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영화

발만 적시고 우는 '거룩한 계보' - 이동진 영화평

발만 적시고 먼저 우는 '거룩한 계보'
  2006/10/17 11:15
이동진      조회 6256  추천 10

 

 

기막힌 사내들에서 박수칠 때 떠나라까지,

장진 감독의 모든 영화에는

그의 서명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의표를 찌르는 기발한 상상력과

아이러니의 힘을 제대로 활용할 줄 아는 화술,

듣는 이를 탄복하게 하는 화려한 입담은

장진의 영화에 특별한 개성을 부여했다.

 

치성(정재영)은 자신이 속한 폭력 조직을 위해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투옥된다.

감옥에서 치성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어릴 적 친구 순탄(류승룡)을 만난다.

치성의 또 다른 죽마고우인 주중(정준호)은

조직이 치성에게 등을 돌리려는 사실을 알고

갈등에 빠진다.

 

신작 거룩한 계보(19일 개봉)에서도

장진 감독 특유의 재담을 맛볼 수 있다.

경찰서에서 깡패로 불리운 주중이

군대 현역 갔다왔지요,

문신 한 개도 없지요,

순천지역 유네스코 회원에다가

매년 3만원씩 국경 없는 의사회에

성금도 내는 내가 워찌 깡패여라고 항변한다거나,

예전 목포 지하철 역에서

혼자 여덟아홉을 조져놨대요라고

치성의 전설적인 활약상이 거론될 때

듣는 이가 우와. 근디, 목포에 지하철은 언제 놨다냐라고

어눌하게 되물을 때 폭소는 여지 없이 터진다.

일부에서 영화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장진의 대사 쓰는 능력은

그 자체로 분명 탄복할만한 것이다.

 

그런데 거룩한 계보에 이르러

재기발랄한 대화의 양은 전작들보다 크게 줄었다.

진짜 문제는

이 영화에서 추구되는 정서와 장 감독의 재능이

시종 서로 충돌한다는 점이다.

가끔씩 시도되는 재담은

극의 흐름을 끊어놓기 일쑤고,

비장미로 덧칠된 분위기는

꿈틀거리는 재기를 질식시킨다.

 

감옥 안에서 치성이 칼을 맞는 장면처럼,

배신과 복수의 감정적 굴곡을 강조하느라

지나치게 길고 감상적이 된 부분도 자주 발견된다.

특정 상황에 너무 많은 액센트를 넣는 연출은

종종 극의 흐름 자체를 어그러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비경제적인 화술이 있는가 하면

리얼리티가 약한 설정도 잦다.

 

장엄한 비극을 올려다보느라

감상(感傷)에 발목 잡힌 영화의 리듬은

한 걸음에 내달리지 못하고서

자꾸 되돌아가거나 맴돈다.

감정적 골을 깊게 파지 못한 채

웅덩이에서 발만 적시고 먼저 우는 연출은

처절한 극중 상황에 공감하기 어렵게 만든다.

 

홀로 도드라지기 위해 애쓰지 않으면서도

강한 존재감을 발산하는 정재영의 연기는

겸손하고 강력하다.

그러나 전혀 다른 문법의 영화에 참여하면서도,

가문의 영광이나 두사부일체의 자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정준호는 짙은 아쉬움을 남긴다.

 

장진의 영화는 전작 박수칠 때 떠나라부터

이유 없이 무거워지고 있다.

안타까움에 대한 것이든 친근함에 대한 것이든,

그의 장기는 가벼운 쪽에 있었다.

게다가 처절하고 비장한 조폭 영화라면 최근만 해도

이미 유하-곽경택 감독이 훨씬 더 나은 결과물을 내놓았다.

 

그런데 왜 장진 감독은

아는 여자킬러들의 수다의 정겨운 놀이터에서 벗어나

끈적이는 뻘밭에 자청해 들어간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