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부신 봄은 왔는데 봄을 시샘하는 많은 것들이 화창한 주말을 열어 놓지 않는다. 비에 젖어 바람에 날려 자욱한 황사에 불려 하릴없이 봄날은 간다. 지 지난주 주말의 봄은 싸늘한 바람과 안개에 쌓여 가고 지난주 토요일 무창포 여행길에는 푸른 바다를 뒤덮은 뿌연 하늘을 만났다. 7번째 호남 출정의 날 오늘도 어김 없이 차가운 날씨와 스산한 바람이 목을 감는다. “어이 없이 사월은 가는데 오월엔 라일락 향기나 제대로 맡을 수 있을까?” 천치재에서는 오정자재가 약 4시간 거리에 있고 강천산군을 휘돌아 가다 보면 8,9시간 거리에서 구간 마무리 할 만한 곳이 쉽지 않다. 천치재를 지나 강천산, 광덕산을 너머 방축재 까지는 산길로 34km 결코 짧은 거리는 아닌데 산행로가 거칠지 않다는 이유로 모두들 밀어 부치기로 했다. 어제 대충 살펴본 높은산님의 산행기 소요 시간은 14시간 20분 이 양반들 첫날은 1시간 중간에 놀았고 그동안 산행기의 평균속도로 볼 때 한 두시간 정도는 우리가 빠르다 해도 12시간 정도는 족히 걸릴 것 같다. 요즘 보기 드문 장시간 산행인데 지난 주 여행과 황사를 핑계로 제대로 내공을 쌓지 못했으니 장딴지 꽤나 뻐근하겠네 휴게소 전에서 붉은 태양이 떠오르는 걸 보니 오늘 날씨는 쾌청이지만 목에 감기는 바람결은 여전히 한겨울의 냉기를 품고 있다. 오히려 잘 되었다. 날씨는 맑고 좀 쌀쌀해야 장거리 산행에 훨씬 피로가 덜할 테니…
호남정맥 제 7구간
산행지 : 호남정맥 제 7구간(천치재-오정자재-강천산-방축재) 일 자 : 2006년 4월 15일
(일요일) 날 씨 : 바람불고 화창한날
산행거리 : 34km 산행시간 : 약 10시간 40분 동 행: 나선생님,산꼭대기,백종수님,새벽안개,담헌,양반곰, GOODMAN,
백운봉,금강초롱,한림정 ,칸, 계백장군, 청계 (14명) 호남정맥
제7구간 경유지별 시간
천치재
출발 :
08:40 헬기장
: 09:20 안부이정표 :
09:23 가마골
임도이정표 : 09:32 치재산정상 :
09:50 임도삼거리 :
10:05 용추봉
: 10:40 안부
:
11:00 508.4봉
:
11:10 조망바위봉과암릉 : 11:15 방화선안부 :
11:35 오정자재 :
12:05 510봉삼각점
:
13:14 암릉지대 :
13:28
강천주능선 :
14:10 왕자봉삼거리
:
14:13 북문터
: 14:18 강천2호수갈림길 :
15:31 산성산 :
15:47 북바위
: 16:00 운대봉이정표 : 16:03
동문터
: 16:09 광덕산 :
17:00 358봉
:
17:50 뫼봉(332봉) :
18:02 3봉
:
18:10 덕진봉
: 18:33 영월마을 :
18:50 산행종료
: 17:00
임도에서 바라본 추월산 천치재 출발 (08:40) 임도를 지나 산길을 가노라니 천치재 위 460봉의 칼라 송전탑이 아득하고 그 뒤로 웅장한 자태의 추월산이 올려다 보인다. 물 흐르듯 천천히 그러나 결코 느리지 않는 보폭으로 세월이 가듯이 벌써 우리가 지나온 길들은 저 아득한 천치재 뒤로 멀리 주술산 까지 이어져 있으리라 인간의 작은 발길이 대단하지 않은가? 우리가 하루를 걸어낸 산길도 아득한
걸
능선의 녹슨 이정표
능선의 녹슨 이정표 (09:23 천치재로부터 43분) 헬기장을 지나고 낙엽이 쌓여 있는 삼각점을 지나고 히스토리를 알 수 없는 녹슨이정표가 능선에 서 있다. 이 능선에서 빗물의 운명이 갈라진다고 한다. 백두 대간 피재(삼수령) 빗물의 운명처럼.... 좌측능선으로 흐르면 담양호를 거쳐 섬진강으로 가고 오른쪽으로 흐르면 영산강으로간단다.
