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일 : 2008년 2월 16일
산 행 지 : 고성군 개천면 연화산
날 씨 : 몹시 바람불다
산행코스 : 옥천사-남산-연화산 –옥천사
소요시간 : 2시간 30분
동 행 : 좋은 친구들…
좋은 친구들과 모처럼 산행 나들이다.
지난 번 눈 쌓인 속리산과 계룡산 계곡에서 벌써 피어난 버들강아지를 보았다.
얼음장을 깨고 울리는 봄의 소리와 삭풍을 헤집고 전해 온 봄소식에 마음이 먼저 들떠 있었다..
삼천포로 길을 잡은 건 성급한 봄이 남해의 바닷바람에 실려올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기대 때문이었다.
김사장은 출발하기 전날 밤에 몸이 좋지 않아 여행을 포기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성급한 상춘객은 모두 5명이다.
창밖으로 쏟아지는 햇빛이 무척 따사로워 보였는데 잠시 휴식을 위해 내린 덕유산 휴게소의 바람은 아직
흐뜨러 지지 않은 동장군의 위세를 고스란히 담아 낸다..
마눌과 둘만의 출발이라면 새벽 같이 출발 했을 텐데 함께하는 여행길이라 출발이 늦다 보니 당초 와룡산의
오늘 일정이 다소간 부담스럽다.
게다가 움직이는 차량이 한대 이다 보니 반대편 능선으로 내려서면 교통편이 너무 번거로워 질 것이다.
고민하던 차 김이사가 연화산을 가면 어떻겠느냐고 한다.
연화산은 통영의 산으로 들은 바 있긴 하지만 아직 한번도 가보지 않은 터라 산행의 개요가 그려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아는 바닷가의 산들이란 늘 암릉의 등로가 아기자기하고 그림 같은 푸른 바다를 내려다보는 낭만
적인 길을 유보하고 있었다.
게다가 가 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기쁨이 함께 할 터이고 고속도로에서 연결되니 이동시간도 훨씬 단축할 수
있으리라…
하여간 우리는 만장일치로 순식간에 합의하고 원래의 일정을 바꾸어 통영을 향해 내달렸다.
연화산 IC를 벗어나서 국도로 접어 들었다.
고속도로 보다 국도란 더 마음이 푸근한데 처음 가는 길이란 사실 만으로 국도를 따라 가는 드라이브는 가볍게
들뜬 기분을 가져다 준다.
그 언젠가 지나갔던 길 일지라도 오랜 기억들이 퇴색되어 늘 새로운 길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정말로 처음 가보는
길에서 느끼는 감정은 각별하기도 하다.
연화산 옥천사 진입로를 확인하고서 점심식사를 위해 근처의 토속 음식점으로 갔다.
내부의 독특한 실내장식에 눈길을 보내는데 핸폰이 운다.
“멀리 떨어진 이향에서 봄의 향기와 미각에 젖으려 하는 찰라에 웬 핸드폰?”
한림정님의 전화였다.
난리가 법석 났다.
내가 올린 산악회 시산제 사진과 글이 엄청난 파장을 불러 왔단다.
금전적인 막대한 손해는 차치하고라도 우리를 배려해 준 사람까지 다칠 줄 모른다 한다.
일단 집을 전화해서 태현을 통해 문제가 되는 글과 사진을 모두 삭제했다.
밥맛이 뚝 떨어졌다.
‘이런 일이 벌어질 수도 있구나….”
지금까지 누렸던 즐거움과 목가적인 기분은 순식간에 세찬 남해의 바람에 날리어 갔다.
인터넷 시대의 필화에 관한 이야기야 숱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될 줄이야.
어쨌든 내가 저질러 놓고 내가 수습할 방도가 없으니 답답하고 모처럼 친구들과 자연 속에 소요
하는 여유로운 시간에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해 들으니 찹찹해진다.
소중한 나의 날에 번지는 안타까운 시름이여….
나로 인해 누군가가 고통을 받고 또 누군가 몹시 어려운 지경에 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그 여유롭던 시간은 180도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흐르는 물처럼 경쾌하고 자유로워라!
살다 보면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할 때도 있고 행하는 일이 예상치 않는 방향을 전개되기도 한다.
모두가 살아 있음이라!
세상이 살아 있고 내가 살아 있고….
그래서 세월이 필요한 게다.
우린 세월과 경험으로 무언가를 배운다.
세상은 열정과 의욕으로만 대적하기에는 너무 벅찬 상대임에 틀림 없다.
그 많은 세월에서 배울 수 없었으니 어쩌랴….
흔히 세월이 들려주던 노파심과 어느 신중한 이야기도 나의 경솔함을 누르지 못했으니 또 어쩌랴…
내가 고민한다고 될 수 없는 일이라고 애써 밀어 놓아도 산길 내내 따라 붙는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으니
또 어쩌랴…..
