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추억의 장소에 다시 간다는 건 설레이는 일이다.
희양산!
백두대간의 허리에 앉아 있던 골격미가 우람한 산이다.
희양산을 오르던 비오던 그날은 정상의 마루금을 밟지 못하고 성터에서 내려와 지름티재를 거처 구왕봉을 올랐다.
그날 봉암사 스님들은 지키고 있지 않았는데 스님들이 지름티재 하산로의 로프를 끊어 놓았다는 괴소문이 돌았고 비바람 치는 날씨에 안전사고의 위험이 많았다.
2003년 7월 12일 거친 행군에 쓰라린 사타구니를 부여잡고 버리미기재로 가던 날
35km의 긴 구간에 2시간 알바까지 포함하여 14시간 30분을 걸어 초죽음 상태로 버리미기재로 내려섰다.
그 희양산을 가기로 했다.
내 발자국을 허락하지 않았던 희양산은 100대 명산에 속한다
마눌과 함께 추어야 할 명산순례의 춤과 백두대간에 남겨진 하나의 섬에 도장을 찍는 두가지 의미를 찾아 가는 여행길이다..
산 행 일 : 2008년 5월 1일
산 행 지 : 희양산 –구왕산
날 씨 : 맑고 덥다 (춘천 33도 , 대전 29도)
소요시간 : 약 5시간
동 행 : 새여울 산님들
산행지 별 경유시간
09:53 희양산 등산 안내판
09:57 은티 산장
10:12 희양산 들머리 입석
10:23 지름티재 /성터 갈림길 (성터:1.2km, 지름티재 :1.0km)
10:40 바위적층 지대
11:12 성터
11:35 조망바위 (식사 : 약 30분간)
12;20 희양산 정상
12:38 지름티재 내림길 (정상에서 되돌아와 직벽하산)
13:23 지름티재
13:50 구왕봉 오름길 마당바위
14;13 구왕봉 정상 아래 소나무
14:27 구왕봉 정상
14;37 하산로 적송지대
14:50 맷돌바위
15:15 하산완료
15:22 희양산 들머리 입석
15;45 은티집
마침 새여울산악회에서 칠보산을 거쳐 은티재- 마분봉- 은티마을로 하산하는 종주여행을 떠난다고 했다.
은티마을은 희양산 구간 백두대간의 거점마을로 유명하다.
다른 산님들 모두 종주코스에 합류하고 은티마을에서 희양산을 갈 사람은 달랑 마눌과 나 뿐이다.
성터 가는 길
그 옛날 시루봉을 거쳐 성터에서 발길을 돌려 내려오던 길을 오늘 거슬러 올라간다.
이 길을 따라 내려왔던 기억을 되짚을 수가 없는데 성터아래 바위적층 지대를 만나니 가물가물 옛기억이 살아 난다.
원추리군락을 보았고 바위 위에 핀 야생화를 보았다.
추억을 따라 가는 이 길에는 우리 말고 아무도 없다.
성터
가파른 오름길에 흘린 뜨거운 땀을 성터를 스쳐가는 바람이 식혀준다.
비오던 그날 나무벽으로 막았던 출입통제 표시는 그대로이다..
그날의 아쉬웠던 회군으로 남겨두고 왔던 희양산 마루금
오늘은 5년 동안 끊어졌던 그 길을 다시 연결하고 마눌과 함께 100대 명산을 순례하는 의미 있는 날이다.
내 열정과 땀의 의미가 아직 남아 있는 백두대간에 올라서니 감회가 새로워 진다.
희양산 바위능선
100대 명산에 들 수 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겠다.
백두대간의 3/1은 어둠에 남겨 놓았는데 밝은 대낯에도 오르지 못했던 그 곳은 참으로 수려한 풍광이었다.
온통 푸르러가는 일망무제의 산릉에는 아무도 없고 무심한 바람만 불어 간다.
속세의 그림자는 어디에도 없는 첩첩산중이다.