연약한 봄
가는 길 수북한 낙엽 사이로 태양 빛에 눈부신 연초록을 저만큼 피어내고 차가운 봄바람에 당황하고 있는 가냘픈 잎새가 눈길을 끈다. 바람은 차도 점퍼를 벗어 던지고 모처럼 황사가 사라진 시원한 공기와 푸른 하늘을 즐긴다.
능선의 진달래
뒷동산 진달래 잎새도 뚝뚝 떨어지는데 여기는 진달래가 한창이다. 꽆 잎이 작은 지천의 아기 진달래가 찬바람 부는 능선에서 봄을 마중하고 있다.
가마골 임도 안부와 이정표
가마골 임도 안부 (09:32 능선 이정표로부터 9분) 임도 한 켠에 이정표가 서 있다.
치재산 가는길 바라본 추월산
치재산 조망
치재산 이정표
치재산정상(591m) (09:50 가마골 임도로부터 18분) 치재산 가는 길에 추월산이 아득한데 진달래 능선을 지나 산죽 숲을 질러 참어 떨치고 간다. 치재산에는 용추봉 쪽을 알리는 표지판이 서고 산릉 사이의 분지와 저수지가 내려다 보인다. 마루금이 좌측으로 꺾이는데 조금 내려가다 보면 용추봉 쪽 조망이
멋지다.
치재산 내려오며 바라본 풍경
임도삼거리 (10:05 치재산 정상으로부터 15분) 10여분 진행하면 다시 임도를 만나고 임도를 따라 방화선을 구축한 벌목지대를 지난다. 임도 너머로 멀리 추월이 계속 따라 오고 있다.
용추봉 가는 길에 임도에서 바라본 추월산
용추봉(10:40 임도삼거리로부터 35분) 용추봉은 넓은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고 말 없이 서 있는 추월이와 멀리 우리가 가야할 무등산이 눈에 들어 온다. 푸른 하늘아래 사방이 트이니 가슴이 후련해진다. 눈부신 태양 빛이 쏟아 지는 용추봉엔 거센 바람이 불고 있다.
용추봉에서 내려선 소로길 안부
안부(11:00 용추봉으로부터 20분) 6분만에 소로 길인 듯 한 안부에 떨어진다.. 508.4봉(11:10 안부로부터 10분) 안부에서 10여분 지나 넓은 공터가 잡목 숲에 덮여 있는 508.4 봉을 만나고 조금 지나자 삼각점을 만난다.
508.4봉 삼각점
암릉지대에서 바라본 추월산과 담양호
암릉지대 끝부분에서 바라본 N자형 도로
조망바위봉과 암릉(11:15 508.4봉 삼각점으로부터 5분) 5분 후 멋진 조망바위봉을 만난다. 그간의 육산을 지나 암릉으로 이루어진 절벽지대에서 호쾌한 바람을 맞으며 추월산 이후의 암릉의 스릴과 조망을 즐긴다. 푸른 하늘 아래 시야는 거침이 없고 첩첩이 산으로 쌓인 가운데 작은 분지들과 비좁은 평야지대가 푸근함을 느끼게 한다. 멀리 추월산과 담양호의 푸른 물길도 보인다. 절벽 암릉 구간을 지나 마지막 암릉의 봉우리에 서서 아래를 바라보니 산허리를 따라 N자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 길은 산허리를 지그재그로 내려가 마을로 이어지고 있다.
방화선 길에서 바라본 추월산과 담양호
방화선 안부(11:35 조망바위 지대에서 20분) 조망바위 봉이 끝나는 곳에서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면 330봉 까지는 마루금 한 쪽이 방화선으로 구축된 벌목된 산길을 따라 가는 편안한 길이다. 콧노래가 절로 난다.
