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지나간 공룡능선
산행지 : 설악동-마등령-공룡능선-천불동 산행일 : 2006년 7월 29일 날 씨 : 흐리고 갬 동 행 : 바람과 구름
04:40 : 설악동 05:20 ; 비선대 05:50 : 금강굴 이정표 07:25 : 마등령 1km 전방, 샘터 08:00 : 마등령 12:14 : 무너미 고개 13:50 : 양폭산장 15:50 : 비선대 17:00 : 설악동
속초가는 길
비는 잠잠하다가도 가끔 발작하듯 퍼부어 댄다. 진천을 지나가는 중부고속도로에서 간담이 서늘하다. 도로 바로 아래 까지 시뻘건 황토물이 넘실거리고 집들은 바쯤 잠겨 있다. 우울한 하늘 빛 아래 TV화면으로가 아니라 실제 내 눈 앞에 펼쳐진 수해의 현장은 알지 못할 공포 를 몰고 온다. 서행하는 차량들에서 이탈해 갓길에 주차하고 사진 몇 장 찍으려는 충동도 잠시 있었지만 두려움이 더 가까이 있었다.
2006년 7월 28일 오늘은 금요일 회사 일을 마치고 나는 강원도 속초로 가고 있다. 경기 강원 일원의 호우 경보가 피서철의 강원도 길을 한산하게 하고 있다.
지난번 장마 때 평창 외딴마을의 86세 할아버지는 팔십평생 처음 당하는 물난리라고 했다. 산간 마을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수년 전 첫째 아들을 잃어버린 그 돌다리 위에서 다시 급류에 휩쓸려 가는 둘째 아들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아야 했던 참담한 모정은 망연자실 했다. 흘림골은 폐허가 되었고 한계령 도로는 폭격을 맞은 것처럼 여기 저기 끊어 지고 토사에 함몰되어 쑥대 밭으로 변했다. 고통의 눈물과 장탄식이 뒤덮고 있는 하늘 위로 다시 폭우가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유일한 청정지역으로 남을 것이라 던 강원도 산불에, 물난리에, 폭설에…. 한국의 마지막 허파 강원도는 해마다 이제 재난 1순위 지역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누군가 백두대간 대관령과 미시령에 구멍이 뚫려서 그렇다고 했고 누군가는 인간에 대한 대자연의 보복이라고 했다.
비극은 자연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데 있다. 환경을 훼손한 사람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산하에 기대어 자연에 순종하는 소박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 조차 자연은 예외를 두지 않는다. 아니 가진 것 없는 그들에게 더 많은 책임을 강요하고 있다.
저번 장마에도 불구하고 7월 23일부터 공룡능선과 천불동을 개방한다고 해서 그나마 훼손이 심각한 것 같지 않아 다행이라 했는데 내일까지 비가 온다면 통제가 불가피해 보인다. 어쨌든 두 번의 장마비가 휩쓸고 간 공룡과 천불동의 건재함을 내 눈으로 꼭 확인해 보고 싶었다.
콘도에서
밤 11시쯤 속초 콘도에 도착했다. 동생 가족들이 미리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다. 오랫만의 반가운 만남에 이러저러한 이야기 꽃을 피우고 조카들의 재롱도 보다가 새벽 1시쯤 자리에 먼저 들었다. 알람은 세시 30분에 맞추었다.
2시간 30분의 취침이 순식간에 지나고 아직 사태파악도 되지 않은 머리 위로 핸드폰 알람이 운다. 모두들 잠들었는지 거실은 컴컴하고 조용하다. 덜그럭거림을 조심하면서 라면을 하나 끓이고 햇반까지 곁들여 때이른 조찬을 마무리한다. 너무 이르지만 새벽산행에 아침 먹을 데라곤 없고 비가 오더라도 산행을 강행 할 생각이니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비몽사몽 속에서도 입맛은 살아 있으니 주행거리와 함께 진화를 거듭하는 마이 에피타이트는 거친 여행 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인 셈이다..
콘도 밖에 비는 내리지 않는다. 시원한 강원도 공기가 폐부를 찌른다. 하늘엔 별마저 초롱 거린다. “이런 날씨 까지는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이번 비에 공룡능선 훼손은 확인하지 못했을 테고 이미 등산로 개방은 공지가 된 사항이니 비가 오지 않는 오늘 출입통제의 명분은 없으리라
설악동에서
4시 반쯤 도착한 소공원 주차장에는 2대의 차량이 주차되어 있다. 차량 안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사람들이 잠들어 있는 한 대의 차와 깨어 있는 또 다른 차. 무언가 조짐이 이상하다.
