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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후감

그섬에 내가 있었네 - 두모악 갤러리 ,김영갑 (무릉객)

 

 

 

 

 

비오는 날 도서관엘 갔다.

산을 오르지 못해 풀 숲을 거닐 수 없는 날은 차라리 서림으로 간다.

내 사는 갈마동 아파트 옆 갈마 도서관

 

도서관 자료실이 참 좋다.

옛날 학창시절 생각도 나고

그 쿰쿰한 책 냄새며 진지한 분위기가 좋다.

아무래도 집에서 책을 잡으면 이것저것 산만해지고

또 수 많은 장서들 중에서 내키는 대로 한 권을 뽑아 읽는 재미도 없다.

 

요즘은 새로운 책들도 많이 들어와 있다.

그래도 낡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서가를 기웃거린다.

옛날 만화방에서 손 때가 꾀죄죄하게 묻은 만화책이 훨씬 재미 있는

경우가 많았다.

 

세로로 꼽혀 있는 책의 제목이 좋았다.

넘긴 첫 장의 사진과 글도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비 오는 날

한적한 섬의 상념에 잠겨보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그리고 몇 시간 이면 다 읽어 볼 수 있을 것 같구

 

 

누군가 글을 쓰고 책을 낸다는 것

그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그것이 자전적 이야기이던 일상의 수필이던

거기엔 그의 삶의 철학과 혼이 담겨 진다.

그것이 대중의 외면을 받았을 지라도

그것이 그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라면

우리는 그 속에서 무언가를 배우고 느낀다.

 

우연이 아닐지 몰랐다.

들어본 적도 없고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

그 책을 내가 읽게 된 것도

그는 나와 동류의 인간 같았다.

아니 나보다 훨씬 처절한 자연주의자고 탐미주의자였다.

나는 나를 즐겨 들개라 부르는데

그에게서 하이에나의 부패한 입냄새가 났다.

집착과 아집으로 바보처럼 병들어

세상의 아름다운 순간을 누리며 바라보지 못하는

그에게서 연민이 느껴졌다.

그의 고단하고 힘겨운 인생이 궁상맞아 보였는데

그는 삶을 후회하는 것 같지 않았다.

 

김영갑

제주도의 자연에 미쳐 제주도와 결혼 한 사람

스쳐지나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곁에 붙잡아 두려 했던 사람

몸을 돌보지 않는 무모함으로 세속을 끊고 자연을 추종하다

병들어 간 사람

병든 자신과 함께 사라져갈 제주의 아름다움을 남기려

두모악 갤러리를 만들어 마지막 예술혼을 불태우고 있는 어리석은 남자

 

 

그렇게 까지 자신을 격리하고 고립시키면서

예술을 추구하다 루게릭 병이라는 불치의 병을 얻어 병들고 마는 그는

내 기준에서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사람은 죽는 날 까지 건강해야 하고 자신의 우주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하고

철저히 자신을 위한 시간과 삶을 즐겨야 한다.

그는 자신의 삶의 의미와 즐거움을 일찍부터 찾았지만 그것을 위해 결혼도 포기하고

건강도 포기했다.

스스로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을 섬에 고립시킨 것처럼 자신도 섬에 격리시켰다.

 

 

 

 

책을 읽고 그가 남긴 것들을 한번 정리해 보고 싶었다.

항상 게으르기에 멀찌기 밀쳐 두었다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잔상에 남는 것이 있어 뒤 늦게 그 일을 해보고자 했다.

책에서 그가 한 말들을 더듬어 그의 세상을 살펴본다.

 

아름다운 세상을 아름다운 삶을 여한 없이 보고 느꼈다.

이제 그 아름다움이 내 영혼을 평화롭게 해 줄 거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간직한 지금

나의 하루는 평화롭다.

 

좋아 하는 일을 하면서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마음으로 세상을 느끼고 삶을 판단한다.

다른 생각으로 다른 이상을 위해 살아가며 다른 것을 꿈꾼다.

 

지금까지 먹고 입고 자는 것으로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살아 왔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세가지 즐거움을 모두 누리는 사람들이 느끼지 못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총각인 작가는

선이 부드럽고 볼륨이 풍만한 오름들에서 오르가즘을 느낀다.

이상하다.

