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
2004년 4월 4일 ~ 5일
낙안읍성- 송광사 – 상주해수욕장 1박 – 남해 금산(보리암)
봄이면 그 색감과 향기에 취해 항상 몽롱하다.
봄이오는 길목의 조계산 선암사
사량도에서 그림 같은 바다와 고운 물길 위로 그리움처럼 올라
섬진강변의 매화와 지리산 기슭의 산수유로 터지던 봄
그리고 덕룡 주작의 능선을 불어 연초록의 보리밭을 일렁이던 남도의 봄바람
언제나 나만이 신나는 봄날 이었다.
오늘은 모처럼 가족 여행날이다.
그 동안의 미안함을 화사한 봄 빛을 빌어 무마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봄이면 으례껏 한 번씩 가족들과 훌쩍 떠나곤 했는데 우리가 만들었던 그 눈부신 봄날의 추억으로 모두들에게 기대와 기다림이 함께하는 연례 행사가 되어 버렸다.
재작년에는 거제도에서 붉은 일출과 함께 봄을 맞았고
작년에는 보길도에서 서성이던 봄을 만났다.
아직 아빠와 함께하는 여행길이라면 기꺼이 동행하고 싶어하는 올해 고등학생이 된 딸
항상 여행 길의 가장 멋진 동반자로 추켜주는 마누라 그리고 그저 가족들 모두 어디로 떠난다는 사실이 좋기만 한 막내 까지
모처럼 신나는 애마는 온 가족을 태우고 그렇게 들뜬 새벽을 가르고 있다.
첫번 째 목적지 :쌍계사
대진고속도로
올해 벌써 몇 번을 오가는지 헤아릴 수 없다.
새벽 길을 달려 여명의 강을 지난다.
거기 코를 뻥 뚫어 내는 신선함으로 깨어나는 아침과 눈부신 붉은 태양의 솟구침이 있다.
가족들과의 함께하는 여행길 위로 휴식 같은 편안함이 함께 가는 길을 따라
함양에서 대진 고속도로를 벗어나 88고속도로로 접어든다.
이쪽으로부터 88고속도로로 타고 가는 것은 처음이다.
이걸 고속도로라 해야 하나?
1차선에 길이 덜덜 거리긴 해도 차량 통행이 별로 없으니 그 호젓함이 너무 좋다.
뒷좌석 과의 사이에 쿠션을 채우고 그 위에 이불을 깔아 아이들은 잠들어 있다.
붉은 아침 햇살이 들판에 부서지고
꽃들은 화사함으로 피어나고 있다.
조용히 가라 앉은 침잠과 오랜만에 마누라와 소근거리듯 나누는 편안한 대화
행복은 10년이 다 되어 가는 나의 고물카를 가득 채우고 있다.
구비구비 섬진강 푸른 물길에 산란되는 눈부신 태양을 바라보며
벚 꽃이 만개한 강안도로를 따라 하동으로 가는 길
바람에 날리는 우아한 꽃 비 속에 감미로운 봄날의 추억이 섬진강을 따라 흐른다.
오래 전 그 때의 쌍계사 10리 벚 꽃 길은 장관이었다.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의 긴 기다림 후에 벚 꽃 길 초입에 어렵게 차를 세우고 10리를 이어지는 그 화려한 꽃 그늘 아래를 거닐며 쌍계사로 갔다.
빙어 튀김과 도토리 묵을 먹었었나?
이래저래 처음 쌍계사 구경하고 꼬박 20리 길을 걸어 돌아 오다가 꽃놀이도 좋지만 너무 고생하는 아이들과 마누라가 안쓰러워 내려가는 차에 잡아 태워 주고 나만 걸어 내렸었다.
그 때만 해도 빛나는 젊음과 패기가 함께 했던 시간 이었는데…
사실 내 스스로 생각이긴 해도 지금도 별로 변한 것이라곤 없다.
오히려 자연에 좀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집착이 강해지고 조금은 더 관조적으로 삶을 대하는 여유가 생기지 않았을까?
세상 속에서 만난 깨달음의 이치와 사려 그리고 더 깊어진 연륜으로 세상을 살아 가는 신중함이 이젠 내적인 성찰과 성숙을 이야기 한다.