이야기의 골자는 산속의 기상은 아직 예측불허고 관리공단 직원이 나와야 개방여부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한참을 실갱이를 했지만 허사였다. 만에 하나 사고가 나면 자기들이 모두 책임을 져야 하니 어쩔 수 없단다. 허기사 그들도 그들의 책임과 임무가 있을 터라 내 주장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멀리 대전에서 설악산 보러 왔는데 지금 가서 잠을 잘 수도 없고 신흥사라도 돌아보고 나오겠다고 했다. 관리인은 마지 못해 매표를 하고 배낭을 맡기고 가라고 한다. 신흥사를 돌아 보는데 주차비에다 웬 매표? 어쨌든 그건 비무장으로 공룡을 타라는 잔인한 주문인데….
별다른 묘수가 없다. 나는 떡한 봉지와 카메라 그리고 1회용 우비와 헤드랜턴만 챙기고 배낭은 차에다 실어 놓은 채 그들의 배웅을 받으며 혼자 소공원 어둠 속으로 스며 들었다. “구경하시고 곧바로 나오세요”하는 말에 작은 소리만 어둠에 남긴다. “입장권 낸 만큼은 구경하고 와야지요” 새벽 4시 40분
혼자 가는 길
나는 바람의 냄새를 맡을 줄 안다. 비를 몰고 오는 바람은 독특한 향기를 가지고 있다. 귀연의 백운봉님의 기상도 분석에 의거한 과학적 근거 만은 못 하겠지만 오랜 세월 들개처럼 산야를 종횡하면서 체득된 원시의 오감도 특정지역에서는 바이메탈처럼 정교하게 작동한다. 장마기간 주말마다 장거리 산을 다녔지만 운이 좋았는지 금수산을 제외하고는 비를 별로 맞지 않았는데 오늘도 날씨로 보아 비 맞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어쨋거나 혼자 떡 덩이 하나로 공룡을 타야 한다. 그래도 비가 온 후라 마등령 까지 오름 길에 2군데 청수가 쏟아 질 테니 물 걱정은 없는 셈이다.
아직 밝지 않은 날에 좌정하고 계신 부처님께 삼배를 드렸다. “ 혼자 가는 길을 인도 하소서”
와선대 상점 진열대에 보시용인지 막걸리 세 통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물병이 필요한 터라 한 병을 집어 들었다. 막걸리 맛이 좋으면 내려오는 길에 들러 술 한잔 치고 가리라…
비선대에서 철 다리를 오르자 육중한 철문이 잠겨 있다. 전광판에는 강원 일원 호우경보로 입산을 통제한 다는 시뻘건 글씨가 반복해 서 디스플레이 된다. “사람 기 죽이는 것도 가지가지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 나는 어둠의 등을 타고 철문을 넘는다. 마등령 오름길 해마다 거르지 않고 한 두 번씩은 지나치는 마등령 등산로는 훤히 눈앞에 그려진다.
아직 흐린 날씨에 가끔 새벽바람이 살랑이고 있으니 등산하기엔 좋은 날씨다. 금강굴 이정표를 스쳐 지나고 울산바위가 보이는 능선에서 나무 등걸에 걸 터 앉아 목을 축이려 막걸리 뚜껑을 여니 고약한 냄새가 등천을 한다. 막걸리가 썩은게 아니라 물을 담았던 모양인지 하수도 썩은 냄새가 났다. “고약한 주인장 같으니라고…” 미리 알았으면 비워버리고 빈 통을 들고 다녔을 텐데 막걸리 호리병 하나 고의춤에 차고 풍경놀이 가는 한량 기분 한 번 내보려다가 코가 들리는 줄 알았다. 내용물을 모두 비워 내도 썩은 물이 닿은 손이며 통 안에서 꾸리한 역겨운 냄새가 가시지 않는다. 그래도 물 담은 통은 필요한 터라 버리지 못하고 오름 길에 황토를 잔뜩 넣었다.
앞 산의 기암 봉우리들이 보이는 바위에서 잠시 휴식한다. 낮게 깔린 구름사이로 설악의 새벽은 그렇게 조용히 깨어나고 있다.
