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금요일
금요일 정과장을 떠나 보내는 자리였습니다.
15년을 함께 했는데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다 제 부덕함이지요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발전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빌었습니다.
3월 17일 토요일
봄이라고 합니다.
아직 충분한 휴식이 필요한데
살랑이는 봄바람과 지난주보다 훨씬 누그러진 날씨는 도서관으로 가는 발길을 들녘으로 되돌렸습니다.
할미꽃은 보러 갔습니다.
이평리의 봄은 아직 멀었습니다.
TV 화면을 가득 채운 봄은 아직도 먼 남쪽나라 이야기입니다.
숲은 아직 갈색의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았고 성급한 산수유 나무만 군데군데 노란 꽃들을 함박 피워 놓았습니다.
마눌과 둘이 가는 여유로운 길입니다.
호반이 바라보이는 할미꽃 동산에 올랐습니다.
날씨가 싸늘하고 봄이 아직 일러서 할미꽃을 보지 못할 줄 알았습니다.
성급한 할미꽃은 양지바른 무덤가에서 자줏빛 꽃잎을 열다가 싸늘한 봄바람에 놀라 잔뜩 움츠리고 있습니다.
자연의 오묘함과 경이로움입니다.
지난해 가을부터 생명의 빛을 내려 놓고 휴식하는 동산은 아직 연초록 새싹들 조차 함부로고개를 내밀지 못하는데 하얀 솜털을 드러낸 가냘픈 할미꽃 몇 송이만이 갈색의 겨울잠 위로 봄의 편지를 써 놓았습니다.
물가에 번져가는 초록빛 새싹들과 가냘픈 할미꽃이 이젠 머지 않은 봄을 이야기 합니다.
마눌과 나밖에 없는 조용한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마음이 고요하고 정갈해 집니다.
항상 봄이면 나혼자 오던 이곳에 처음 마눌을 데리고 왔는데
도심보다 더 싸늘한 날씨는 눈부신 봄날의 산책길을 훼방 놓고 있습니다.
그래도 할미꽃이 쓴 봄 편지를 받았으니 이평리의 봄을 벌써 가슴에 들어왔습니다.
꽃피는 사월쯤에 다시 오겠습니다.
이평리에서 차로 아슬아슬한 산길을 따라 방아실로 넘어 갔습니다.
오르는 길이 없는 줄 알았는데 교행이 어려울 정도의 좁은 길과 차가 뒤로 쏟아질 것 같은 가파른 길 입니다.
사실 속으로 많이 놀랐는데 옆에 탄 마눌을 의식해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정상부 까지 올랐습니다.
고리산 정상에서 만난 낯익은 호수의 풍광이 펼쳐졌습니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두 발 대신 나의 애마가 산꼭대기로 안내 해준 셈입니다.
오르는 길이 급경사였으니 내려가는 길도 당연히 호락호락 하지 않을 걸로 예상하긴 했지만
비포장도로에 핸들을 꺾기 부담스러운 좁은 커브길 그리고 자칫하면 아래로 추락하는 펜스없는 도로는 정말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습니다.
차에서 내려서 비포장 도로 위에 남아 있던 차의 타이어 자국을 확인하지 않았으면 아마 그 길로는 차가 다닐 수 없다고 단정했을 것입니다.
모처럼 봄나들이 나왔던 마눌도 애마도 깜짝 놀란 산책길입니다.
그나마 교행하는 차를 한대도 만나지 않아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내려올 수 있어서 다행이었습니다.
방아실로 가는 길은 처음 가보는 낯 설은 길이었습니다.
멋진 풍광의 호반과 봄을 준비하는 조용한 술렁임 그리고 바람을 느끼지 못하는 차 안의 따뜻한 삼월의 태양은 갑갑한 마음을 풀어주고 다가 올 새봄의 설레임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나른한 봄을 차 안에 채우고 호반의 물길을 따라 이어진 도로 위를 드라이브 합니다.
호젓하고 편안한 시간 입니다.
문의 마을에서 손두부버섯찌개로 점심식사를 하고 문의 문화재 단지에 들렀습니다.
아 입장료를 받고 있군요 (그 때는 안 그랬는데…)
단정하게 정리된 내부의 풍경도 그리고 바라보는 호수의 풍광도 변함 없이 그대로 입니다.
조각공원과 미술관이 새로 생겼습니다.
입장료를 통해 재원이 마련되어서인지 여기 저기 보수하고 새롭게 단장한 모습이 눈에 뜁니다.
날씨가 흐린 봄날 탓인지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적한 공원 길을 마눌 손잡고 느릿느릿 걸어 갑니다.
이렇게 문밖을 나서면 마음이 허허로워 지지요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며 아이들 이야기 우리들의 노후 여행이야기도 흐느적거리는 붓이 화폭에 풀어내는 잔잔한 수채화처럼 평화롭고 정겨워 집니다.