호남 능선의 봄
용추봉 인근에서 많이 보였던 고사리가 여기저기 돋아나 있다. 한무더기 제비 꽃은 호남신령님의 격려의 꽃다발 인가? 이름 모를 노란 야생화도 산길 옆에서 웃고 있다. 과수원을 지나면서 등로가 좌측으로 휘어지는데 고압선을 조심하라는 문구와 해골 표시가 있다.
고압선 철책은 산길을 따라 계속 이어진다. 놀래서 스틱으로 슬쩍 건드려 보는데 전기는 통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산중에 무슨 귀중한 것이 있길래 저렇게 협박을 일삼고 있나? 그래도 혹시 전기 구이가 될 까봐 고압선(?)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움츠려 지는 걸 보면 저들의 과잉표기도 효과를 보는 셈이다..
오정자재 (12:05 방화선 안부로부터 30분0 330봉에서는 오정자재가 내려다 보이는데 상당한 고도를 내려 갈 일을 걱정했더니 등로는 좌측의 능선 한켠의 고압철탑을 지나 염소농장 길을 따라 완만하게 오정자재로 하강한다. 봄의 향기는 염소 똥을 타고 오나? 꽃 향기 대신 염소똥 냄새가 풀풀 날리는 길을 걸어 멀리서 그림 같이 보이던 목장으로 내려서니 단정해 보이던 건물들이 지저분하고 두서 없다. 멀리서 바라보던 목장은 그림 속의 풍경이고 가까이 에서 만난 목장은 현실 이었다. 삶이란 풍경화처럼 목가적이고 그림 같지 만은 않나니 푸른 초원의 그림 같은 외딴집은 염소의 축사이고 초원의 풀들은 그들의 냄새 나는 식탁 우리는 그렇게 오정자재로 떨어졌다.
가파르게 고도를 높여가는 격렬함이 기억에서 가물가물한 산보 가는 듯
편안한 등산로
였다. 바람도 쉬어 가는 듯 봄 볕이 따사로운 오정자재에서 가든파티. 부지런한 한림정님은 산두릅 까지 따서 식탁에 올렸는데 애석하게도 청계님표 고추장이 없다. 청계님이 앞 구간 땡땡이 치시는 바람에 오늘 맛있는 붉은 고추와 고추장은 물 건너 갔다. 밥을 한 그릇 거뜬히 비우고 양주한잔에 커피에 과일에 기사님이 끓인 라면까지 먹고나니 내 배에는 이미 만선이다.
오정자재를 건너며
510봉 삼각점
510봉 삼각점(13:14 오정자재로부터
38분) 식사와 더불어 즐거운 환담을 즐기느라 30여분을 보내고 오정자재를 건너 산길을 오르는데 너무 배가 부르니 완만한 비탈사면도 힘겹다. 과수원인 듯 한데 “약초재배농장 출입금지” 팻말이 나무 등걸에 붙어 있다. 그냥 평범한 농장으로 알고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광고하는 셈이다. 커다란 송전탑을 지나 등로는 420봉 직전에서 사면을 따라 우측으로 꺾여 내려간다. 가던 길에 나뭇가지가 네 갈래로 갈라져 의자처럼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멋진 소나무에서 한림정님이 앉아 포즈를 취해본다. 소나무를 지나 잠시 안부로 내려섰다가 제법 급한 오름 길을 극복하면 삼각점 (순창405-1995재설)이 나타난다. 510봉이다. 여기서 마루금은 좌측으로 방향을 틀고 잠시 후 바위 조망대에 올라서면 무수히 매달린 표지기 사이로 가야 할 강천산 능선이 바라다 보인다.
암릉지대를 지나며
암릉지대를 올라서서 바라본 강천산 능선
암릉지대(13:28 510봉 삼각점으로부터 14분) 처음 로프타는 구간을
만난다. 절벽에는 부처손이 군락을 이루며 자생하고 있고 조심스럼게 암릉구간을 지나면 아래로는 작은 저수지가 보이고 멀리 우리가 지나온 추월산이 가물거린다.