아주 오래 전 처음 공룡의 등줄기를 타던 날은 가을이 깊어가는 날이었다. 한계령 바람에 비처럼 내리던 노란 단풍의 낭만으로만 기억되었던 설악의 가을은 거대한 공룡의 전설을 남기고 작은 가슴을 충격과 전율로 채워 버렸다. 그곳은 신선의 나라였고 미답의 별천지였다. 설악 대청의 해돋이를 만나고 그 거친 길을 오르내리며 뜨거운 호흡과 한숨이 번갈아 나왔던 그 날의 기억은 유물처럼 남았다. 지난 시절의 영광을 증거하고 사라지지 않는 불멸의 영혼을 간직한 유물 그건 지리산의 그리움처럼 가을이면 한 번씩 도지는 역병 같은 것이었다.
푸른 빛이 감도는 바다로부터 푸른 새벽이 달려와 바닷바람과 비에 서늘해진 설악의 청명한 공기를 쏟아 놓는다. 멀리 구름아래 바다가 보다가 보이고 엷은 여명이 뜬다. 공룡은 이제 나무 같은 친구였다.. 그 자리에 서서 세상으로 떠난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올 날을 기다리는 나무 같은 친구 옛 친구와 하얗게 밤을 새우며 뒹굴고 나면 솜처럼 나른해 졌고 그 수려한 산수의 정기는 내 가슴으로 북받쳐 올랐다.. 나는 다시 거친 세상을 대할 의욕과 용기가 충만해진 채 일상으로 돌아 왔다. 오늘은 그 친구가 걱정되어 내가 달려 가고 있다.
마등령오름길 풍경들
비가 많이 오긴 왔는지 기암 봉우리에서 폭포 물줄기가 떨어지고 있다. 폭우가 빚어낸 폭포 마등령 오름 길에 처음 보는 장관이다.
마등령오름길 폭포
고도를 높여가자 자욱한 안개가 흐른다. 갈증이 날 때쯤 물소리가 났다. 평소 물길이 말랐던 고랑 길을 따라 차가운 물이 세차게 흐르고 있다. 황토가 들어 있는 병에 물을 담아 부패의 악취를 씻어 내고 안개와 이슬을 담아 흐르는 공룡의 눈물을 마신다.
마등령에 올라서며 바라 본 풍경
마등령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새벽 길을 걸어 마등령 바위에 다시 섰다. 항상 한계령이나 오색에서 대청봉을 거쳐 마등령으로 내려서다 보니 깨어나는 새벽바다를 바라보면서 마등령에 올라선 것도 꽤 오랜만이다. 백두대간 종주의 그 날처럼 계곡에는 자욱한 산 안개만 무심히 흐른다. 새벽안개가 굵은 땀이 흐르던 내 몸을 축축히 적시던 날 마등령 이 바위 위에서 그 차가운 안개 바람을 맞았었다. 휘몰아쳐 가는 안개 사이로 언뜻언뜻 드러나는 계곡이 몽환의 신비감을 더해 주고 수림의 은은한 푸른 빛이 솟구치는 바람을 타고 가슴으로 들어 온다. 한참 동안 바위에 앉아 변화무쌍한 자연의 화폭에 넋을 놓고 있는데 마치 설악 신령님의 조화인 듯 태양이 구름 위로 얼굴을 내밀고 찬란한 빛이 계곡 과 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눈부신 맑은 아침 비에 씻기고 투명한 바람에 푸르름이 날리는 맑은 아침은 그렇게 장엄하게 열렸다. 그 것은 나 혼자만을 위한 대자연의 특별공연 이었다.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고 계곡이 드러나는가 싶더니 사진을 찍고 나자 자욱한 운무가 다시 휘몰아쳐 계곡을 뒤 덮어 버렸다 산신령님은 내가 왔음을 알고 계시는 구나
마등령 풍경
공룡능선 에서
모래 결이 곱게 일어나 있고 그 위에 내 발자욱 하나 파헤쳐진 등로에는 다녀간 멧돼지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름 모를 야생화는 흐드러지게 피었고 공룡나라엔 아무도 없다. 구름 위의 산책 길 맑게 씻기운 푸른 동해 바다를 바라보며 또 속절없이 부풀어 오른 채 공룡의 잔등을 차고 푸른 하늘로 오른다. 안개가 나뭇가지에 이슬로 앉고 그 이슬을 내 몸으로 털어내며 심산의 가슴으로 가는 길. 바람은 내가 몸으로 받아낸 이슬을 거두어 간다. 공룡의 눈물일지도 몰랐다. 그 눈물을 세월이 거두어 갈까? 상처를 가리지도 못한 채 아무렇지 않은 듯 서 있는 공룡의 모습에 목멘 서러움이 인다. 바위 아래 빈약한 흙마저 씻겨 내리고 나무들은 길 섶에서 뿌리를 드러낸 아픔에 괴로워 한다. 이렇게 맑고 고운 날인데 사람들의 발아래서 더 처참해 질 것 같은 불완전한 공룡의 길이 너무 안스럽다. 흙을 잃어 자리를 찾지 못한 돌들은 더 깊게 파인 황량한 계곡으로 언제라도 굴러 내리고 황폐한 길 위에서 나무들은 고사를 기다리고 있다. 중국의 장가계나 황산 생각이 났다. 그들이 인간을 위해 깔아 놓은 돌길은 자연과 인간의 경계선이었고 공존의 길이었다. 그 경계선 밖의 자연은 인간들과 격리된 채 스스로의 질서에 따라 사멸하고 생존해 간다..
