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올 거라던 일기예보 예상은 또 빗나갔다. 그래서 청계님도 참석을 했구…. 백두대간에서 줄기차게 내리던 그 비는 다 어디로 가고… 이제 호남정맥 하면서 비 한 번 맞아봤으면 좋겠다. 어제 저녁과 오늘 아침에 대차게 설사를 했다. 어버이날 행사를 땡겨서 하는 바람에 객지에 흩어져 있는 형제들이 모처럼 모였고 분위기에 휩쓸려 술과 회를 너무 많이 먹었나 보다. 백두대간 종주 할 때는 몸 관리를 철저히 했는데 호남정맥에 임하는 태도는 불성실하기 그지 없다. 이라다 큰 코 한번 다칠 날 있지 술 먹고 3시간 자고 일어나려니 만사가 귀찮긴 한데 애써 정신을 차리고 마눌이 싸준 도시락과 간식만 챙겨서 서둘러 출발 이동하는 차 안에서 정읍휴게소 까지는 완죤 인사 불성이다. 더 자고는 싶은데 공복출정은 곧 초 죽음 임을 알기에 휴게소에서 해장국 한 그릇 비운다. 그래도 허기가 느껴져서 맛있게 먹었는데 뱃속이 또 꾸르륵 거린다. 승차 전 다시 설사. 어제 고스톱 치면서 설사 깨나 해 대더니 오늘도 멈출 기미가 없다. 휴지는 넉넉히 준비해 왔지만 걱정스러워지기만 하는 오늘.
호남정맥 제 9구간
산행지 : 호남정맥 제 9구간(과치재-만덕산-노가리재-유둔재) 일 자 : 2006년 5월 7일 (일요일) 날 씨 : 흐리다가 햇빛 쨍쨍 무더운날 산행거리 : 23km 산행시간 : 약 9시간 34분 동 행: 나선생님,산꼭대기,새벽안개,담헌,양반곰, GOODMAN,백운봉,계백장군, 이창근님,김찬기님, 청계 , 백종수님
,신샘(14명) 호남정맥
제9구간 경유지별 시간
과치재
출발 :
08:50 묘터
:
09:46~09:56 연산
: 10:05
무덤봉 무덤
: 10:07 만덕산,무등산 조망처 방아재
: 10:17~
0:20 이천서씨묘 :
10:13 안부임도 :
10:38 만덕산전헬기장터 : 11:06 만덕산
:
11:08~11:20 잘가꿔진 묘
:
11:23 신선바위 :
11:29 운암리안부 :
11:35 임도
: 11:47 안부임도 :
11:58 호남정맥중간지점 : 12:05 임도
:
12:12 수양산분기봉 :
12:21 수양산
:
12:29 선돌마을고개 : 12:49 ~13:17
국수봉
가는길 임도 :
13:37 국수봉
철탑 :
13:48 안동장씨가족묘 : 13:55
흑염소목장
철망문 : 14:07 활공장터봉 : 14:59
5분간 휴식
활공장(헬기장) :
15:10 노가리재 :
15:13 고압철탑 : 15:20 삼거리봉
: 15:46 안부십자로 : 15:49 능선분기 이정표 : 16;00 해남터 갈림길 유둔재6.62km이정표 : 16:17 가는길 능선에서 10분간 휴식 유둔재5.52km이정표 : 16:48
새목이재 유둔재3.67 : 17;16 456.5봉(삼각점) : 17:40 어산이재 유둔재3.4 : 17:47 봉 : 17:55 10분간 휴식 봉 : 17:59 내리막길 가족묘 : 18:16 수레길 : 18:19 유둔재 : 18:24 어제가 부처님 오신 날이라 용주사 표시 간판이 서 있는 곳에서 지하통로 화려한 등이 걸려 있다. 등불 따라 용주사에 오시는 부처님도 어쩔 수 없이 지하통로로 지나가셔야 될 판이다. 함께 사진한 장 찍고 지하통로를 지나 개들이 짖는 건물을 지나면 절개지 따라 배수로가 산위로 나 있는 곳에 표지기가 걸려 있다.