구례를 지나 실컷 자고 난 아이들이 깨어 났다.
아직 식전이라 배 고픈 김에 떡이며 칠레산 포도며 딸기 까지 닥치는 대로 먹었다
땡기는 김에 버터 구이 오징어 까지
여행의 즐거움은 눈 귀 코 뿐만 아니라 입안 까지 가득 차 오른다.
아이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쌍계사 입구 7km 전방에서 갑작스런 차량 정체를 만난다.
아침 9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인데도 6년 전 그날처럼 쌍계사 가는 길은 어김 없이 힘겨운 순례의 길이 되고 있었다.
이 화창한 봄날 아침마저 아무 생각 없이 차량정체를 묵묵히 인내하는 사람들
그 기다림에 익숙한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미련 없이 길 한가운데서
차를 되돌린다.
이 좋은 봄날의 소중한 시간을 길 위에 쏟을 이유는 없다.
돌아볼 이 봄의 눈부신 아름다움은 도처에 널려 있다.
낙안읍성 가는길
구례로 되 돌아 나와서 순천으로 연결되는 고속국도에 오른다.
시원한 도로 위에서 자유로움과 해방감을 만끽하며 잠시 달리다 아이들 소변을 위해
국도변 아름다운 풍광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기로 하고 현재의 위치와 목적지를 지도상에서 찬찬히 살펴 본다..
낙안읍성 쪽은 지나온 승주 방향으로 분기되는 지방도로로서 접근하는 것이 더 가까운 길로 보여 회군 하기로 했다.
현란한 색조의 꽃들이 만발해 있는 휴게소는 아침부터 요란한 뽕짝을 틀어 국도변의 낭만적인 서정과 무드를 여지 없이 깨뜨리고 있다.
막내가 멀미가 난다 하더니 선암사 못미처에서 예비동작도 없이 차 안에서 토하기 시작한다.
꾸불꾸불 이어진 길에서 상당히 뱃속이 불편했던 모양이다.
잠시 길가에 휴식하며 칠레산 포도들이 위산과 발효된 보라 빛의 시큼한 토사물을 닦아낸다.
그나마 식전이라 다행이다.
선암사에서 낙안읍성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하염없이 차를 몰아도 나타날 기미가 없다.
참을 겨를도 없이 차 안에다 토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다소 떨쳐버리고 또 뒤집어진 속이 조금 진정되어 안도 하던 막내가 다시 불편 해지는 속이 또 걱정 되는 모양이다.
잠시 길 옆에 주차한다.
막내 손을 잡고 좌측 벚 꽃이 만개한 오솔길을 따라 절에 오른다.
처음에 작은 절인 줄 알았는데 일주문도 있고 경내는 넓은 마당에는 탑들도 안치 되어 있다.
밝은 햇살을 조용히 받아 내는 정갈한 고요가 머무는 경내
이름 모를 꽃들과 새싹들이 새삼 봄을 느끼게 하는 싱그러운 산사의 아침이다.
마누라와 은비는 그사이 돋아난 쑥을 뜯고 있다.
이향의 봄 길에 머무는 작은 평화와 여유
길은 구절양정 구비쳐 산으로 오르고 멀리 넓은 남도의 들판이 보인다
저 아래 어딘가에 낙안읍성이 있는 모양이다.
“아빠 오늘 내가 왜이러지?”
어이 없이 또 도지는 멀미가 원망스러운 듯 막내가 다시 멀미를 호소하고 잠시 시원한 바람결에 한번 더 휴식한 다음 우리는 낙안읍성으로 입성했다.
갑작스럽게 마주한 평지와 붐비는 인파
무수한 차량의 주차와 흡사 시장판 같이 낙안읍성은 술렁거리고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이제 겨우 안도의 숨을 내쉬는 가족들과 식사할 곳을 찾아 전주식당으로 들어갔다.
식사를 마치면 항상 후회가 남아도 유원지에서는 ‘전주’ 자가 붙어 있는 식당으로 눈길이 먼저 간다.
그런 심리를 이용하는 건지 어디 가나 전주 집은 많기도 하다.
