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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귀연산우회 3차산행(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

귀연 산우회 3차 산행
2004년 1월 25일 일요일
산행구간 : 도마령-각호산-민주지산-석기봉-삼도봉
산행거리 : 약 14km
소요시간 : 6시간 40분

도마령(802m)
        : 09:25  (각호산 1.5km)
각호산(1136m)
      : 10:25  (민주지산 3.4km)
대피소
                  : 11:50  (식사)
민주지산(1242m)
   : 12:25  (석기봉 2.9km) 산신제 
석기봉 (1200m)
     : 14:05  (삼도봉 1.4km)
삼도봉 (1177m)
     : 14:40  (황룡사 4.4km)
심마골재
               : 15:00
황룡사
                  : 15:50
주차장
                  : 16:00


우리가 백두대간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던 것은
산이 우리를 허락했기 때문입니다.
산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때로는 냉혹한 위엄으로 아무런 사고 없이 우리의 출정을 지켜주
었고 그 무한한
  경외와 고혹의 자태는 한 없는 이끌림으로  대자연을 동경하는 우리의 발길을 붙들었습니다.

좋은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비슷한 빛깔의 사람들
함께하는 의미와 자연을 주유하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들
그들과의 기분 좋은 만남이 있었기에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시간들을 추억합니다.

강한 의지와 세상을 대하는 따뜻함이 있는 당신 때문입니다.
자신을 사랑할 줄 알고 기꺼이 대자연의 교훈과 아름다움에 심취할 수 있는 당신이야말로
대자연의 감동과
  무한한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무대는 막을 내리고
격정의 시간이 그리워
  지지만
산은 언제나 거기 있다.
산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또 걷는 것 외에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난 곳에서 진심으로 내 삶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배낭을 메고 훌훌 새벽 길을 털면 그 견딜 수 없는 그리움의 기대가 가슴 벅차게 다가온다.
언제나 찾을 수 있어 산이 가까이 있어 내 삶은 언제나 행복하다.


도마령에 눈이 내린다.
눈은 동심의 기억을 안고 추억처럼 내리고 있다
눈이 연결하는 흐믓한 기억을 떠올리며 도마령에서 오르는 능선 길은
  가파르게 일어나
앉아 있고 사람의 발자국은 어디에도 없다.

생각보다 바람이 조용하다.
무채색 하늘과 힌 눈으로 뒤덮여 암갈색 산 주름을 선명히 드러낸 장쾌한 능선들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은은하다.
겨울 산이 이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가?
각호산에 다가갈수록 눈 꽃은 점입가경이다.
대자연의 화폭에 담긴 설경은 언제나 눈이 시린 아름다움으로
  볼 때마다 새롭고 현란한
조화로 가득 차 있다.

그저 무기력한 연휴에 배에 낀 기름기가 걱정되어 훌쩍 나선 여행 길에서 만난 눈부신 겨울풍광에 나는 연신 탄성을 올리고 있다.
아이들처럼 설레임으로 들뜨는 겨울산행

각호산 정상에서 눈부신 태양이 대원들의 등정을
  축하해주고는 다시 구름 속으로 숨어버린다. 
폐부로 다가오는 청명한 공기와 굽어보는 장쾌한 설릉에 가슴이 열리고 거칠게 불어 오르는바람이 가슴을 후련하게 한다.
설산의 고독
산릉은 저마다 어디론가 흘러내리고 눈길이 닿는 저 먼 곳에서도
  인공의 모습이란 찾아
볼 수 없는 웅혼한 대자연의 한 가운데를 내가 바람처럼 스쳐 지난다.

민주지산 가까이에는 대피소가 있다.
바람결이 차가와 진 능선아래 대피소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산객이  고단함을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쉼터 역할을 한다.
차가운 냉기와 바람을 피해 모여든 산객들로 산장은 초만원이다.
잠시 쉬어 가려 했건만 앉으면 눕고 싶다고 휴식과 함께 밀어닥친 허기가 발길을 잡아 매는 통에 침상 위에 주저 앉아
  꾸역꾸역 먹고 말았다.
어차피 12시가 다 되었고 바람부는 한데서 식사할 곳이 마땅치 않으리란 생각이었지만 산신제를 올린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 가증스런 불경함을 산신령이여 굽어 살피소서….