용주사가는 지하통로
과치재 정맥길 들머리
연산 (과치재로부터 1시간 5분) 자욱한 안개가 흘러 간다.. 간밤의 비에 나뭇잎들은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고 신선한 대지의 풋풋한 흙 냄새를 피워 올리고 있다. 비는 오지 않을 것 같은데 대기가 텁텁하고 코끝의 공기가 시원하지 않는 걸 보면 안개가 걷히고 난 다음의 땡 빛 이 걱정스러워 지는 날이다. 장딴지가 뻐근할 정도로 급경사를 이룬 길을 한참을 오르고 나서 무성한 수림사이로 난 희미한 길 때문에 지형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은 길을 앞사람을 따라 아무 생각 없이 이동한다. 등로가 뱀이 또아리를 틀 듯 나선형으로 몇 번을 비틀며 산허리를 휘감고 나서야 답답한 수림이 사라지고 시야가 밝아지는 전주이씨 쌍묘에 도착한다. 열심히 걷긴 했는데 거친 오름 길과 안개와 나뭇잎이 답답하던 기억 밖에 별로 남지 않는 구간이다. 고비며 고사리며 치나물이며 산나물이 다른 데보다도 많은지 투잡을 하는 사람들의 손길은 거친 구간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바쁘기만 하다.
전주이씨 쌍묘
전주 이씨 묘 뒤의 울창한 수림이 연산이다. 정상부에는 허물어가는 이름 모를 묘 한 기가 쓸쓸히 자리 잡고 있다. 방아재(연산으로뷰터 12분) 연산을 내려 서면서 산불로 인해 타버린 나무들이 초록의 나무 잎을 피워 내지 못하는 안타까운 모습으로 푸른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의도적인 방화선 구축 때문인지 산불 때문인지 큰 나무는 모두 소실되고 연초록의 새 잎으로 단장한 작은 관목들이 채색하는 능선의 빛은 상처 위에서도 싱그럽다. 방아재가 내려다 보이는 묘소에서는 거칠 것 없는 조망이 가능한데 산허리를 감은 자욱한 산 안개는 가야 할 길의 만덕산과 무등산을 가리고 있다. 시신경이 별로 예민하지 못한 내 눈에도 여기 저기 고사리가 지천이다. 청정지역의 신토불이 산나물을 먹으면 대자연의 운기가 고스란히 몸으로 옮겨 오겠다. 세상의 모든 난치병은 세상의 초목 어딘가에 그 치료제가 있다고 한다. 우리가 그 성분을 찾아내지 못한 것일 뿐 수십만종의 화학물질을 합성해 유망신약을 발굴하겠다는 시도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있다. 인공합성한 신약후보물질이 갖는 만성 난치병 치료효과가 천연물 속에 들어 있는 유효성분보다 훨씬 미미하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화학합성에 치중하던 연구자들이 천연물에서 신약을 발굴하는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고 각국은 식물의 천연자원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한국은 15만종 미국은 45만종의 식물을 보존 하고 있다고 했다. 수많은 저 들플들 속에 국가적인 부와 인간의 생명을 약속할 신비의
영약이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대간을 종주하는 누군가가 황우석 박사가 떨어뜨린 국가적 위신을 다시 세워 줄지도…. 마눌도 건달처럼 산만 다니지 말고 버섯이며 약초며 봄나물이라도 좀 뜯어 오라고 하지만 한 가지 일도 하기 어려운 판에 나는 일찍부터 지레 포기해 버린다. 그래도 저번 고리산 인근에서 따온 두릅의 맛은 환상적이었다. 나물 캐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을 만났는데 뭐를 그렇게 채취했는지 이젠 담을 곳이 없단다. “내년에는 내동 아줌씨들 한 번 풀어서 씨를 한 번 말려봐?” 방아재를 내려서는 능선 길에서 햇빛이 난다. “
벌써 햇 빛이 나면 안 되는데…” 지난 번 예정 했다 펑크난 방아재 내려서는 길에는 붉은 연산홍이 환영의 꽅다발을 걸어준다.