나는 대자연의 내밀한 아름다움의 무한함과 심오함을 알고 나서 언제나 방랑을 꿈꿔 왔다.

더 깊고 심오한 곳에 숨어 있는 아름다움을 찾아서.

더 먼 곳과 더 외진 곳

사람의 발길로부터 고립된 오지의 비경을 꿈꾸고 안달했다.

그는 고립된 섬의 비슷한 풍경들에서 극적인 희열과 조화를 느끼고 그 미세한 변화를 앵글에 담았다.

내가 보기에 좀 답답한 그의 습성의 해답은 다음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바람 없는 맑은 날 바라본 바다와 맑고 파도가 거친 날 바라보는 바다가 똑같을 수는 없다.

물때에 따라서도 바다의 느낌은 달라진다.

똑 같은 시간 똑 같은 장소에서 바다를 보아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같은 곳을 수십 번 수백 번 반복해서 찾아 가지만 새로움으로 다가 옵니다.

같은 곳을 삼백예순 다섯 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찾아도 갈 때마다 새롭기만 합니다.

자연은 늘 사람을 설레이게 하는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으로 충만해 있습니다.

나는 늘 긴장 속에서 자연 속을 맴돕니다.

자연에 묻혀 지내는 동안에는 아무리 작은 욕심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내가 심산의 대자연에서 항상 느껴왔고 늘 내 답사 노트에서 반복적으로 되 뇌였던 말이다.

그의 자연관과 일맥을 같이 하고 있음에서 동질의 야생이 느껴지지만 제한된 카테고리를 벗어나지

 않으려는 집착과 칩거는 환기되지 않는 토굴의 곰팡내를 풍긴다.   

중산간에 매혹된 그의 탐미와 자연에 대한 사랑은 중독처럼 처절하다

 

힘든 육체노동을 하면서도 자연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여럿 만났다.

약초를 찾아 떠나는 이들, 토굴 속에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도 자연을 벗해 늙어가는 사람들 이었다.

도회지 출신이면서 외딴섬에 묻혀 지내는 이들도 여럿 만났다.

바다에서 산에서 문명을 멀리한 채 살아가는 그들의 진정을 나는 알았다.

바다에서 산에서 문명을 멀리한 채 살아가는 살아 가는 그들의 인정을 나는 알았다.

불편해도 그렇게들 살고 있구나 !

산사람들이 바닷사람들이 말하던 살맛이란 바로 그런 것 이었구나!

꿈속에서 몽정을 경험하듯 자연 속에서 오르가즘을 경험한다.

오르가즘을 경험한 사람은 자연을 떠나지 못한다.

이제는 도회지로 돌아갈 수 없다.

그런 것을 경험할 때 마다 점점 자연에 매혹된다.

눈으로 보아도 보이지 않고 귀로 들어도 들리지 않고 잡으려 해도 잡을 수 없는 것

형상도 없는데 사람을 황홀케 하는 그 무엇이 중산간 광활한 초원에 존재한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것은 사람을 황홀케 하는 그 무엇이다.

그것을 깨닫기 위해 나는 중산간을 떠나지 못한다.

 

나는 자연을 통해서 풍요로운 영혼과 빛나는 영감을 얻는다.

초원과 오름과 바다를 홀로 거닐면 나의 영혼과 기억 그리고 자연이 하나가 되어 나의 의식속으로

스며든다.

그럴 때면 훌륭한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간절한 바람도 사라진다.

노인이 말했다.

산이 요사스러워서 사람을 홀리는 법이여

한번 홀리게 되면 절대 산을 떠나지 못해

산에 맛붙이고 인생 망하지 않은 놈 못 봤어

 

철저하게 고립되고 격리된 채 자연의 아름다움을 찾아 헤메던 그에게도 어머님은 항상 가슴시린

리움이었다.

격리된 자연과 함께 가슴에 들여 놓은 유일한 사람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대하는 참담함과 자신에게 드리운 어머님의 그림자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카네이션 한번 달아드리지 못하고 다음 다음 미루기만 하다 떠나 보낸 어머니였다.

맥이 풀렸다.

허무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기운도 없었다.

이틀 동안 넋이 나가 있었다.

 

어머니의 삶은 나의 안경이다.

나는 어머님의 삶을 통해 세상을 들여다 보고 삶을 배운다.