강천산 주능선 이정표
강천 주능선(14:10 암릉지대로부터 42분) 암릉지대를 지나 내리막 길 중간 그늘이 드리운 안부에서 휴식한다.(약 5분) 제법 강한 바람이 이 안부에서는 산등성이에 막히니 뜨거운 햇살을 피해 그늘을 찾아 잠시 환담하며 숨을 고르다 15분 정도 오름 길을 오르니 경운기가 지나갈 만한 발길에 다져진 길을 만난다. 강천 주능선이다. 첫 이정표가 서 있다. 공원입구 병풍바위와 깃대봉 방향이 3km 우리가 가야할 우측의 왕자봉 형제봉 방향이 1.5km이다. 발정난 숫쾡이처럼 달떠서 돌아다닐 수 있는 눈부신 사월 봄날의 휴일은 몇 일이나 돨까? 방해하는 것이 좀 많아야지. 퇴각한 줄 알았는데 창졸간에 필마단기로 기습하는 꽃샘 동장군 뙤국놈 더러운 똥가루 떨어진 고비 사막의 모랫바람에 내도록 소식 없다가 휴일날 천연덕스럽게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봄비 그리고 가까운 지인의 결혼식 까지 차 떼고 포떼면 4월의 눈부신 휴일은 오늘이 첫번 째 내 생애 통산 몇 일이 되지 않을 소중한 날 아닌가? 봄바람에 벚 꽃 날리 듯 봄날은 그렇게 간다.
강천산 능선의 진달래
하여간 우여곡절 끝에 처음으로 강천산을 만나는 날은 멋진 날이다. 가보진 못했어도 순창 고추장 야그는 익히 들었고 강천산 구름다리와 가을 단풍의 명성은 인구에 회자되었건만 훗날 내 다리에 힘이 쪼매 빠지는 날 마누라 손잡고 갈라꼬 꼬불쳐둔 곳인데 그 산이 정맥 한가운데 솟구쳐 있었네 호남정맥 대종주가 마무리 되는 날 난 한국의 무수한 호남의 산군과 구면이 되겠다. 봄볕 아래라도 아지랑이 같이 끊임 없이 움직이지 않으면 추워지는 날씨니 부지런히 돌아 보면서 빛나는 봄을 만끽하라는 강천신령님의 배려 아닌가? 강천산 영역에 들어서자 닳고 닳은 등산로가 확연히 지난 길과 달라 지는데 그 명성에 기대가 커서인지 주위 풍광이 실망스럽기 그지 없다. 왕자봉 삼거리(14:13 깃대봉 삼거리에서 3분) 왕자봉이 200m 비켜나 있었는데도 무식한 나는 이정표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아줌마들을 몰구 왕자님 알현 가는 종수씨를 보며 일행들과 한바탕 웃고는 형제봉 쪽으로 길을 잡고 말았으니….. 왕자님 여기까지 와서 뵙지도 못하고 가는 불충을 용서하소서 산허리를 한바탕 타원으로 돌아 나가는 능선을 하염없이 걸어 가면서도 감동이 없는 강천산을 계속 투덜댔다. 앞산은 자꾸 멀어져가고 등로는 변화 없이 단조롭고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아 지도를 보는데 지도에도 산릉은 여지 없이 돌아 나가고 있다. “뭔 놈의 산이 앞 쪽에 빤히 보이는 연산봉을 두고 이리 휘어져 둘러 간다냐?” “갈 길도 먼데…” “조물주께서 호남 산길을 빚다가 잠시 졸아 버린 것 아녀?”