방아재 가는 길 무등산 조망터 무덤 (안개에 가린 무등산 )
방아재에 내려서며 바라본 가야할 길 풍광
방아재에 내려서며
안부임도 (방아재에서 18분) 방아재 한 켠에 어느결에 왔는지 이동 베이스 캠프가 주차해 있다 고사리 캐러 내년에 한 번 오려고 도로를 훝어 보는데 별 다른 특징은 없다. 우리는 표지기가 많이 달려 있는 측백나무가 서 있는 들머리로 곧장 들어가 산비탈을 오른다. 사방을 둘러 봐도 싱그러운 초록 빛이다. 우리가 넘어온 앞 능선도 우리가 넘어 가는 능선 길도… 군데 군데 산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이 능선 위에도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뒤덮여 가고 있다. 하지만 나무가 모두 사라진 산이란 자연의 영역이 아닌 인간의 개발 권역 같이 어딘지 모르게 부자연스럽고 어색하다.
방아재 정맥길 들머리
가는길 신단
방아재 앞 능선을 올라서며 바라본 지나온 연산
능선 위에서 등로가 죄회전해서 급하게 내리막길을 내려 가는데 여기 저기 아직 살아 있는 소나무 등걸이 산불에 그을린 자욱이 역력하다. 우리가 치고 올라온 방아재에서도 이런 아름드리 소나무 들이 자생하고 있었다면 얼마나 통분할 일인가? 산불만큼 사소한 부주의에서 발화되어 생태계의 파괴와 더불어 엄청난 피해를 가져오는 것도 드물 것이다. 담배 피우시는 분들 정말로 조심할 일이다. 임도에 내려서서 조금 걸어 올라 가다가 우측 들머리로 들어 서는데 내려온 능선 마루금이 아래쪽으로 연결된 것이 조금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방아재 앞산 너머 임도
만덕산 (방아재로부터 48분) 우려했던 대로 바람기 없는 찌는 무더위가 너무 빨리 찾아 왔다. 만덕산 오름 길은 숨이 턱턱 막힌다. 그래도 산의 치유력은 놀랄만하다. 편치 않은 속은 산행을하고부터는 진정되고 더위에 찬물을 마셔도 갑작스런 설사와 같은 불상사가 일어 나지는 않는다. 등줄기에 흐르는 땀은 무더운 날씨 때문 일 수도 있고 컨디션이 좋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견딜만하다. 중간 휴식 없이 만덕산 정상을 치고 올라 공냉식으로 과열된 엔진을 식히려 했는데 푹푹찌는 헬기장터 입구에서 차가운 맥주 한병을 가지고 기다리는 이 있다. 뒤 늦게 종주길의 동행을 자처한 김찬기님 염천에 누리는 목젖이 얼얼한 사치 그가 등짐을 진 고생으로 나와 대원들은 거친 산행 길에 어울리지 않는 호사를 누린다. 사막에서 파는 차가운 맥주 한잔 값으로 우리는 얼마를 내면 될까? 하여간 좋은 길동무 덕분에 과열된 엔진을 수냉식으로 식혀버리니 다시 새 힘이 솟는다. 먼저 올랐던 신샘님도 아래에서 휴식하고 만덕산 정상에는 제일 먼저 올라 나무 그늘 한켠에 등짐을 내리고 가끔 불어 주는 시원한 산 바람을 맞는다. 우리가 지났던 2차의 만덕산처럼 이번 만덕산도 그렇게 호락호락 하지는 않았다. 만덕산에서는 할매 바위 아래로 운무가 오락가락하던 호남벌이 한 눈에 들어 오고 가야 할 방향 쪽에 수양산이 우뚝 솟아 구름사이로 들락 날락 하고 있다.
만덕산 정상 표지판
만덕산 정상 할매바위
만덕산 조망
만덕산 정상에서 바라본 수양산
호남정맥 중간지점 (만덕산으로부터 45분) 만덕산을 내려서는 길에 이쁘게 가꿔 놓은 묘를 지난다. 누군지 몰라도 해발이 꽤 높은 곳인데 정원의 잔디처럼 정성스럽게도 가꾸어 놓았다. 6분 후에 신선바위를 지난다. 바로 뒤이어 신선화장실이 나오는데 신선들은 주변이 다 화장실 같아도 아무데서나 용변을 보지는 않는 모양이다. 몇 분 쯤 편안한 산길을 따라 가다 보면 운암리 안부 이정표가 나타난다. 어제 온 비 바람에 많은 철쭉이 꽃 잎을 떨구고 있다. 가늘길 마다 철쭉 흰 꽃 잎은 땅 위에도 나뭇잎 위에도 흐드러지게 피었다.. 임도에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오르고 마루금은 수양산을 바라보며 벌목지대를 휘돌아 간다. 한번 더 임도를 만나고 숲속을 접어 들자 호남정맥 중간 지점 이정표가 나온다. 이 지점이 금,호남정맥 시작하는 영취산 기점으로부터 중간 지점이라 하니 우리의 호남정맥 시작점인 주화산으로부터의 중간지점은 좀더 남진해야 할 것이다. 하여간 의미 있는 자리에 서게 되니 가슴이 뿌듯하다.
