스로 회의감과 의문을 떨칠 수 없었던...ㆍ
지속된 투병 그리고 산과의 뼈아픈 이별 !
세상을 잃어버린 것 같은 슬픔을 몰고 왔던 내 인생 최고의 시련이었네ㆍ
최악은 벗어났고 생각보다 예후는 좋았지만 사고의 아픔은 참으로 오랫동안 계속 되었네 ㆍ
거친 산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거란 희망은 점점 사라져 갔고 그나마 불구의 몸을 벗어난 위안
과 평범한 일상을 잃지 않은 것만으로 감사히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은 여전히 무겁고 엄중했다네ㆍ
산이 내 삶에 너무 깊숙히 들어와 있었으므로 ...
몸 보다 마음이 더 아프고 두려운 시간이었네 .
눈만 감으면 떠오르는 가슴시린 풍경과 추억들 ..
환청처럼 들리는 내 영혼의 노랫소리..
그건 잃어버린 슬픈 꿈이었고 갈 수 없는 나라의 뻬아픈 상실 이었네 ㆍ
내 등엔 마치 센서가 장착되어있기라도 한 듯 조금 무리하면 여지없이 허리의 통증은 다시 나타났네
이후 내가 산에 올라 부처님 전에 엎드려 빌던 건 딱 하나 였지 !
"아무것도 바라지 않겠습니다ㆍ
옛날의 허리만 돌려주세요ㆍ"
그리고 세월은 또 말없이 흘러 갔네...
나는 산을 다시 돌아가긴 했지만 예전처럼 거친 산을 오를 수가 없었네.
그렇게 완치의 희망을 접은 채 아픔과 더불어 살아가야하는 나의 운명을 조용히 받이들이기로 한
어느 날 통증이 홀연히 사라져 버렸지.
거짓말처럼 ….
3년의 세월이 비람처럼 지난 간 후 였다네ㆍ
어리석은 우린 우주의 오묘한 신비와 신이 소맷부리에 감추고 있는 패를 알지 못하네
행복과 불행의 기승전결은 언제 건 뒤바뀔 수 있다는 건 시련과 인고의 시간 이후에 비로소
알 수 있는 거라네.
더 많은 세월을 보내야 우주의 섭리와 신의 깊은 뜻에 고개가 끄덕여 지는 거지.
신은 고통의 벌판 어딘가에 행복의 씨앗을 함께 뿌려 놓았네...
그것이 모진 세월과 아픔을 먹고 조금씩 자란다는 걸 우린 믿으려 하지 않지만
희망의 구근은 차가운 땅 속에서 그렇게 때를 기다리고 있다네...
인생만사 새옹자마 !
거친 산을 내려올 수 밖에 없었던 그 시간 동안 나는 마눌과 100대 명산 주유를 시작했서
인생추억을 만들었고
심산으로 떠나는 친구들을 아쉬움과 회한으로 지켜보던 그 길 위에서 나는 아직도 구성진
내 삶의 노래를 부르네ㆍㆍ
수 많은 산 친구들이 또 수많은 이유로 산을 떠난 지금에도 거리낌 없이..
신은 앞만 보고 달리던 나를 멈추어 서게 하고 내 삶과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해 주었네.
고통과 상실은 지나고 나니 큰 사랑이었네....
내 존재를 둘러싼 영험한 사랑 !
신과 우주는 산과 사람에 대한 나의 사랑이 더 오래 계속 되기를 바랐던 것이었네.
사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건 여전히 쉽지 않다네.
지금도 눈앞에 지금 펼쳐 지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인 것처럼 전정긍긍하고 일희 일비하며 스스로 자신을
옥죄며 살아가지만 그날 이후 최소한 나를 믿고 시간과 세월을 내 친구로 받아들이려 노력한다네..
조용하지만 잔혹한 폭력자 !
하지만 거스를 수 없는 대자연의 질서이자 치유의 힘이 있는 세월 아닌가..?
호사다마라 했네 !
세상에 얻기만 계속할 수도 없고 또한 늘 잃기만 하는 것도 아니네.
삶이란 덧셈과 뺄셈, 행복과 불행이 씨실과 날실로 엮이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무늬와 빛깔로 인생이란
한 벌의 옷을 만들어 간다네 .
오래 살아봐서 알듯이
못 견딜 슬픔이 어디있고 오래 지속되는 행복이 어디 있는가?
슬픔과 기쁨은 그렇게 등을 맞대고 있고 삶은 소용돌이 치는 강물처럼 희노애락의 여울목을 휘돌아
도도히 흐르네 ㆍ
우린 일엽편주에 올라 변화무쌍한 인생의 강을 노저어가네.
영원한 안식과 평화가 기다리는 고향으로 ...
뱃전을 튀기는 강물과 거셴 비비람과 싸워야만 하지만 수시로 바뀌는 현란한 강둑의 풍경을 누리고
시원한 강바람을 즐기는 건 우리의 선택에 달린 문제라네..
어느 날 내 삶에 불어오는 바람이 행복을 몰고 올지 불행을 몰고 올지 미리 걱정하지 말기를 !
바람과 파도를 즐기게 !
미친 폭풍우는 사그러들고 바람의 방향은 곧 바뀌네.
그리고 신은 징징거리는 넘한테 결코 좋은 패를 돌리지 않는다네 ㆍ
이제 얼마남지 않은 여행길이네 !
다시 돌아 올 수 없는 단 한 번의 여행 !
궁극에는 나의 죽음으로 나와 모든 우주가 무로 수렴되는 공평한 인생일세 !
