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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기

봄산행(덕룡-주작산 종주산행)

2004년 3월 28일 일요일



10: 30  소석문 출발
11: 40  <=소석문 1.57 km  =>동봉 0.86km
12 :00  동봉 (410m)   <= 소석문 3km   => 서봉 0.28km
12 :30  서봉 
13 :10  수양마을 1.6km   <= 서봉 0.4km  =>양란 재배장 4.19km
14 :05  주작산 앞산 (작전소령)
15 :10  양란 재배장  <= 소석문 7.3km
16 : 05  주작산
16 : 40  하산완료



병원으로 문병을 갑니다.
우리는 숱한 사람을 봅니다.
교통사고로 온 몸이 망가진 사람
하루종일 허공을 보면서 누워 있어야 하는 사람들 …
때로 참으로 아플 때가 있습니다.
모든 세상사의 관심과 흥미가 없어지고 오직 병의 회복만을 생각합니다.
우린 새삼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건강한 몸의 축복을 뼈저리게 느낍니다.

마음이 많이 상하고 괴로울 때가 있습니다.
심한 마음의 상처와 괴로움이 삶의 의미를 뿌리 채 흔듭니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비로소 마음의 평화와 안정이 주는 평범한 행복을 알아 차립니다.
세상 모든 사람에게는 걱정과 고민이 있습니다.
걱정과 고민의  크기는 모두 다르지만
걱정과 고민을 극복하는 지혜도 받아들이는 가슴의 크기도 모두 다릅니다
그리고 고민이 지난 다음 그것이 사치스러웠고 우스꽝스러웠음을 흔히 봅니다.

친구여
이 푸르러 가는 봄엔 산으로 가자
높아 있는 산에서 하늘을 보고
걱정일랑 소나무 가지에 잠시 걸어두게나
바람에 답답한 가슴은  훌훌 날려 버리고
빈 마음엔 봄을 가득 담아 오세나

자연과 함께할 수 있는 건강과 삶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 하나로도 인생은 축복이다.
세월이 만들어 가는 인생의 나이테를 지울 수 있는 건 교훈과 위안으로 가득찬 대자연 뿐이다



“봄”
태양빛은 부드럽고 바람은 감미롭다
내 심장의 박동은 뜨겁고 아직  근력은 짱짱하다.
내가 수도승인가?
이 유혹의 계절이면 더  심하게 도지는 역마살을 도심 한가운데서 어찌 주체할 수 있으랴?
하늘은 드맑고
어디든지 새처럼 떠돌 수 있는 자유가 준비되어 있다.
마누라는 막내와 진해 군항제에 가고
나는 어느 산기슭 아래서  기다리고 있을 그리움을 만나러 간다.

이 봄엔 모든 골치 아픈 일은 접어두자
이 눈부신 짧은 봄은 잠시 바람인 듯 우리 곁에 머물다
문득 되돌아 본 어느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나 가리라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어느날 “
2004년 봄은 그렇게 소리 없이 다가와 우리 곁에 서성이고
나는 남도의 들녘을 그윽한 눈으로 탐하며  조만간 달아나버릴 변덕스런 봄의 가슴을 헤적이고 있다.

화사한 봄 빛으로 물들어 가는 대지를
바라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밭고랑에 뒤집혀 있는 흙덩이들 사이로 돋아난 새싹들
먼저 푸르러 버린 연초록의 보리밭
목련은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마음껏 꽃망울을 터뜨리고
벚꽃은 화려한 날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밀려 가는 차창 밖의 들판은 형형색색의 물감을 흩어 놓은 듯
남도엔 그렇게  봄의 축제가 한창이다.

거대한 산의 화폭에 초록의 초목으로 빚어낸 청자를 만난다.
전설적인 도공들의 후예답게 번득이는 아이디어로 청자의 고장을 연상시키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눈길이 닿는 곳에는 연초록 벌판이 광활하고 들판 멀리에서는 연기가 오른다.
멀리 까지 봄을 마중하느라 몸도 마음도 분주한 요즘 주말
봄의 아지랑이가 넘실거리는 우리  들녘의 평화로운 풍광을 일주일 만에 다시 대하니 마음이 봄 속으로 먼저 떠난다.