하필 염소탕 전문집이라 먹을 만한게 김치찌개와 추어탕밖에 없다.
은비는 추어탕 그리고 우리 셋은 김치찌개 2인분에 파전하나
애초 유원지 식당에서 맛에 대한 기대를 접는 것이 습관이 된 터라 식사는 그런대로 만족할 만 했다.
조선시대 왜구들을 막기위해 평지의 읍을 둘러싼 성으로 원래의 토성을 석축으로 바꾸어 쌓고 또 수 많은 복원을 거쳤지만 사적 제 302호로 현존하는 읍성들 중 가장 잘 보존된 것이라 한다
낙안읍성
정겨운 모습으로 잘 정돈된 초가집들이 반기고 마을 어귀에는 장승이 섰다
마치 고향 집에 온 것처럼 푸근함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마을은 화창한 날씨에
수 많은 상춘객을 맞아 잔칫집처럼 술렁거리고 있다
일개 읍을 휘돌아 성곽을 쌓았으니 왜구의 창궐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생명과 재산을 보존하기 위한 저런 수고를 아끼지 않았을까?
마을 입구의 야생화 식물원에서 도처에 자생하는 할미꽃 군락을 만났다.
할미꽃은 언제나 내 어릴 적 고향을 기억케한다.
봄은 노란 산수유의 꽃망울로 터져 다압 마을의 매화로 피어올라 만산에 수줍은 연분홍 미소로 그렇게 소리 없이 다가온다.
고향의 동산엔 진달래가 흐드러지고 푸른 하늘을 물 빛 가득 담아내는 저수지엔 창포가 초록 잎을 올리고 물방개가 활개를 친다.
그 봄 고향의 언덕 위엔 어김 없이 할미 꽃이 핀다.
따사로운 태양 빛 아래서 화사한 야생화들이 수수한 아름다움을 시새운다.
대장간도 있고
선물가게도 있고
주막에는 왁자지껄 술 치는 소리 ,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는 하늘로 오른다.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옛날의 모습이 보존되는 낙안읍성은 어른들의 지난 시절 향수를 자극하고 아이들의 호기심을 한껏 부추킨다.
낙안읍성의 유래를 설명하는 전시실이며 그대로 복원된 동헌의 모습 그리고 곤장을 맞는
장면을 구성한 인형들은 우리 지난 역사의 일 부분을 교육적으로 재현하여 아이들에게 많은 인상을 주었다.
어느 초가집 툇마루에서 마누라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아이들은 토끼에게 풀을 뜯어다 주는 재미에 빠져 있다.
장독대 위에 자목련은 굵은 꽃망울을 터뜨리려 하고 개나리는 담장에 기대어 활짝 웃고 있다.
마당엔 초록의 새순이 돋아 있는 여유로운 남도 여행 길의 오후
(송광사
가는길)
송광사는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다.
2월 남도 순례 여행 길에 선암사를 들르던 길에도 함께할 의미를 위해 남겨 놓았던 곳
송광사 가는 길엔 온통 벚 꽃이고 지천에 봄 꽃들이 화사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그저 차안에서 바라보는 봄 풍경 만으로도 봄은 이미 가슴 속에 가득 들어와 있다.
합천 해인사 , 양산 통도사와 더불어 우리나라의 3대 사찰로 유명한 송광사 입구 도로에서 절 까지 이어지는 길은 만개한 벚 꽃의 물결이 장관이다.
쌍계사 벚꽃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수령이 오랜 벚나무들이 피워내는 무심의 흰 꽃은 푸른 하늘을 구름처럼 막아서고 바람은 하늘로 꽃 잎을 날린다.
길 양 쪽 벚나무 아래는 틈인 있는 곳마다 차량이 주차해 있고 공간이 있는 자리엔 어김 없이 사람들이 자리를 깔고 앉아 있다.
사찰로 들어서는 차들이 많아 여기도 상당한 정체에 시달리고 있는데 벚 꽃을 따라 상춘 인파가 몰리는 봄 철이라 그런 모양이다.
입구를 얼마 남기지 않은 곳에서 도로변에 차가 한대 빠지는 틈을 이용해 순식간에 주차를 하고 천천히 꽃 그늘을 걸어 절로 간다
송광사
3대 사찰에 대한 너무 큰 기대가 오히려 실망스러움으로 다가왔다.