만덕산 내려서며 만난 잘 정돈된 묘소
벌목지대 휘 돌아 가며 바라본 수양산
호호남정맥 중간 분기점에 매달린 표지기
선돌마을 고개 (호남정맥 중간지점으로부터 44분) 중간지점 이정표에서 멀지 않는 곳에서 다시 마루금은 임도에 의해 끊어지고 10여분 평탄한 산길을 걸으면 수양산 갈림길 능선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약 600~700m 전방에 수양산이 있고 우측으로 능선아래로 내려서면 선돌마을 고개로 이어진다. “이 길은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아 수양산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야겠다.” 등로 한 켠에 배낭을 벗어두고 혼자 완만한 능선 길을 따라 시야가 제법 열리는 바위를 기웃거리며 수양산을 오른다. 정상을 향해 가는데 봉우리 근처에서 인기척이 난다. 이 산도 넘어오는 사람이 있나 했더니 먼저간 우리 일행들이 봉우리를 둘러보고 내려오고 있다. “부지런도 하시지…” 봉우리에서는 잡목이 우거져 시계가 차단되어 있고 돌보지 않는 산불 감시초소 하나 덩그러니 서고 삼각점 하나 잡초에 묻혀 있다.
수양산 정상 삼각점
수양산 정상 산불감시초소
마루금은 급하게 개구리가 요란하게 울어대는 마을로
내려선다. 오랫만에 들어 보는 개구리 울음소리다. 대학시절 시골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 잘 때 요란하게 울던 개구리 소리를 너무 오래 잊어버리고 살았다. 우리가 귀에 걸고 사는 그 무수한 소음들 귀에 거슬리는 소리에서 놓여나 새소리며 벌레소리 개구리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어찌 호남 종주길이 살갑지 않을까? 멋드러진 정자나무 아래 유유자적하게 이동 베이스 캠프가 기다리고 있다. 먼저 온 일행들은 벌써 식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제 술을 많이 먹은 탓도 있어 유난히 물이 많이 켠다. 바람 솔솔 부는 정자나무 아래 성찬을 펼치고 내가 배탈이 나서 설사 중이란 사실도 잊은 채 차가운 맥주를 두잔 들이키고 순식간에 도시락 하나를 비웠다. 오늘의 압권은 산길에서 뜯은 산나물 그리고 싱싱한 채소류와 붉은 고추 그리고 청계님 고추장과 나선생님 우렁된장 대자연 한가운데 마련된 식탁이 한껏 미각을 돋구었는데 식사를 마치고도 맥주의 차가움을 잊지 못해 물 대신 한 잔의 맥주를 더 마시니 급기야 배가 성이 나서 팽팽해진다.
선돌마을 고개 풍경
국수봉(선돌마을 고개에서 31분) 민가에서 물을 채우고 돌아 나오는데 갑자기 나른해지고 맥이 풀리면서 퍼지고 싶어지는데. 국수봉을 치고 오를 일이 걱정스럽다. “갈
길이 먼데 서둘러야지.” 평화로운 전원을 바라보며 천천히 오름 길을 오르는데 등로는 얼마 가지 않아 본색을 드러낸다. 가파른 오름길 중간을 임도가 가로 지른다. 오름 길에 날이 더워 물을 좀 마시고 나니 배가 출렁거린다. 내 배에는 맥주 5잔과 물 두잔 도시락 한 통이 적재되어 있다. 내가 생각해도 이 더위 이 오름길에 엄청난
과적이다. 맥주와 밥이 화학반응을 일으키는지 더운 날씨에 몸이 나른해지면서 발걸음이 무거워 진다. 배는 빵빵해서 허리를 굽히기도 힘들고…
억지트림으로 꺽꺽 대며 국수봉을 오른다. 백주와 물을 잔뜩 들이켜 놓았으니 왕성한 소화력이 제 기능을 발휘하기는 영 글렀다. 국수봉에는 무더위와 알코올과 악전고투를 하며 힘겹게 올랐다. 햇 빛을 가릴 그늘도 없이 맨살이 드러난 척박한 봉우리에는 무슨 용도 인지 철탑이 하나 서 있다. 다행이 태양이 잠시 구름 속으로 숨어
준다. 봉우리에는 삼각점이 있고 옛날 낙남길을 함께 했던 백두대간 산악회의 표지기가 나부 끼고 있다.
