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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통영기행

 

2006년 4월 28일~29일

 

 

IT란 배

겉은 번지르르 한데 별로 실속이 없는 배

 

오랫동안 같은 배를 탔던 친구들이 통영에 가자고 했다..

요즘 신나는 일도 별루 없고 기분도 꿀꿀한데

회 한번 실컷 먹고 술 한번 진하게 치잔다.

좋지

내 생활 십게명 중 하나

모임의 대형이벤트는 절대 빠지지 마라…”

그날은 회비 본전 찾는 날이다.

이런 날이 얼마나 되랴?

장마다 꼴뚜기 일수는 없다.

 

 

금요일 밤 7명이 저녁 7시에 떠나

금산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간단히 식사를 하고

어둠이 깔린 대진고속도로를 질주해서 통영엘 갔다.

고속도로가 개통되어 가까워 지긴 했어도

그래도 먼 길

콘도에 여장을 풀고 바다가 보이는 어항으로 가니 벌써 11시가 다 되어가고

제일 화려한 횟집은 벌써 셧터를 내렸다.

 

허름한 선술집 같은 횟집에 앉았다.

마지막 손님이 떠나는 시간이 문닫는 시간인 포장마차 같은 술집

비릿한 냄새

퀴퀴한 냄새

지저분한 식당이지만

그래도 떠나서 이렇게 자리를 마주하니 좋긴 좋다.

눙치는걸 받아주는 아줌마도 있고

술잔 위에 살아가는 이런저런 얘기가 뜬다.

정치인은 입안에서 회처럼 씹히고

미래의 한국경제는 모래성처럼 아작나고

연예인들은 합석하지 않고도 술발을 돋구고.

별의별 얘기가 술잔과 함께 빙빙도는 바닷가 술집

바다도 보이지 않는 술집에서

다만 바다가 옆에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들떠서

남자들도 수다스러워 지는

늦게 까지 마시고 놀다가 그렇게 보내버린 통영의 밤

몇몇은 콘도에 돌아와 맥주를 더 마시고 6시가 넘어서도 골아 떨어졌는데

나는 피곤한 채로도 자연스레 눈이 떠져버린다.

그 놈의 습관이 뭔지

3시간쯤 자고 나서 바라본 바다는

콘도에서 창 밖으로 보이는 바다는

흐린 하늘에 눌려 푸른 빛을 잃고 잔뜩 찌푸려 있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갈 수 없어

혼자 차에 시동을 걸고 미륵산엘 가는데

비가 장하게 내리기 시작한다.

후두둑 거리는 빗소리는

피곤한데 다음에 가여.

피곤한데 다음에 가여하며   청승맞은 타령을 하고.

차는 비가 내리는 유람선 선착장에서 앵앵거리고 운다.

 

 

 

 

 

 

 

 

느지감치 아침을 먹으려 나오니 그래도 비는 멎었다.

통영에 왔으니 굴 해장국으로 불편한 속을 달래고

병든 닭처럼 맥아리 없는 모습으로 한산도에 간다.

통영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만 득실거리고

우리는 굉장히 나이 어린(?) 관광객

할아버지와 할머니 틈에 끼어 한산도로 간다.

내배는 살 같이 푸른 바다를 지나고

돌 거북선을 지나고

비석이 세워진 섬도 뒤로 밀어내고.

왜놈들 물귀신이 아직 떠돌고 있을 바다를 지나 한산도로 간다.

 

 

 

호수 같은 바다를 따라 걷는다.

내가 대청 호수길을 걷고 있는 건지

바닷가를 걷는 건지

동백 꽃 잎은 떨어지고

나무는 벌써 연초록 봄옷을 갈아 입었다.

 

 

수루에 올라 비스듬히 누워 잠시 조름에 잠긴다.

장군님은 여기서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며 깊은 시름에 잠겼는데

뽕 맞은 것 같은 거슴츠레 한 눈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장군님 죽여주시옵소서…”

 

 

그런데 달 빛이 교교히 흐르는 날에 이 수루에 오르면

보초고 나발이고

그 처절한 비장미에 넋을 잃고 꼬불쳐둔 술 한잔 치지 않을 수 있으랴?

 

 

제승당에 들렸다

장군님께 대하여 묵념

장군님 기체후 일양만강 하오나이까?

도떼기 시장처럼 시끄러운 나라를 보살펴 주시고

철 없는 정치인들 혼좀내주시고

불쌍한 서민들 굽어살피소서

 

 

 

 

 

비가 오락 가락하는 통영 해안을 일주하고

경치 좋은 곳에 내려 사진도 찍구

이제 떠나야할 아쉬운 바다도 한번 더 바라 보구

그리고 우리는 가을의 대형 이벤트를 이야기하며

즐겁게 귀로에 오른다.

 

닭장

변강쇠 이소장 혼자 닭장 렌트카 오구 가구 다 몰구

나머지 모두 싸이나 먹은 닭처럼 비실거리며 졸다가

진주에서 점심먹고 가자 하는 소리에 눈을 부시시 뜬 채

도계장에 끌려가는 닭처럼 비실거리며 남강으로 간다.

원기보충을 위해 장어를 먹자나?

좋지요.

 

웬 아줌마가  쫓아나오는데

나는 이소장이 아는 아줌마인 줄 알았는데

자기네 식당으로 오면 전망 좋은 방에

공기밥이 꽁짜

음료수가 꽁짜

밥비벼 주는 것도 꽁짜란다.

 

한국사람 심리학적으로 땡기면 더 튀기는 걸 왜모르시나

아줌마가 인물도 그만하면 괜찮은데

너무 땡기는게 싫어서

그여 딴 집으로 가버리는 매몰찬 사람들

남강이 더 잘 보이는 집에 가서 아까 그 아줌마 말 한대로 죄 얘기한 다음

똑 같이 안 해주면 딴집에 갈끼라구 협박해서

공짜 쓸개주로 해장하고

공짜 음료수마시고

공짜 공기밥에

장어로 몸 보신하는 우리

오늘 참석 못한 회원들에게 미안혀서 어쪄.

 

 

 

장어를 먹으니 진짜 힘이 나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진주성에 올라 지난 역사의 향기를 맡는다.

 

 

 

촉석루에서 내려간 의암

열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적장을 안고 투신한 의기 논개가 꽃처럼 몸을 날린 곳

세월에 닳은  의암사적비는 이렇게 말한다. 

“유독 가파른 그 바위에 그녀 홀로 우뚝 서 있도다. 그녀가 그 바위 아니었다면 어찌 죽을 곳을 얻었겠으며 바위인들 이 여인이 아니었다면 어찌 의롭단 소리를 듣겠는가? 이 남강가의 높다란 바위에는 만고의 꽃다운 마음이 서려 있도다”

늘 푸른 논개의 의기와 충절이 마음을 적시고

푸른 남강은 유유히 흐른다.

 

 

촉석루에 올랐다.

요즘 아파트 보다 더 친환경적이고 더 낭만적인 초대형 정자

촉석루에는 더불어 어울림이 있고

남강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한잠 자고 가면 딱 좋은데

 

 

 

김시민 장군 동상 위쪽도 돌아보아야 하는데

친구들은 벌써 닭장행을 서두른다.

 

 

모이 한번 먹고 물 한 모금 마시며 남강바람을 쐬고 난 닭들은

맑은 정신으로 다시 닭장에 들어가고 5분도 채 안되어

닭장은 다시 쥐죽은 듯 고요한 채

이소장 혼자 눈을 부릅뜨고 눈썹을 휘날리며 대전으로 가더라

 

통영기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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