속속 합류하는 우리팀들에게 식사와 자리를 권하면서 식사를 마무리하고 행장을 수습했다.
따뜻한 식사와 뜨거운 물로 속은 풀렸지만 휴식 후 떠나는 길 위로
  시린 발과 손이 오래도
록 따라온다.

민주지산에는 오히려 바람이 없이 평온하다.
허공에 뜬 구름처럼
  드넓은 설릉의 흐름을 굽어보며 침묵하는 고원
햇빛 마저 가끔 구름 밖으로 나와
  고독한 설산에 평화와  안식의 빛을 드리운다
큰 산의 위용과 거침 없는 풍광에 경건함이 인다.


30분쯤 기다려 후미와 합류하고 제단을 차린다.
모임을 이끄는 몇몇 분이 알아서 제물을 준비한 모양인데
  그들의 노력에 항상 무임편승
하는 나로서는 미안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아침에 차 대장이 모든 산에는 산을 지키는 산신령이 계시고 산을 오르는 우리는 언제나
항상 경건함과 무한한 경외의 마음으로 산을 대해야 한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산은 언제나 우리의 사고와 관념을 넘어선 신의 영역을 간직하고 있고 우린 심산의 작은
자락을 기웃거린 추억만으로도 인생의 의미와 심오한 깊이에 다가간다.

우리는 모두 배불리 먹고 산신제를 올리는데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
그 평온한 날씨가 제를 올리고 음복을 하는데 거칠게 표변한다.
눈보라가 몰아치고 젯상을 엎어버리기라도 할 듯 바람의 기세가 등등하다
산신령의 진노가 들리는 듯하다.
“ 고이헌 놈들 내가 진즉 네 놈들을 알아봤다.
네 놈들이 꼴이 보기 싫어 1년이 넘도록 그토록 심한 비와 눈을 뿌려 댔건만
  끝끝내 고집
을 부려 내 잔등을 타고 넘더니만 정초부터 인사를 차린다는 놈들 하는 짓거리가 눈뜨고 못 봐 주겠다.
먹을 것 다 먹고 세월아 내월아 올라와서 돗자리 뒤집어 깔아놓고 건들거리는 불한당 같은 놈들아 ! ”

민주지산 신령님의 노여움은 그야말로 대단하다
아까 송형이 민주지산 꼭대기에서 오줌을 싼 게 결정적으로 신령님의 부아를 돋구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산신령님 노여움을 푸소서
당신의 권능과
  세상을 주관하는 섭리에  경배하나이다
언제나 교만하지 않겠습니다.
산을 사랑하며 자연을 가까이 하는 삶을 살겠습니다.
언제나 당신의 영토에 우리를 받아들여 주시고 산과 함께 누릴 수 있는 단단한 체력과 건강을 주소서
모두들에게 위안과 평화를 주는 산의 넉넉함을 배우게 하시고
언제나 신뢰와 희망을 줄 수 있는 사람으로 남계 하소서
당신의 기와 세상을 주관하는 지혜를 주소서 “


“귀연’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귀한 인연”
생각해보면 참으로 좋은 의미라 아니할 수 없다.
곽선배님의 탁월한 작명처럼
우리는 모두 오래도록 산을 사랑하며 함께 늙어 가리라
큰 바위 얼굴처럼 편안한 모습으로…..

또 다시 마지 못해 우리를 받아들여 주실 신령님을 믿으며 우리는 그렇게 서슬 푸른 신령님의 진노를 뒤로했다.

바람은 불세출의 조각가 이다.
바람의 방향에 따라 눈의 깊이와 높이가 다르고 그 다듬어 내린 듯한 정교한 곡선미는 산릉을 따라 조화롭게 이어진다.
석기봉 가는 길엔 온통 눈 천지에 칼바위 능선에는 칼 바람이 난무한다.
어디에서 이 시린 시간을 다시 만날 수 있으랴 ?
석기봉 인근에는 넘어오는 사람이 많아 정체가 심하다.
역시 이 장쾌한 설국을 욕심 내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었다.
사방에서 세차게 불어보는 바람을 맞으며 석기봉은
  축제처럼 들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삼도봉이 보인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이 흰 눈의 선으로 능선을 따라 선명하게 삼도봉으로 연결된다.
삼도의 기맥을 일으켜 백두대간 위로 힘차게 솟구친 삼도봉은 멀리서 대간을 종횡하던 우리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동물들은 흔적 없이 자연에 동화되지만 사람들은 언제나 자연에 흔적과 상처를 남긴다.
흰 눈으로 뒤덮어도 지워지지 않는 인간의 길을 보며 산신령님은 얼마나 또 심사가 뒤틀리실까?
그 중에서도 백두대간 하는 놈들이 제일 못마땅 하실 게다.
“ 하지만 신령님 누구보다도 우리는 산과 자연을 사랑합니다.
우린 가급적이면 이렇게 사람들이 밟고 지나간 길들을 따라 가고 산을 더럽히지도 않습니
다.”

