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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혼자 떠나는 여행길

 가끔은 혼자만의 여행을 떠나고 싶어집니다.
일상과 길게 늘어 있는 인연으로부터의 일탈
자유로운 바람처럼 허허롭게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승주 선암사로 가는 길 
아직 깨어나지 않은 새벽은 벌써 6시 8분을 가르키고 있고
길은 가랑비에 젖고 있습니다..
새벽 5시 20분에 일어났는데….
새벽의 대진 고속도로는 칠흑의 어둠에 쌓여 호젓하고 
이따금 질주하는 차량의  불 빛이 잠시 어둠을 스쳐갑니다.
창 틈으로 맡아보는 신선한 새벽공기와 극단의 자유는 
혼자만의 여행 길의 설레임을 자극합니다.
손에 잡히는 테이프를 틀었습니다.
박인희의 조용한 노래가 흘러나옵니다.
“끝이 없는 길”에서부터 제목을 잃어버린 서장적인 노래들 ….
오래된 노래지만 젊은 시절 혼자 여행 길에 즐겨 들었던 까맣게 잊었던 노래 
아직 박인희 목소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 테이프가 아직 남아 있다니….
흘러간 노랫가락이 그 속에 배어 있는 추억들을 되새김질 합니다.
젊음은 그 소중한 특권을 깨닫기도 전에  내 곁을 너무 빨리 지나 갔고 
세월은 벌써 이만치 와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이라고 말하는 이 순간들이 얼마나 빨리 과거의 강으로 흘러드는지…
그리고 세상에는 아직 우리가 느끼고 감동할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나이가 들어 갈수록 더 빨라지는 세월이 아쉽고 우리에게 주어진 휴일의 의미가
더욱 소중해 집니다.
동행
세상에서 제일 죽이 잘 맞는 자신만 데리고 배낭 가득 자유를 담아 떠나는 여행길
희뿌연한 안개 와 어둠의 베일을 들추고 능선의 실루엣  위로 살며시 다가온 새벽
   
가끔 차량의 불빛이 지나는 새벽의 고속 도로는 한적하고 조용합니다.
들개처럼 어둠이 내린 산하를 종횡하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나 심산의 새벽은 지친 어둠의 끝자락에서 어김 없이 희망처럼 다가왔었습니다.
그  첩첩의 산릉에 둘러쌓여 맞이하는 푸른 새벽의 신비로움은
정한수를 정수박이에 부어내는 신선함이었습니다.
어디선가  코끝을 뚫어 주던 그 새벽의 숲 냄새가 다가옵니다.
산청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했습니다.
깨끗한 휴게소 분위기가 허기를 동하게 합니다.
진주 못 미쳐 마산-순천 고속도로로 접어들자
가끔 빗줄기는 여름철 폭우를 방불케하는 격렬함으로  차창을 거세게 때립니다.
승주 나들목을 지나 선암사로 가는 길
비는 이제 가랑비로 변했고  
9시가 넘어선 길에는 지나는 사람도 차량의 이동도 없어 한적하기 
그지 없습니다.
선암사 주차장에서 시간은 9시 40분을 가르키고 있으니 
식사시간을 제외하면 대전에서 3시간 걸린 셈입니다.
고승들의 부도 밭을 지나 선암사로 오릅니다.
선암사의 명물 승선교는 보수 공사가 한창입니다.
비 뿌리는 산 
선암사 경내 둘러보기를 잠시보류하고 조계산을 오릅니다.
산허리에 피어나는 안개
그리고 인적이 없는 산길에 떠도는 경건함과 엄숙함 
계곡을 따라  오르는 산길은 비에 촉촉히 젖고
빗물에 번쩍이는 오랜 수령의 수목등걸 사이로 군데군데 고로쇠를 채취하는 
물통이 보입니다. 
억새는 어느 바람결에 누운채 일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얼음이 녹은 계곡의 물은 푸른빛을 띠고 있지만 
아직 갈색의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조계산 계곡
연산봉 가는 8부 능선 쯤에서  버들강아지가 피어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다도해 어딘가에 다가올 봄을 생각했는데 벌써 여기까지 봄바람이 불었습니다.
연산봉에서 비로소 사람을 만났으니 남도명산 조계산의 명성이 무색합니다.
하지만  인적이 없는 오솔길은 너무 호젓하고 상쾌합니다.
세우가 날리는 조계산 아침
사람들은 비 내리는 산의 운치를 모르는 듯합니다.
우중산행에서 예기치 않은 절경을 만난 기억이 의외로 많습니다,
자연의 화폭에 시시각각 그려대는 운무의 변화무쌍한 조화를 바라보며
발아래 구름을 두르고 한폭의 동양화 속을 거니는 무릉도인이 되기도 하고..
거세게 얼굴을 때리는 빗줄기 속에서 오히려 가슴 후련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마치 피학의 본능이 잠재되기라도 한 듯….
물론 고통스런 산행의 기억들도 많지만 
지나고 나면 가장 오래 기억되는 추억이 되기도 합니다.
산은 계절과  날씨를  넘어서 언제나 싫증날 수 없는 고혹의 자태로 거기 있습니다.