버스는 저수지를 바라보는 만덕산 허리춤을 감고 올라 몇몇 일행을 내려 놓고
좁은 길을 어렵게 돌아내려  출발점으로 간다.


소석문
깊은 심산의 모습은 아니되 범상치 않는 산세가  바람난 가족들을 맞아주고
능선으로 올라 채는 길은 거의 직벽에 가까운 가파른 경사를 이루고 있다.
초여름을 방불케하는  뜨거운 태양이 거친 호흡과 땀을 만들고 장딴지를 뻐근하게
한다.
언제나 가슴두근 거리는 고향을 떠올리는 진달래가 벌써 꽃망울을 화사하게 피어 올렸다.
초록기 없는 황토색 가지 끝에서 피어나는 수줍은 설레임.
동봉 가는 길엔 등천하는 봄 향기 속에 기쁨이 무리떠 날리고 있다.
경사를 타고 오르며 흘끔 거리는 눈길로 바라보는  암봉과 병풍 같은 바위들은 주변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오르고 있지만 이 봄에 이만한 산세를 감안하면 아직  유명세를 덜 타고 있는 셈이다.

모처럼 젊은 무리들을 만난다.
붉게 상기된 건강한 얼굴과 알록달록한 밝은 옷들이 보기 좋다.
세태를 반영하듯 언제부터인지 거대한 배낭을 메고 힘겹게 산을 오르는 젊은이들을 보기가 어려워 지더니 이제는 수 많은 늙은 오빠와 언니들이 반도의 심산유곡을 주름잡고 있다.
이제 산에서는 40대가 영계고 30대는 계란 이란다.
그래도 컴컴한 영화관에서 마주 잡은 손끝에 말초 신경을 세우고 견영삼매경을 오가기를 더 좋아하는 젊은이들 덕에 우리 영화는 천만관객 시대를 열었다.
화창한 봄날  많은 젊은이들의 싱그러운 어울림으로 동봉은 활기에 넘쳐있다.

동봉에서 인근을 조망한다.
북쪽 만덕산에서 융기한 암릉길은 동봉 서봉을 내달아  땅끝으로 달린다.
능선이 흐르는 길 어디엔가 대둔사로  유명한 두륜산과  마황사를 품고 있는 달마산이 있다..

동쪽으로는 멀리 보리밭 너머로 평화로운 마을과 포구가 보인다.
먼 포구는 희미한 연하에 쌓인 채 눈부시게 맑은 푸른 하늘과 맞닿아 있고 초록과 황토의  부드러운 색감으로 조화로운 들판은 잘 접혀진 기다림을 간직하고 있다.
오늘은 모자도 안 가져 왔으니 봄  빛에 새카맣게 그을리 겠다.
쇼핑갈 때 마누라가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라 오라면 어쩌누?

서봉 가는 길엔 부드러운 바람결이 인다..
암릉 사이 골짜기에서는 가지를 타고 불어 오르는 바람소리가 살아 있다
벌써 산들바람이 반가운 눈부신 봄날

강원도 같은 단단한 암질은 아니지만  풍우에 벼린 바위들은  자연의 조각품인 듯
경이로운 모습이고 암릉은 힘이 넘치는 강인함으로 꿈틀거린다
해발이 낮다는 이유로 혹은 그간 넘나들었던 숱한  높은 산의 자만심으로  오랫동안 유유자적한 산행을 이어 가기엔 어려운 길이다.
암릉의 표고차가 상당한 그 힘있는 용트림
건너편 암릉길로 움직여 오르는 일행의 모습들이 부지런한 개미들처럼 가물거린다.

서봉을 지나 마주한 절벽 위에서는 다리마저 후들거리는 직벽을 마주한다..
내려와서 바라보니 풍우에 침식된 암봉의 멋진 모습과 바다가 보이는 풍광이 절경인데 그 높은 절벽 난간에서 대롱거릴 때는 오금이 저리고 간담이 서늘하다.