삶의 고비고비마다 어머니의 삶을 통해 기운을 얻는다.

살아생전 어머니는 나의 육신을 키워주었고 돌아가신 뒤에는 나의 영혼을 살찌웠다.

어머니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 삶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꼭 보여 주고 싶었다.

 

그의 예술관 역시 다른 기인들처럼 독특하다.

작가의 고집과 예술혼을 불러내는 열정으로 넘쳐난다.

 

 본다는 행위에도 육감이 동원되어야 한다.

만져보고 느껴보고 들어보고 맡아보고 쳐다보고 난 후의 종합적인 감동이어야 한다.

일출과 일몰사진을 통해 내가 감상자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것은 둥근 해가 떠오르고 넘어가는

과정의  풍경뿐 아니라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과 그 감동까지 함께 나누고 싶다.

그래서 난 사진에 제목 붙이는 것을 거부한다.

 

전시회를 열 때도 전체 제목만을 고집한다.

사진마다 제목을 붙임으로써 감상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설명을 부탁해오면 단호히 거절한다.

설명할 수 있다면 글로 표현했을 것이다.

설명할 수 없기에 사진으로 표현한 것이다.

 

시인은 단어 하나로 몇 달을 아파하고

화가는 선 하나로 몇 번을 아파한다.

그런데도 사라지는 셔터 한 번을 누르기 위해 몇 일을 기다리다 이내 운이 나쁘다고 투덜거린다.

 

아름다움은 어디에도 존재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름다운 곳을 찾아 해외로 나간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경치가 좋은 곳을 찾아가면 좋은 사진을 찍게 될 확률이 많다.

하지만 어떤 바다나 강에도 큰 고기는 있게 마련이다.

운이 좋아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행운은 사진가 스스로가 준비해서 맞는 것이다.

 

남이 인정할 때 까지가 아니라 나 자신이 만족할 때 까지 몰입해보자

누구도 이야기 한 적이 없는 아름다움을 두 눈으로 확인 해보자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신비로움을 온 몸으로 느껴보자

 

나의 사진에 붙잡아 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고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비,안개 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삽시간의 황홀이다.

 

그가 보는 마라도의 견해 자연의 교향악

마라도에 가면 세상이 보인다.

작은 섬 안에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있다.

종교,철학,문학,회화,음악,무용,모두다 있다.

갯바위 파도로 시를 읽어주고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노래하며 억새는 춤추고 하늘과 바다는

그림을 그린다.

수평선은 고독과 자유를 강의하고 구름은 삶의 허무를 보여준다.

마라도에는 특별한 볼거리가 없다.

마라도는 느낌의 섬이다.

어디서 이런 절미한 세상을 만나겠는가?

 

그의 자연관

사람은 땅을 떠나 행복할 수 없다.

자연은 말 없이 가르친다.

부드러운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

바위틈에 솟아나는 샘물을 보아라

굳은 땅과 딱딱한 껍질을 뚫고 여린 새싹이 돋아나는 것을 보아라

살아 꿈틀거리는 망망대해를 보아라

빗방울이 모여 개울이 되고 강이 되고 바다가 된다

자연이 들려주는 소식에 귀 기울이면 삶이 보이고 세상이 보이고 내가 보인다.

이제 눈을 감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라

 

 

 

 

그는 한라산의 옛이름을 따서 두모악이라는 갤러리를 만들었다.

그는 갤러리를 통해서 그의 혼을 뿌리 채 흔들었던 제주의 아름다움이 모두를 감동시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의 병이 깊어졌다.

그는 갤러리를 찾아오는 손님을 맞으며 모든 치료를 거부한 채 제대로 된 두모악을 만들기 위해

마지막 그의 힘을 다 쏟고 있다

그리고 셧터를 누를 힘조차 없지만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녹아 없어진 팔다리 근육이 소생해 카메라를 들고 들로 산으로 자유롭게 떠돌 수 있을 것이다.

이 상태에서 더 나빠지지 않고 멈춰만 주어도 그 이상 바랄게 없다.

휠체어 신세만 면할 수 있어도 괜찮다.

 

나는 자연이 주는 메시지를 통해 영혼의 구원을 꿈꾸었다.