흔들리는 가슴으로 처음 대하는 멋진 풍경 앞에 설 수 있음은 살아가는 날의 기쁨 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이 바위와 나무의 조화로움 속에 넘쳐나는 길
희양산 정상으로 연결된 그 바위능선 길이 속세의 답답한 마음을 후련하게 했다.
희양산 정상
작은 돌무더기만 덩그러니 산정을 지키고 있다.
표석이 없어 정상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었다.
앞쪽은 절벽이고 능선은 우측으로 낮은 산릉으로 이어진다.
5월의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정상에서 좌표를 잃고 잠시 공허감을 느끼고 있는데 한 산님이 가쁜 숨을 몰아 쉬고 올라 왔다.
“여기가 희양산 정상이 맞습니다.”
“ 중들이 표석을 뽑아버려 이모양 이지요”
이 산이 봉암사 소유의 임야라고 한다.
백두대간 종주객들의 아킬레스 건
산적처럼 희양산을 지키는 봉암사 스님들이야 대간객들에겐 악명높은 사람들이다.
그들에게도 이유가 있겠지만 봉암사가 저리 멀리 보이는데 정상에서 떠드는 소리가 수행에 방해가 된다고 기를 쓰고 통제를 하니 희양산의 오르려는 산객들은 야속하기도 할 터이다.
지나가야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사람들과
지나는 사람들로 인해 명상을 방해 받는 사람들
백두대간 주유 길을 떠나는 사람이나
속세를 떠나 깨달음의 고행 길을 떠나는 사람이나
모두 자신이 원하는 삶의 방식으로 살아 가는 사람들인데 조용하던 그 길이 희양산에서 소란스러워졌을 뿐이다.
불가에서 설하는 절제의 미학처럼 지나는 사람은 더 조용히 지나가고 정진하는 사람은 사람들이 만드는 작은 소리에도 불심이 흔들리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는 것이 합리적인 타협점이 아닐까?
봉암사 절 자체도 사월 초파일날 말고는 외부인의 출입을 1년 내내 통제한다고 하니 불교도량으로서의 자긍심과 정진하는 스님들의 각오가 대단하다 하겠다.
지름티재 가는 길
이런 길도 있다.
정상에서 되돌아 나와 지름티재로 내려 가는 길
그 옛날 비오던 날의 안전사고 때문에 성터에서 우회했던 바로 그 길이다.
속수무책으로 추락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서도 앞서 내려가면서 간담이 서늘해지는데 익숙치 않은 상황에 마눌은 공포로 오금이 저릴 길이다.
먼저 내려가서 중간중간에 발을 디디고 기다리면서도 심리적인 공황상태로 내려오는 마눌이 걱정스러워 사진 한 장 찍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세 군데의 로프구간을 지나고 나서야 기념사진 한 장 찍어둘 걸 하는 후회가 된다.
거의 수직 절벽인데 마눌 입장에서 보면 까마득한 아래를 보면서 내려 가는 것보다 차라리 오르는 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팔 힘은 더 들겠지만…
내려가는 길은 한적하다.
이쯤이면 되겠다 싶은데도 내리막은 계속된다.
수 많은 나무들
그 오랜 세월의 숲을 지나 간다.
수백년을 넘게 세월의 풍상을 겪으며 천천히 자신의 운명을 완성해 간 나무들을 바라본다.
그들에게 나는 금새 지나갈 낡은 시간에 불어내린 한 줄기 바람 이었다.
지름티재는 산릉을 따라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 거의 바닥까지 내려서야 만날 수 있다.
두려움과 안도감이 교차되는 혼란스러움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마눌은 너무 몸이 굳어있는 상태에서 힘을 쓰다 보니 체력이 많이 소모되었다.
희양산정에서 받는 기를 절벽에서 모두 뺏기어 버리고 그 동안 비축했던 힘도 다 써버린 셈이다.