국수봉 철탑
국수봉 삼각점
활공장터 봉 (468.3봉 국수봉으로부터 20분) 국수봉에서 우측으로 마루금이 꺾이며 급한 내리막을 이룬다 5분쯤 내려서면 잘 정돈된 안동 장씨 가족묘가 나타난다. 뒤이어 목장을 알리는 철망 표시가 나타나고 마루금은 철망 안쪽으로 들어서서 능선을 따라 간다. 잠시 목장 길을 걷다가 전형적인 숲길로 들어서고 완만한 오름 길을 따라 좀더 가면 우측 사면이 트인 능선 위에 하늘색 산불감시초소 하나 있다. 옛날 페러글라이딩 활공장 터가 있었던 것 같은데 능선이 나무를 모두 베어 놓고 그저 흉물스럽게 방치해 놓았다. “산림을 훼손하였으면 잘 사용이나 할 일이지..” 잠시 휴식하면서 풍광을 즐기다가 갈 길을 재촉한다. 능선 길을 따르면 다시 목장 철망길이 이어진다. 468.3봉에서 직진능선은 월봉산 가는 길이고 마루금은 좌측으로
방향을 꺾는다
안동장씨 가족묘
활공장터 조망
활공장터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능선길
헬기장 활공장 (활공장 터봉으로부터 약
50분) 목장이 끝나는 부근에서는 만난 초록의 잔디와 능선 곳곳에 붉게 피어 있는 철쭉이 상외동제라는 저수지와 어울려 정겨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약간의 오름 길을 치고 올라 가면서 몸이 많이 힘들어 진다. 허기진 것도 아니고 힘이 빠진 것도 아닌데 발걸음 옮기는 것이 부담스럽다. 평소의 지론대로 즐거운 여정을 위해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해야 했는데 오늘은 즐기기 위한 산행이 아니라 어쩌면 견디기 위한 산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제의 음주오락과 오늘 기분 좋게 마신 맥주가 지난 구간 보다 훨씬 낙차가 큰 능선길에서 계속 뿔대를 내고 있다.
목장길 끝부분 풍경
마루금을 따라 힘겹게 발을 옯기다 보니 비행 안전수칙 간판이 서 있는 행글라이더 활공장을 만난다. 이것 역시 사용하지 않는 활 공장 이라고 한다. 행글라이더 취미활동도 좋지만 제대로 활용도 못하면서 호남정맥 산허리를 까마귀 똥파헤치 듯 헤집어 놓은 모습에 은근이 부아가 치민다.. 먼저 나선 일행들이 휴식하고 있다. 잠시 힘든 짐을 내리고 물 한잔 마시면서 호흡을
가다듬는다. 제대로 휴식자세를 취하고 내려다 보는 호남벌의 풍광이 시원스럽다.
내친 김에 한참을 쉬었다. 진짜 활동중인 활공장은 5분정도 거리의 헬기장에 있었다. 한 명이 활공할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한 번 지켜 볼까 하다가 계속 뜸을 들이기에 포기하고 노가리재로 향한다.
