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26일 흑산도
2007년 5월 27일 홍도
흑산도
올해는 여행 길에 가보지 않았던 섬을 많이 돌아 보았습니다.
섬이 주는 역설적인 이미지란 격리되고 고립된 자유
늘 떠나고 싶은 갈망과 답답한 삶의 해갈을 위해 우리는 섬을 떠올리는 지 모르겠습니다.
딱히 마눌과 100대명산 주유를 홍도의 깃대봉으로 잡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섬으로 떠난 가족여행 길에서 그 산을 만났습니다..
구멍이 숭숭난 제주의 검은 화산암을 떠올린 흑산도는 푸른 산 빛을 두르고 눈부신 바다
위에 앉아 있습니다.
물 빛 하늘과 그리고 그것보다 더 푸른 바다
섬이란 항상 작고 외로운 것이란 생각은 사라지곤 합니다.
흑산항은 배가 토해낸 인파와 떠들썩한 소음에 묻히고 조용한 포구의 낭만은 파도에
밀려갔습니다
섬에서 하루를 머물고 아침을 맞았습니다.
잔잔한 수면으로 번지는 붉은 아침 햇살을 바라보며 더 높은 곳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싶어
집니다.
무작정 나선 길에서 그래도 쉽게 등로를 찾았습니다.
흑산비취랜드 뒤 진리지석묘군을 지나서 조금 도로를 거슬러 올라가면 산으로 난 길이
보입니다.
반갑게도 입구에 대전 충일 산악회의 표지기가 달려 있습니다.
대전 산악회가 다녀간 걸 보면 흑산도의 멋진 산으로 이어지는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산길을 걸어 올라 갑니다
잠시 오름길을 오르면 그림 같은 바다 위에 내가 홀연히 떠 있습니다.
비상하는 새의 눈으로 바라보는 드넓은 바다 위에서 만나는 것은 파도와 대양의 바람 뿐이
아닙니다.
구체화 되지 않았던 그리움은 거침 없는 물길과 바람 길을 따라 오르고
대양의 평화와 자유는 내 가슴에서 바람소리를 냅니다.
마치 육지 같이 흘러가는 산릉에 막혀 여전히 섬임을 실감하지 못하는 곳에서
비로소 먼 섬 한가운데 있음이 가슴으로 느껴집니다.
칠락산(칠락산)이라고 써 있습니다.
느낌이 좋은 이름입니다.
7개의 기쁨을 만날 수 있는 산
기쁨이란 찾아가고 느낄 수 있는 사람만을 위한 몫이라면 그 섬에서 마주하는 기쁨은
어쩌면 7개도 넘을지 모르겠습니다.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김영국님 (011-638-8984)
흑산도 해오름 산악회 회원이라 합니다.
이곳에서 섬을 가로질러 흘러가는 능선들에 대해 설명해 줍니다.
어제 육로관광길에 올랐던 상라산이 보이고
섬에 있는 산치고는 제법 웅장한 무남산이 멀리 보입니다.
무남산으로 희미한 등로가 있긴 한데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 찾기가 만만치 않다 합니다.
해오름산악회에서 이정표를 설치하고 등로를 정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제대로 산길이 만들어 진다면 뭍의 산님들이 기꺼이 먼 뱃길의 수고로움을 감수할만한 멋진
여정이 될 듯 합니다.
이러 저러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하산했는데 오토바이로 숙소까지 바래다 주어 유람선
시간에 늦지 않게 편하게 돌아왔습니다.
홍도
5월 27일
오후 5시에 홍도에 도착했습니다.
서해모텔에 여장을 풀고 홍도를 둘러봅니다.
생태보호를 위해 깃대봉 쪽 등산로는 폐쇄되었다 합니다.
여기 까지 와서 100대명산 깃대봉을 보지 못하게 생겼습니다.
깃대봉은 내일 새벽 어둠을 이용해서 오르기로 하고 발전소쪽 산길을 둘러봅니다.
붉은 태양빛이 떨어지는 바다에 떠 있는 배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입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대하는 홍도의 아름다운 풍경 입니다.
마눌과 함께 발전소 까지 왔는데 남겨둘 길이 너무 아쉬워 마눌은 돌려 보내고 희미한 등로를
따라 가파른 산비탈을 올라 갑니다.
바다에 떨어지는 태양이 보고 싶고 더 오를 수 없는 곳까지 올라 바다 한가운데 홀로 앉아
섬의 외로움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우측 산봉우리로 가는 길은 딱히 길이 없습니다.
바위와 나무 사이로 길을 내어 어렵게 올랐는데 거침 없는 바다의 풍광은 수림이 가리웠습니다.
잠시 바위에 걸터앉아 바다 위를 불어가는 바람에 몸을 맡겼습니다.