갈수록 힘빠지고 재미가 없어도 힘내서 즐겁게 살아가야할 아까운 내 인생 일 뿐이네.
한 뼘 더 건강하고 아름다운 지금을 마음껏 누리고
힘든 날에는 자신을 믿고 희망을 잃지 않길 바라네 .
삶이란 너무 비장하거나 무겁지 않게 가벼운 행장으로 소풍 가듯 즐겁게 살아가야 하는 것
그것이 살아 있는 생명의 본질이고 바람직한 삶의 태도가 아닌가 나는 생각하네 ㆍ
2025년 6월 29일
나루터 주막집 구석진 방에 노름판이 걸쭉하게 벌어졌다. 담배 연기 자욱한 방에 희미하게 피운
관솔불 하나는 사람 얼굴도 구분하지 못할 지경인데 노름꾼들은 용하게도 골패를 잘 읽는다.
보부상에 홍삼 도매상, 돈놀이 최부자, 유기전 오부자…. 옹기종기 모여 따그닥 따그닥 골패소
리에 엽전 소리만 쨍그랑거린다. 그때 ‘꽈다당~’ 갑자기 골방 문이 부서지며 덩치 큰 포졸 하나가
육모방망이를 휘두르며 들이닥쳤다.
“모두 엎드려! 대갈통이 박살 나기 전에!”
벽력 같은 고함에 노름꾼들은 모두 머리를 양손으로 감싼 채 방바닥에 얼굴을 처박고 엉덩이를
세웠다.
“내일 해가 뜨면 모두 동헌으로 모이렷다!”
포졸은 판돈을 몽땅 쓸어 자루에 담더니 문을 박차고 쏜살같이 사라졌다. 배 끊어진 지가 언젠데
포졸은 나루터로 달려갔다. 한 척뿐인 나룻배와 뱃사공이 기다리고 있었다.
“도둑놈 잡아라~.”
수상한 낌새를 알아챈 노름꾼들이 달려 나왔지만 벌써 쪽배는 가짜 포졸을 싣고 장마 뒤끝의 싯누런
황토물이 넘실거리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그렇게 강을 건너간 가짜 포졸은 솥뚜껑만 한 손으로 엽전을
덥석 집어 뱃사공에게 건넨 뒤 노를 빼앗아 강에 던져 버렸다.
떠돌이 노름꾼, 가짜 포졸 만득이는 성큼성큼 어둠 속을 걸어갔다. 전대는 넘쳐나고 거사(巨事)
전에 간덩이를 키우려고 벌컥벌컥 마셨던 술이 그제야 얼근히 취했다. 삼십리를 걸어 객줏집에 다다른
만득이는 노름판에서 털어온 돈을 펼쳤다가 놀라서 까무러칠 뻔했다. 엄청난 돈이었다. 고향에 가서
기와집을 짓고, 논밭을 사고, 참한 색시를 얻으리라는 단꿈을 꿨다.
이튿날, 만득이는 우선 말 한필을 샀다. 이어 통영갓과 한산세모시 바지저고리에 비단 두루마기를
사 입었다. 원래 좋은 허우대라 사대부 집안의 맏아들 모양새가 되었다. 그 길로 말을 타고 칠십리나 달려
진주땅에 다다랐다. 만득이는 술을 실컷 마시고 고기도 실컷 먹고 촉석루 아래 남강에서 뱃놀이도 했다.
그렇지만 딱 하나가 모자랐다.
어둠살이 내리자 만득은 추월관 기생집에 들어갔다. 기생집 주모가 상다리가 휘어져라 요리상을 차려
내오고 색시 하나를 데려왔다. 순간, 만득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선녀인가, 인간인가, 구미호인가.’
주모가 때를 놓치지 않고 만득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약주 드실 때 술잔만 올리면 스무냥, 머리를 올려주려면 이천냥을 주셔야 합니다.”
색시에게 술잔만 받기로 하고 술을 마시는데 보면 볼수록 예쁘기 짝이 없다. 행동거지도 조신해 내친
김에 머리를 올려주기로 했다. 뒷방에 금침을 깔아놓고 만득이 촛불을 끈 뒤 옷을 훌훌 벗었다. 그런데
색시가 한 무릎을 세우고 얼굴을 묻은 채 하염없이 흐느끼는 것이다. 만득이는 술이 확 깼다. 촛불을 다시
켜고 색시에게 사연을 물었더니, 사화(士禍·조선시대에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몰려 참혹한 화를
입던 일)에 휩쓸려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귀양을 갔단다. 오빠 둘은 옥살이를 하고 여동생은
이모집에 숨어서 아버지와 오빠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색시는 별 도리가 없어 정혼을 약속한 사람이
있었지만 천오백냥에 이곳 진주 기생집으로 팔려왔다는 것. 만득이는 벗었던 옷을 다시 입고 색시의 손목
한번 잡지 않은 채 밤새도록 마주 앉아 얘기만 나눴다.
동이 트자 만득이는 이천냥을 색시 치마폭에 던져놓고 고향 산청으로 떠났다. 그래도 아직 수중에 오백
냥이 남아 있었다. 그후 조정이 한바탕 들끓더니 사화가 반전되었다.
이듬해 봄, 만득이가 고향 땅에서 ‘이랴~’ 쟁기질을 하고 있는데 말과 가마를 타고 그 색시 일가족이 내려
왔다. 몸을 더럽히지 않은 색시가 곧장 한양에 올라가 약혼자를 찾았지만 벌써 다른 규수와 혼례를 올린 후였다.
그렇게 찾아온 색시와 만득이는 산청땅이 떠들썩하게 혼례를 올렸다.
조주정의 사랑방 이야기 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