아무 이야기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가끔 수채화의 여백은 우리들에게 더 많은 이야기를 해 주기도 하지요.
돌아가는 길 위에서 핸드폰 멧세지가 옵니다.
‘장군님
엄하사에게서 온 전갈입니다.
오병장이 마중하기로 했는데 오늘 일이 너무 바빠 대신 마중 좀 해달라는 부탁이 있었습니다.
지난번 수원 모임 때 막히는 차 때문에 이대령과 두 시간을 지각을 했습니다.
장군님을 두 시간 기다리게 하다니 군대 시절 같았으면 뼈도 못 추릴 일이지요
시간을 못 지키는 우리가 못미더워서인지 오늘은 우리들을 보러 친히 대전까지 내려 오신다니 송구할 따름입니다.
집에는 4시쯤 도착했습니다.
마눌을 내려주고 옷을 갈아 입고는 역으로 갔습니다.
교육사령관 , 수도경비사령관등 중요 직을 두루 역임하시고 올해 육군대학 총장직에서 퇴임하신 이후에도 한결 같이 흐트러짐 없으신 짱짱한 모습이십니다.
예약된 “만미옥”으로 모셨습니다.
산친구 “닐리리아”님이 사장이고 위층의 별실들은 온돌방이 아니라 테이블 주위가 파여져서
다리가 불편한 이대령님과 또 허리가 불편한 제가 앉기에 안성맞춤 입니다.
오병장도 10분전에 택시를 타고 황급히 도착했으니 지나 번 이후로 모두 군기가 바짝 든 셈입니다.
예비역 육군중장 이상태
현역 육군대령
예비역 육군하사 도하사
예비역 육군하사 엄기학
예비역 육군병장
“이기자 전우회”란 이상한 모임의 멤버들 입니다.
건설회사 사장인 정장흥병장과 직원 이윤노 병장도 처음 합류하기로 했는데 일이 너무 바빴
습니다.
남자에게 있어서 군대시절이란 추억의 30프로 쯤은 될 겁니다.
우리는 동시대를 지내온 군대시절의 무용담을 풀어 내며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몇 번들어 재탕이 된 이야기며 과장된 이야기들도 다 지난 아련한 추억들 입니다.
다섯 명이 별실에 들어서
서빙하는 아줌마? 수지 맞았지요
별로 한 일도 없이 장군님이 2만원 주시고 엄하사가 2만원을 주었습니다.
장군님은 두주불사를 작심하셨는지 건네는 모든 잔을 마다 않고 받아 드시고 오히려 쌍잔을 채근하십니다.
절도와 운동으로 다져진 워낙 다부진 체력이시라 그 나이에도 수북히 쌓여가는 술병에도 한치의 흐트러짐이 없으십니다.
오늘 모임 때문에 현역장군들과 장관님들과의 골프회동도 펑크 내셨다 하십니다.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한참 유쾌히 떠들다가 화장실 다녀오신다더니 슬며시 나가셔서 계산까지 끝내고 돌아오셨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분이십니다.
대전까지 오셨는데 대접은 고사하고 저희들이 장군님의 대접을 받았습니다.
엄하사는
지금 나가면
처음으로 장군님의 노래와 춤추는 모습을 보며 유쾌한 하루를 보내고 그렇게 아쉬운 작별을 고했습니다.
3월 18일 일요일
이틀 연속 술을 마셨지요
버릇이란 무엇인지 어제 일찍 잠자리에 들긴 했지만 4시 30분에 눈이 떠졌습니다.
그냥 TV보고 책을 보며 아침시간을 보냈습니다.
자꾸 졸음이 쏟아지는 가운데 머릿속에 남는 게 없는 책읽기란 시간 낭비일 뿐인데 책과 TV 리모콘을 부여잡고 그냥 답답하고 편안한 휴식에 몸을 맡겼습니다.
차라리 사우나나 다녀올 걸 그랬습니다.
은비는 친구 만나러 나가고 마눌은 태현이와 쇼핑을 갔습니다.
혼자 집에 남아 졸며 깨며 TV프로를 보고 있는데 조사장 전화가 왔습니다
아직 내가 다친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단 5%의 기대로 제게 전화를 했다는데 내가 집에 있다니 신기한 모양입니다.
워낙 바쁜사람의 모처럼 계룡산행 제안인데 제가 이 모양 입니다.
마음 맞는 친구와의 거친산행 후의 한잔 술
동행보다 더 편안한 혼자가는 산행의 즐거움
모두떨칠 수 없는 유혹이고 아쉬움 입니다.
6시에 강릉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아파트 창 밖의 햇빛이 눈부십니다.
마눌과 뒷동산이라도 다녀와야겠습니다.
혼자 점심을 차려먹고 문을 활딱 열고 집안을 대청소 합니다.