북문터 오르는 길 담양호와 추월산
가는 길 복원된 북문터 성벽을 올려다 보며(줌촬영)
북문터의 복원된 성벽
북문터 성벽에서 조망
북문터 (14;18 형제봉 삼거리에서 43분) 준비운동이었을 뿐이었다. 북문을 오르던 길에 화들짝 놀란다. 어느결에 따라 왔는지 멀리 푸른 물빛을 담아내던 담양호가 지척에서 처연히 푸르고 멀리서 끊임 없이 따라 오던 추월이는 북문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 50km 넘는 길을 맨발로 쫓아와서… 금성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있었고 고려시대 본격적으로 축성하였다고 하는데 대단히 전략적 으로 중요한 요충지인 모양이다. 장성의 입암산성과 무주의 적상산성과 더불어 이 금성산성이 호남의 3대산성에 속한다. 전체길이가 7345m 연면적이 362,237 평이었다니 그 규모의 거대함을 짐작하고 남음이 있다. 창검을 비껴 들고 성벽을 순례하였으되 달 빛이 교교한 밤에 망루에서 바라보는 담양호에 비친 달 빛의
고혹적인 풍광에 넋이 나간 순라꾼들에게 번야란 뒷전이엇을 터 강천산의 금성산성은 깎아지른 벼랑의 강천 계곡을 굽어보며 한편으로는
드넓은 호남의 평야를
바라보며 봉우리와 봉우리를 연결하는 고산 능선을 따라 거대한 산괴의 장관을 이루며 뱀처럼 기어
간다.
강천 산신령님 용서 하소서 참을성 없는 존재의 가벼움으로 심오한 호남벌의 자존심 강천의 산수를 업신여겼 나이다. 북문터에서 바라본 추월산의 잔영을 띄우는 담양호의 봄은 아름다웠다. 담양호를 사이에 둔 추월이와 이별은 북문터에서였다. 오랫동안 떠나지 못하고 먼발치를 서성이던 추월이에게 북문터에서 이별을 말한다. “추월아,담양아 기다려라 내 널 꼭 다시
찾으리라….
제2 강천호수 갈림봉 구장군 폭포 안내판
제2강천호수 갈림길(15:31 북문터로부터 9분) 강천호수 갈림길 봉우리에서 깊은 계곡을 감상하고 백운봉님의 복분자 술 한잔으로 강천의 풍류에 젖는다. 무거운 술과 과일을 바리바리 지고 올라온 그 정과 강천 산릉을 불어가는 바람이 빚어낸 맛의 깊이는 심금을 울린다. 조물주가 만들어 놓은 천혜의 암벽 산릉을 이용하여 인간은 쌓은 성 하늘 성벽을 따라 남으로 가는 길에 바람이 거세고 거친 세상은 내 발아래 놓인다. 천상의 구름다리를 걸어 가듯 발길은 가볍고 가슴은 부풀어 오른다. 나는 높이 나는 새의 눈으로 드넓은 호남평야 아득한 곳 까지 내려다 본다. 멋지다. 축성을 위한 천혜의 산세도 그렇고 그 옛날 산성의 모습과 후세인의 보여준 북원의 노력도 구름다리에서 바라보는 계곡의 수려한 단풍의 모습으로 각인된 강천산의 진면목은 오히려 북문터에서 산성산 동문터를 거쳐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벼랑 장성의 위용에 살아 있다
산성산(15:47 강천 2호수 갈림길로부터 5분)
산성에서
성벽에 서서 천년의 함성을 듣는다. 누가 쌓은 고난의 역사인가? 면앙정의 풍류가 유린되던 날 쟁패의 다툼과 침략이 산으로 올랐구나 무릉계의 빗장이여 고독한 축성이여 이름모를 선열의 피와 땀은 고산망루를 따라 핏물로 흐르고 망자의 한은 선홍의 단풍으로 피어난다.
세월은 말이 없고 변하지 않는 것은 계곡과 말없는 바위 뿐 골짜기는 구천처럼 깊고 담양호 물길은 망자의 진혼보다 푸르다. 떠나지 못하는 망자의 혼이여 진중의 한 일랑 바람에 날리고 푸른 하늘 훨훨 날아 오르소서
산성산 성벽 전경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다” 고독한 축성은 부질 없이 사라지는 영화와 재물을 쓸쓸히 증거하고 있다. 효종의 북벌의지가 담긴 보물창고와 식량창고도 모두 사라지고 그 때의 사람들도 역사에 묻혀가고 허물어진 성벽만이 후인들의 기억을 위해 재생되었을 뿐…. 제왕과 필부도 신을 흉내 내고 자연을 욕심 내던 그 무수한 사람들도 모두 늦지 않게 주토를 밟았다.