이렇게 좋습니다.
저물어 가는 날에 혼자 외로운 섬의 이름없는 봉우리에 걸터앉아 살아가는 날의 기쁨에 잠시
젖을 수 있음이…
이 작은 삶의 여백이…
이 조용한 시간이….
뒤로는 깃대봉 쪽으로 말 없이 산릉이 흘러 갑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어제까지 멀쩡했던 허리가 너무 아파 깜짝 놀랐습니다.
잠을 잘못 잤는지 아님 어제 너무 무리를 한 것인지….
마눌을 깨웠습니다.
누군가 길을 막았으니 야음을 틈타 백대명산 주유길에 올라야지요.
밖에서 바람은 늑대 울음을 냅니다.
후랫쉬 불을 켜고 마눌과 길을 나서는데 그 불빛마저 삼킬버릴 듯한 칠흑 같은 어둠과 세차게
몰아치는 섬바람이 간담을 서늘하게 합니다.
계단 위에 까지 올라 갔는데 마치 태풍이 지나는 듯 바람에 몸이 떠밀릴 지경이고 아직 깨어나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은 후랫쉬 불빛마저 삼켜버릴 태세 입니다.
혼자면 별 문제될게 없겠는데 마눌이 있으니 할 수 없이 다시 로비로 돌아 왓습니다.
갑작스런 통증이 올라온 아픈 허리로 소파에 앉아 잠시 시간을 보내고 다시 길을 나섭니다.
바람이 조금 자즈러지고 바람과 이슬에 곱게 씻긴 새벽바다와 포구를 내려다 봅니다.
바다 한 가운데 홀로 앉아 있는 외로운 섬은 오랜 세월을 거기 있었고 나는 오늘에사 마눌과 함께
여기에 왔습니다.
세월은 너무 빠르고 사람의 인생이란 너무 짧습니다.
누군가 “여행길은 삶을 부풀게 하는 그리움”이라 했습니다.
우리는 그 여행길에서 흘러가는 것과 남아 있는 것들의 명징함을 느끼며 더 열심히 살아야할
이유을 확인하곤 합니다.
다소 지치고 외로운 모습의 행복한 귀향
삶이란 떠나고자 하는 갈망과 정착을 강요하는 현실 사이를 걸린 짧은 줄 같은 건지도 모르
겠습니다.
말로는 느림의 미학을 이야기 하면서 안타깝고 아까운 세월을 쫓기는 듯이 살아 오다가
잠시 뒤를 돌아볼 여유를 얻었는데 또 기다리지 못했습니다.
그리움을 찾아 가는 여행길이 산으로 만 나 있는 게 아닌데 허리를 다치고도 바보처럼 늘 산으로
만 가고자 했습니다.
다시 허리의 통증을 느끼며 혼절할 듯한 기쁨에 들떠서 희희낙락했던 호남길이 통절해 집니다.
사람은 섬처럼 조용한 기다림에 익숙하지 못합니다.
아무도 없는 바람 부는 길을 따라 깃대봉으로 갑니다.
가끔 조용한 바다가 내려다 보이다가 자욱한 안개가 사방에 일렁이고 빽빽한 수림은
몇 개의 봉우리를 지났는데도 깃대봉과 바다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안개 낀 바다조차 내려다 볼 수 없이 무성한 나무들로 둘러 쌓인 작은 봉우리에 올랐습니다.
제일 높은 봉우리란 산악회의 작은 표지기가 걸려 있습니다.
깃대봉은 아닌 것 같은데 다시 길을 잡으려니 허리 통증도 심해지고 아침식사와 유람선 시간이
걱정 됩니다.
아쉽지만 돌아 가기로 했습니다.
깃대봉에서 내려다볼 남해의 풍경은 지난해 울릉도 선인봉처럼 그냥 섬에 남겨두고 왔습니다.
하지만 희미한 안개 속에서 깃대봉은 우릴 바라보았을 겁니다.
우린 깃대봉 아래서 홍도의 오랜 고독과 외로움을 만나고 돌아 왔습니다..
섬이 쇳소리 나는 먼 바다의 바람을 몰고와 새벽을 깨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섬이 조용히 속삭이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화살처럼 흘러가는 세월에
또 얼만큼 지나서 홍도에 다시 갈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다음엔 백발이 성성한 모습으로 마눌 손을 잡고 깃대봉에 서서 외로운 바다를 내려보게
되겠지요.
주름진 얼굴에 더 너그러워진 미소를 머금은 채 오늘의 추억을 이야기할 겁니다.
섬을 두고 왔습니다.
오랫동안 간직했던 그리움과 추억도 함께 놓고 회복기의 긴 시간도 바닷바람에 날리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아픈 허리만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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