활공장 터봉 휴식
페러글라이딩 활공장
활공장 조망
노가리재 (헬기장 활공장으로부터 3분) 누군가 비포장도로라 했는데 순전한 노가리다. 노가리재는 포장된지 얼마 안 되는 아스발트 포장도로였다. 무지 힘들어서 건너편 들머리로 들어서는 일행들을 바라보며 도로 반대편에 잠시 주저 앉아 있다가 마지막으로 가파를 들머리를 올라 챈다. 우리 일행들은 노가리 재에서 노가리 한 번 풀 생각 안하고 꽁지 빠진 닭처럼 내달리기 바쁘다. 오마이 갓 9km 쯤 남았다는데 4시간 정도 더 가야 되니 오늘이 내
제삿날이다.
노가리재
삼거리봉 (해남터 갈림길) 노가리재로 부터 48분 산길도 뚜렷하고 잡목도 없다. 45분쯤 후 칼라 철탑을 지나고 편안한 길을 가다가 임도를 만나고 잠시 그 길을 따라 진행하다 우측 산길로 내려서는데 아래쪽에서 다시 임도를 만난다. 7~8분 오름길 위에서 평평한 길이 계속된다. 가는 길에 독산 401-1985 재설이 씌여진 삼각점 하나 나타나고 조금 후 희미한 고갯길이 하나 나오더니 바로 삼거리봉 해남터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시한 수 있다. “한 굽이 돌길에도 매화와 대나무 돌이 연이어 있고 오르는 길이 익숙해서 위험도 없다. 속세의 발길을 스스로 끊고 나니 이끼 빛깔도 밟을수록 푸르름으로 되돌아 온다.” 속세를 떠난 귀연의 여유로움이 묻어 난다. 우린 귀연과 귀속을 반복하고 있는데…….. 글을 읽고 나니 언제부턴가 길이 많이 부드러워져 있다. 바람도 불어주고…. 이런 길이라면 몇 시간 이고 문제될 건 없겠다.
최고봉(해남터 갈림길에서 6분) 길동무 들이 모두 뿔뿔이 흩어 지고 백운봉 님과 둘이 간다. 한적한 길을 이런 저런 이야길 하며 휘적이며 나아간다. 봉우리에서 쉬어가려 했는데 앞선 산꼭대기 님의 뒷모습은 매정하게 사라지고 좌측아래로 휘어져가는 능선에서 일행의 소리가 들린다.. 그저 봉우리 이정표를 지나쳐서 쉬어갈 자리를 찾으며 한참을 가다 보니 어느 봉우리 나무등걸에 “최고봉”이란 간판이 걸려 있다. 이곳이 까치봉 분기봉 앞에 포진한 봉우리다. 여기서 급한 내리막이 우측으로 이어지고 잠시 후 좌측으로 휘어가며 완만한 오름 길로 까치봉 분기봉에 오른다. 이 능선에서 직진하면 까치봉이고 마루금은 죄측으로 살짝 방향을 바꾸어 진행한다. 얼마간 후에 유둔재 6.62km 이정표를 만나고 바람 좋은 비탈길 안부에서 잠시 휴식한다. 부드러운 길과 시원한 바람이 오늘의 피폐한 나를 살리고 있다. 물 한모금 입에 물고 비스듬이 누어 하늘을 본다. “저 구름이 흐르듯 오늘도 시간이 잘도 흐른다 아침은 쉬 저물고 청춘은 서둘러 흰머리를 센다. 그래서 짧은 인생길에는 한탄할 시간도 목놓아 울 시간도 남아 있지 않다.”
새목이재(최고봉으로부터 1시간 ) 백운봉님 입으로는 힘든 여정이라 하면서도 짱짱하다. 내친 김에 파김치처럼 한참을 푹 퍼졌다 출발이다. 7시쯤 떨어질 걸 예상하니 마음이 급해지지도 않고 길만 이렇게 좋았으면 하는 바램만 남는다. 저무는 날씨는 가는 길에 서늘한 바람을 뿌리고 나는 터미네이터처럼 다시 힘을 얻고 있다.. 남소장님을
만났다. 오늘은 나만 힘든게 아닌 모양이다. 지도상의 새목이재는 쉽사리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완만한 봉우리를 몇 개 넘고 오랫동안 능선을 걷고 나서야 유둔재 3.67km 이정표가 서있는 새목이재에 도착한다. 힘에 겨워하는 남소장님이 희미한 길을 따라 마을로 내려갈까 하시는데 백운봉님과 적극 만류한다. 내려서는 길이 얼마나 될지 모르고 마을까지 가서 베이스캠프 까지 이동도 원할하지 않를 것이다. 이제 봉우리 하나 넘으면 내리막 길로 유둔재 까지 단숨에 갈 수 있다고 원기를 북돋우며 다시 길을 잡는다.