운대봉 가는길 삼각점
북바위와 소나무
운대봉 이정표 (14:03 우회로 5분 북바위에 올랐다가 내려갈 경우 15분) 산성터중 가장 조망이 멋진 북바위다. 봉우리의 소나무가 인상적이라 굳이 돌아가는 길을 마다하고 봉우리에 올라 푸른 하늘에서 불어 오는 바람과 풍경에 취한다. 한 잔 술의 취흥을 빌리지 않고도 거나히 취할 수 있는 자연 풍광 아직 살아 갈 많은 날들의 감동을 생각 하면 어디론가 떠나지 않은 눈부신 봄날의 아까운 후회란 덧낸 상처를 따라 흐르는 선홍색 고통의 빛깔이다. 멀리 아래로 보이는 구름다리 아래 어딘가 삼인대 계곡에는 선비이 기상과 절개를 기리는 삼인대가 있다. 중종반정 뒤 왕비 신씨를 역적 신수근의 딸이라 폐출하고 장경왕후 유씨를 왕비로 맞은데 대하여 3명의 지방관장은 삭탈관직과 죽음을 각오하고 신씨복위의 상소를 올렸다 한다. 훗날 영조51년 신씨가 단경왕후로 추증된 뒤 비석과 비각을 세워
3인의 충정과 절개를 기린다고 하는데 아쉬운 역사의 향기를 더듬어 가는 여행길은 다음으로 미룰 수 밖에 없다.. 오늘 사월의 눈부신 휴일을 잃어버리지 않았다. 고향의 뒷동산 같은 먼 길을 걸으며 푸른 하늘을 마시고 잎새를 떨구고 떠난 줄 알았던 진달래의 수줍은 미소를 다시 만나고 이름 모를 봄풀과 야생화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가슴에 담았다. 봄 빛 가득한 호남의 들판을 바라보며 호남길 따라 뱀처럼 흘러가는
금성산성에 올라 정맥주유의
기쁨을 누릴 수 있었던 오늘도 행복한 날이다. 송순이 노래한 면앙정가 가사 한자락 읊어볼까? “인간 세상을 떠나와도 내 몸이 한가로울 겨를이
없다.
이것도 보려
하고, 저것도 들으려
하고 바람도 쏘이려
하고, 달도 맞으려고
하니, 속세에 묻혀 자연의 변화를 따라가느라 마음이
분주한 묵객의 풍류가 묻어난다. 고단하지만 호남의 풍류에 한껏 취하는 오늘
춘절 두메주유의 기쁨이 고단함을 앞서간다. 동문터 (16:09 운대봉으로부터 5분) 시루봉앞 광덕산 갈림길 (16:13 동문터로부터 4분)
시루봉 가는 길 소나무
동문터
시루봉
가는 길 성루에 멋드러진 소나무가 막아 서더니 동문터가 나오고 잠시 성벽을 따라 걸어가면 시루봉을 앞에 두고 마루금은 광덕산 쪽을 바라보며 좌측으로 급격하게 방향을 튼다. 비로소 금성산성과도 작별이다.