호객하는 식당들
무수한 차량의 행렬
먼지가 풀풀 나는 길 위로 보수 공사가 한창인 경내
동화사나 금산사의 웅장한 규모의 절을 상상했던 탓에 긴 숲 길 끝에 나타난 송광사는
그저 평범한 모습의 절에 지나지 않았다
선암사와 같은 산사의 고즈녘함과 고요함은 여지 없이 깨어지고 속세의 번잡함이 너무 깊숙히 들어와 앉아 있다.
3대 사찰의 명성은 규모의 명성은 아니었다.
우리가 항상 대하듯 전통과 역사는 항상 장대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남겨지는 것은 아니다.
불가에서 이야기하는 참으로 귀하고 값진 삼보(삼보)는 부처님(불) , 가르침(법) , 승려 (승) 이다.
불교인의 신앙은 바로 이 세가지 보배를 값지고 귀한 것으로 알고 그에 귀의하여 가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 삼보사찰(삼보사찰)이 바로 양산의 통도사 , 합천 해인사 , 순천 송광사이다.
통도사에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기 때문에 불보사찰(불보사찰) , 해인사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인 팔만대장경 경전이 모셔져 있기 때문에 범보사찰 그리고 송광사는 한국 불교의 승맥을 잇고 있기 때문에 승보사찰 이라고 했다.
지금으로부터 800여년 전 고려 때 보조국사 지눌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통해 당시 타락한 고려 불교를 바로 잡아 한국 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 시켰던 근본도량이 바로 이 송광사가 아닌가?
한국 불교 전통의 산실이고 전통을 잊는 중요한 사찰을 의미를 새기며 경내를 돌아보고 아이들과 대웅전에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다.
남해
이젠 남해로 간다
성큼 자란 초록의 보리가 일렁이는 푸른 바닷가
다도해의 추억과 낭만이 안개사이로 아련히 흐르는 곳
남해대교를 건너며 바라보는 푸른 바다가 펄떡 거리며 가슴으로 뛰어든다.
모두들 환호를 지른다
내륙의 여기저기를 빠대고 다니느라 제법 여독이 쌓인 터에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비릿한 갯내음을 맡으니 마누라나 아이들이나 다시 원기가 솟아 나는 모양이다.
유난히 푸른 빛의 남해바다.
오랜만에 다시 가족과 함께 해안도로를 따라 흐르는 길이 감회가 새롭다.
오래 전 남해에서는 두 번 놀랬었다.
푸른 새벽 안개 사이로 꿈처럼 다가오던 몽환적인 다도해의 풍광과
조각품 전시장 인 듯 멋진 암봉들이 신록과 너무도 잘 어울리던 아름다운 금산
푸른 바닷가에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유채꽃이 여기저기 한창이다.
살랑거리는 바닷바람에 흔들리는 노란 유채 꽃은 푸른 바다와 환상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있나?
모두 내려서 바다와 유채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려다 보니
여기저기 사진발을 의식한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조금 있으려니
웬 아주머니가 슬며시 다가오더니
인 당 1000원 씩이라고 했다.
아뿔사 제주도의 상혼이 청정한 남해바다 까지 오염 시키고 있다
손바닥 만한 유채 꽃밭 입장료가 비싸기는 해도 푸른 빛 바다와 화사한 노란 빛으로 어우러지는 절경을 그냥 스쳐 지나긴 아깝다
어쨌든 기분 좋게 가족사진 몇 방을 찍고 상주 해수욕장으로 간다.
한 켠에 바다를 표구한 채 해안선을 따라 가는 그림 같은 해변도로 위로 조용이 어둠이 스멀거리며 다가오고 있다
여관을 잡기가 쉽지 않다
해수욕장 뒷편의 깨끗했던 기억의 상주 모텔로 갔는데 초저녁에 벌써 방이 다 나가 버렸단다.