공룡능선 풍경1
공룡에서 자연의 구조조정에 내몰린 건 인간이 만들어 놓은 길과 그 길 가까이에 살던 초목들이었다. 인간의 길을 만들지 않으면 자연과 인간은 함께 고통을 받을 것 같았다. 인간을 싫어하는 자연과 자연으로 난 문이 닫혀 버린 후에 인간이 받아야 할 좌절과 실망들... 해결 가능한 타협점이라고는 휴식년제와 제대로 된 인간의 길을 만드는 것 외에 대안이 없어 보인다.
오락가락 하는 운무 사이 깨끗한 시야로 드러나는 공룡나라 풍광은 뿌리 채 파헤쳐진 처절한 상처를 보듬고도 신비롭고 장엄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수마가 쓸고 간 다음 날 혼자만의 여행길에서 가장 멋진 공룡의 하늘과 산을 만났다.
세상은 이대로 충분하다. 아름다운 세상은 내 눈 앞에 있고 그 아름다움에 흔들릴 수 있는 가슴이 있다. 내가 떠나고 싶었고 가지 말라던 먼 길을 지나 우연 같은 필연으로 대자연의 향연 한 가운데 내가 서 있다. 그 황홀한 풍경은 필설의 의미를 무색하게 하고. 카메라의 눈으로 잡아두려는 욕심을 부질 없게 만든다. 봉우리에 앉아 설악 세상을 굽어 보는 것 만으로도 푸른색으로 하늘과 동화되어 있는 바다를 바라 보는 것 만으로도 그저 가슴 벅찬 감동이 구름처럼 밀려온다 세상에 단 하나 뿐인 내가 단 하나 뿐인 이 풍경을 찾아낸 것이다. 오늘은 세상 아무도 함께 나누지 못할 나만을 위한 풍경이었다.
공룡능선 풍경2
제멋에 산다? 세상은 결코 나를 중심으로 돌지 않지만 우주의 중심에는 여전히 내가 있다. 내가 선 이 자리가 세상의 축이고 내가 우주의 중심이다. 우주란 나를 중심으로 완성되는 피사체일 뿐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착각과 이기의 진수는 깨달음으로서의 지혜와 자비가 덕목인 불가의 진리와 닿아 있다. “天上天下 唯我獨尊” 지극한 자아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그 말의 의미란 우주의 중심이 나라는 불교철학의 진수 아닌가? 나의 즐거움이 최고선이고 나의 죽음이 우주의 몰락일 뿐이다. 세상에서 자장 신뢰성 있는 통계는 우리가 머지 않아 죽을 것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한다. 죽음에 이르기 까지 열정과 의욕이 사그러지고 후들거리는 다리로 살아 내야 할 시간에 관한 보편적인 통계도 있다. 먼 옛날 공룡의 잔등을 타고 내리던 많은 사람들이 주토를 밟았듯 사진으로만 공룡을 바라보아야 할 날이 더 빨리 올지도 모른다. 우리가 신명나게 춤 출 수 있는 시간은 짧고 춤은 출 수 있을 때 추어야 한다.
내가 찾아 낸 수 많은 아름다움들은 또 다른 여행길의 누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자연으로 나 있는 수 많은 문에서 본능적으로 감각의 촉수를 뻗어 아름다움을 탐침해 내는 탁월한 감각을 키웠다. 내 기억에 내장된 아름다움의 DB는 감동에 반응하는 세포와 생체레이더를 진화시켰다.