광덕산 이정표
광덕산 조망
광덕산(17:00 시루봉앞 갈림길로부터 47분: 속도를
빨리함) 광덕산 가는 길 우측 능선 너머로는 산 벚이
군데 군데 피어난 산릉이 흘러간다. 헬기장 까지 가는 길에는 커다란
쌍지소나무 (가지가 갈라진
소나무)가 많은데 고유번호가 적힌 표찰을 달아 관리하고 있다. 쌍둥이 잘 낳는 집안이 따로 있다더니 이
일대의 소나무 군락은 한 족보로 연결된 모양이다. 헬기장에서 목을 한 번 축이고 가파르게 솟아
있는 광덕산을 오른다. 속도를 좀 빨리 해서 왔더니 중턱에서 앞서
오르는 일행들과 만난다. 일대에 한 눈에 들어오는 광덕산정에서 모처럼
일행들과 사진 한 장을 찍고 모처럼의 달콤한 휴식을
취한다. 비장의 무기들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백운봉님과 양반곰님의
방울토마토, 담헌님의
떡 이렇게 산행 후반부의 출출함을 채워줄 달콤한
맛을 위해 오랫동안 고난의 등짐을 져야하니
비장의 카드를 먼저 꺼내는 것 조차 결레가 되는 것 같고 얻어 먹는 것이 미안스럽다. 광덕산에서 바라보는 산릉은 고도를 급격히
낮추어 몇 개의 봉우리로 자즈러 진다. 임도인지 도로인지 산허리를 뱀처럼
기어간다. 높은산님 산행기로 보면
광덕산에서 3시간 20분
소요되었는데 선두팀의 연락에 의하면 1시간 30분 거리란다. 생각보다 편차가 큰걸 보면 풍류와 우천에
그분들의 발길이 많이 지체되었던 모양이다.
이제 강천산군과
이별이다. 호남정맥 길에 우뚝서서 풍류와 역사의 향기를
증거한 강천 산을 뒤로한다. 내년 가을 쯤엔 집사람을 데리고 다시 한번
찾아야겠다. 한 번의 주마간산으로 바라본 강천산은 호반과
단풍이 어우러질 멋진 계곡산행과 금성산성의 유적탐방 까지 연계한 좋은
가족산행처가 될 듯 싶다. 게다가 주변 연계관광지가
빵빵하다. 전라도니 음심 맛 걱정은 없을 테고
순창고추장 특산단지에 고대 정원의 멋과 기품을 느낄 수 있는
소쇄원 (보길도 부용동
정원과 함께 조선시대 정원을 대표함)이 멀지 않다. 가사문학관에 들러 좋은 경개와 산수에 은거한 선비의 풍류와 향기 속에 잠시 머물다가 토종 대나무로 만든 온갖 제품들을 돌아볼 수 있는 죽물단지를 구경한 다음 1000여 점의 장승이 서있는 추령 장승촌 까지 구경하고 올 수 있다. 공원관리소 측에서 추천하는 등산로는
제1코스가
매표소-병풍바위-강천사-신성봉 까지의 원점회귀 2시간 코스가 있고 제2코스로
매표소-병풍바위-강천사-비룡폭포입구 연대암터-북바위-운대봉-연대봉-송낙바위-강천제2호수를 추천하고
있다. 내가 산꾼들에게 추천한다면 강천계곡과 산성을
완전히 돌아 볼 수 있는 다음의 원점회귀코스가 환상적일 것
같다. 매표소-강천산-신성봉-광덕산—시루봉-장대봉-노적봉-철마봉-서문-북문-산성산-운대봉-북바위-동문-연대암터 하산로로 약 15km정도로 계곡과 산성을
아우르는 멋진 등산코스가
될 것으로 보여지는데 일행 중 산행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은 다양한 짧은 산행루트를 이용할 수 있으니 기초체력 따라 난이도 조절까지 가능한
셈이다.
358봉 가는길 삼각점 358봉 (17:50 광덕산으로부터 약
40분) 358봉 가는 봉우리는 비포장 도로에 의해
3번 끊어진다. 가는 길에 삼각점을 사진에 담는 사이
일행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저무는 날이 의식되어 모두 속도를 내고 있는
모양이다.