자연의 품에서 보고 느끼며 깨달으며 영혼의 자유를 꿈꾸었다.

이십 년 세월 동안 자연의 품에서 뒹굴어 가며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늘 이별의 준비를 하고 살아 왔지만 불행이 현실로 다가오자 어이가 없었다.

예상보다 빨리 다가온 불행에 슬픔을 느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황 했던 건 아니다.

그저 어안이 벙벙했을 뿐이었다.

 

그는 죽음 앞에서도 자연에 대한 집착과 믿음을 버리지 않았고 자연에 스스로를 던지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믿었다.

 

살다 보면 불현듯 찾아오는 슬픔,분노,두려움, 절망 그리고 힘든 상황을 극복해야 할 때마다 나는

자연에서 해답을 구했다.

그 속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을 통해 지혜를 얻었다.

아름다움을 통해 인간이 구원 받을 수 있다고 믿었다.

 

이십 년 동안 모아둔 많은 이야기들을 이제 하나 둘 꺼낼 준비가 되었다.

매서운 겨울 바람 속에 피어난 너도 바람꽃처럼 고통의 끝에서 무사히 봄을 맞을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두려움 없이 나아갈 것이다.

한겨울에 움트는 봄의 기운을 나는 보았다.

자연의 품 안에서 생활하는 동안 나는 온몸으로 보고 느꼈다.

자연에 대한 조화와 그 경이로움을

 

살고 싶다고 해서 살아가는 것도 아니요

죽고 싶다 해서 쉽사리 죽어지는 것도 아니다.

기적은 내 안에서 일어난다.

내 안에 있는 생명의 기운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사람의 능력 밖의 세상을 나는 믿는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책을 읽고 나서 그의 말을 정리하면서도 그가 죽었으리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메모해 놓은 그의 사상을 정리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두어 달이 걸린 것 같다.

단지 세시간일 뿐이었는데 밀쳐둔 그 기억을 다시 꺼내는데 너무 오래 걸린 것이다.

책을 잃고 난 후의 느낌과 저자의 사상을 정리해 본다는 것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다른 책을 잃고자 하는 충동이 더 강하거나 아니면 배낭을 둘러 메는데 더 안달한다.

그러다 산에서 감동을 먹으면 그 느낌을 정리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보내기 일쑤다.

그리고 모든 게 미처 정리되기 전에 나는 또 다른 일탈을 꿈꾼다.

뒤늦게 마음먹고 몇 시간 할애하면서 책의 내용을 정리하겠다는 시도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벌려 놓은 일을 시간에 쫓겨 엉성하기 이를데 없이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갑자기 그의 두모악이

금해졌다.

그리고 인터넷을 열어보다가 그가 떠났음을 알았다.

그가 떠난 지 벌써 1년이 훌쩍 지나가고 있었다.

살아가는 것의 허망함이라니.

 

 

 

 

 

그는 죽었다.

바보 같이

아름다운 감동과 전율과 함께 암의 고통을 느끼다

그렇게 스러져 갔다.

병을 사람의 힘으로 어쩔 수 있겠냐 만은

스스로 병을 얻기 위해 살아 온 날처럼

그는 미완의 꿈과 죽음의 평화를 얻었다.

그리고 이제 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혼이 담긴 사진을 보러 간다.

그가 죽고 나서

무슨 소용 있을까?

그가 사라진 세상에서 그의 사상이 사람들의 가슴에 한줄기 빛을 남긴들.

무슨 소용 있을까?

그가 남긴 빛과 영상의 아름다움은 죽은 자연 이거늘

남겨진 어느 찰라의 눈부신 아름다움도 누군가 만지고 느끼고 냄새 맡을 수 없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모방일 뿐이지 자연 그 자체가 아닌 것이다.

그것은 그가 살아 있어야 의미 있는 것들이었다.

그에게만 삶의 명징한 진리와 대자연의 황홀한 추억을 일깨울 수 있을 것이었다. 

 

그는 오래 전 이어도에 살았던 신선이었고 그래서 제주도에서 이어도를 찾고자 했는지도 몰랐다.

아니 그는 이어도를 보았는지도 모른다.

이어도를 보아서 신으로부터 버림 받은 건지도 모른다.

 

 

그 책은 내게 질문을 던진다.

내 생에 한 달이 남았으면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