송광사는 다음달 마누라와 아이들과  함께할 남도 기행 코스로 남겨두고 
연산봉에서 되돌아 장군봉으로 가는 길
세찬 바람이 안개를 거칠게 휘몰고 나뭇가지는 소리내어 웁니다. 
군데군데 눈이 남아 있지만  바람결이 차갑지 않은 걸 보면 이젠 풀 죽은 
동장군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퇴각을 알리고 있습니다. 
눈이 녹아  몹시 질척거리는 가파른 언덕길을 지나자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집니다.
겨울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았던 산죽길이 산길 양편에 도열해 있는 모습은 장관입니다.
웃음이 납니다.
이 잘 가꾸어진  나 혼자를 위한 정원이 
돌무덤과  표석의 기치를 세우고 장군봉은  이젠 비가 멎은 흐린 하늘 아래 웅크리고
있습니다.
호위병이 없는 외로운 장군의 서글픔
엄숙한 모습이지만 위엄이 사라진 외로운 장군봉엔 인적도 ,풍광도, 바람도 없습니다.
자욱한 산 안개에 가리운 풍광을 아쉬워하며 다시 선암사로 하산하는 길은
가파르지만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 일사천리로 하산합니다.
해빙기의 진흙 길
봄이 오는 대지를 스쳐 지난  바지 가랭이가 장난이 아닙니다.
선암사 
도선국사가 창건한 이래 
보물 400호 승선교외에 6점의 보물 그리고 지방문화재 12점을 간직하고 있는 
유서 깊은 절
경내에 들어서자 
정갈한 고요함이 막아 섭니다
단아한 모습으로 제리에 자리잡은 건물과 수목들은  
조화롭기 그지 없습니다.
안개 흐르는 산사 
하지만 오늘은 경내만 구경할 생각입니다.
건물의 세부와 보물들 하나 하나는 훗날을 위해 남겨두어야 합니다.
그 유명한 해우소 까지 ….
이젠 제법 사람들이 사진을 찍으며  경내를 오가고 
가끔 스님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절을 올리려 배낭을 내려놓다가  
도저히 진흙 범벅으로 대웅전에 들어가기가 미안해
경내만 여기저기 돌아보고 산사의 추억 몇 점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주차장으로 돌아오니 오후 2시가 넘어 섭니다.
계곡으로 조계산을 올라 능선을 따라 연산봉과 장군봉을 아우르고 하산하여
선암사 경내를 둘러보는데 5시간 정도가 걸린 셈입니다.  
마치 백두대간 구간을 마무리 한 것처럼 화장실에서 머리를 감고
대충 몸을 닦고 옷을 갈아 입었습니다.
이젠 친구들을 만나러 가야 합니다.
다시 고속도로로 들어서서 주암을 지나 옥과 나들목 까지…
화순온천 가는 길은 옥과나들목 우측으로 11km 정도 진행하다 우측 길로
개울을 따라 올라갑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방도
아직 봄을 알아 차리지 못한 갈색의 대지는 내리는 비를 고스란히 받아내며
달리는 차창 밖으로 천천히 밀려 갑니다.
땀을 흘리고 잠시 경건한 산사의 바람에 숙연해진 채
비에 젖는 들녘의 풍광을  따뜻한 차 안에서 바라보는 
이 한가로운 여유가 편안한 상념을 몰고 옵니다..
다시 일년 만에 친구들과의 해후입니다.
때론 변화하는 세상에 고뇌해야 하는 답답함과 힘겨움이 어깨를 무겁게 하지만  
언제나 반갑고 활기찬 그들의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아직 세상에는 
가슴을  따뜻하게 하는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위안과 교훈으로 가득찬 대자연 
내 가슴크기 만큼 더 행복할  가족들 
사라지고 떠나간 것들에 대한 아쉬운 추억 
아직 가지 않은 많은 나라의  꿈
홀연히 떠나는 여행 길에서 문득 만날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
친구 그리고 한잔의 술
반가운 분위기 속에서
옛날 보다 더 좋아진 체력과  몸에 좋다는 염소 고기의 안주 발을 등에 걸고 
지난 날의 추억을 진하게 태운 술잔은 하염없이 돌고 
낯설은  이향의 밤은 그렇게 깊어 갔습니다...
7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아직 잠에 빠져 있는 친구들을 남기고  온천으로 갑니다...
지난밤에 마신 술을 생각하면  생각보다 머리가 개운하고 몸이 가뿐한 편입니다..
하여간  어느 지역에서건 등반 후 시간만 허락되면 온천을 찾는
온천메니아인 내겐  더할 나위 없는 아침인 셈입니다.
콘도 식당에서 된장 꽃게탕으로 아침을 마치고
오후까지 머무를 친구들에게  인사를 남긴 채
다시 아침 여행길에 오릅니다.
아침 8시
비가 오는 호남고속도로 물보라를 날리며 질주합니다...
대전을 기점으로 반원으로 한바퀴 돌아 버리는데  한나절 이면  충분한
손 바닥 만한 우리의 국토가 서글프지만 
훌쩍 떠나면 만날 수 있는 눈부신 아름다움과 추억으로 가득한 우리의 산하들
입니다.
봄을 재촉하는 비가 지나면  봄을 맞이하러 가는 발걸음이 더 바빠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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