제대로된 정보가 없어진 셈이니 발로 뛰어야제
마누라와 은비는 해수욕장 해변으로 보내고 막내 손을 잡고 잠잘 곳을 수소문 한다
슈퍼 아줌마와 쌀 집 아줌마에 물어물어 그나마 괜찮은 숙소를 잡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는 길에 해변가에 횟집과 함께 있던 몇몇 모텔들을 알아볼 걸 그랬다
마누라와 아이들은 잔을 쳐주고
나는 먼 남해의 하늘아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멀리서 바다가 철썩이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 가족이란 그렇게 푸근한거다.
내가 열심히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고…
언제나 마누라가 고마울 뿐이다.
역마살이 업처럼 붙어 다니는 남편의 세계를 이만치 잘 이해해 주고
걱정 없이 살림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주고 있다.
“고맙다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
파도 소리에 실리는 작은 소리로라도 할 수 있으련 만
불콰한 술기운 조차 항상 넘어서지 못하는 간지러움과 어색함
그 숱한 세월을 서로가 닮아 가면서
그저 구수한 된장 같은 남편의 사랑을 마누라는 알고 있으리라
두런두런 이야기 따라 술 한 병이 금새 나동그래 지고
파도소리 따라 취흥은 도도해 지는데
폭죽 터지는 해변을 걸어 멀리 불 빛이 보이는 부둣가 까지 갔다 와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잠든다.
보리암 일출
새벽 다섯시에 기상을 외친다..
여독으로 비몽사몽을 쉽사리 떨쳐낼 수 없는 혼미한 가족들을 재촉해서 행장을 꾸리고 세수를 시킨 다음 보리암으로 간다.
몇 년 전 직원들과 함께하던 여행길에선 도로 주차장에서부터 보리암을 올랐는데 한시간 가량 소요 되었었다
도로를 따라 가면 30분이면 충분히 가능하리라 생각했는데 상주해수욕장에서 보리암 까지는 한시간 이상 소요되었다
분기되는 도로까지도 상당히 멀었고 비포장 산길로 차를 운전해서 올라가는 길은 진짜 장난이 아니다.
오죽하면 셔틀버스가 운행될까?
차라리 등산로로 걸어올라 가는 편이 낫겠다.
보리암에 주차할 장소가 없어 집사람과 아이들은 먼저 올려 보내고 도로 한참 아래로 내려가 차를 파킹하고 산을 오르니 붉은 빛 태양은 이미 앞산 봉우리에서 고개를 내민다.
바다에서 떠오른 시간은 벌써 한참 전이겠지
아쉽지만 가족과 함께 하리라 기대했던 붉은 여명의 축복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다만 푸른 새벽에 기대어 깨어나는 새벽바다의 시린 모습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보리암엔 또 시멘트를 덕지덕지 발라 대고 있다.
아무 것도 자연 그대로 남겨둘 수 없는 불쌍한 인간들…
아이들과 보리암 불상 앞에서 삼배를 드렸다
“항상 작은 것에 기뻐할 줄 알고 자연과 더불어 건강하고 즐거운 인생을 살아 갈 수 있도록 굽어 살피소서”
부처님이 굽어보는 바다는 평화로웠고 조용히 묵상하는 섬들은 그림 같은 아름다움으로 다가왔다
금산
가득한 기암과 수석의 전시장
보리암에서는 산책로 같은 길을 따라 한 시간이면 유명한 조망처를 모두 둘러 볼 수 있다
계곡사이 집을 짓고 식당을 만든 곳에서는 속세의 퀴퀴한 냄새가 바람 길에 묻어 온다
이 절경의 절벽사이에 콘크리트를 발라서 저 어울리지 않는 식당을 만들고 장사를 할 생각을 누가 했고 누구에게 이 아름다운 곳에 저런 걸 허락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져 있는 걸까?
등산로 한켠에 누군가 푸른 배추를 갈아 놓았다.
비옥한 검은 땅과 연초록 배추의 어울림 위로 붉은 아침햇살이 쏟아지고 있다.
억새풀 사이에 진달래가 한창이고 뒤 엉켜 있는 바위를 타고 오르자 금새 바다가 떠오른다
쪽 빛 바다와 어우러지는 걸출한 암봉들의 조화로운 모습에 마누라와 은비는 탄성을 올린다.