공룡능선 풍경3
“산행로 아님”의 팻말은 비경으로 인도하는 안내판이었다. 가끔은 관람불가 영화처럼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풍경을 유보하고 있다. 오를 수 있는 높은 곳까지 올라 햋빛이 구름 사이로 들락날락 하는 고원의 암봉에 누웠다. 내 발아래 내려다 보이는 병풍의 기암과 푸른 바다의 눈부신 풍경에 가슴이 저려온다. 내 목을 휘 감고 지나는 바람 길에서 어지럽게 흩어지는 운무 멀리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름들이 흐르는 모습을 팔베게를하고 바위등걸에 비스듬히 누운 채 바라본다. 웃음이 난다. 나 혼자를 위한 천상의 정원에 살아 있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만나는 댓가는 너무도 저렴하다. 떡 한덩이와 계곡을 흐르는 물 그리고 빈 마음
꽁지 빠져라 대전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오늘 싱그런 초록빛 고원에서 실바람을 목에 걸고 허허롭게 지나는 길 시간에 쫓길 일도 마음이 바삐 갈 일도 없다. 비무장으로 오를 수 있는 바위란 바위는 모두 올라 쉬어 쉬어 가며 눈부신 날의 황홀한 풍경에 젖는다. 자연! 그 살아 가는 날의 기쁨과 감동 3시간 30분 걸리던 공룡능선은 풍경과 경개에 취해 1시간 반이나 더 걸렸다. 나는 가장 아름다운 공룡을 만났고 단 사람도 만나지 못한 공룡을 처음 보았다
공룡능선 풍경4
떠나는 것이 견딜 수 없는 슬픔인 시절이 있었다. 네온이 명멸하는 도시의 숲 속에서 그 무수한 사람들 사이에서 떠밀린 외로움을 보았다.
산 속에서 떠나고 보내는 것들의 자연스런 이별을 보았다. 계절은 바뀌고 바람은 흐른다. 계곡 웅덩이의 물은 오래 전 그 물이 아니다. 늘 푸른 채 거기 고여 있는 물은 무심히 흐르고 떠나는 물이다. 꽃은 피어나 지고 신록은 낙엽으로 간다. 나무가 죽고 새로운 관목이 무성해 지 듯 산을 오고 떠나는 사람들은 바뀌어 간다. 그 수많은 변화를 묵묵히 받아들이는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산에서 모든 건 변하고 새로워진다. 거기엔 안타까움도 미련도 없다. 단지 순환하는 대 자연의 질서와 순리가 있을 뿐이었다. 영원히 사는 건 바위 뿐 산은 거기 있고 사람들과 계절과 바람과 나무와 물이 바뀌어 간다.
혼자 떠나는 여행길이 고독하지 않고 밤바다가 쓸쓸하지 않음을 알던 때부터 어둠의 빗장을 열고 푸른새벽이 고원의 능선을 달려와 붉은 태양을 만나는 모습을 보고 난 후로 살아 있는 모든 것과의 이별은 익숙한 것이었고 세상의 슬픔과 아픔이란 스스로 상처 난 가슴이 만들어 내는 쓰라린 균열일 뿐이었다. 구름이 피어나고 스러지듯 골바람이 산허리를 돌아 내 곁을 스쳐가 듯 인생은 그저 무심하고 아름답게 흐르는 거다.
내가 산이었다. 자연속에서 아무렇지 않게 외로움을 보내는 내가 산이었다.
공룡능선 풍경5
천불동 물길 따라 신선봉에서 바라본 공용의 잔상과 감동의 여운이 사라지기도 전에 무너미 고개에 내려섰다. 계곡의 격랑에 파손된 철계단을 바라보며 심란해 진다. “얼마나 많은 등산로가 훼손되었을까?”
물소리 요란한 천불동 계곡을 내려 간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있어 물어보니 입산통제가 풀렸단다. “몇 시쯤 해제되었는데 공룡에서는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을까?”
길에서 보이지 않는 폭포수처럼 흘러 내리는 계곡에서 몸을 담근다. 알탕이란 산꾼들에게 성스런 의식 같은 거다. 미망과 집착 그리고 욕심을 비워내고 육체와 정신을 정화하는 의식 이제 뜨거워진 태양아래서도 천불동 계곡물은 너무 차가웠다. 흐린 날의 계곡물 한가운데 한참 동안 누워 있으면 오히려 따뜻함을 느꼈는데 천불동 계곡물의 소스라치는 차가움은 오랫동안 물속에 머물게 내버려 주질 않는다. 공룡의 감동과 웅장한 잔상을 남겨둔 채 세속의 진폐를 그렇게 씻어 냈다. 올 여름은 30대처럼 피부가 젊어질지도 모를 일이다. 천하절경을 아우르며 산의 정기를 받아내고 심산유곡의 세례를 받았으니… 지리산 뱀사골계곡을 시작으로 계룡황적능선, 금수산 얼음골, 속리산계곡, 군자산 쌍곡계곡, 그리고 천불동계곡 까지….
