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때
DMB에 몰입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수 십 년간 TV는 일정한 시간의 틀을 형성했고, 그 틀 안에 우리(시청자)가 구속되었다면, DMB는 이런
고정의 틀을 깨는 혁신적 미디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조레기베리라는 미디어학자가 모바일 미디어가 형성하는 시간상의 특성을 ‘시간의 밀도제고’와
‘이중시간의 창출’이라고 얘기했던가요. TV를 볼 수 없는 시간에 TV를 볼 수 있게 하고, 다른 일을 하면서도 TV를 시청할 수 있게 함으로써
멍하니 있어야 하는 죽은 시간을 살려내고, 잃어버린 시간은 되찾아주고, 중지되거나 빈 시간을 메워줄 수 있다는 DMB는 ‘미디어의
편재화(유비쿼터스 미디어)’의 맥락에서 흥미진진하였습니다. 흡사 1980년대 소니의 워크맨이 절대로 음악을 들을 수 없었던 이동구간(이를 테면
지하철)을 음악소비의 새로운 장(場)으로 변화시켰듯이 말입니다. TV의 개인적 소비에 따른 공간의 사유화(私有化)란 측면에서도 DMB는
사회문화적으로 탐구할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DMB의 특별한 가치와 잠재력에도 불구, 오늘날 모바일TV의 선구자로 한국에서 처음으로 상용화한 DMB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습니다.
저는
최근 위성DMB와 지상파DMB 사업자의 몇몇 임원들을 만났습니다. 이 분들은 모두 한국에서 DMB를 상용화하는 데 주춧돌을 놓으신 분들입니다만,
작금의 DMB 현실에 대해서는 이제 더 이상 어쩌지도 못하는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최근의
통계에 따르면, 이동통신 3사를 통해 보급된 위성DMB와 지상파DMB 단말기(휴대폰 겸용이 대다수)는 위성이 약 67만, 지상파가 약 43만
정도라고 합니다. 약 110만 명이 DMB 단말기를 보유한 셈입니다. 혹자는 ‘벌써 110만’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당초의 목표 대비 형편이
없는 실적입니다. SK텔레콤 계열 TU미디어가 사업자인 위성DMB는 올해 120만 가입자를 목표로 세웠습니다만, 이대로 가면 목표달성은 절대로
불가능해 보입니다. 지상파DMB 역시 최근의 보급 속도가 위성DMB를 앞질렀다고 하지만, 수익모델은 아직도 요원합니다.
먼저
지상파DMB의 얘기입니다.
모
지상파DMB 사업자의 대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번 달에 코바코(방송광고공사)에서 들어온 광고 수익이 1400만원이다. 최대한 쥐어짜고
있다. 살아남는 게 목표다. 이렇게 버티고 버텨야 한다. 죽을 쑤어서 개를 줄 수는 없지 않느냐.”
어렵게
사업권을 받아 사업을 벌여놓았다가 돈 만 잔뜩 쓰고 두 손 들고 나자빠지면, 결국 나중에 잘 됐을 때 지상파DMB의 온갖 과실을 다른 사람이
따먹는 게 아니냐. 그래서 본인은 오로지 생존에 사업의 목적을 두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직원들이 들으면 맥이 탁 풀리고, 시청자가 들으면
방송인의 자세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비(非)지상파 계열의 지상파DMB 사업에 투자한 사람들은 대체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수 억 원을 프로그램 조달과 자체제작 등에 쓴다는 또 다른 지상파DMB 사업자의 경우 한달에 겨우 기천만원에 불과한 광고수익에 지쳐
돈들이지 않고 편성시간을 때울 방법을 찾아 골몰하고 있습니다.
“하루
3시간도 좋고, 5시간도 좋다. 얼마든지 시간을 내줄 테니 그 시간을 어떤 콘텐츠라도 때워 달라”고 방송콘텐츠를 가진 다른 기업에 손을
내밉니다. 사실상 편성권한의 일부를 포기해서라도 생존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지상파DMB의
이런 어려움은 일찍이 예견됐던 일입니다. 무료서비스의 방송광고를 수익모델로 삼은 지상파DMB의 경우 단말기 보급대수가 500만은 넘어야
광고매체로서 의미가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500만명의 시청자를 확보할 때까지, 사업자들은 살아남기 위해 덜 먹고 덜 써야
합니다. 다양한 콘텐츠의 제작과 제공, 시청자 복지는 부잣집 풍경소리일 뿐입니다.