탐미주의자의 시각으로 한편의 서정시를 읽어 내리 듯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오는 큰 바위에 올라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본다.
그래 은비야 오늘은 남해의 하늘과 바다를 우리 가슴에 가득 채워 가자.
학교 생활이 답답하면 이 드맑은 바다와 하늘을 기억하고 앞으로 네가 만날 수 있는 숱한 좋은 날들과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 보자
양가 규수를 짝사랑하던 머슴의 슬픈 전설이 깃든 상사암도 그대로이다
그 장대한 절벽은 고독하고 쓸쓸한 모습으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고
사람들은 사랑의 소원이 이루어 진다는 이 바위 위에서 바다처럼 넓고도 깊은 사랑을 빌기 위해 기꺼이 상사암에 오른다.
가슴 깨는 아픔을 간직한 바위와 묵묵한 바다는 이룰 수 없는 사랑처럼 그렇게 다가갈 수 없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하염없이 바라만 보고 있다
일망무제의 시린 바다의 풍광을 굽어보며 우리는 상사암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가족의 따뜻함과 사랑이 언제까지나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길 바라면서…”
미조항
미조항 가는 길은 수려한 다도해가 가까이서 눈에 들어오는 아름다운 해변도로다.
그 땐 푸른 새벽안개에 쌓여 있는 길을 따라 혼자 해변을 드라이브 했었는데 몽환적인 해변의 풍광이 가져다 주었던 전율과 감동을 기억하고 있다.
안개와 새벽의 신비가 걷힌 해안의 차분한 모습은 그 때 마치 무엇에 홀린 듯한 세찬 감정의 격랑을 겸연쩍게 잠재우고 있지만 눈부신 태양 빛을 받으며 반짝거리는 바다와 크고 작은 섬들이 여전히 여행을 즐거움으로 들뜨게 한다.
미조항에서 작은 횟집에 들러 매운탕으로 아침식사를 한다.
이른 아침의 등산과 여행이 돋구어 버린 미각으로 아침상을 대하니 모두들 싱싱한 해물탕에 공기밥을 한 그릇씩 후딱 비웠고 나는 밥을 한 그릇을 더 먹고야 허기를 잠재울 수 있었다
삼천포
삼천포와 남해를 연결해 주는 삼천포대교를 건너 뭍으로 가고자 했다.
한 시간쯤 걸린다는 아줌마의 말을 듣고 천천히 차를 몰면서 경개가 좋은 곳에서는 잠시 차를 멈추고 풍광을 즐기며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빛나는 해안도로를 따라 여유롭게 바다를 따라 갔다.
언제나 섬과 바다는 잊혀진 아련한 그리움을 떠올리고
바다 바람에 실려오는 비릿한 냄새는 잠시 일상의 번잡을 잊게 해준다.
여행은 깨달음과 사랑을 가져다 준다.
낯선 것들, 아름다운 자연 , 그리고 일상에서 느끼지 못한 소중함, 그리고 가족들 까지….
마치 절벽위로 해안도로가 나있는 듯 아래 쪽 바다를 굽어 보는 어느 곳 이나 멋진 조망처로 손색이 없다.
해안가 풍치가 좋은 곳에는 벌써 찻집이나 펜션들이 많이 들어서 있었고 새로 연결되었다던 삼천포대교는 그 육중한 철골을 자랑하며 삼천포쪽으로 엎드려 있다.
에필로그
삼천포의 아름다운 풍치 해안을 따라 대진고속도로에 올라 이틀의 즐거웠던 가족여행은 조용히 마무리 되었다.
우린 좀더 너그러워지고 더 따뜻해진 채로 그렇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열심히 넘겨가고 있는 삶이란 책 속에 여백처럼 끼워 있는 여행이란 그림이 우리에게 다시 더 큰 의욕으로 일상을 마주할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 주고 삶의 의미와 가족간의 신뢰를 일깨워 준다고 믿는다.
저 아름다움을 돌아보는 경건한 눈으로 , 수 많은 감동을 간직한 추억으로 또 언제든지 훌훌 떠날 수 있는 의욕과 건강함으로 내 사랑하는 사람들과 언제나 즐거움과 희망이 넘쳐 나는 멋진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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