삼도봉 바람은 거칠게 표효하고 있다.
볼과 귓볼이 얼얼하고 서 있으면 내가 바람에 떠밀린다..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을 바라보며 삼배를 올렸다.
배낭과 장갑 모자를 모두 벗어버리고 침묵하는 큰 산에 큰 절을 올린다.
언제나 자연을 향한 열정과 의욕을 잃지 않게
  하소서”
“슬픔과 걱정을 거두어 가시고 하루하루를 기쁨과 즐거움으로 채울 수 있도록 도우소서”
그 눈부신 사월의 태양 아래서 우회장님이 힘겹게 지고 올라온 동동주를 세 잔이나 마시고
8월 염천에 흐르던 땀을 고원의 바람에 날려버린 곳도 삼도봉 이었다.
오늘 삼도봉 산신령님도 이만저만 화가 난 게 아닌 모양이다.

황룡사 가는 길을 따라 심마골재로 내려서는 길은 폭풍의 설원이다.
눈보라에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할 지경인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 속의 주인공이나 된 것처
럼 비장한 모습으로 우리는 옷깃을 여미고 묵묵히 걷는다.
매서운 바람은 가지의 눈을 남김 없이 털어내고 바닥의 적설마저 솟구쳐 올려 흰 눈보라를
산능성이 아래로 마구 뿌려 댄다.
지난 겨울에 백두대간에서 만났던 가슴까지 후련하던 그 바람 맛이다.
심마골재를 따라 계곡으로 접어들자 바람은 한결 누그러졌지만 계곡의 싸늘한 기운이 온 몸을 차갑게 감싸 안는다.
눈이 흩날리는 계곡을 따라 은자처럼 조용히 흘러 내리는 길엔 겨울 낭만이 눈처럼 날리고
긴 사색은 마치 작은 깨달음이라도 이끌어 낸 듯 우리의 얼굴을 경건하게 만든다.
  
우리가 걸었던 수 많은 시간들처럼
  시간의 흐름은 그렇게 조용히 우리를  이동 베이스캠프로 데려다 주었다.
많은 적설로 시간이 조금 지체되었을 뿐…..
눈에 물릴 만큼 온종일
  눈길을 걸으며 겨울다운 칼바람과  함께했던 멋진 산행길 이었다.

백두대간을 통해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우리 인생의 소중함은 결과 보다는 그걸 이루어 가는 과정에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목적지에 안달하지도 조급하지도 않는다.
멋진 풍광에 넋을 놓고 가끔은 동료들과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과의 깊은 대화
나 사색에 잠기다 보면 가장 편안한 시간은 시나브로 흐르고 우리는 어느덧 목적지에 도달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하루는 우리에게 언제나 가슴 가득한 충만함으로 다가온다.

질통에 가득 담긴 김치 찌개를 보며
  백두대간을 넘나들던 시절의 뒤풀이를 생각해본다.
그 즐거웠던 시간대의 추억
그 진솔한 웃음과 언어는
  아직 허공에 떠돌고 있다.
그 기억이 너무 강렬해서인지 김치찌개는 그때의 맛을 간직하지 못하고 있지만 무슨 문제가
  있으랴?
고단했지만 감동적인 하루를 무사히 마무리하고 함께 다시 모였다는 것 만으로 우리는 너무도 즐겁고
  술의 순배는 잘도 돌아간다..
백두대간을 할 때나 할 때나 지금이나 항상 모임을 무리 없이 끌어주시는 많은 분 들께 감
사 드린다.
귀한 인연으로 만나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다시 모였으니
  이 모임이 우리 삶의 작은
기쁨이 되어 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내 인생 길에서 만났던 모든 분들의 건승과 행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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