지름티재
여기가 성터에서 계류를 거쳐 올라와서 휴식하던 길이다.
나뭇가지로 견고한 목책을 만들어 설치해 놓았다.
목책 위로도 아랑곳 없이 서슬 푸른 봄이 번져가고 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은티마을로 되돌아 가는데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있다.
목표달성이야 했지만 시간이 된다면 구왕봉을 넘어 추억의 길을 다시 걷고 싶다.
오늘 마눌의 컨디션으로 마분봉 까지는 힘들테지만 그래도 구왕봉에서 희양산의 모습을 바라 보아야 속이 후련해질 것 같다.
잠시 그늘아래서 과일을 먹으며 숨을 돌린다.
위로 올려보기에는 별거 아닌 것 같아도 그 때 구왕봉 오르는 길도 꽤 낙차가 컸었던 것 같다.
수직절벽을 올라 바위 난간에서니 희양의 거대한 흰 암괴가 한 눈에 들어 온다.
눈에 익은 모습이다.
희양의 흰얼굴은 너무 반가웠다.
비가 오던 그날 거센 바람에 새벽처럼 맑게 씻긴 모습으로 서 있던 흰 암릉의 산
5년의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 모습 그대로이다.
속도가 승부를 가르는 변화 가득한 세상에 우리가 산다
희양의 숲도
그 안에서 삶과 죽엄을 보내는 무수한 생명들도
그 숲을 거니는 사람 조차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내가 거기 서 있었던 그 시간들도 한번도 정지된 채 머물지 않았다.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것을 만나는 것은 기쁜 일이다.
바라보는 것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할 수 있는 추억의 옛 산이다.
“나마스테!”
나뭇잎을 통해 들어오는 푸른 햇살에 깨달음의 느낌이 왔다.
흔들리지 않는 평화로움과 마음의 고요를 본다.
공기처럼 마음이 자유로워졌다.
더 긴 길을 가지 않기로 했다.
구왕봉 표석에서 사진을 찍고 가까운 능선으로 흘러내리는 길이 백두대간 능선길이 아님을 알았지만 돌아가지 않기로 했다.
산세의 흐름으로 보아 그 길은 계곡 어딘가로 떨어져 은티마을로 연결될 것이다.
희양산에도 올랐고 희양산을 바라보며 구왕산 나무등걸에 5년 전에 걸어 두었던 추억을 걷었다.
더 욕심 낼 것도 없었다.
희미한 길을 걸어 알려지지 않은 통로로 걸어 나왔다.
그곳에 길이 있었다.
아래서는 찾아 오르기 불가능한 길을 알아 낸 셈이다.…
은티집
느티나무 아래 주막이 있었다.
대간객의 쉼터
여름처럼 뜨거운 태양이 한낯의 폭염을 쏟아내는 오늘
속이 얼얼해지는 막걸리 맛은 일품이었다.
2시간 동안 고립된 산간마을의 나른한 오후 속에 있었다.
다시 오는 누군가는 진한 향수에 젖을 것이다.
그 뜨거웠던 시절의 역사를 말없이 전해 주는 느티나무 아래 주막
싸움닭 같은 분주한 아줌마의 날카로운 음성과 영지와 대추가 둥둥 떠다니는 시원한 막걸리가 그날의 감동을 불러내 줄 것이다.
변하는 많은 것들 중에 변치 않고 자신을 기다려 주는 것에 대한 기쁨과 감동을 ....
따뜻한 색조의 게으른 권태
사람들의 움직임과 사물의 변화보다 더 느긋한 시선과 사고로 한껏 게으름을 피우는 자유가 있다.
침묵이 수다스럽게 말을 걸고 내가 말을 걸지 않고도 산이며 들이 말을 걸게 하는 나른하고 나태한 시간
느림이 결핍이나 부족한 느낌을 가져다 주지 않는 어느 봄날 오후의 여백이었다.
마눌과 함께한 추억의 여행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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