어산이재(새목이재로부터 31분) 남소장님을 뒤에 두고 또 산길로 30분을 걸었다. 산 넘어 산 이제나 저제나 유둔재의 기별을 기다리며 이 고개 넘으면 이제 끝이겠지 하는 곳에서 또 다른 봉우리가 떠오른다. 급기야 삼각점이 있는 456.5봉 까지 넘고나서 내려선 안부에 이정표 하나가 선다. 유둔재 3.4km 아니 일헐수가? 영락 없는 알바 처음에는 엉뚱한 길을 잘못 들어서서 산길을 되돌아 간줄 알았다. 30분전에 3.67km 지점을 통과 했는데 다시 3.4km라니 정말 황당하기 그지 없다. 안개처럼 짙게 깔리는 허무 저무는 날 길 손에게 던지는 이 허망은 누구의 작품인가? 차라리 이정표를 세우지나 말일이지….
456.5봉 삼각점
새목이재에서 내리막 밖에 안 남았다고 힘내시라 했는데 우린 30분에
고작 270m를 움직여간 셈이다. 황당함으로 주저 앉아 버릴 남소장님 보기 너무 미안해서 기다리지도 못하고 백운봉님과 이정표 안부를지나쳐 냅싸 달아난다. 그곳이 어산이재인 모양이다. 어산이재 에서도 두어개 봉우리가 남아 있었다. 봉우리 하나 넘어 이제 진짜로 얼마 남지 않아 보이는 후미진 능선에서 휴식하는 사이 남소장 님이 따라왔고 후미조의 모습도 보인다. 다행이다.
유둔재(어산이재에서 37분) 선돌마을에서 국수봉 그리고 노가리재, 삼거리봉 까지는 컨디션 난조로 무척이나 힘겨운 시간 이었다. 저무는 날의 서늘한 바람과 후반부의 부드러운 길이 아니었으면 초죽음이 되었을 하루였다. 유둔재에 내려서는 길은 봉우리 하나 넘어 우측 능선 아래로 급하게 떨어진다. 가족묘를 지나 수렛길을 이제 여유롭게 걸어 아직 해가 남아 있는 유둔재에 내려섰다. 유둔재는 2차선 포장도로로 담양26km 광주24km 라는 표지판이 서 있다 힘들고 긴 여정의 마무리였다. 베이스 캠프는 포장된 유둔재 길을 따라 좌측으로 한참을 내려선 마을 앞 회관에 설치되어 있었다. 먼저 내려선 이행들이 삼삼오오 둘러 앉아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고… 우물가에서 동네 아줌마 볼까 조심하면서 시원한 우물물에 머리 감고 세수하고 땀을 씻어내 니 힘겨운 시간이 언제였냐는 듯 기분이 상쾌하고 날아 갈 듯하다. 무언가 가슴으로 쏟아져 들어 오고 또 가슴에서 솟아난다. 거친 여행이 마무리 되는 이 때 쯤이면 법열이 인다 좀더 진지하고 겸허하게 다가가야 할 산에 대한 교훈을 다시 새긴 하루였다. 우리가 지참했던 목젖이 얼얼한 맥주와 윤선생님이 정성스레 준비하신 안주로 저물어 가는날 속으로 힘들었던 하루의 피로를 날리어 보낸다.
유둔재 내려서며
유둔재
왜? 나는 왜 모처럼 한데 모인 형제들도 남기어 둔 채 술 마신 고단한 몸으로 잠도 제대로 못 자고 그 무더운 날 험한 산길을 하루종일 헤메나? 나선생님과 청계님은 왜 그 힘겨운 여행길의 끈을 놓지 않을까? 산꼭대기는 왜 일주일에 한 번 집에 오면서 대전에 처자를 남긴 채
새벽 같이 버스에 오르고 그 먼길을 돌아 어두워져 가는 도로 한 켠에서 쓸쓸히 다시 광주로 갈 차를 기다려야 하나?
산이 뭐길래 호남정맥길이 뭐 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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