세상 살다 보면 이러저러한 고민이 따라 붙기 마련이지만 그러한 잡다한 번뇌에서 멀어져 사는 것이 행복이고
그런 고뇌를 만들지 않는 것이 세상 살아가는 지혜가 아닐련지….
옥천사 일주문에 차를 파킹해 놓고 산길을 오른다.
아직 남도의 바람은 차고 매섭다.
볼이 얼얼하고 귀가 시린 찬바람을 맞으니 오히려 마음이 후련해진다.
연화산이 100대 명산에 속함은 다녀오고서야 알았다.
좋은 친구들과 남해로 떠났는데 우연히 행선지가 바뀌어 무등산 이후에 침묵하던 100대명산 여행길을 부지불식
간에 다시 열어버린 셈이 되었다.
내가 본 연화산은 그 산세가 와룡산과 비교도지 않았다.
그 여름에 홀로 올랐던 와룡산은 가득한 운무에 가리어 무한의 신비감으로 다가 왔는데 능선의 길이며 예사롭지
않은 암릉들로 깊은 인상을 받은 바 있다.
남양저수지 쪽에서 준비 없이 올라 백천사 길을 잡았는데 4시간 이상 소요된 것으로 기억된다.
연화산은 경상남도 고성군 개천면에 있는 산. 높이는 528m이다.
고성읍에서 북서쪽으로 12㎞ 떨어진 곳에 솟아 있으며, 산세가 연꽃과 닮았다 하여 연화산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래 이름은 비슬산(琵瑟山)이었으나 조선 인조(仁祖) 때 지금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옥녀봉·선도봉·망선봉의 세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 높지 않지만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등 자연 경관이
수려해 많은 등산객이 찾는다.
북쪽 기슭에는 670년(신라 문무왕 10) 의상(義湘)이 창건한 옥천사(玉泉寺)가 있다.
옥천사라는 이름은 이 절의 대웅전 뒤에 사철 마르지 않고 맑은 물이 솟는 샘이 있는 데에서 유래하였는데, 이
샘의 물은 위장병과 피부병에 좋다고 한다. 1948년부터 샘 위에 옥천각을 세워 보존하고 있다. 그 밖의 사찰로는
백련암(白蓮庵)·청련암(靑蓮庵)·연대암(蓮臺庵) 등이 있다.(백과사전)
남산을 오르는 길에는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많다.
산에는 흰 눈이 모두 사라졌지만 등로에는 군데군데 사람들의 발길 아래 다져진 아직 녹지 않은 눈이 뿌연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잔뜩 웅크리고 잇는 모습도 보인다.
바람은 차고 세차서 누런 먼지를 마구 날리는데 금새 바짓단이 허옇게 되고 가파른 등로에서 날리는 먼지가 돌풍을
일으키며 갑자기 공격해 들어오기도 한다.
능선에 오르면 바로 남산인 줄 알았는데 능선은 짧게 이어지다 다시 거침 없이 하강한다.
남산은 봉우리를 하나 넘어 바닥까지 내려 섰다가 다시 가파른 비탈사면을 올라야 한다.
남산에는 아무도 없다
추운 바람에도 철갑을 두른 듯한 소나무가 두 그루 있다.
설마 이곳이 애국가에 나온 그 남산은 아니겠지…..
몇몇 산객들이 올라오는 바람에 친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봄은 아직 멀리 있는 듯 하지만 우린 먼저 봄을 찾아 떠났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건조하고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마음은 머지 않은 봄을 느꼈다.
연화봉은 남산에서 가파른 산길을 내려와 황새 고개에서 다시 350미터 봉우리를 올라야 했다.
이곳의 산들은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고 하나의 독립된 봉우리로 구분되어 있다.
마치 하나의 오름을 오르고 나서 다음 오름을 위해 다시 내려서야 하는 제주 구릉지의 기생화산처럼…..
태어나서 처음으로 개천면 연화봉에 발도장을 찍었다.
느닷없는 흉보에 마음의 평화가 깨어지지 않았더라면 흔쾌한 일탈의 하루였을 터이다.
연화봉에 선 기쁨보다 회장에게 전화연결하기 바빴으니 참으로 우스운 하루였다.
시간이 지난 다음에는 분명 오늘이 어처구니 없는 해프닝의 하루로 기록될 것이란 걸 알면서도 잡다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으니 그것이 또한 부족한 인간의 한계이리라…
그래도 이만큼의 여유와 느긋함이야 산이 준 선물 아닌가?
통영에서 회한사라 하고 어두운 귀로를 잡았다.
어쩌면 오늘이 한잔의 술이 필요한 날이었을 텐데….
아쉽지만 오늘은 술 한잔 입에 대지 않고 친구들에게 봉사하기로 한 날이니 어쩌랴..
펄펄 뛰는 회를 놓고도 한 잔의 술을 치지 못하고….
좋은 친구들과 자연 속에 좌정하면서도 그 번뇌를 떨치지 못하니…
머지 않은 훗날에는 그런 날도 있었네 하겠지…..
세월에 배우는 것들이 어디 한둘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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