332봉 조망 332봉(18:02 358봉으로부터 약
12분) 긴 여정의 마무리 구간에서도 윤성생님은
산두릅을 열심히 따고 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투잡을 전혀 무리 없이
소화 하고 있으니 경지에 이른 산꾼의 모습이
아닌가? 울산 김씨묘를 지나 몇 분을 진행하니
갈래길이 나온다. 한길은 능선을 휘돌아 가고 다른 한 길은
능선을 따라가는 마루금이다. 마루금을 따라 가는데 바로 앞서간 윤선생님
모습도 보이지 않고 꽤 고도가 있는 봉우리를 따라 오르며 속도를 내다 보니 제법
나무가 많아 어두컴컴한 숲 사이로 일행의 모습이
보인다. 군사들은 모두 어디로 가고 가장 선두에 섰던
계백장군님 혼자 고갯길을 넘어 가고 있다. 모처럼의
동행길이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내리막길을 내려와 몇 분을 진행하니 반가운 귀연의
표지기가 갈래 길 우측에 남아
있다. 좌측의 마루금을 따라 332봉에 올라 뒤돌아 보니 내려온 광덕산이 벌써 아득 하고 가야할 길 앞으로 부드러운 능선으로 이어진 봉우리 하나 남겨져 있다. 저 마지막 봉우리가 덕진봉인
모양이다. 덕진봉 표지기
덕진봉(18:33 332봉으로부터 약 30분) 잠시 휴식하고 조망을 감상하다 갈 길을
재촉한다. 7~8분을 진행하며 작은 봉우리를 하나 더 넘어 마지막 덕진봉에는 6시 33분 에 도착
했다. 누가 쌓았는지 돌탑하나 덩그라니 남아 있고 솔나무 가지에는 많은 표지기가 걸려
있다. 아직 저물지 않은 날인데 송림이 우거져 있으니 사진을 찍을 때 후래쉬가 터 진다.
방축재 가는 길 풍경
영월마을 폐가
영월마을(18:50 ) 덕진봉에서 마을의 빈농가
까지는 17분
걸렸다. 높은산님은
이 332봉에서 방축재에
이르는 구간을 7월에 마무리 했는데 가시덤불이 너무 많아 진행이 더디고 어두워진 날씨에 마루금을 잃어 버려 길도
아닌 비탈사면으로 덕진봉에
이르느라 고생스러웠다고 술회하고 있다. 사람이 떠난 빈 농가는 폐광촌의 흉가처럼
을씨년스럽다. 이 영월 마을도 쇠락하고 황폐해 가는 농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노력한 만큼의 수확의 기쁨을 누릴 수 없는
농민들은 대처로 떠나 가고 마당엔 잡풀만
무성하다.
방축재 도로 표지판
산행종료(19:00 천치재로부터 10시간 20분) 담양군 금성면과 순창군 금과면의 경계지점의
방축재에는 조용히 땅거미가 밀려오고 있다. 지난주에는 이러저러한 일이 많았고 술자리며
주말의 황사로 인한 운동 부족 등으로 컨디션이 그다지 좋으리라 생각치 못했는데
눈부신 멋진 봄날과 처음 대하는 강천산과의 기분 좋은 만남이 34km 긴 여정을 즐겁게
만들어 피곤한 줄
모르겠다. 계백장군님과 함께 처음으로 귀연의 대미를
장식하며 일행들의 박수 속에 무사히 베이스 캠프에
귀환했다. 꽃게와 동태탕도 푹 고으면 깊은 맛이 우러나는지 국물 맛이 끝내주는 동태 찌게를 세그릇이나 비우고 권하는 일행들의 순배를 다 받다 보니 내 배는 입추의 여지가 없다 나 역시 한 먹성 하는 걸로 회자되는데 두분 고수의 내공에는 당할 재간이 없다. 결국 계백장군님과 양반곰님의 용호상박에 그 많던 동태찌게도 바닥을 보이고 만다
문밖을 나서면 멋지지 않은 출정일이 있겠냐
만은 모처럼 주말에 찾아 준 화창한 봄 가던 길에 손을 흔들어 주던 진달래며 이름
모를 야생화들
그리고 강천의 심오한 계곡과
산릉들 그 위로 높아 있던
하늘과
달아 오른 열기를 후련하게 식혀 주던 대찬
바람
두루뭉실 산을 닮아 가는 사람들의 즐거운
동행까지
모든 게 어우러진 환상의 여정이
아니었던가? 순환하는 계절의 변화와 싼 값에 사버린 오감의 즐거움이 하루 종일 온몸에 대지의 활기찬 기운을 불어 넣어준 멋진 하루는 호남 주유의 좋은 추억을 남긴 채 그렇게 저물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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