화장실 청소를 마치고 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마눌이 돌아와서 함께 청소를 마치고 뒷동산으로 산책을 갑니다.
어제보다 한결 부드러워진 바람결에 봄볕은 따사롭습니다.
산을 넘어 내려선 갑천 상류에는 세어버린 버들강아지가 회색의 깃털을 버리고 푸른 색의 옷으로 갈아 입고 있습니다.
자세히 보면 나뭇가지에는 파릇한 새순들이 돋아 올라오고 있습니다.
갑천변 냇가 양지바른 곳에는 벌써 봄풀들이 초록의 풀밭을 만들어 놓았고 어제보다 더 성숙한 봄은 여기저기서 솟아나고 있습니다.
아직 겨울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숲
오랫동안 지나 다녀도 도통 이름을 모르는 나무들 사이로 산수유나무는 화사한 얼굴로 존재를 알리고 먼저 봄소식을 전해 줍니다.
이렇게 산수유 나무가 많은 줄 몰랐습니다.
내원사에 들렸습니다.
따뜻한 날씨 탓인지 산길에도 절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갑니다.
건물의 위치가 조금 어수선해 보이는 절이지만 넓은 뜰에는 숙연함과 고요함이 깃들어 있습니다.
벽에 걸린 부처님의 말씀을 읽어 봅니다.
득도를 이룰 수 없는 속세인으로 남았지만 그 하나 하나 의미들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그저 방안에 앉아 책에서 깨우침과 길을 구하는 것보다 훨씬 유익하고 평온한 시간입니다.
마눌에게 태워 달래서 조사장과의 약속장소에 갔습니다.
다치고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참으로 오랜만입니다.
조사장이 독립하고 회사를 차리고 나서는 함께 산행 시간을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늘 바쁘고 시간에 쫓기는 터라 산행 약속을 잡기가 힘들었습니다.
올해 들어 처음 산을 탄다고 했습니다.
내가 다치고 나서 집에 있으니 휴일 날 모처럼 술 한잔 할 시간이 되긴 하는데 이틀 연속 과음을 한 터라 걱정이 좀 되기는 합니다.
술이란 그런건가 봅니다
반가운 친구를 만나 또 지난 이야기들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풀어 내다 보면 그냥 또 술술 넘어 갑니다.
이젠 주문이 폭주하여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합니다.
직원도 두 명 더 채용하고 일요일도 없이 공장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처음 독립한 후 승승장구 하다 전 회사로부터의 송사에 휘말려 바닥 까지 곤두박질 치고 어려운 시기를 맞았을 때 제가 힘이 되어 줄 수 있는 일이란 없었습니다.
한동안 바빠서 소식이 없다가 어느 날 술 한잔 하자고 전화가 왔습니다.
피말리던 시기를 지났다고 하면서 술을 한잔 사더군요
그 때 그가 부도 직전 까지 몰려 어려움을 겪었음을 알았습니다.
조사장은 내 노후를 함께 할 소중한 친구 중의 한 사람 입니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만약 친구가 어려웠던 시기에 금전적인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나는 몇 천만원 이라도 선뜻 빌려줄 수 있었을까?
어쩌면 모든 것을 다 주어도 아깝지 않는 친구란 자기가 만드는 거고 그런 친구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자기 때문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조사장은 소신과 심지가 굳은 친구 입니다.
투기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능력과 성실함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조금씩 더 발전하고 성장해가는 친구입니다.
요즘 산을 못 가는 허전함을 이야기 했습니다.
친구는 묻어 두었던 어려운 시절의 비하인드 스토리들을 조용히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인생이 끝나버릴지 모르는 불안함과 그리고 죽음을 떠올렸던 절박함
설령 산을 못 간다 한들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 하더군요
산에 반쯤 정신을 빼앗겼다가 일 때문에 멀리하는 자신도 이렇게 잘 살아 가고 있다고…..
세상에는 산에 못지 않은 가치 있는 일들이 너무도 많다고…..
“요즘 같은 세상에 입원해서 몇 달씩 회사를 못 나가고 병원에 누워 있었다면 어쩔 뻔 했습니까?”
“세상의 모든 실패는 믿음과 기다림의 부족에서 비롯 됩니다.”
조사장이 한 말 입니다.
살아가는데 많은 가르침을 배울 수 있는 스승은 도처에 있습니다.
먼데서 친구가 찾았으니 어찌 아니 즐거웠겠습니까?
이틀간의 과음으로 코에 뾰류지가 나는 피곤한 몸으로도
세 병의 술을 나누어 마시고 우린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요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읽으며 마음을 다잡아 가고 있는데 친구의 한마디위로가 위안과 부끄러움을 가져다 줍니다.
천천히 다시 산으로 다가갈 생각 입니다.
독서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경제학 콘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