빈마음으로 허허롭게 떠나는 여행 길에서 언제나 소리 없이 동행하던 그 숱한  감동들 35번의 출정으로 흘러내릴 수 있는 손바닥 만한 우리 국토의 숨겨진 아름다움이 언제나 놀라울 따름이다.

우리의 인생 길처럼
거친 암봉과 가파른 절벽을 넘어 한 굽이 돌산을 지나자  봄바람에 일렁이는 억새가 가득한 부드러운 능선길이 나타난다..
가는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 지고 콧노래가 절로 난다.
동백은 바닷가에서 먼 능선 길 위에 홀로 붉은 꽃을 피우고
이름 모를 야생화는 부드러운 봄의 색감을 시새우고 있다
흡사 갈색의 초원인 듯  완만한 능선을  따라 반짝이는 금빛 억새의 물결은 봄바람에 하늘 거린다.

길은 외줄기
남도로 삼백리를  흘러내리는 능선 길
그 길 위로
구름처럼 내가 흐른다.
봄은 저렇듯 푸른 서슬로 능선을 오르고 있건만 억새는 지난 가을의 추억에서 아직 깨어나려하지 않는다.

주작산 가는 길
사방을 둘러 보아도  경쾌한 아름다움이 바람결에 날리고.
나는 마치 유희에 탐닉하듯 가벼운 발길로 봄이 오는 가을 들판을 스쳐 지난다.
남도의 봄은 가르랑거리며 헛간에서 제 짝을 유혹하는 고양이의 교태를 닮았다

오늘 같은 날은 봄 소풍날이다
눈부신 태양아래 어기적 거리며  불어 가는 바람도 목에 걸고
허공에 흩어지는 나른한 봄 향기에 코를 벌름거리고
나른한 남도의 푸른 바다와 하늘도 욕심껏 가슴에 담아보자
살아 있는 풍광을 카메라의 잔상으로 남기려는 그 어리석은 시도일 망정
훗날 남도의 봄을 반추하는 추억의 편린으로 남지 않으리…

나를 기다리는 건  출발 시간이 정해지지 않은 빈 배
나무  그늘 아래 비스듬히 누어 있을 술통 뿐
한껏 게으름을 피운들 무슨 문제 있으랴?

주작산으로 가는 능선길에는 우리가 걸었던 건너편 암릉의 흐름이 한눈에 날아든다
화사한 진달래와 초록이 움트는 나뭇가지들 아래 푸른 물을 담은 저수지가 보이고
초록의 바둑판처럼 잘 정리된 들판 옆엔 외딴집들이 보인다.

주작산
남해 바다와 하늘 사이에서  푸르름이 번져 있는 완도 상황봉이 뚜렷하게 모습을 보이고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은 그림처럼 흩어져 있다.
암봉 사이 수줍은 진달래의 미소를 바라보며 장하게 바다로 굽이치는 암릉을 따라 여유롭게 흘러내린 편안한 산행 길이었다.
내가 기꺼이 만들고자 했던  또 하루의 멋진 날은 내 인생의 책갈피에 소중한 추억으로 갈무리되었다,
이제 다음주 까지는 속절 없이 피어날 꽃들과 나 없이 깊어 갈 봄의 수심에 그렇게 안달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한잔의 막걸리에는 남도의 인정이 머물고
싱그럽게 자란 보리 밭이랑과  푸른 마늘 잎 위에도 봄이 앉아 있다. 
처음으로 덕룡,주작에 내 발자국을 남기고 돌아 오는 길
한여름처럼 뜨거웠던 봄날의 태양은 들판에 서서히 황혼을 드리우고
그렇게 오래도록 붉은 모습으로 산과 벌판을 따라 오던 태양은 마치 달인 듯 구름 위로 붉은 노을을 엷게 드리운 채 달리는 창에서 멀어져 갔다.
선잠을 오락가락하던 사이 영산포 쯤에서 어둠은 성큼 내려와 있었고 어둠이 내리는 들판과 깨어나는 도시의 불
빛을 가로질러 버스는 그렇게 집으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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