지상파DMB
6개 사업자 가운데, KBS, MBC, SBS, YTN이야 본체의 규모가 어느 정도 되는데다 지상파DMB로 재전송할 콘텐츠가 풍부할 것이어서
어렵지만 그런대로 버텨볼 수 있겠지만, 비(非)지상파 사업자는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날이 계속되면서 뼈마디만 앙상한 말라깽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위성DMB의
경우도 형편이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지상파TV 프로그램의 재전송이 지상파TV 사업자들의 반대로 인해 허락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非)지상파
콘텐츠로 유료 가입자를 늘려 나가려니 힘에 부치고 돈도 많이 듭니다. 한때 외주 프로덕션들에 많은 돈을 쏟아 부으면서 자체 채널의 외주제작을
맡겨도 봤지만, 시청률은 보잘 것이 없었습니다. 시청자들은 그것이 관성적이든 아니든 지상파TV 콘텐츠를 찾았습니다.
사업자는
“보편적 서비스를 위해 제작한 방송프로그램을 위성DMB에만 못 틀게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하소연하고 읍소하지만, 늘 지상파3사에 치이는
방송위원회는 꿈적도 하지 않았습니다. 방송정책에서 외면당하니, 사업이 제대로 될 리가 없는 게 위성DMB의 현실입니다.
지상파든
위성이든, 모두가 불행해 보이는 지금의 상황은 도대체 누가 만들었을까요.
현재의
DMB는 상당부분 ‘정책실패’에서 비롯됐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방송권역(커버리지)과
채널 수에 차이가 있지만, 광고수익 모델의 무료서비스와 월정액 수신료 모델의 유료서비스를 동일 시장에서 경쟁시킨 정책이 과연 정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전국 가구의 80% 이상이 지상파TV를 유료방송(케이블TV와 위성방송)을 통해 보고 있는 현실에서, 지상파DMB를 무료로 제한한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일까요?
최근의
상황을 보면 한쪽(지상파DMB)은 다른 한쪽(위성DMB)이 시장에서 완전히 고꾸라지져 오로지 지상파DMB만의 세상이 올 때까지 시간을 보내자고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른 한쪽(위성DMB)은 “우리도 지상파를 틀게 해 달라”고 아우성치는 다른 한편으로 지상파DMB의 보급 확대를 최대한
저지하고자 필사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신규
매체의 등장으로 인해 국민들이 향유할 수 있는 콘텐츠의 선택폭이 넓어지고, 이로 인해 지상파뿐만 아니라 프로덕션을 포함한 방송 콘텐츠 산업을
전반적으로 풍요롭게 발전시키자는 정책목표는 지금 온데 간 데 없습니다.
모름지기
정책이라 함은 분명해야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술에 물을 탄’ 혹은 ‘물에 술을 탄’ 정책은 모두를 헷갈리게 하면서 사업자들의 진흙탕
싸움만 부채질 할 뿐입니다. DMB의 경우, 보편적 무료서비스라는 종래의 방송과 개별 가입자에 대한 유료서비스를 추구하는 종래의 통신을 융합시킨
모델로서 방송위원회는 DMB 도입 정책에서 DMB의 사업모델을 어느 한쪽으로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유료와 무료의
공존’을 추구했으니, 이게 과연 시장에서 현실적으로 성립 가능한 방송정책이었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와
관련해서 DMB라는 휴대미디어의 매체 속성을 감안할 때, 유료서비스의 위성DMB를 도입하기로 이미 정책과 입법으로 결정한 시점에서 지상파DMB를
무료서비스로 제한했던 판단이 옳았는지, 그렇게 한 것이 DMB 전체를 망쳐버린 정책적 패인이 아니었는지 곰곰이 반추해볼 시점입니다.
만일
위성DMB는 상대적으로 고가(高價) 서비스, 지상파DMB는 상대적으로 저가(低價) 서비스로 위치시켰다면, 이 둘의 생존과 공존이 모두 가능했을
것이란 게 제 생각입니다. 유료와 무료의 공존은 불가능하지만, 유료와 유료는 얼마든지 공생이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사실
지상파DMB의 경우 이동통신사업자가 합세해 지상파DMB의 최대 약점인 지하철 등 음영지역을 해소하면서 월 3000원 가량의 저가형 유료서비스
모델로 만들자는 아이디어가 한 때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만, 결국 ‘지상파방송=보편적 무료서비스’라는 원칙에 부닥치면서 논의 자체가 백지화된 적이
있습니다.
물론
‘공짜’가 소비자 입장에서 일단은 좋습니다. 그렇지만, 고정형의 지상파TV에서는 볼 수 없는 뭔가 새로운 즐거움과 유익한 콘텐츠가 있고, 산
아래와 고층건물 뒤, 지하철 안에서도 언제 어디서나 깨끗한 화면을 즐길 수 있으며, 그래서 어느 정도 돈을 내고도 볼 만한 DMB라면, 수용자
복지와 방송산업 활성화라는 두 가지 목적을 모두 달성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방송정책의
‘어설픈 공공주의’는 시청자와 사업자의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하면서, 그저 휴대폰 제조업체들의 배만 불리는 데 기여할 뿐입니다. ‘어설픈
공공주의’는 반(反)공공적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