뜨거운 태양빛 아래서 땀 흘리고 나면 시원해서 좋고 심산의 자욱한 운무에 휩싸일 때면 선녀라도 하강할 것 같아서 좋다. 고원에서 장대 비를 맞고 난 후엔 후련해서 좋고 솜처럼 지쳐있는 때라면 흐르는 물에 몸을 내 맡길 수 있어 좋다. 산이 있고 물이 있으면 계곡수에 정좌하며 여름날을 보낸다. 그것은 무릉도원에 노니는 무릉객의 유별난 여름나기 였다. 천 개의 불상이 도열한 수려한 풍광의 계곡에 홀로 앉아 눈부신 태양 빛 아래서 탕탕히 흐르는 계곡의 청수로 사바세상의 냄새를 지웠으니 오늘은 내가 천불동 신선이 아닌가?
물이 불은 천불동 계곡과 푸른 하늘을 이고 선 기암들은 감동이었다. 여유롭게 물길을 따라 흘러가며 겁을 흘러내린 태고의 신비를 바라본다. 수 많은 사람들에게 주었을 영감과 감동들 우리 후손들이 오랜 세월 기대어 위안받을 걸출한 대자연 중 하나인 천불동이 훼손된다면 국가적인 손실이고 비극일 것이다. 아랫 쪽에서는 계곡이 점점 넓어져서 인지 별다른 훼손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양폭산장에서 떠내려간 토사를 다시 북돋우느라 질통을 지고 비지 땀을 흘리는 젊은이를 몇 명 만났다. 양폭산장에는 여동생이 매제와 아이들을 데리고 마중 나와 있었다.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초딩이와 중딩이 조카를 데리고…. 바람 좋은 날 오랜만에 이러저러한 이야기 함께 나누며 천불동 계곡 물길을 따라 내려간다. 가끔 물가에 앉아 여유로운 탁족을 즐기며 천하 절경 천불동의 절경에 경탄해 마지 않으며 그렇게 유유자적하게 여름 계곡을 흘러 내렸다. 태양은 이제 본격적으로 구름 밖으로 나와 계곡물 위에서 눈부시게 부서진다.
신흥사에서 부처님께 다시 삼배를 올린다. “혼자 가는 길을 무사히 지켜 주시고 절경을 허락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선대에서 동생가족들과 늦은 점심을 하고 콘도에 돌아와 사우나에서 여독을 풀고 나서 펄펄 뒤는 싱싱한 횟감을 안주로 술 한잔 치니 동해가 내 가슴으로 뛰어든다
산에서는 고요한 섬이 되었다. 사유의 숲을 거닐며 명상의 기쁨에 다가 간다. 수행자의 근엄한 얼굴로 내면의 소리와 자연의 교훈에 귀 기울이며 흔들리지 않는 평화에 가까이 간다. 나는 행복하다. 그 아름다운 길을 걸어 왔으니… 또 나는 행복할 것이다. 세상에 찾아 갈 아름다움들이 무수히 남아 있으니 …. 살아 있음의 축복을 가슴 깊이 느끼며 어느 날 다시 인적 없는 산 길을 걸어 가겠다. 내가 걸어간 만큼 내 삶이 깊어지고 내 가슴이 넓어짐을 알고 있기에… 산이 거기 있기에….
대자연의 구조조정
퇴직프로그램1
퇴직프로그램2
체념
흉흉한 민심
인간의 길 -구조조정 1순위
자연과 자연 사이
버티기
일괄사표
사정의 칼날
이제 고마해라 고마해! 많이 묵었다 아이가
권고사직
고립된 노조
임원 버티기
고래 심줄
배째라 배째
집단 퇴출
나 떨고 있니?
해고
강제진압1
강제진압2
물가의 아이
가슴 아픈 공룡의 모습입니다. 하루 빨리 상처가 아물어 수 많은 사람들에게 다시 감동과 영감을 가져다 줄 수 있기를 바라며 장마가 장마가 지나간 날의 공룡 여행길을 마무리 합니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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