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여자와
죽음이
다가오는 남자의 사랑.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이하 ‘우행시’)의 이야기에는
군내 나는 신파적 요소들이 잔뜩 들어 있다.
두 줄짜리 설정만 보고도
두 인물의 과거에서 미래까지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있고,
실제 그렇게 굴러간다.
그러나 주연을 맡은 두 청춘 스타의 반짝반짝 빛나는 매력과,
디테일에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담을 줄 아는 감독의 손길은
이 영화에 특별한 감응력을 부여했다.
이 가을,
‘우행시’는 계절을 제대로 울리는 멜로다.
세
번째 자살이 실패로 돌아간 뒤,
유정(이나영)은 수녀인 고모(윤여정)을 따라
마지못해 윤수(강동원)를 면회하러 간다.
세 명을 살해해 사형수가 된 윤수는
유정에게 싸늘하게 대하지만,
면회를 거듭하는 동안
두 사람은 점차 마음의 벽을 허물고
아픈 과거를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인간의
약한 모습을
매력의
핵심으로 간직하고 있는 두 배우,
이나영과 강동원은 깊은 상처를 지닌 사람들끼리의
이해와 사랑을 그린 이 영화에 최적으로 어울린다.
여기서 이나영은 극 전체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당당히 걸어갈 수 있는 파워와
세기(細技)를 갖춘 배우임을 증명한다.
‘눈물의 여왕’이라 불린 전도연이
스스로의 눈물 속에 잠긴 채
강력한
슬픔을 발산하는 연기를 한다면,
이나영은 자신의 눈물로부터 애써 달아나다
문득 뒤돌아보며 오랜 아픔을 내비치는 쪽이다.
유정은 완성된 문장이 아니라
간신히 이어지는 단어들로
윤수에게 과거 상처를 고백한다.
그렇게 이나영은 마음을 분절시켜가며
언뜻 뻔할 수 있는 설정을
절절한 고통으로 관객에게 이입시킨다.
강동원은 모두가 그의 연기력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설정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아
합격점을 넘어서는 연기를 했다.
좋은 연기를 위한 첫 단계가
욕심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화면 가득 배어나오는 그의 의욕과 노력은
이제 이력의 도약점 하나를 맞이한
젊은 배우의 미래를 밝게 예측할 수 있게 만든다.
전작 ‘형사’에서 그가 맡은 배역의 이름이기도 했던 ‘슬픈 눈’은
그의
얼굴에 머무는 감정들을
맑은
햇살로 되비쳐내는 창(窓)의 역할을 제대로
해낸다.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은
언제
울고 언제 눈물을 닦아야 하는지
제대로
아는 연출자의 감응력을 다시금 보여준다.
아주 작은 움직임으로
인생관의 변화까지 묘사할 수 있는 그의 미학적 터치는
요소요소에서 낡은 이야기를 닦아 윤을 낸다.
극 초반 윤수의 살인과
유정의 자살시도를 비추는 조명 노릇을 하며
삶의 곤궁함과 버거움을 상징했던 아침 햇살은
이후 섬세히 변주되며
아직 남아 있는 삶의 아름다움을 따스하게 상기시킨다.
멜로의
형식을 빌고 있는 ‘우행시’는
사실,
사랑이 아니라 연민에 대한 영화다.
부자도 빈자도,
죽는 자도 죽이는 자도,
모두가 연민의 대상이라는 것.
연민이란 죽음의 늪에 던져지는 구원의 그물일 수는 없어도,
생(生)의 차가운 허무를 견디게 하는 담요는 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잠깐.
연민이야말로 사랑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